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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62화 (62/202)

62화

자신 있게 대답한 최한일의 표정은 무척 담대해 보였다. 이차원은 최한일을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최한일이 내민 파격적인 조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당황하던 최한일에게 이차원은 전혀 다른 협상 조건을 내밀었다.

“그럼 모든 게이트에 허가 필요 없이 진입할 수 있게 해주세요.”

“네? 그건...”

이차원의 갑작스러운 조건 제시에 최한일이 난처한 듯 말끝을 흐렸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최한일은 거절당한 협상안을 만지작거렸다.

“분명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다짐하시지 않았나요?”

이차원은 그런 최한일의 속을 파고 들었다. 최한일은 뒤늦게서야 이차원에게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막상 이차원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최한일은 그동안 여러 협상을 해왔다. 그렇기에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리 준비를 해놓았었다. 하지만 이차원을 너무 쉽게 본 건지 이런 상황은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파격적인 조건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모든 게이트 접근 허용. 이것만 들어주시면 되는 건데 그렇게 어려운 조건인가요?”

이차원은 그저 단순한 조건이라는 듯이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이차원은 이 조건만 성사되면 앞으로의 행방이 더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눈치챈 상황이었다.

한편 최한일로선 자신이 준비한 조건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협상테이블을 이어나갈지 머리가 꼬였다.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건 새로운 협상안을 준비하는 것밖에 없었다.

최한일은 이차원에게 일단 꼬리를 낮추며 부탁의 형태를 취했다.

“시간을 주시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부터가 독일 중국, 일본 미국 나라들보다 조건이 짠 거 아닌가요?”

이차원의 말에 최한일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일본 독일이라면 모를까, 중국 미국은 아무리 잘난 헌터라도 무조건적인 허가 권한을 승인해주진 않았다. 허나 최한일에게 차원의 말 하나하나가 꽂혀 들었다. 차원이 그만한 힘을 충분히 가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차원의 말대로 만에 하나 다른 나라에서 그 말도 안 되는 권한을 쥐여주었다면, 실제로 차원을 데려갈까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참고로 저 군필잡니다. 조건만 승인해주면 나라에 충성할 각오는 돼 있단 뜻입니다.”

“정말 그거면 됩니까? 연봉이라던가 복지 같은 건요?”

최한일이 재차 물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협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었다. 이차원은 그런 것들에 전혀 질문을 하지 않고 있음에 의아해하였다.

“돈은 여기서 가장 상관없는 주제입니다.”

연봉이며 계약금이며 수십억, 많게는 수백 수천억까지 떨어지는 것이 국가 소속 헌터가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하지만 이차원에겐 이미 게임 속에서 수없이 많은 아이템을 가져올 것이 정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다.

또한 이차원은 그 아이템들을 더 빠르게, 그 아이템과 스킬을 모으는 과정을 더 파워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게이트 자유 권한이 반드시 필요했다.

당장 울프릭에게 이 현실에 있는 여러 가지 아이템을 제공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차원이 돈과 물질적인 보상은 별개로, 게이트 출입 자유 권한에 대해 굳은 마음을 계속해서 내비치었다. 그 모습에 미팅장 밖에서 대기 중이던 국방부 및 대한민국 소속 헌터 집단도 바빠졌다.

“청와대에 연락 돌렸어?”

“네. VIP한테 보고드렸다고 기다리랍니다.”

바빠진 건 건 청와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서 헌터에게 무조건적인 게이트 승인을 주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추가로 그에 따른 책임도 엄청났기 때문에 쉽게 허락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차원을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너무 아까운 인재란 걸 알기에 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게 미팅장 밖에서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리는데 직원 하나가 달려 들어왔다.

“VIP 승인 떨어졌답니다. 3년. 3년 있다가 다시 그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걸로.”

그 얘길 들은 직원이 급하게 미팅장 문을 열어젖혔다. 직원은 숨넘어가는 듯한 표정으로 최한일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그에 굳은 표정의 최한일이 보인다. 그와 동시에 이차원은 어딘가와 통화를 하며 웃음을 짓는 모습이 보여졌다. 역시 이차원은 나는 놈이었다. 이 상황마저도 최한일의 머리 위에 있었다.

“3년 조건으로 무한 게이트 허가 드리겠습니다.”

“어쩌죠. 방금 미국에서 1년 조건으로 무한 게이트 준다는데. 미국 땅덩이면 한국 3년을 1년 만에 다 돌 수도 있겠습니다.”

이차원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최한일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져 갔다. 자신의 걱정이 현실로 돼가고 있음을 판단했다.

“조,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뭐해, 다시 가서 다른 제안 빨리 준비해 와.”

직원에게 다시 지시를 내리니 급하게 미팅장을 빠져나갔다.

사실 이차원 입장에서도 한국이 아쉬울 이유는 없었다. 미국에서 1년 자유권한을 얻은 것이랑, 한국에서 3년 자유 권한을 얻은 것이라면 비등비등했고 어쩌면 미국이 나을 수도 있다.

‘애초에 땅이 넓은 미국으로 가면 더 많은 게이트가 있겠지. 그럼 나의 기대감을 더욱 충족시킬 수도 있어.’

거기에 이차원은 단순히 게이트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신경 쓸 것이 있었다. 바로 울프릭이었다.

‘울프릭과의 행보도 중시해야 돼. 게임을 통해 울프릭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얻을 수 있는 게 있으니까. 강해지기 위해 게이트만을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당연히 미국 1년이 좋다는 것을 강조하던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걸기 위해 그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이차원은 한국 정부에서 기간을 늘려주길 바라는데 잠시 후 직원이 다시 미팅룸을 박차고 들어온다.

“6년. 6년 드리겠답니다.”

“뭐? 6년?”

직원의 말에 최한일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럴 것이 방위대장으로 이번에 지명 당한, 최천성 헌터가 2년간 자유권한을 받은 것과 비교했을 때와 엄청 차이가 나는 조건이었다. 이로써 나라에서도 이차원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건 분명해 보였다.

***

최한일은 협상을 마치자마자 사무실과 차를 포함한 모든 걸 빠르게 준비해줬다. 이차언과 계약을 성공한 탓인지 안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집으로 가시는 겁니까?”

“아니요. 사무실 한 번 들려야죠.”

최한일은 가볍게 고갤 숙이고 차에 올라탔다. 이차원은 계약을 통해 새롭게 얻은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엔 컴퓨터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준비돼 있었다. 이차원의 마음에 쏙 들었는지, 기본좋게 다크혼에 접속하였다. 울프릭과 렌더는 이차원이 떠나기 직전과 같은 곳에서 대기 중에 있었다.

“알아서 해결하겠다며.”

오우거를 쓸어 보내고, 차원이 빠르게 최한일과 일을 하러 나갔던 것은 울프릭이 다음 행보를 못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기분 좋아 보인다?

울프릭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말해놓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것 때문인지, 자존심이 상해 보였다.

“만능열쇠를 얻어 왔거든.”

이차원의 아리송한 말에 울프릭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았다. 지금 이차원이 즐거운 이유는 울프릭을 놀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앞에서 체결한 계약 때문이었다.

“문제를 보고해봐.”

물론 차원은 게임 속 문제를 모두 알고 있지만, 울프릭이 어느 정도로 생각을 하고 전략을 수립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에 일부러 물었다. 마치 아이에게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요령을 알려주려는 부모의 모습 같았다.

-타무즈 마을까지 가려면 이놈의 정글을 지나가야 되는데 늪이 문제야.

루도브에서 타무즈까지 가는 길에 있는 크라투반 정글은 플레이어들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드래곤의 존재도 있지만, 늪도 있었다.

“늪이 왜 문제인데.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거야?”

이차원은 계속 떠보듯 질문을 하였다. 이번엔 렌더가 끼어들었다.

-늪에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리바이온이 나오더라고요.

리바이온은 원래는 용이었는데, 동료의 알을 훔치려다가 적발되어 팔다리, 날개가 실제 기능을 못 할 정도로 짧게 변한 몬스터이다. 게임 속 세계관이지만, 진화를 했는지 어쨌는지, 팔다리가 그래도 길어져서 용의비늘을 가진 악어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물론 이 역시 현실에는 없는 몬스터다.

-무슨 힘이 그렇게 센지. 아휴.

렌더는 리바이온을 떠올리며 몸서릴 쳤다. 리바이온은 무력이 매우 강했고 특히 늪이라는 환경에선 걸리면 그냥 사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때 렌더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박수를 치며 말했다.

-나무를 타고 가는 건 어떨까요?

렌더의 말에 이차원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속죄의 모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해요.”

속죄의 모기라는 건 곤충형 몬스터다. 곤충형 몬스터가 사람 크기의 거대한 것도 있지만, 실제 곤충처럼 작은 것들도 있는데. 이놈들이 무서운 이유는 크기는 작으면서 플레이어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 대단하다. 작은 고추가 매운 걸 떠나 쓰라렸다.

“결국 악어냐 모기냐 둘 중 하나네.”

어째, 차원이 말이 모두 놀리는 것처럼 들리는 울프릭이 이차원을 흘긴다.

-저는, 그래도 악어 쪽을...

“이유는요?”

-제가 그놈들하고 말이 통할 수도 있으니까?

나름 일리 있는 말이었다. 실제 렌더가 리바이온들과 이야기만 잘 통한다면 무사히 지나갈 수도 있을 법하였다. 이차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울프릭 넌?”

-네가 골라, 어차피 네 말을 따를 거니까.

울프릭은 그냥 차원에게 선택을 해달라고 한다. 이차원은 잠시 고민 후 선택하였다.

“난 모기. 하지만 그러려면 여기서 며칠 더 기다려야겠다.”

***

샌드웍이라는 몬스터가 뱉어내는 토사물을 몸에 바르면 속죄 모기를 피할 수 있었지만 당장 울프릭과 렌더가 있는 크라투반 정글에는 샌드웍이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 얻는 것이 빨랐다.

“모기약 좀 구해올게.”

이차원은 그 말을 끝으로 게임에서 나갔다.

샌드웍은 젖은 모래로 잘 빚어진 두더지같이 생긴 몬스터에서 나오는 물질이다. 놈이 숨 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끈적한 모래가 바로 그것이다. 놈의 타액이 묻은 모래가 곤충형 몬스터들을 퇴치하는 것에 제일 특효약이다.

이차원이 게임에서 나오자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가 들어온다. 박지원이다.

박지원은 최한일이 붙여준 인력으로, 차원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박지원은 굉장히 까다롭고 고지식해 보였다. 그러나 국가에서 단순히 이차원을 보좌하라고 이런 비서까지 붙여준 것이 아니란 것쯤은 이차원 자신도 알고 있었다.

‘스케쥴 하나하나 감시하겠단 거지. 나야 상관은 없다만.’

차원을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준다면 상관이 없다는 마인드였다.

“샌드웍, 알아보셨습니까?”

“아, 예 알아봤습니다만 정식적으로 길드에 입찰을 내어준 곳이라...”

박지원은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바들바들 떨었다. 역시 보이는 대로 믿지 말라는 이유가 여기 있었나. 박지원은 조금 난처한 듯 말끝을 흐렸다.

게이트는 보통 보스를 잡으면 소멸되지만 종종 부산물을 얻기 위해 보스를 잡지 않고 입찰을 내주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샌드웍이 나오는 게이트도 입찰을 내주는 게이트였다.

“샌드웍 토사물은요? 난 그것만 있으면 되는데.”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 샌드웍 게이트가 단 하나라... 그, 부르는 게 값이고 수출되어 오는 것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몬스터의 부산물이나, 아이템 등은 각 국가간의 규제가 심해, 일반 상품이 오는 것의 몇 배나 더 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수출해오려면 그 아이템이 필요한 이유를 명확히 증명해야 되는데, 차원은 게임 속 캐릭터에서 제공하기 위해, 라는 이유를 적어 낼 수 없었다.

“게이트를 직접 가야겠네. 국가 소속 헌터랍시고.”

“그럴 수는...”

“없나요? 국가 소속 헌터는 그런 것 상관없이 가는 것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정확한, 명분이...”

박지원은 이차원의 물음에 계속 말끝을 흐렸다.

“명분이 있어야만 갔나. 잘들 가던데. 정식 입찰 받은 길드는 어디예요?”

“우랑. 중국계 길드입니다.”

샌드웍이 주로 출몰하는 게이트를 공식 입찰받아 그곳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나, 그에 대한 수입에 대한 권한을 모두 가지고 있는 길드는 우랑이었다.

우랑은 중국에서 건너온 헌터들이 만든 길드로, 업계 내 소문이 좋지 않았다. 부산물 수익이 높은 게이트는 직접 사냥해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이트는 초보 헌터들에게 시간당 돈을 받고 사냥터를 제공해주거나, 강습을 해주거나 등등 초보 헌터들에게 여러 수익을 얻고 있었다. 즉, 고객들에게 하는 처우가 소문이 많이 나 있었다.

게이트에서 실종된 헌터들도 있다느니, 돈 뺏기고 아이템도 빼앗긴다 하는 여러 흉흉한 소문들이 떠돌아 다녔다.

“뭐야, 명분 충분하잖아.”

때문에 이차원이 보기엔 명분이 충분해 보였다. 게임 속 리지를 막기 위해서도, 이차원은 사무실을 나서 게이트로 향했다.

이제 게임을 즐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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