71화
트럭에 하칸의 알을 싣고 도착한 곳은 게렌 에티의 앞이었다.
-이것은 정녕 하칸의 알이란 말이냐?
게렌 에티는 자신의 앞에 놓인 알의 자태를 보며 넋이 나가 말하였다. 드래곤의 알 중에서도 가장 구하기 힘든, 바로 그 하칸의 알이 자신의 앞에 떡 하니 놓여져 있었다. 뒤에 서있던 신하들도 하칸의 알을 보며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드래곤의 알을 구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고, 이것을 부화시키기란 더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미 이 알의 부화율은 벌써 55%에 도달해 있었다. 절반을 넘은 수치이다.
-이봐, 저 상태의 드래곤 알 본 적 있어?
-내가 살아오면서 봤다면 지금 이러고 있겠나.
신하들의 술렁거리는 소리가 파도에 쏠려오듯 들려왔다. 반면 게렌 에티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이차원이 의아함을 느낄 때, 게렌 에티가 하칸의 알에 큰절을 올렸다. 그 뒤로 서있던 신하들 역시 왕을 따라 절을 올렸다. 왕이 큰절을 올릴 정도라니, 그만큼 드래곤은 다크 혼 세계관에선 매우 신성하고 강력한 존재인데 이차원은 그런 드래곤을 키워서 다스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무지 믿기 지가 않구나. 대체 어떻게 이것을 구하였는가?
“운이 좋았습니다.”
게렌 에티가 이전보다 더한 존경심을 가지고 이차원을 관찰하였다. 이 정도면 이차원은 이제는 그냥 영웅, 요정이 아니라 몇 급수는 더 높은 존재, 그 이상이었다.
-자네가 혹시 7 성군 중 하나인가?
7성군은 현재 차원이 밟고 있는 이 대륙 전체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7명의 인간이다. 말이 인간이지, 인간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는 존재이다. 이차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면 성단과 관련이 있는 겐가?
게렌 에티는 어쩌면 차원이 7성군의 사람이거나, ‘황실’처럼 그들을 일컫는 기관인 성단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인 줄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차원은 그의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긍정도 안 하는 상황이 좋을 때가 있지 않은가.
***
-다들 제정신으로 돌아왔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아 다행이구만.
황실을 제외한 타무스 왕국 모든 사람들이 이차원 일행이 가져온 영약으로 인해 정신을 차렸다. 이차원 일행들을 구속하려 했던 기사들은 그들에게 머리를 읊조리며 사죄하였다.
“괜찮으니까 모두 일어서라 하세요.”
이차원 일행은 곧장 다음 계획을 위해 대장간으로 향했다. 망치를 만드는 것에는 속죄 매듭이 무조건 필요하다. 이 왕국에 온 이유 역시 속죄 매듭이었기에 당연한 순서였다.
-저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꺾고 과일가게를 지나쳐 가면 보일 걸세.
코웰의 도움으로 대장간에 도착하니 그곳 대장간의 주인인 칸테를 만나게 되었다. 작지만 다부진 체구의 칸테는 수염이 무척이나 많았다. 칸테 역시 이차원 일행이 가져온 영약을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칸테는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해 왔는지 기억도 못 하는 눈치였다. 거기에 대장간에 차원이 처음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아마도 이들에게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칸테는 여러 주민들의 일을 받아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대장간 안으로 보이는 여러 철제 기구들과 장비들이 증명하고 있다는 듯이 놓여져 있었다.
‘하긴, 그렇다면 우리에 대해 모를 만하지.’
칸테는 이차원 일행의 모습을 보더니 어딘가 남다르다고만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거쳐 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차원 일행에게 호기심을 보일 때, 코웰은 칸테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너무 충격받지 말게. 세뇌 마법이란 것에 걸려던 거니까.
-어떻게 충격을 안 받겠나. 내가 마법에 걸린 줄도 모르고 매듭을 만들었단 건데 그러고도 대장장이라고 할 수 있겠냔 말일세!
자신의 직업에 대해 명예감이 큰지 자신 스스로를 쉽게 용서하지 않았다.
-이 사람아 그럼 기사단장이 난 뭐가 되겠나. 그만큼 강력한 마법이었던 거니까 기운 차리게.
코웰과 칸테는 오랜 친분이 있는지 편하게 말이 오갔고 코웰로부터 이차원 일행의 활약을 들은 칸테는 금방 이차원 일행을 알아봤다. 그제서야 칸테는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설마 그 영웅들?
이미 차원의 존재는 다른 왕국에도 영웅이었고, 칸테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뇌 마법에 걸린 이후로 차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잃어버렸던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국왕이 처음 이곳에 차원 일행을 데려왔을 땐 아예 몰라보더니 이제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분명 그 여자가 말했던 사람들이잖아!
처음 봤을 땐 몰랐지만, 두 번째 보고 알게 된 사실에 매우 놀라 하였다. 동시에 세뇌 마법의 무서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이차원이 사는 현실 세계에서 이런 능력이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 소름이 쫙 돋아났다.
[ 칸테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 칸테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 칸테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칸테는 자신을 구해준 차원에게 한없이 빠졌고 호감도는 멈출 줄 모르고 올라갔다.
‘생각보다 마음이 여린가 보네.’
거칠게 생긴 남잔데 마음은 여렸다. 칸테의 모습은 마치 장난감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두 눈이 말똥거리면서 다이아몬드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거친 모습에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상상해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 칸테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
아니, 잠깐. 호감도가 아직도 오르고 있잖아? 이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싶을 때 또 다른 안내창이 눈에 들어왔다.
[ 칸테의 스킬이 부여됩니다. ]
[ (VR)대장장이.LV1 ]
[ 장비의 능력치를 한 층 더 강화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1분간 아이템 능력치 2배 강화. 단, 내구도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시, 강화 수치에 대한 내구도 효율이 상승합니다.) ]
‘이렇게나 빨리?’
호감도를 이렇게나 빨리 올려준 역대급 NPC가 탄생했다. 이러면 부담스럽긴 하지만 뭐, 기분은 상당히 좋네.
‘더 나아가서 아이템 능력치가 두 배라.’
거기다 스킬도 유용했다. 차원은 자기 자신의 레벨이 높아지고, 아이템과 무기가 좋아질수록 매우 파괴적인 스킬이란 걸 단번에 파악하였다. 하지만 우선, 기뻐하는 일보다 급한 것이 있다.
‘일단 우선적으로 해야 할 건, 리지의 행방을 찾는 거야.’
칸테에게도 마법에 걸렸다면, 분명 이곳도 지나쳐 갔을 게 틀림없었다. 이차원은 칸테에게 리지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 여자가 이끄는 사제단과 용병단이 어디로 갈 건지 남긴 단서가 있나요?”
칸테는 마법에 걸린 탓인 듯 기억이 가물가물하였다. 고민하던 그때,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사제단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 게 있습니다. 겨울 눈꽃이 필요하다고 동쪽으로 간다 했습니다.
겨울 눈꽃은 재료형 아이템으로, 덫꽃 잎처럼 영약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되며 영약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한 재료로 사용된다.
‘동쪽이라면 1년 내내 겨울인 세레나 왕국뿐 밖에 없어.’
-영약을 만들려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영약 종류도 한두 개가 아니라 정확한 계획을 알기 힘드네요.
울프릭의 말처럼 겨울 눈꽃이 어느 영약에나 다 들어가는 것이라 어떤 영약에 들어가 있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차차 알 방법을 찾으면 될 뿐이다. 어쨌든 리지의 행방을 찾아내는 건 성공했으니 성과는 있었다.
“그러니 더 알아봐야지.”
이차원이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다음으로 향한 곳은 마구간이었다. 외부인들의 말을 맡기고, 모든 말을 관리하여 다음 일정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 로텐의 호감도가 증가했습니다. ]
[ 로텐의 호감도가 증가했습니다. ]
마찬가지로, 마구간의 주인인 로텐도 코웰에게 이야기를 듣자마자 호감도가 상승하였다. 칸테도 그러했지만 이 마을 NPC들, 이차원 일행을 굉장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 로텐의 호감도가 증가했습니다. ]
칸테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호감도는 어느덧 다 채워졌다.
[ 로텐의 스킬이 부여됩니다. ]
[ (VR) 안정.Lv1 흥분 상태의 몬스터를 8초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
‘몬스터 안정?’
이차원은 생각과 동시에 렌더를 쳐다보았다. 이 스킬이 쓸모없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차원의 일행에는 몬스터의 말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는 렌더가 있기에 꽤나 효용이 높은 스킬이 될 수 있다. 당장 저번에 리바이온 때만 해도, 리바이온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면 렌더가 더 많은 정보를 얻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렌더는 자신을 웃음 지으며 바라보는 이차원을 의아해하였다.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잘만 사용한다면 아주 좋을 거야.”
이차원은 자신의 속마음이 새어 나온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절 어디에 쓰려는 거예요?
렌더는 자신에게 무서운 짓을 시키려는 듯한 이차원에게 놀라며 물었다. 울프릭은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로텐에게 리지에 관해 물었다.
-동쪽 세레나 마을에 들러, 곧장 코젠 마을로 간다고 하더라구요. 그곳까지 갈 수 있게 말발굽을 모두 교체해달라고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호감도가 극도로 올라있는 로텐은 아무 조건없이 흔쾌히 도와주었다. 코젠 마을이라, 듣자마자 이차원은 리지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벌써, 그걸 준비하다니. 나머진 다 준비되었다는 건가.’
이차원은 제법이라는 듯 히죽 웃었다. 그 모습에 렌더는 공포를 느꼈다.
***
이차원의 생각대로 리지가 행동한다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이차원이 다음 대책을 생각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뭐지?
“렌더 씨, 한 번 조사해 보고 올 수 있어요?”
-네? 제가요? 저를 무서운 표정으로 보면서 생각하신 게 이 일인가요?
렌더는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듯하였다.
“그런 거 아니니까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이차원은 렌더를 안심시켰다. 결국 렌더는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코젠 마을에 서식하는 레온의 뇌는 무력 영약의 주재료야. 그다음 목적지가 코젠 마을이라면 무력 영약을 만들려는 게 확실해.”
코젠 마을에는 무력의 영약의 주재료인 ‘레온’이라는 거대 토끼 몬스터가 존재하고 있다. 울프릭은 재차 확인하려는 듯 되물었다.
-확실해? 다른 용건이 있는 걸 수도 있잖아.
“다른 용건이 있을 순 없어. 코젠 왕국은 수백 마리의 레온이 갑작스럽게 덮쳐 망한 왕국이니까.”
리지가 무력의 영약을 만들려는 건 확실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를 아직 모른다는 것이었다.
-무력의 영약은 만들어서 뭘 어쩌겠단 건데?
“대악마를 깨우기 위해선 제물이 필요해. 그러니 대량으로 무력의 영약을 만들어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겠단 거겠지.”
레온은 각 왕국의 산맥에 대부분 한두 마리씩 꼭 있는 것인데, 코젠 마을로 향했다는 것은 단번에 모으겠다는 그 의지가 강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누굴 제물로 삼겠단 건지...
“왕국이나 조직에 묶인 사람들을 주로 노릴 거야. 개별적으로 사람을 모으는 귀찮은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때, 렌더가 달려왔다. 숨을 매우 거칠게 내뱉었다.
-크헉. 왔습니다!
“왔다니?”
-요정님 말씀대로 하칸의 알을 노리는 자들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