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이차원은 사원의 위치는 지도 없이도 외우고 있었다. 루도브 성 동쪽으로 나가 조금 더 걸어가자 사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사원의 모습이었다.
사원 지킴이들은 근처 로드리브 오아시스에 머물고 있었다.
-조사단에서 왔습니까?
이차원 일행이 다가가자 대뜸 사원 지킴이의 수장 앨리스가 조사단이냐고 물어왔다.
울프릭은 이차원의 얼굴을 슬쩍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늦었어요. 너무 많은 비극이 터졌습니다.
앨리스, 비통한 표정으로 한탄한다.
-비극이라뇨?
-이틀 전엔 얀슨이 사라지더니 이젠 막시무스까지 실종됐습니다.
-둘 다 사원을 지키다 실종된 겁니까?
앨리스가 계속 말하려고 하는 그때 코앞의 사원이 무너지면서 그 여파로 모래 바람이 로드리브 오아시스를 집어삼켰다.
거대한 모래폭풍에 사원에 있던 사람들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차원과 울프릭, 렌더를 두고 무너진 사원 쪽으로 달려갔다.
먼지 바람을 뚫고 어떠한 검은 실루엣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눈에 보였다.
‘공략집에 나온 그대로군.’
그것은 누가 봐도 악마였다. 공략잡에 적힌 것처럼 사원 지하에 잠들어 있던 악마들이 깨어난 것이다.
날개를 펄럭이면서 지옥불이 붙은 삼지창을 휘두르는 악마들의 모습은 은근 공포스러웠다. 비록 악마들의 움직임은 둔했지만 삼지창이 들어오는 타이밍이 상당히 날카로워 방심할 순 없었다.
-느린데.
“방심하지 마.”
이차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악마들이 덤벼들었다. 여유롭게 악마들을 활보하던 울프릭은 이차원 일행을 이끌어 갔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이차원 일행의 주변은 악마들로 포위되어 있었다. 악마들은 빠르게 삼지창으로 공격하였다.
때문에 울프릭과 렌더는 삼지창에 허벅지를 찔리게 되었다. 렌더와 울프릭은 고통스러운 듯 다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너희 괜찮아?”
게임 속 몬스터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이차원이 울프릭과 렌더에게 물었다. 이에 울프릭은 괜찮다는 듯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상태는 괜찮지 않아 보였다. 뒤이어 자신도 고통스러울 텐데도 울프릭은 렌더를 챙기기 시작했다.
-어쩐지 너무 쉽게 나간다 했어요.
-미안하다. 다음부턴 이런 일 생기지 않도록 할게.
울프릭 답지 않게 시무룩한 모습이었다. 이차원은 울프릭답지 않은 반응에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원래 같으면 용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거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약해진 모습에 아무 말 하지 못하였다. 그러는 동안 악마들이 이차원 일행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울프릭도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그 순간, 갑자기 그들의 머리 위로 화살 비가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살비는 빠르게 악마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덕분에 악마들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갔다.
이차원 일행들이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에 서선을 쫓아가 보았다. 그곳에는 사원 지킴이들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사원 지킴이들은 침착하게 악마들을 제압해 나갔다. 어느 정도 사태가 안정이 되자 사원 지킴이들이 재빨리 흩어지며 사라졌다.
‘이제 남은 사원의 개수는 총 3개. 12시 3시 6시다.’
남은 사원 개수를 생각한 이차원은 스킬 [창조]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기사 캐릭터의 몸속으로 들어가 게임에 참여하였다.
“흩어지자. 난 6시 방향으로 갈 테니까 울프릭 넌 12시 방향으로 가.”
이차원과 울프릭은 렌더를 오아시스에 남겨 간단한 치료를 하였다. 레더에게 안정을 취한 후, 둘은 각자가 맡은 사원으로 떠났다. 공략집으로 행한다면 다음 폭파될 사원은 6시였다.
울프릭은 다친 상태이기 때문에 가장 급한 장소를 자신이 맡기로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이차원은 빠르게 6시 사원으로 향하는데 사원 정중앙에 익숙한 검은 머리 여인이 서 있었다.
그 여성은 바로 리지였다.
그녀는 사원 정중앙에서 흑마법을 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미치겠군. 하필 여기에 있다니. 죽일 수도 없고.’
이차원은 쉽사리 리지를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흑마법을 사용 중인 걸 저지할 뿐이었다. 리지는 악당이기 전에 울프릭의 동생이다. 그리고 울프릭은 그런 동생을 간절히 찾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차원의 방해는 리지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이러다간 이곳에서 시간만 더 뺏기게 될 뿐이야.’
방해공작이 먹히지 않는 이차원은 결국 결심을 하였다.
‘울프릭, 미안. 조금만 손댈게.’
이차원은 사원으로 향해 남은 악마들을 처리하고 있던 울프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안함의 표시로 눈을 깜빡인 후 리지에게 [방패 던지기]를 사용하였다.
그녀를 막지 못하면 더 큰 재앙이 되어 다가올지도 몰랐다. 그것도 자이언트 웜과 같이 현실에서.
날아오는 방패를 막지 못하고 정면으로 맞은 리지는 풀쩍 옆으로 쓰러지게 되었다. 그제서야 리지가 부르던 흑마법이 끊기게 되었다.
‘지금이다.’
이때다 싶어 이차원은 리지에게 내달렸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그 병사와 사제들이 리지를 호위하기 시작하였다. 때문에 이차원의 앞길이 막혀버렸다.
“젠장, 어서 비켜!”
이차원이 병사와 사제들에게 덤벼들자, 그 사이에 리지는 사원을 폭파시키고 말았다. 이차원에겐 방패가 있어 피해가 닿지 않았지만 리지를 포함한 그들은 사라져 있었다.
이차원은 사라진 리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이차원은 사원이 부서지며 지하가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하? 지하라면 설마!”
이차원이 깨달음과 동시에 지하에서 악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원에서 나왔던 악마들은 이전 악마들보다 체급이 훨씬 컸다.
악마들이 지네와 비스무리한 팔로 공격을 강행했다. 이차원을 바삐 피하며 [슈퍼노바 빙]을 사용하였다. 근처 악마와 함께 리지의 호위대를 동결시킨 다음 빛의 심판자의 검을 휘둘러 부숴버렸다.
이차원은 다시 리지를 찾기 시작했다. 이어 그의 눈에 리지가 들어왔다. 그녀는 벌써 3시 방향의 사원에 도착해있었다.
그녀의 속도는 평소에 보아왔던 울프릭보다도 빨랐다.
‘다크 혼 세계관 어디서도 텔레포트를 저렇게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흑마법사는 본 적 없어.’
이차원은 넋이 나갔다. 이차원의 생각보다 리지가 가지고 있는 흑마법의 수준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사원 앞에 멈춰 선 리지가 사원을 향해 손을 뻗자 검은 기운이 빨려 들어가며 서서히 금이 가더니 이내 3시 쪽 사원이 폭삭 무너지게 되었다.
이번에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벌레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을 갉아먹는 식인풍뎅이였다.
식인풍뎅이가 로드리브 오아시스 쪽으로 향하자 사원 지킴이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저지하였다.
문득 이차원은 희생당한 NPC가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단 무리의 사건이 깊게 트라우마가 박인 모양이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죽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야, 아직까진 희생당한 사람은 없는 거 같아.’
리지는 이제 12시 방향의 사원을 향하고 있었다. 문제는 12시 사원이 부숴지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어왔다.
‘무조건 막아야 돼.’
***
“울프릭, 리지를 막아야 해!”
이차원은 소리를 질렀다. 그제 서야 울프릭은 리지의 존재에 대해 눈치를 채었다.
-리지!
울프릭은 흑마법을 쓰는 리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리지 주위로는 쉴드가 쳐진 상태였다. 아까 이차원의 공격이 들어가서 생겨난 듯하였다.
리지는 쉴드의 보호를 받으며 울프릭에게 암흑 구체를 날렸다. 리지는 울프릭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여태껏 힘으로 밀려본 적이 거의 없는 울프릭이었지만 상대는 무려 자신이 찾고자 했던 여동생이었다. 그렇기에 울프릭도 손을 함부로 댈 수 없었다. 결국 리지가 쉴 새 없이 쏘아대는 암흑 구체에 의해 온몸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이에 따라 빨간 줄 패시브에 의해 화상을 입은 듯 이차원의 피부가 화끈거렸다.
“울프릭, 네가 못하면 상황이 곤란해져.”
울프릭이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 의해 처리가 될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차원의 눈에 울프릭이 리지를 향해 검을 휘두르지 못하는 모습이 계속 들어왔다. 이차원은 결국 자신의 검을 꺼내 들었다. 이대로 계속 당하게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그녀를 향해 십자가가 내려왔다.
울프릭이 이차원보다 먼저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울프릭은 눈을 질끈 감으며 크게 마음을 먹은 듯하였다.
쉴드에 십자가가 떨어지고, 리지의 몸을 감싸고 있던 쉴드에 점차 금이 간다. 울프릭이 이차원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었다. 이 틈을 타서 이차원도 같이 공격해보지만 쉴드에 금이 하나 더 생길 뿐 깨지지는 않았다.
그때 이차원 머릿속으로 강화석이 떠올랐다.
이차원은 재빨리 강화석으로 빛의 심판자의 검을 강화하였다. 다시 검을 휘둘러 심판의 십자가를 떨어트렸다. 리지의 쉴드가 쩍 소리를 내며 깨져가더니 이내 산산조각이 났다.
***
“울프릭 지금이야.”
이차원과 울프릭은 동시에 리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리지는 공격을 피하며 빠르게 루도브 성 쪽으로 달아나버렸다.
-또 놓쳤군.
울프릭은 허무하게 말하며 사원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두 사람이 처치하지 못한 악마들을 사원 지킴이들이 용맹하게 싸우며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울프릭은 사원 지킴들과 함께 악마들을 마저 처리하러 갔다. 그 사이 공략집을 살펴보는 이차원.
<<만약 사원을 막았다면 리지가 루도브 성 지하에 있는 지배자의 손잡이를 훔쳐 가도록 내버려 둬야 함. 괜히 왕에게 서신을 전한다거나 해서 경계를 강화시키면 위협을 느낀 리지가 세크라이아 때처럼 사건을 일으키기 때문>>
“알고도 막아선 안 된다라.”
이차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만약 그런 거라면 생각보다 상황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막아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단 소린데...’
그 와중에 NPC까지 살리면서 원래 흘러가야 하는 시나리오대로 장단을 맞춰야 하는 건가? 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렇다면 대악마 소환에 있어 희생양이 되는 건 리지다. 결국 리지를 살릴 수 없게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할 때쯤 먹구름이 드리워지더니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어! 저기, 그 여자 아닙니까?
어느새 렌더가 주민들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리지를 가리켰다.
울프릭은 매섭게 쫓아가는 반면, 이차원은 일부러 속도를 늦추었다.
‘대충 장단만 맞춰주는 수밖에.’
소나기가 힘껏 내리며 마치 그들의 앞길을 볼 수 없게끔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