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꽤 엄청난 속도로 자이언트 웜이 도심 한복판을 질주하고 있었다.
김무상이 준 손잡이를 잡은 채 웜에게 끌려가던 이차원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속도감이 너무 빨라 제대로 눈도 못 뜰 정도였지만 이내 [스카이 워커] 스킬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재바르게 로프를 잡아당겨 웜의 등에 올라탔다.
웜은 이차원이 몸에 올라탄 걸 눈치채었다. 그리고는 몸을 빠르게 흔들어대더니 땅속 깊이 들어가려고 하였다, 이차원은 그 때문에 중심을 잃고 뒤로 날아갈 뻔했지만 빛의 심판자의 검을 웜 등에 꽂았다. 초록색 피가 뿜어져 나와 이차원의 몸을 더럽혔다. 히자만 검의 손잡이를 꽉 붙잡으며 버텼다.
“네 놈의 고통은 나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이차원의 칼을 맞은 채 고통으로 울부짖는 웜에게 던진 말이었다. 더욱 몸을 비틀어대던 웜은 이차원을 떼어내기 위해 지상으로 몸을 굴리려 하였다. 비로 그때, 어느새 도심에 배치되있던 철로 된 물체가 이차원의 눈에 보였다. 그 정체는 바로 개틀링건이었다.
“저게 뭐야?”
이차원은 개틀링건을 보자 식겁하였다. 그것들은 웜의 등에 이차원이 타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인 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9대가 동시에 웜을 향해 총알을 쏘아대며 공격하였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직접 나선 것이었다. 이미 웜의 위치를 추적해서 나올 방향을 예측한 정부는 부대를 보낸 것이었다. 그렇게 총알받이가 돼버린 웜은 몸에 총알이 박히며 구멍이 뚫려져 갔다. 몸부림이 더욱 심해지던 웜은 계속해서 땅으로 파고들었다 올라왔다를 반복한다.
한편 웜의 등에 타고 있던 이차원은 한발 앞서 피하였다. 갑작스런 개틀링건에 순간 파악이 안 됐지만 그의 본능이 먼저 움직이게 하였다. 날아드는 총알을 피하기 위해 [스카이 워커]로 뛰어오르며 늦지 않게 안전한 곳에 착지할 수 있었다.
한편 웜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었다.
이차원은 그 모습을 싸늘하게 지켜보았다. 게임에서 웜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애꿎은 상단들이 죽더니 현실로까지 뛰쳐나와 실제 사람을 죽여버렸다. 그런 탓이었는지 어느덧 웜을 바라보던 이차원의 눈빛엔 생기는 사라져 있었고 오직 살기만이 존재하였다.
‘이 녀석만 아니었어도 이 사달은 일어나지 않았어.’
이차원은 천천히 심판자의 검을 꺼내 들었다. 분노와 복수의 감정만이 그를 둘러왔다. 당장에라도 웜을 처리하기 위해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갈가리 찢어 죽여주마.”
이차원이 처리하려던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여군 하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헌터들은 이제 그만 물러서십시오.”
여군은 당당하고 강한 어조를 띠며 말했다. 행동도 각져 있는 딱딱한 형태를 취하였다. 갑자기 나타난 여군 때문에 이차원은 높이 올린 검을 내렸다.
여군의 이름은 진희. 키와 나이는 이차원과 비슷해 보였다. 짧게 묶은 머리에 베레모를 쓰고 있었고 방탄조끼와 각종 보호장비를 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주변 몬스터를 감지할 수 있는, 추격 능력을 가진 헌터이며 현재 정부 산하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 역시 정부에 의해 불려진 존재였다. 웜의 위치를 정부에 보고하여 개틀링건을 설치한 것도 그녀가 한 일이었다.
“당신과 상관없는 일이니 비키시죠.”
이 사실을 모르는 이차원은 여전히 싸늘하게 대하였다. 하지만 진희는 한 발짝도 비키지 않더니 어이없는 말을 꺼내었다.
“이 몬스터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이만 돌아가 주시죠.”
“뭐라고요?”
싸늘하게 굳은 이차원의 표정과 다르게 진희는 뭐가 이상하냐는 표정이다.
“제 말에 문제가 있습니까? 이 웜은 개틀링건으로 죽인 것과 다름없으니 마무리도 저희가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여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차원은 개틀링건 너머로 웜을 힐끗 바라보았다. 웜은 이미 거의 죽어가는 상태였다. 그러나 개틀링건 만으로 죽였다는 말엔 동의할 수 없었다.
“이 새낀 내가 아까도 놓친 새끼라 그냥은 못 줘.”
이차원은 검을 꾹 움켜쥐며 다가가려 하였다. 하지만 진희는 여전히 그를 막아섰다.
“강화석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정부에서 매물로 내놓을 때 사도 됩니다.”
“강화석? 단순히 그거 때문은 아니고. 쌓인 게 많아서 내 손으로 죽여야 직성이 풀릴 거 같거든.”
진희와 이차원은 서로를 노려보며 둘 사이의 신경전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때, 죽은 줄만 알았던 웜이 꿈틀거리더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분명 급소를 다 맞혔을 텐데?”
웜은 순식간에 진희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몸을 흔들더니 진희를 개틀링건 쪽으로 날려버렸다. 진희는 개틀링건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이에 군인들이 다시 사냥하기 시작하였지만 땅속으로 들어가버린 뒤였다.
“그러게 비키랬잖아.”
이차원은 다시 웜의 움직임을 읽었다. 그 후 자신의 앞에 떨어진 로프 총의 손잡이를 잡아 웜의 몸을 향해 다시 던졌다. 김무상이 한 것처럼 몸에 제대로 묶어졌다. 그러고 다시 같은 상황으로 흘러갔다.
이차원이 고생을 하는 이 상황에도 하늘엔 드론 수 십 대가 따라다니며 이차원을 방송하고 있었다. 이차원의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자세히 담기 위해서 드론이 고도를 낮추었다. 그걸 본 웜이 드론들을 향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
웜의 공격을 받은 드론들은 힘없이 땅으로 떨어지며 부서졌다, 끌려가던 이차원은 아까와 같이 [스카이워커] 스킬로 날아오르더니 웜의 몸에 착지하였다.
웜은 최후의 발악으로 자기 콧잔등에 내려앉은 이차원에게 포효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넌 내가 반드시 죽인다고 했잖아.”
이차원은 이를 바득 갈며 웜의 뇌가 있는 머리 한가운데에 심판자의 검을 꽂아 넣고 밑으로 쭉 잡아당겼다.
웜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또다시 초록색 피를 뱉어냈다. 그 순간 피가 높게 솟아오르며 웜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더니 결국 몸이 반쯤 포개지더니 숨을 거두었다.
이차원은 죽어있는 웜의 시체를 지켜보는데 시체 주위에 반짝이는 강화석이 보였다. 웜을 드디어 처리했단 생각에 분노가 기쁨으로 어느새 바뀌었다.
‘웜도 처리했고, 이걸로 검만 업그레이드하면-’
이차원이 강화석으로 검을 업그레이드 할 생각에 조금 흥분하였다. 그리고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차원은 그제 서야 아차, 싶었다. 주변을 보는데 처참한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건물들은 전부 부서져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어디서부터 복구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이 풍경은 이차원에게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게임 속 일렉시아 성의 배경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게임 속에서 그가 웜을 잡는 데 실패했고 상단들이 죽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현실에서 나온 건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장으로 돌아와 게이트가 소멸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는 이차원이었다. 게임 시나리오가 그의 머리 위에서 그를 농락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왔다.
영혼이 깃든 장비를 만들기 위해 가고일의 뼈가 딱 필요한 시점에서 게이트에서 가고일이 나타난 것이나 이번 웜 사건만 보더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종료되자 헌터들은 자발적으로 다친 헌터나 시민들을 후송시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점점 착잡해지는 이차원에게 김무상이 옆으로 오더니 말을 건네었다.
“너도 혹시 차원 이동자냐?”
김무상의 돌직구에 이차원, 순간 말문이 막혀 김무상을 바라본다.
“그 녀석이랑 공통점이 한둘이 아니라서.”
“차원 이동자인 걸 알고 있었어요?”
“반응 보니까 맞네.”
이차원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했다. 김무상은 침묵하는 이차원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난 너 좋다. 모처럼 흥미로운 헌터야. 그러니까 넌 꼭 살아남아라. 말도 없이 사라지지 말고.”
현재의 상황과 김무상이 차원이동자를 알고 있단 사실에 그저 혼란스러웠다. 결국 이차원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돈 입금했으니까 통장 확인해 보고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어요. 고생 많았어요. 이차원씨 아니었으면 더 많은 사람이 다쳤을 겁니다.”
이차원은 김역전의 배웅을 받아 현장을 떠나려는데 검정 벤에서 양복을 입은 사내가 내리더니 이차원 앞을 막아선다.
“저희가 모셔드리겠습니다.”
이차원이 관계자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니 시청 직원임을 알 수 있었다. 이차원의 활약을 본 시청에서 손수 사람을 보낸 것이었다.
“여기로 모셔다드리면 되는 거죠?”
이차원에게 집주소를 받은 운전수가 물었다. 이차원은 네비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운전석 쪽으로 쭉 빼서 확인한다.
“아니요. 29가 아니라 19번지요.”
“예, 안전하게 모셔다드리죠.”
이차원은 다시 자리에 앉으려는데 옆자리 보조석에 앉은 경호원 휴대폰에서 익숙한 장면이 보인다.
익숙한 로고와 그래픽... 잠시만 저건?
“저기, 잠시만요.”
“네? 이봐요!”
이차원은 경호원의 휴대폰을 가져가 확인하는데 역시, 다크혼이 확실하였다.
‘모바일 버전이 만들어지기 전에 회사가 망했다고 들었는데.’
분명 다크 혼은 모바일 버전으로 개발되기 전에 회사가 망해버리는 바람에 다른 플랫폼으로 나오질 못하였다. 이차원이 도무지 믿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픽이나 ui가 아예 똑같았다.
“남의 휴대폰은 왜 가져갑니까. 줘요, 빨리.”
경호원은 고민에 빠져있는 이차원에게 휴대폰을 내놓으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거 다크 혼 맞죠?”
이차원의 물음에 경호원의 얼굴이 말도 안 되게 순식간에 환하게 바뀌었다.
“어! 다크혼 하세요? 이거 망겜이라 이 게임 안 하는 사람이 가득한데. 진짜 반갑네.”
“다크혼이 폰게임으로도 나왔어요? 언제요?”
“공식적으로 발매된 건 아니고.”
경호원은 급자기 눈치를 보더니 이차원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제 친척 동생이 게임 개발자거든요. 만들어 달라 하니까 스마트폰용으로 변환시켜줬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그놈이 보통 놈이 아니거든요. 블리자드에서만 몇 년 일하고 엔씨랑 넥슨에서도 서로 데려가겠다고 스카웃 제의도 해오고. 아무튼 난 놈이에요 그놈은.”
“혹시 친척동생 저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갑작스레 흥미를 보이는 이차원을 경호원이 의심하는 눈치를 보냈다.
“왜요?”
“아... 저도 다크혼 팬이라서요.”
경호원은 이차원 말에 동지를 만났다는 듯해 의심을 거둔다.
“이야, 국민 영웅이 다크혼 팬이라니. 존버하길 잘했네.”
경호원은 망겜을 놓지 않고 버티길 잘했다며 좋아하였다. 이차원 역시 재차 친척 동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만날 수 있습니까?”
“마침 연차 내서 놀고 있으니까 부르면 나올걸요?”
“아저씨 목적지를 좀 바꾸고 싶은데.”
차는 곧바로 유턴을 하였다. 이것만 성공하면 밖을 돌아다니면서도 울프릭과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이차원의 생각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