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이차원이 [포세이돈] 스킬을 사용하여 태풍을 일으키자 태풍이 주변의 잔재를 빨아들이며 점차 커져갔다.
확실히 지배자의 반지 때문에 lv1 올라간 포세이돈은 그 전에 비해 훨씬 강력했다. 이차원의 공격을 받은 가고일 보스는 날갯짓으로 가시 공격을 한차례 퍼부었다. 수많은 가시가 날개에서 날아오기 시작하더니 이차원과 김무상에게 향하였다.
이차원과 김무상은 빠르게 가시를 피하였다. 그사이 보스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 하였다. 하지만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이차원과 김무상이 아니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김무상은 로프를 던져 보스의 다리를 묶은 다음 힘껏 잡아 당겼다. 가고일 보스는 괴성과 함께 온갖 힘을 다해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김무상은 등에 메고 있던 활을 꺼내 가고일의 심장을 조준하더니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활이 날아가며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더니 보스의 가슴팍에 내려꽂혔다.
‘공격을 하는 동작과 조준력. 빠르고 간결하다.’
이차원은 이 모든 공격 과정이 빠르고 간결하게 이뤄지자 왜 헌터A가 스트리머 중 최강자인지를 알 수 있었다. 괜한 뜬구름과 헛소문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의 공격엔 그가 쌓아 온 수많은 경험치가 묻어 있었다.
김무상은 이에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어대었다. 그 덕에 보스는 공격을 하려 해도 모두 빗나감과 동시에 어떻게 공격을 해야 할지도 김무상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는 듯하였다.
이차원이 새삼 김무상에게 감탄하는 사이 김무상의 공격을 받은 보스는 두르고 있던 돌 같은 피부가 한 겹 벗겨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벗겨진 틈 사이로 심장이 보여지기 시작하였다.
보석처럼 붉고 반짝이는 각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무린 제가 합니다.”
이차원이 스킬 [스카이워커lv2]를 사용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 심장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 하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작은 가고일이 달려들었다.
“젠장.”
공중에서 방향을 전환하기 힘든 상태였던 이차원은 그대로 가고일과 충돌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거기에 하필 떨어지는 곳이 낭떠러지였다.
그때 다행스럽게 김무상이 재빨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로프를 던졌다. 덕분에 이차원은 정확히 자신에게 날아오는 로프를 잡을 수 있었다.
“이젠 쌤쌤이다.”
“아직 한 번 더 남지 않았나요.”
분명 긴급한 상황인데도 둘 다 모두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숨을 가빠했던 김무상도 어느새 본인의 호흡을 되찾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때 보스가 날카로운 부리로 찍어버릴 듯한 기세로 이차원에게 달려들었다. 거의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이차원은 당황하지 않고 로프의 반동을 이용해서 오히려 보스 등에 올라탔다.
이에 당황한 보스가 이차원을 떨어뜨리기 위해 날갯짓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차원은 보스의 옆구리로 가 아까 김무상이 벗겨낸 틈 사이로 보이는 심장에 심판자의 검을 박아넣었다. 그러자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보스가 성벽으로 추락하였다.
이차원은 다시 [스카이 워커]를 이용하여 무사히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였고, 보스 가고일은 그대로 커다란 소리와 진동과 모래를 내뿜으며 굴러갔다.
가고일은 날갯짓을 하며 다시 날아오를 것처럼 보이더니 이내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거대한 모래도 서서히 땅으로 꺼지기 시작하자 보스 가고일의 몸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휴, 드디어 잡은 거 같은데요.”
“심장에 제대로 맞았으니 당연히 더 이상 버티는 건 무리겠지.”
이차원과 김무상은 가고일이 쓰러진 곳을 보았다. 그곳엔 보상으로 나온 가고일의 뼈가 보였다. 뼈를 나눠 갖는 김무상은 미묘한 표정으로 이차원을 바라보았다.
김무상은 처음부터 이차원에 대해 관찰하고 있었다. 몬스터를 잡는 방법부터 사용하는 스킬까지. 무엇 하나 김무성이 알고 있다는 그 남자와 다른 점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하다 하다 그 외형마저도 닮아 보이기 시작해 버렸다.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너 그 새끼랑 진짜 비슷해. 혹시 둘이 쌍둥이 아니야?”
어쩌면 쌍둥이보다 더 가까웠다. 김무상의 눈에 둘은 같은 운명의 길에 들어선 것과 같은 것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리라. 이차원은 김무상의 말뜻을 이해하였지만 부디 결말만은 다르길 바랄 뿐이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이차원은 멋쩍게 웃으며 농을 쳤다.
“혹시 모르죠. 내가 그 사람 죽이고 장비도 뺏고 스킬도 뺏은 건지.”
그러자 김무상은 이차원의 얼굴을 더욱 유심히 살피더니 크게 웃기 시작했다.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확실히 그 새끼 납치범은 아닌 거 같다.”
이차원, 김무상 말에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납치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김무상은 진지하게 대답하였다.
“그 새끼 우리랑 비교도 안 되게 셌으니까.”
***
김무상과 이차원이 게이트에서 나오자 둘을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댔고, 이차원은 스포트라이트로 눈이 멀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게이트 앞에서 이차원을 기다리고 있던 이차원 팀과 유현, 그리고 김역전은 이차원의 활약에 일동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장하다, 이차원! 김무상을 바르는 차원이 다른 클라-”
“너 아까부터 입 조심하랬지.”
최번개가 또다시 입방정을 떨려하자 예리나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차원씨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네요.”
은지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이차원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하였다.
이차원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 세례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헌터A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치던데 혹시 능력치가 몇 등급이죠?”
기자의 질문에 이차원은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어대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우선 김무상씨와 같은 분과 게이트 토벌에 참여한 것은 영광이었단 말씀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등급은 몇 등급이다, 라고 할 만큼 높지 않기 때문에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에 알겠습니다, 하고 순순히 물러날 기자가 아니었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말씀 좀 해주세요. 딱 봐도 높을 거 같은데 숨기는 이유라도 있나요?”
기자들이 여기저기서 정신없게 계속 이차원에 대한 질문을 쏟아부었다. 이차원은 난감한 듯 김무상을 바라보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이었다. 이에 김무상은 진행되던 인터뷰를 중단하고 이차원에게 다가와 기자들을 대신 막아주며 도와주었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을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닙니까? 질문 있으면 저한테 하세요.”
“김무상씨, 이번 토벌에 이차원씨를 지목해서 스카웃했다고 하던데 둘이 무슨 사입니까?”
“무슨 사이긴 친구 사이일 뿐입니다. 그럼 우리가 애인 사이라도 되겠어요?”
역시나 이런 인터뷰를 많이 해온 김무상은 여유롭게 인터뷰에 대처하며 이차원을 빼내주었다. 김무상은 이차원에게 눈빛을 보내며 이 틈에 빠져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침내 자신을 둘러싼 기자들 틈에서 벗어난 이차원은 팀원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중에서 김역전이 제일 먼저 이차원을 부둥켜안았다.
“왜 이러세요?”
“김역전 인생 역전했다! 도와줘서 고맙다!”
이차원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팀원들 쳐다보자 은지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번 의뢰를 통해서 2억이 들어왔데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김역전 통장으로 2억원이 바로 지급되어 들어온 것이었다. 아무래도 서울 시장의 목이 달린 사건이었던 지라 후하게 들어온 것 같았다.
“오늘은 회식이다! 제가 쏩니다!”
환호가 한 번 터져 나오는데 저번처럼 이차원 혼자만 또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은지는 이차원의 표정을 보고 먼저 선두를 치며 들어왔다.
“오늘은 가실 거죠?”
은지는 혼자 조용한 이차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차원은 은지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번엔 빠지면 안 되죠.”
“이차원씨 또 시간 안 됩니까?”
팀원들 전부 가지 말라는 애원하는 표정으로 이차원을 쳐다보았다. 이에 이차원은 난처해진 상황에 빠졌다.
‘다크혼을 휴대폰으로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차원도 아쉽긴 매한가지였다. 자신도 회식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목숨줄이 연결된 울프릭을 혼자 둘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회식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팀원들은 모두 이쉬워 하였지만 이번엔 이차원 혼자 일한 것도 있을 테니 피곤할 거란 생각에 보내주기로 하였다.
“바쁘면 뼈는 나 주고 가. 내가 제작소에 맡겨 줄 테니까.”
“고맙다.”
이차원은 그렇게 팀원들을 뒤로하고 먼저 돌아섰다. 팀원들은 이차원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보내주기로 했는데도 아쉬웠는지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하였다.
“아무튼 이차원이랑 밥 한 끼 먹기 드럽게 힘들다니까.”
“저 형 숨겨진 애인이라도 있는 거 아닐까? 알고 보니 유부남인 거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절대로.”
그리고 이차원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또 한 명이 있었다. 바로 김무상이었다. 그 역시 속으로 이차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바쁜 것마저 똑같단 말이지.’
***
‘지금의 나보다 비교도 안 되게 세다면 대체 얼마나...’
이차원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김무상이 했던 말을 계속 곱씹어 보았다. 김무상의 말로 보자면, 그 사람은 아마 지금의 이차원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강한 사람도 시나리오를 깨지 못했다는 것이 이차원에게 있어서 절망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집으로 도착한 이차원은 지친 표정을 품은 채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컴퓨터를 켜보니 화면 안으로 울프릭이 아직도 움막 안에 있는 것이 보였다.
“왜 아직 여깄어?”
“보면 모르냐.”
이차원이 움막 안을 나가보니 폭풍이 아직도 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길게 가네. 또 시나리오가 바뀌어 버린 건가.’
원래대로라면 모래폭풍은 이렇게까지 오래가진 않았다. 이차원의 생각대로 또다시 시나리오가 바뀐 것 같았다.
이차원은 폭풍을 뚫고 갈 수 있는 법은 없나 생각해 보지만 너무 거세고 광범위해서 지나치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동쪽으로 가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으니 리스크가 있고.’
오아시스 동쪽으로 직진해 가는 방법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한 번도 그 길은 가본 적이 없었다.
이차원, 선택의 기로 앞에 놓여 고민하는데 컴퓨터 앞에 놓인 서류철로 자연스럽게 눈길이 향한다.
실종된 사람들을 위한 서류.
이차원의 눈에는 그것만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