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행선지를 바꾸어 도착한 곳은 어떤 피시방이었다. 경호원의 친척 동생인 호민은 클럽도, 술집도 아닌 바로 피시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오자마자 각종 욕이 들려오네. pc방 국룰인 건가.’
이차원은 여기저기서 게임을 하며 온갖 욕은 다 해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을 지나치며 혀를 차는데 경호원이 이차원을 툭툭 건드렸다. 이차원이 경호원을 바라보자 경호원은 어딘가 가리켰다. 그곳에는 누군가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자리에는 고등학생 정도로 어딘가 젊어 보이는 남성이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 놈이 제 친척 동생입니다.”
그런데 경호원은 멀리서 친척 동생 호민을 가리키기만 할 뿐 다가가지 않았다. 이차원이 같은 친척이 맞나 할 정도로 거리감이 어색해 보였다.
“뭐해요?”
“아 그게... 게임 하는데 말 걸면 꼭지 돌거든요. 롤만 하면 정신병자 되는 새끼라.”
“그래서 여기 계속 이러고 서 있는 거예요?”
이차원이 피시방 통로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한심하게 묻는다.
“곧 끝나지 않을까요?”
경호원이 다가갈 생각을 하지 않자, 이차원은 어색하게 웃는 경호원을 뒤로하고 곧장 호민을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에 경호원은 안절부절못하였다.
“난 못 보겠다.”
경호원은 마치 곧 끔찍한 일이 생길 듯 고갤 돌렸다. 그리고 이차원은 마침내 호민 뒤로 가서 서고 어깨를 툭툭 쳤다.
잠깐의 정적.
호민이 마우스를 내던지더니 벌떡 일어나며 욕설을 내뱉었다.
“어떤 씹새끼가-. 어?”
불같이 화를 내던 호민의 표정이 이차원의 얼굴을 본 순간 얼어붙었다. 호민도 이차원을 알고 있었다. 이차원은 최근 온갖 방송에 얼굴이 팔리고 찍혀 있었다. 그 바람에 분위기만 봐선 거의 국민 헌터가 다 되어있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헌터가 드디어 나타났다며 헌터를 혐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거기에 호민 역시 개인적으로 이차원의 팬이었다.
“잠깐 시간 되나.”
“네.”
“하던 건 마무리해도 되는데.”
“아닙니다.”
호민은 곧장 플레이 중이던 게임 모니터를 꺼버린다. 경호원이 알려준 성격과는 전혀 달랐다.
“친척 형 소개로 왔는데.”
이차원이 경호원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경호원은 자신의 눈을 가린 채로 있다. 저러고 어떻게 경호원이 된 건지 모르겠다.
“형, 거기서 뭐해?”
호민이 경호원을 부르자 경호원은 손을 내리곤 어리둥절하게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상황파악이 끝났는지 그제 서야 경호원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와 너 저번에 내가 롤 할 때 방해했다고 뚝배기를 깨버린다더니. 태도가 이렇게 바뀌냐?”
“형이 이차원님이랑 같냐?”
호민은 황당해하는 경호원을 뒤로하고 이차원에게 몸을 완전히 돌린다. 호민의 관심은 어느새 이차원에게 쏠려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전 왜 찾아왔어요?”
“다크혼을 스마트폰 게임으로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사례는 충분히 줄 건데.”
“누워서 식은 죽 먹기죠.”
호민이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이차원은 간만에 너무나 쉽게 얻고 싶은 걸 얻은 기분이었다.
***
“다 됐습니다. 바로 플레이 가능해요.”
이차원은 호민에게 500만 원을 주겠다는 대가로 의뢰를 부탁했다. 높은 금액도 있었지만 호민은 이차원의 집에 갈 수 있단 생각에 흔쾌히 수락하였다. 호민은 이차원이 쌓은 데이터 그대로 스마트폰 게임으로 변환해 만들어주었다. 완성됨과 동시에 호민은 이차원에게 한마디 충고를 하였다.
“그리고 이거 불법이니까 절대, 절대 퍼트리지 마시고 혼자만 즐기세요.”
이차원은 이에 확실히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호민도 국민 헌터로 자리 잡은 이차원의 신뢰도가 상당히 높았다. 그래서 안심하고 만들어 줄 수 있던 거였다. 호민이 돌아가고 혼자남은 이차원은 곧바로 모바일 다크혼을 켜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다크혼의 세상이 그의 손아귀에서 펼쳐졌다. 물론 화면이 작아서 시야가 한정적이긴 하였으나 이 정도만 되어도 데이터가 터지는 곳 어디서라도 울프릭과 소통이 가능할 수 있었다.
모바일로 본 화면에서 울프릭과 렌더는 루도브에 거의 다 도착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둘 다 표정이 어둡고 지쳐 보였다. 이차원은 모바일을 통해 게임 속으로 들여다 보았다.
“둘 다 괜찮냐?”
-깜짝이야, 정말 적응이 안 되네요.
-이제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어?
다행히 이차원의 모습은 모바일에서도 컴퓨터와 똑같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잠깐만 어디 갔다 올게.”
-어디 또 가세요?
“네. 편의점에 간식 좀 사러.”
둘에게 이야기를 전한 이차원은 곧장 편의점으로 향했다. 도시락과 빵을 구매해서 돌아오는 길에 주변을 살핀 이차원은 모바일을 통해 이들에게 전송하였다. 울프릭과 렌더는 음식을 보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였다.
힘든 일들로만 연속에 연속이었으니 배가 매우 고팠을 거란 이차원의 생각이 들어맞았다. 다행히 음식을 섭취하니 기력이 다시 생겨나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그쪽 세계 음식이 여기보단 낫군.
-확실히 왕국 수석 요리사가 만든 요리보다 낫습니다.
렌더는 음식을 삼키기도 전에 꾸역꾸역 음식을 집어넣기에 바빴다. 편의점 음식이 맛있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였나. 이차원 역시 게임 속 요리를 먹어보고 싶단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자 게임 속에서 날카로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거기. 당신들 뭐야?
세 사람을 발견한 루도브 경비병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
-방문 목적부터 밝혀라.
경비병이 셋을 잔뜩 경계하며 묻자 울프릭은 왕에게 받은 서신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서신을 읽어내려가던 경비병은 곧장 허리를 숙여 사과를 하였다.
-실례했습니다. 따라오시죠.
이차원 일행은 경비병의 안내를 받아 성안으로 들어갔다. 걸은 지 얼마 안 되어 흐릿했던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번 그랬지만 성마다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세크라이아 성과는 다르게 차분한 분위기였다. 길거리를 노니는 어린 애들도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상인도 찾아볼 수 없지만 스산한 느낌보다는 고즈넉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여유롭고 편안한 느낌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마을에 도착한 일행에게 경비병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제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나 더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경비병은 그렇게 어딘가로 향하였다. 이차원 일행들은 천천히 성 안에 있는 마을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자 울프릭은 혼자 뭘 그리 바쁜지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울프릭씨는 벌써 바쁘네요.
울프릭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조종당하고 있는 리지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전 레오릭을 부활시켰을 때처럼 가만히 둘 수 없었고 리지에게 더 큰 일이 일어나는 걸 막고 싶어 하였기 때문이다.
“저도 북쪽 성문에 볼일이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이따 광장에서 다시 모이죠.”
-북쪽 성문은 왜요?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이차원도 렌더를 놔둔 채 광장에 두고 북쪽 성문으로 향하였다. 원래 게임 시나리오대로라면 북쪽 성문엔 얀슨이라는 사원 지킴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얀슨은 사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먼저 파악한 후,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왕에게 지원요청을 하기 위해 왔다면서 주인공을 끌어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쪽 성문에 얀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북쪽 성문이 아니었나? 아닌데. 설마 이것도 바뀐 시나리오인가.’
최근 들어 게임 시나리오가 급격히 바뀌어가고 있었다. 한편 울프릭은 상점가를 돌아다니며 리지의 외형을 설명하고 다녔다. 울프릭은 목격자를 찾는데 혈안이 나 있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하나 같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검정 머리 여인이면 기억 못 할 리가 없지. 여긴 대부분 연갈색 머리 색이거든.
결국 서로 어떤 소득도 없이 광장에서 다시 뭉쳐지게 되었다.
“뭐 좀 찾았어?”
울프릭은 침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때 먼저 광장에 와있던 렌더가 혀를 차며 벽에 붙은 공고를 가리켰다.
-실종 사곤가 봐요.
이차원과 울프릭이 같이 공고를 확인하는데 이차원에게 익숙한 NPC의 얼굴이 떡 하니 붙어 있었다. 이차원은 공고문을 더 자세히 보았다.
‘얀슨?’
그것은 바로 얀슨이었다. 얀슨이 실종되었는데 본 사람들은 제보하라는 공고문이었다.
‘역시 바뀐 시나리오다.’
울프릭과 렌더는 내용만 확인하고 길을 가려했다.
“잠깐만.”
이차원이 울프릭과 렌더를 불러세웠다. 그들에게 멀허고 게임에서 나온 이차원은 곧장 일어나 실종된 유저가 남긴 공략집을 펼쳐서 뒤져보았다.
‘제발 있어라.’
이차원은 공략집에 얀슨에 대한 내용이 있길 바라며 빠르게 공략집을 훑어보았다. 그때 목록에서 78페이지에 얀슨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 차원이동자의 정보를 종합한 이 공략집을 정리하자면 웜에게 상단이 몰살당하게 되면 이후 스토리에서 얀슨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추가로 공략집에서는 설명문이 적혀 있었다.
-만약 얀슨이 사라졌다면 선택지는 두 개로 나뉜다. 첫째는 왕에게 세크라이아 왕의 서신을 바로 보여주는 것. 둘째는 얀슨의 안내 없이 사원으로 향하는 것.-
첫째는 악마의 습격으로부터 왕국이 대처가 빨라 지원을 조금 더 빨리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계가 급격히 강화되어 위협을 느낀 리지가 새로운 악행을 벌이게 되어 새로운 변화를 낳는다고 적혀 있었다.
“악행은 정해져 있지 않고 랜덤이라는 거로군.”
어떤 차원이동자에겐 세뇌당한 오우거들이 몰려 들었으며 어떤 차원이동자에겐 중급 악마가 나타났다고 적혀져 있었다.
“두 번째를 택하면 사원 지하에 숨어지내던 악마들이 깨어난다.”
두 번재 선택지를 고르게 되면 울프릭이 방해하러 올 것임을 눈치챈 리지가 미리 선수를 친다는 것이다. 이차원은 각 선택지마다 위험 요소를 확인하곤 고민에 빠졌다.
리지에 대한 생각과 행동 패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왕국 기사단의 지원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과연 주민들을 희생시키면서 해야될 일인가 고민하였다.
분명 세크라이아 때처럼 성 광장 한복판에서 중급 악마가 나타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다칠 테니까.
‘그걸 막는 것이 게임 시나리오를 바꾸는 거라면 리스크가 너무 커지게 돼버릴 거야.’
이차원은 결국 두 번째 선택지를 택하기로 하였다. 그 선택이 앞으로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