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신사역 D 게이트.
유현은 급하게 토벌에 참여하게 됐는데, 문제는 게이트 등급이 아니었다. 팀 밸런스와 합이 너무 개판이라는 거였다. 김역전에게 들은 말로는 딜러는 유현뿐인데 탱커도 없었고 서포트만 두 명뿐인 최악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멍청한 스카우터가 조합을 이딴 식으로 짠 거야!”
유현은 속으로 자신들을 궁지로 몰게 한 멍청한 스카우터를 욕하였다. 이런 불만을 가진 건 유현뿐만이 아니었다.
“게이트를 토벌하는데 탱커도 없이 조합을 짰다는 게 말이 되냐?”
“내 말이. 이 중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저 인간밖에 없어.”
힐러인 종혁과 서포트인 재중도 불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재중이 말하는 저 인간이라고 하면 당연히 딜러인 유현이었다.
그러나 악마형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는 유현마저도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차크람을 던져 공격을 하려 해도 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앞 라인이 유지가 되지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뒤로 밀려났다.
“우리도 힘든데 빨리 좀 잡지?”
“너희들이 잡을 거 아니면 입 닥치고 있지?”
유현이 종혁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하며 맞받아치는데 그 순간 땅이 갈라지고 그 파편들로 유현 팀 모두가 나가떨어진다.
“이게 갑자기 뭐야!”
“젠장.”
유현은 간신히 몸을 움직여 피하였지만, 종혁과 재중은 피하다가 그만 부상을 당했다.
“에이 씨, 딜러가 딜만 제대로 넣었어도.”
“어떻게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냐.”
재중과 종혁은 본인들이 맡아서 해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히려 오직 유현의 역량 부족 탓이라고만 몰아갔다.
“내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너희들도 맡은 역할이나 잘 좀 하라고!”
유현도 그런 멤버들이 답답해서 일격을 날렸다. 유현도 게이트 안 몬스터들과 한바탕 싸워 재빨리 처리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악마들이 넘어진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 나가서 보자.”
유현이 이를 바득 갈며 쿨타임 10시간짜리 스킬, 거대한 부메랑을 사용하였다. 쿨타임이 상당히 긴 스킬이었기에 유현은 신중을 기하여 사용하였다. 다행히 유현의 기본 실력이 뒷받침되어 악마들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말 그대로 거대한 부메랑이 달려오는 악마들을 향해 날아가고 그대로 쓸어버렸다. 그리고 그 길로 길이 열렸다.
“뒤지기 싫으면 따라와라.”
유현은 종혁과 재중을 데리고 전투할 때부터 미리 봐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주변이 단단한 콘크리트들로 막혀 있는 실내였다. 게이트가 끝나면 팀을 이따위로 짠 스카우터에게 욕 한 바가지를 박아 줄 작정이었지만, 그 전에 살아서 게이트 밖으로 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우리 살아선 나갈 수 있으려나.”
“앞뒤로 저러고 막고 있는데 무슨 수로.”
“도움 요청했으니까 제발 입 좀 닥치고 있자. 어?”
밸런스도 안 맞고 팀워크도 안 좋은 데다 제대로 공격도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 빠지자 유현은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터진 유현의 분노에 종혁과 재중은 표정이 굳어졌지만,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그것도 그럴 게 여기서 당장 믿을 사람이라고는 유현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현 또한 다른 곳에 기대고 있었다. 아까 전에 급한 대로 김역전에게 SOS를 쳤으니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 일행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상태이다.
‘여기서 더 쪽팔릴 순 없으니 보스라도 찾아놔야지.’
유현은 보스라도 잡을 생각에 빠졌다. 그래야 그가 구해준 팀에게도 위신이 설 테니까.
“나갈 일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말한다. 꼼짝 말고 여기에 있어라.”
“미쳤다고 지금 바깥 상황에 발을 걸치겠냐.”
공포로 둘러싸인 그들은 어차피 움직일 생각도 없었다. 유현은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제발 둘이 사고만 치지 않길 바라며 하늘을 나는 스케이트보드를 소환해 정찰에 나섰다.
하늘 아래에서 본 모습은 악마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깽판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게이트 중간 지점에서 뭔가 이상한 것이 포착되었다.
“연기?”
유현은 게이트에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액체가 닿은 지반이 녹아들고 있었고 그 위로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였다.
***
조금 전, 신사역 D 게이트 바깥 세계. 김역전의 전화를 받고 유현을 도와주러 온 이차원이 도착하였다.
“어라, 혼자 들어가신다고요?”
달랑 혼자 게이트에 들어가려는 이차원에게 공무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일단은요.”
김역전은 이차원뿐만 아니라 최번개와 은지에게도 연락을 돌렸었다. 그러나 각자 개인 사정으로 언제 합류가 가능할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상황에선 이차원 혼자 지원을 가야만 하는 일이 생겨난 것이다.
“이곳은 D 게이트입니다. 아무리 혼자 하신다 해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요.”
“괜찮습니다. 안에 이미 동료들이 들어가 있다 했거든요.”
“그러시다면야, 아무쪼록 조심하세요.”
공무원은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이차원을 게이트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번에도 어째서 본 것 같은 풍경인 거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이차원은 들어가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익숙한 풍경에 기억을 떠올리는데 어디서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이차원이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갑자기 땅이 쿵쿵 울리기 시작하였다.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틀림없는 레오릭이었다. 게이트 안 레오릭은 땅을 울리며 뭔가를 쫓고 있는 중이었다.
‘저건 레오릭이잖아? 어째서 여기 게이트 안에 들어와 있는 거지?’
이차원은 충격에 그대로 몸이 굳는다. 레오릭은 분명 게임상의 몬스터다. 물론 예전에 현실 속 몬스터 해골왕이 게임 속에 나오는 건 본 적이 있지만, 게임상의 몬스터 디자인이 그대로 현실에 나온 것은 본 적도 없었고 들은 적 또한 없었다. 게다가 현재 레오릭이 사용하고 있는 스킬, 푸른 액체 또한 똑같았다.
게임에서 만났던 레오릭처럼 액체를 내뿜자 숲이 순식간에 녹더니 독가스가 자욱이 피어오른다.
‘대체 이게 무슨...’
이차원은 게임과 너무나 똑같은 레오릭의 모습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때, 멀리서 스케이트를 타고 오는 유현이 보였다.
레오릭이 쫓고 있던 건 딱 봐도 유현인 듯하였다. 이차원이 유현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것을 본 유현은 이차원을 발견하고 그쪽을 향해갔다. 그러나 이를 봐버린 레오릭이 유현을 향해 빠르게 액체를 내뿜었다.
“유현 씨, 피하세요!”
이차원의 경고를 한 덕분에 유현은 간신히 공격을 피하였지만, 중심을 잃었다. 유현이 스케이트 위에서 몸을 휘청이는 모습을 보이자 그 순간 레오릭이 나무를 잡아 던졌다. 유현은 그대로 나무를 피하려다 보드에서 추락하며 떨어졌다.
“실수했다!”
떨어지는 유현의 모습은 이차원에게도 보였다. 이를 본 이차원은 빛의 속도로 내달려 스킬 [포세이돈LV2]를 사용해 태풍을 소환하여 유현을 띄워서 추락하는 것을 막았다.
“덕분에 살았네요.”
그러나 안심하는 것도 잠시, 이차원이 레오릭과 눈이 마주쳐버린 것이다.
“잠깐이라도 쉬세요.”
“혼자 못 막을 텐데.”
“두고 보면 알겠죠.”
이차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오릭은 이차원에게 독을 내뿜었다. 이차원은 이미 게임 속에서 플레이했듯이 공격을 회피하지만 역시나 한 번 이겼다고 해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게다가 레오릭의 행동이 비슷하면서 사뭇 달랐다.
‘뭐지, 게임보다 확실히 강해진 거 같아.’
제일 큰 변화는 게임 속에서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물론 이차원은 레오릭의 약점을 알고 있었기에 공략법을 생각할 수 있었다.
뱃속. 실제 게임에서도 뱃속에 꽂아 레오릭을 처리했던 이차원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거다. 비록 게임상의 레오릭과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스킬을 사용하긴 했지만, 약점이 같으리란 법은 없었다. 게다가 뱃속에 들어가서 공격이 실패했을 시 얻는 리스크. 바로 게임과 현실의 가장 큰 차이점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게임과 달리 이건 현실이야, 실패하면 영광이고 뭐고 내 목숨이 사라져.’
이차원이 이러한 리스크 없이 뱃속을 공격할 방법을 고민하던 사이 손에 껴져 있는 장갑을 보았다.
“몬스터의 속성과 같은 속성으로 공격한다면 데미지가 반감되려나?”
그 질문에 답하기엔 당장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차원은 바로 시도를 하였다.
이차원은 우선 장갑의 능력으로 독장판을 소환하였다. 잔챙이 악마들이 뭣도 모르고 달려오더니 장판을 밟고 녹아내렸다.
‘좋아, 우선 게임처럼 공격이 통하고 있어.’
잡몹이라도 레오릭이 소환한 놈들이기 때문에 독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녹아내린다는 건 분명 공격이 통한다는 증거였다.
‘뱃속에 독장판을 투하하는 방법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차원은 레오릭의 뱃속으로 독장판을 투하할 생각에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갔다. 레오릭의 몸집이 워낙 크기 때문에 게임에서처럼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밖엔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이차원의 눈에 멀리 높이 솟은 나무 하나가 들어왔다. 이차원은 재빨리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뒤에서 각종 괴성과 울림이 느껴져 오고 있었다. 나무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이차원의 뒤를 잔챙이 악마들과 레오릭이 쫓아오는 것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레오릭이 이차원만큼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하지만 재빠른 악마들이 이차원 주위를 둘러싸며 공격을 해오는 탓에 이차원의 속도가 느려졌다.
“방해 말고 비키시지.”
이차원은 잔챙이 악마들을 장갑의 스킬로 어려움 없이 쓸어버렸다. 역시나 액체에 맞은 악마들은 힘없이 녹아내렸다. 장갑 덕분에 이차원은 무사히 나무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가장 큰 문제는 잔챙이 악마들이 아니라 광분한 레오릭이었다.
이차원이 나무를 절반까지 올랐을 때 도착한 레오릭이 나무를 덮치고는 나무는 반으로 부러트렸다. 위를 향해 오르고 있던 이차원은 순간 중심을 잃으며 힘이 빠져 아래로 추락하였다.
아래에선 레오릭이 입을 벌리며 푸른 액체를 뱉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차원 역시 장갑을 이용해 액체를 뿜고 싶었지만, 몸이 전혀 따라주지 않았다.
목숨이 끝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반대로 스케이트보드를 탄 유현이 추락하는 이차원의 손을 낚아채 구해주었다.
“그러게 혼자선 못 막는다니까.”
유현에게 구해진 이차원은 안도를 내쉰 후 아직 끝난 게 아니란 듯 유현을 보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무슨 작전이라도 있는 거야?”
유현의 스케이트보드에 올라탄 이차원은 유현에게 작전을 설명하였다. 유현은 곧바로 이해한 듯 보드를 움직이더니 두 사람은 레오릭의 머리 위로 올라가기 위해 움직였다.
레오릭은 날아다니는 둘을 향해 다시 독을 내뿜어대었다. 하지만 유현은 이차원이 작전 설명할 때 알려준 덕분에 레오릭의 공격 패턴을 알고 공격을 피하였다. 그리고 머리 위로 도착한 순간, 이차원은 독장판을 레오릭의 뱃속을 향해 투하하였다.
“나이스 샷!”
자신과 같은 독성 액체를 맞은 레오릭은 고통스러워하였다. 유현은 그 모습이 마치 어두운 지면 위로 물방울들이 떨어지며 푸른 빛으로 퍼져 나가는 호수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