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거대한 십자가들이 떨어지더니 주변의 구울들을 모조리 처리하기 시작하였다. 보스도 이런 공격은 예상하지 못하였는지 당황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십자가 공격을 당한 보스가 타격을 입고 잠시 쓰러지는 듯하더니 곧장 다시 일어나 이빨을 드러낸다. 그 전보다 흥분했는지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보스는 이내 이차원을 매섭게 노려보며 네 발로 땅을 짚으며 빠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너무 순식간이라 피할 틈도 없었다.
‘속도가 너무 빨라, 게다가 힘이 너무 세!’
이차원은 우선 방패로 보스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한없이 보스에 의해 밀리기만 하였다.
‘이대로 가면 벽에 부딪혀 치명상을 입게 될 거야.’
심판자의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차원은 보스가 팔로 바닥을 딛기만을 기다렸다. 보스의 왼팔이 땅을 짚자 그대로 보스의 왼팔을 잘라버렸다.
팔을 잘린 보스가 자기 속도를 못 이기고 땅에 엎어지며 고통에 울부짖었다.
“좋아, 모두 돌진해!”
이차원의 신호에 이차원 팀 일원들이 다 같이 달려들어 공격에 합세하였다. 하지만 보스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잘린 왼팔이 다시 재생되더니 송곳 같은 손톱을 내세우며 반격을 하는 것이다.
최번개와 예리나는 재빨리 몸을 피하였고 은지와 이차원은 쉴드와 방패를 꺼내 공격을 막았다. 은지는 쉴드로 보스의 공격을 막았지만, 그 충격으로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다행히 최번개의 빠른 움직임으로 은지를 받아내었다.
“나이스 캐치!”
“고마워요.”
은지의 안전을 확인한 이차원은 빈틈을 노리다 방패를 던져 빠르게 보스의 턱을 강타했다. 보스는 미처 막지 못하고 그대로 공격을 허락해버렸다. 커다란 울림이 게이트 안을 흔들었다.
한편, 이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예원은 초조하기만 하였다.
‘뭐야. 이러다 진짜 뺏기는 거 아니야?’
이차원이 싸우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던 예원은, 계획이 꼬이자 초조해져 손톱을 깨물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차원 팀은 진작 구울 무리에 나가떨어졌어야 했고 보스를 잡는 건 자신이어야 했다. 이미 머릿속으론 완성되어있는 그림이었다.
지금쯤 핏빛 결정을 얻어 자신의 손에 지배자 반지가 끼워져 있어야 했는데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형편없는 새끼들 때문에.’
예원은 이마저도 나가떨어진 팀원들 탓을 하였다. 이와 빗대어 보면, 이차원 팀은 빛나는 정도가 아니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차원이 다른 하나의 세계일 정도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것처럼 합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이보다 합이 더 잘 맞을 수는 없을 정도였다. 예원은 끝까지 자신의 팀원인 지민과 하류가 자기의 실력을 뒷받침해주지 못한 것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저 녀석들이 내 발목만 안 잡았었어도.”
그 시간 지민은 힐러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다행히 급소는 피해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이차원 팀은 엄청난 위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최번개가 스파크를 일으켜 보스의 시야를 차단하면 예리나가 바위를 소환해 보스가 도망칠 동선을 미리 차단한다. 그리고 이차원을 감싸는 은지의 버프까지.
이차원은 손쉽게 보스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이차원의 말뜻을 이해하였다.
‘울어. 지금이 네가 울 타이밍이니까.’
“저 새끼가..! 내가 제대로 된 새끼들만 데려왔어도 너 따윈 상대도 안 돼!”
이차원은 예원의 발악을 그대로 무시하고 죽어가는 보스에게 마지막 한 방을 먹이러 달려갔다.
‘두고 봐. 내가 이대로 혼자 무너질 줄 알고.’
***
한편 이차원의 계속되는 공격에 보스는 점차 힘을 잃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꺽꺽 소리를 내며 죽음을 코앞에 둔 상황이었다.
‘됐어!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끝이야!’
이차원이 회심의 일격으로 빛의 심판자의 검으로 내려찍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든 공격을 피하느라 공격이 빗나가고 말았다.
이번에도 역시 예원이다.
“하, 울긴 내가 왜 울어. 이러나저러나 이기기면 하면 그만이야.”
예원의 눈은 풀려있었다. 그녀는 죽어가는 보스를 자신이 마지막으로 처리하여 부속물을 챙길 생각이었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 밑일 뿐이야!”
예원은 이차원과 길드원들에게 느꼈던 분노가 광기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예원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구울 보스는 일반 구울과 다르게 강력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 스킬은 바로 흡혈이었다.
예원이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구울의 목숨을 끊어내려는 순간이었다. 쓰러져있던 보스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이 그녀의 어깨 위로 올라탔다. 갑작스런 움직임을 예상 못 한 예원은 그대로 보스 손아귀에 잡히고야 말았다.
“떨어져! 꺼지라고!”
예원은 어깨에 달라붙은 보스를 떨쳐내려 하였다. 예원의 어깨를 잡은 보스의 손톱이 움직이는 예원의 어깨를 더욱 강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녀의 목덜미에 이빨을 꽂고 흡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원은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하였다.
“도와줘! 누가 좀 구해주라고!”
하지만 이지스 팀의 일원들은 그 누구도 도와주러 가지 않았다. 모두 공포와 경멸의 눈빛을 보낼 분이었다.
“하! 꼴 좋다, 이 마녀 같은 년. 그곳이 네 무덤이 되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하류가 죽어가는 그녀를 힘껏 비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비명 소리도 약해졌다.
그리고 예원의 몸속으로 구울의 독이 서서히 퍼져가며 그녀의 몸이 빨갛게 물들었다.
“여왕벌의 최후네.”
이차원 팀원 모두 독에 중독된 예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예리나가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었다.
“설마 저 보스, 지금 회복 중인 거야?”
예리나 말처럼 보스는 예원의 피를 빨면 빨수록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몸이 낫고 있어요, 흡혈을 해서 그런가 봐요.”
사실 이차원 팀의 입장에서 그녀가 죽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이미 도덕적 선을 넘은 그녀를 인간 취급을 해주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회복하는 건 알겠는데 몸은 왜 더 커지는 거야?”
문제는 보스가 그녀를 흡혈하여 다시 회복했을뿐더러 훨씬 더 강력해지고 있다. 몸집이 원래보다 3배는 커진 보스가 예원의 어깨에서 송곳니를 빼내었다. 독이 퍼진 데다 피까지 빨린 예원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보스가 그대로 이차원 팀한테 돌진하는데 이에 쉽게 뒤로 물러날 이차원도 아니었다.
“서포트 좀 부탁할게.”
이차원은 검을 꺼내 들고 보스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방패로 밀치고 검을 휘둘러서 나름대로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게 타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최번개와 예리나가 이차원의 딜을 서폿해주지만 보스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차원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는 보스. 심지어 높이 뛰어올라 이차원의 어깨를 짓누르고 흡혈을 하려 했다.
“이런 공격을 어느새!”
다행히 이차원의 빠른 움직임으로 보스를 떨어트렸다. 하지만 보스는 여전히 현란한 공격을 이어갔고 보스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이차원은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안 되겠어... 눈으로만 좇다간 힘이 남아나질 않아.’
이차원은 보스를 눈으로 좇기를 포기하고 소리에 집중하였다. 그러자 다행스럽게도 보스의 공격이 소리가 커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반격을 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오랜 시간이 지나 이차원뿐만 아니라 점차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지쳐가는 이차원 팀이었다.
‘이 방식으로는 도저히 못 끝내.’
공격을 막기 바빴던 이차원은 문득 게임 속 연금술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언가 생각하던 이차원은 무슨 생각인지 씩 웃었다.
***
“너희들은 따라오지 마.”
“잠시만, 형!”
“너 혼자 어디가?”
“위험해요!”
일원들에게 충고를 한 후 곧장 보스를 피해 구석으로 달렸다. 그리고 이를 놓칠 리 없는 보스가 공격을 퍼부었다.
구울의 기다란 팔이 이차원을 향하는데 반격할 생각은 없는지 피하기만 하였다.
“저게 오히려 더 위험한 거 아니에요?”
최번개가 이차원이 간신히 공격만 피하는 걸로 생각하고 뒤를 서포트하러 가려고 했다.
“거기 있으라고!”
그러나 이차원은 그런 최번개를 필사적으로 말린다.
“저 형이 왜 저러지?”
최번개가 이차원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달려가려고 하자 은지가 그를 붙잡았다.
“여기서 지켜보자.”
“당장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지켜만 봐!”
“생각이 있겠지. 믿고 지켜보자.”
최번개는 자신을 말리는 은지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결국, 마지못해 싸움을 지켜보기로 하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한편 구울의 공격을 피하던 이차원은 여전히 공격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차원은 실수로 검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형!”
“이차원!”
보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차원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망설이지도 않고 이차원을 흡혈하려 달려들었다.
이 모습을 본 이차원 일원들은 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엄청난 다량의 피가 솟구쳐 나온 것이다. 이차원 일행들은 모두 절망하였다.
“제가 그래서 가자 했잖아요!”
“차원아!”
“차원 씨!”
일원들 모두가 좌절하고 주저앉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본래 흡혈을 하면 보스의 힘이 강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손에서 빠져나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이차원이었다.
일원들은 모두 의아해하였다. 그랬다, 모든 것은 사실 이차원의 계략이었다. 공격을 회피하던 그때, 이차원은 칼을 일부러 떨어트린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주머니에서 유리병을 꺼내, 유리병을 깨뜨리고 히프족 독니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보스가 이차원을 붙잡은 것이다.
이를 모르는 보스는 그대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차원을 흡혈하려는데 이차원이 독니를 스스로에게 꽂은 것이다.
독니에 든 독이 빠르게 이차원에게 흐르더니 보스에게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독이 퍼진 이차원을 흡혈한 구울이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다 뒤로 넘어졌다. 곧이어 피를 토하면서 상체를 들썩이는 구울의 모습이 보였다.
‘으윽, 이거 많이 아픈데.’
히프족의 맹독에 걸린 이차원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보던 최번개와 은지 그리고 예리나까지 놀라서 이차원에게 달려왔다.
“형, 진짜 미쳤냐? 대체 왜 그런 거야.”
최번개가 이차원의 상처를 살피는데 예리나는 죽은 구울 보스가 의아하다.
“근데 저 녀석은 갑자기 왜 뒤진 거야?”
“아, 지금 그딴 게 중요해?!”
최번개는 스스로 흡혈귀한테 당한 이차원의 상태를 보는데, 이차원은 손을 부르르 떨며 회복 구슬을 꺼낸다. 은지와 최번개 그리고 예리나까지 이차원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걸 먹어야 해.’
구술을 입에 넣기 위해 손을 올렸다. 그런데 그만 독이 퍼져 손이 떨린 탓에 구슬을 놓치고 말았다.
‘안 돼!’
말할 힘도 없던 이차원은 굴러가는 구슬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구슬의 도착지는 은지의 발밑이었다.
“이걸 입에 넣으면 되는 건가요?”
평소에도 눈치가 빠르던 은지는 이차원에게 물었다. 이차원은 고갤 끄덕였다. 은지는 자신의 발밑으로 굴러온 구슬을 집어 들어 입으로 넣어주었다.
회복 구슬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효과가 일어났다. 이차원의 몸속에 퍼진 독이 서서히 해독됐고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형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이차원. 다음부턴 이런 무모한 작전은 앞으로 귀띔이라도 하라고.”
반면 독이 퍼진 보스는 얼마 못 가 소멸하였고 핏빛 결정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구울로 가득해 있던 성이 사라지면서 게이트가 소멸되었다.
완벽한 이차원 팀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