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이차원 일행은 타무즈로 떠났다.
‘타무즈라..... 악명 높기로 유명하지.’
다크 혼의 유저들은 타무즈를 밟는 순간부터 그전에 있었던 일들은 다 튜토리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고 거기에 이차원도 동의했다. 그만큼 이전에 거쳤던 스토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선 타무즈는 이전 성들과는 다르게 맵 자체가 엄청 넓었다. 작은 성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인 시몬 대륙과는 다르게 페이튼 대륙은 하나의 거대한 왕국이 12개 영지를 다스리는 형태였고 그곳에서 길을 잃은 플레이어도 한둘이 아니었다.
또한 타무즈로 가기 위해 크라투반이라는 정글을 지나야 했는데 그것은 볼 산맥을 넘는 것만큼이나 험난했다. 물론 볼 산맥처럼 거인이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드래곤의 둥지가 근처에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거기다 원래 게임 시나리오대로면 드래곤의 체력은 무제한. 플레이어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장치 중 하나였는데.’
물론 이차원도 드래곤을 죽였을 경우 보상 때문에 공략집을 살펴봤으나 드래곤을 잡으려고 시도했던 차원 이동자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 듯 보였다.
‘대신 드래곤 알을 훔쳐 소환수로 기를 수 있다고 하니 둥지를 발견하면 시도해볼 가치는 있군.’
책상에 앉아 공략집을 보고 있던 사이에 울프릭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젯밤 걱정에 둘러싸여 잠을 제대로 못 잔 듯하였는데 표정을 보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울프릭은 어두웠던 표정에서 확 펴지지는 않았지만 한층 밝아진 표정이었다.
“잘 쉬었나 보네?”
이차원이 게임 속으로 들어가 얘기를 건넸다.
-덕분에. 너와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어젯밤, 이차원은 울프릭과 그 뒤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차원의 힘이 되어주는 말들이 울프릭에게 좋은 영향으로 끼친 모양이었다. 역시, 고민이 있으면 혼자 해결해 나가는 것보다 의지가 되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편이 더 편해지는 거 같았다.
-어라, 모두 모이셨네요.
이어서 렌더도 방에서 나왔다. 다친 상처를 보니 그새 다 나은 듯해 보였다. 다행히 모두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이 정도의 상태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할까?”
모두 각자의 짐을 챙기고 여관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정글을 향하여 이동하였다.
이차원 일행은 한 세 시간쯤 지나자 크라투반의 초입이 보였다. 초입부터 푸른색의 창살 같이 덩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덩굴들을 헤집고 들어가자 무수한 초록빛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크라투반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나무와 풀로 무성한 크라투반에는 시바라는 부족이 살고 있다.
“크라투반 정글은 볼 산맥 정돈 아니지만 결코 만만한 곳도 아닙니다. 렌더씨도 긴장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여기 서식하는 시바 부족이 언어학자들 사이에선 악명 높거든요. 다행히 제가 시바족 언어를 조금 알고 있으니 쫄 거 없습니다. 하하하하.
렌더는 나름 자신감 있게 말하며 너스레를 떠는데 울프릭이 일침을 가한다.
-하면 뭐하나. 저번처럼 죽고 싶지 않다고 발악할 텐데.
울프릭, 일전에 볼 산맥에서 거인을 만났을 때 렌더가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건 그때고... 같이 가요!
이차원과 울프릭은 렌더 말 듣기도 전에 먼저 정글로 들어가고 렌더는 이를 바짝 뒤쫓는다.
풀숲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가자 벌떼가 윙윙거리고 여기저기서 뱀이 쉭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뱀 공포증이 있던 렌더는 뱀의 소리만 듣고도 울프릭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이러면 앞으로 가기 힘들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잡히지 않는 요정님을 붙잡을 수도 없잖아요.
그렇게 그들은 험난하게 정글을 헤쳐나갔다. 앞으로 나아가니 거대한 풀들이 그들 앞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이차원과 울프릭은 각자 검을 꺼내서 사람 키만큼 자란 풀을 자르며 길을 만들며 걷기 시작했다. 이내 어디선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그곳엔 강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물살은 세지 않았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수심이 깊진 않아.
대략적인 강물 수심을 확인하고 온 울프릭이 말하였다.
-하지만 어디서 갑자기 수심이 깊어질 수도 있어서 맨몸으로 건너기엔 위험할 수 있어.
-나무를 잘라서 길을 만드는 건 어때요?
“그게 좋겠습니다.”
렌더는 곧장 나무를 자르러 풀숲을 향하는데 곧 렌더가 이차원과 울프릭을 부른다.
-수상한 걸 발견해서요.
렌더가 발견한 건 피 묻은 나무조각인데 조각엔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오우거가 쓰는 문자 같은데요?
물론 이차원은 오우거가 어디서 나올지 알고 있었다. 그것 또한 공략집에 다 적혀있었다. 악마들에게 영혼을 빼앗긴 오우거들은 다음 강줄기에서 등장할 예정이었다. 그것도 무려 10마리나.
공략집 없이 바로 맞닥뜨렸다면 미처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차원은 처리할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근처에 있는 건가?
“아니. 다음 강줄기에서 나올 거야.”
-그것도 요정들이 가지고 있는 감의 일종인 거냐?
“그렇다 봐야지. 일단 내가 지금 급하게 갈 곳이 있어서. 강만 건너고 대기하고 있어.”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다. 1시에 사무실에서 김역전 사무실에서 미팅이 있었기 때문에 늦지 않으려면 곧장 김역전 사무실로 가야 했다.
집을 나서고 사무실로 가는 길 골목에 은지를 보게 되었다.
이차원은 사무실 가기 급해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은지 주위를 낯선 남자들이 둘러싸기 시작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귀찮게 됐네.’
이차원은 결국 다시 돌아가 골목으로 들어간다. 남자 한 명이 은지의 팔을 세게 붙잡고 윽박지르는 중이다.
“힐슬아치면 다냐? 어디서 뻔뻔하게 잘못 없다고 오리발이야!”
“이거, 놓으라고!”
은지가 남자한테 잡힌 손을 빼내려 하는데 쉽지 않았다. 서서히 은지를 강하게 협박해 올 때였다. 그때 남자 쪽에서 갑자기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차원이 남자의 뒷목을 잡고 바닥에 내팽겨친 것이었다.
“너 뭐야 씨발!”
쓰러진 남자와 그의 일행이 이차원에게 덤비려는데 이차원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뒷걸음질을 쳤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이차원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당신들, 빨리 안 꺼져?”
남자와 일행들은 겁을 먹었는지 고작 바닥에 침을 뱉고는 빠르게 사라진다.
‘모른 척 가주는 게 예의려나.
그리고 이차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평하게 다시 골목을 나가려는데 은지가 이차원을 붙잡는다.
“고마워요. 도와줘서.”
“갑시다. 늦었는데.”
이차원은 시계를 확인하는 척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런 이차원의 옆에 은지가 따라붙었다, 이차원이 묻지도 않은 걸 미주알고주알 말해주었다.
“예전에 게이트 토벌에 함께했던 팀원들인데 저한테 쌓인 게 많아요.”
“은지씨 성격에 먼저 잘못했을 거 같진 않은데.”
“제 잘못 맞아요. 힐이 필요한 게이트에서 쉴드 레벨만 올려서 갔거든요. 나중엔 같은 팀원들이 절 꺼려 하는 걸 알곤 스킬 포인트 초기화를 하려고 했는데 물약이 너무 비싸서 포기했어요.”
이차원은 은지의 말을 들으며 그저 경청만 하였다. 확실히 남자들이 은지에게 보인 행동은 잘못됐지만 그들의 심정을 전혀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정 게이트들은 힐이 없으면 부상을 입거나 심한 경우엔 죽기도 하니까.
“그래도 은지씨 쉴드 타이밍 하나는 힐러 중엔 최고일걸요. 전 은지씨 덕 많이 봤습니다.”
“저, 정말요?”
“네. 힐 스킬도 앞으로 차차 나아지겠죠.”
이차원의 위로를 받은 은지는 이번에도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제가 꼭 밥 한 끼 사드리고 싶은데.”
“괜찮습니다.”
“아니요! 전 꼭 사드릴 거예요. 그러니까 이차원씨도 꼭 드셔야 해요!”
은지는 주먹을 꼭 쥐고 외치고 이차원은 그 모습에 피식 웃는다.
“알겠어요. 일단 사무실 가시죠. 이러다 정말 늦겠습니다.”
이차원과 은지가 함께 회의실로 들어가는데 최번개와 예리나는 미리 와 있었다.
“뭐야? 둘이 같이 왔어?”
“앞에서 만났어. 유현이는?”
“면접 준비 중. 요즘 우리 길드 들어오려는 사람이 줄을 섰나 봐. 면접준비까지 해야 되고. 이게 다 잘난 이차원 덕이지.”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람이 다 모이자 말을 꺼내기 시작하는 김역전.
“이차원씨 팀은 앞으로 역전 길드 소속이지만 헌터 방위대에 이중 소속되어 방위대 임무 수행을 겸임하게 될 겁니다.”
김역전 말에 사람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게 무슨 소리냔 표정.
“헌터 방위대가 뭔데요?”
예리나 손을 들어 질문한다.
“미처 탐지되지 않은 게이트에 발맞춰 신속한 대응을 하는 정부 조직이고 이번에 새롭게 신설되는 조직입니다.”
김역전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의실 문이 박력 있게 벌컥 열리며 검은 정장에 흰 모자를 쓴 노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은 주름으로 자글자글하지만 몸은 근육질로 붉으락푸르락해 보였다.
“이 친군가? 요즘 핫하다는 친구가?”
“오셨습니까.”
김역전은 최한일의 등장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90도로 인사한다. 최한일의 등장에 회의실 안이 급격히 조용해졌다.
이차원은 모두의 앞에서 품위를 세우며 말하였다.
“본론부터 말하지. 이차원이라는 친구가 누구인가?”
이차원은 조심스레 손을 들어올렸다. 최한일은 이차원을 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잔뜩 지었다.
“활약상을 아주 잘 보았네. 요새 보기 드문 친구던데?”
“아닙니다, 제겐 너무 큰 과찬이십니다.”
이차원의 똑 부러진 대답에 최한일은 웃음을 날렸다.
“아주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친구구만.”
최한일이 이차원의 등을 두드리며 흡족해할 때였다. 그때, 어디선가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럼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이게 무슨 소리지?”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한 듯하였다. 그런데 고요해진 틈을 타 다시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엔 모두가 조용한 탓에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의아심을 품고 있을 때, 이차원은 심히 당황스러워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이차원의 스마트폰에서 쿵쿵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에 있던 모든사람들의 시선이 이차원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이차원은 화들짝 놀라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다급히 회의실을 나간다.
“저 친구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배에서 천둥이 다 치는구만. 하긴 내가 이 바닥에선 레전드긴 하지.”
최한일, 혼자 자화자찬을 이어가는데 모두 난처하게 자릴 지키고 서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