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예원이 이차원의 말에 분노 조절을 못 하고 달려들려는 순간 게이트가 열렸다.
(C- 게이트 토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차원 팀과 이지스 팀은 동시에 준비를 마치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게이트의 배경은 루마니아의 성같이 고딕스러운 성의 내부다.
발걸음을 한 발짝 내딛는 순간,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자 숨어있던 구울들이 곧장 습격을 시작한다.
“앞에 대거 구울들 출현!”
예리나와 최번개가 스킬을 쓰려는데 갑자기 그들 앞을 막아선 이차원이 [방패밀치기 Lv2]를 사용하여 방패를 소환해 밀치며 구울을 부메랑처럼 던져버린다. 혼자서 족히 10마리의 구울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린 것이다.
“오오... 이거 방송 각이다, 형.”
“야, 쟤네 좀 봐.”
예리나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지스 팀을 가리켰다. 그들은 아직도 구울을 처리하지 못하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히힛, 쌤통이다!”
은지도 예원한테 쌓인 것이 많았는지 한마디 덧붙인다.
“어이~ 여왕벌!”
최번개가 싸우고 있다 손을 흔들며 여유롭다는 듯 예원 팀을 향해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본 예원은 이를 꽉 물었다.
“그쪽은 벌써 힘든가 봐?”
최번개는 눈이 마주친 예원을 향해 비꼬기 시작했다. 기존에 얽혀있던 관계가 한 번에 역전되었다.
“저 새끼들이..!”
굴욕감에 분노가 쌓인 예원은 이를 부득 갈며 팀원들을 노려보았다. 자신만만했던 팀원들의 눈빛은 어느새 서로의 눈치를 보랴 구울을 처리하랴 쉼 없이 돌아갔다. 물론 그렇다고 구울에게 밀리거나 지지는 않았다. 구울을 막아내긴 했지만, 이차원 팀보단 늦을 뿐이었다. 그 사실이 예원에게 더욱 화가 난 것일 뿐.
“누나 이러다 우리 꼴 우스워지는 거 아니에요?”
“보스부터 찾아. 어차피 쟤들 목적은 핏빛결정이니까.”
이차원 팀의 목적은 구울 보스에서 드랍되는 핏빛결정이니 자신들이 보스를 처리해 부산물을 얻을 계획임을 예원은 회의 때 알고 있었다.
“근데 겨우 쟤네 하나 이기자고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이지스 팀원 중 탱커를 맡고 있는 하류가 조금 찝찝하다는 듯 묻는다.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예원의 강압적이고 공격적인 말투에 팀원들 모두가 조용해지고 오직 보스를 향해 돌진하였다. 그러나 이에 가만히 있을 이차원 팀이 절대 아니다. 예원의 계획을 눈치챈 이차원 팀도 구울들을 처리하며 보스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두 팀 다 보스에만 연연하고 있는지 주변 구울들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팀원 간의 실수가 계속 일어났고 구울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도 일어났다.
그러던 중 최번개가 [전류 폭탄]을 사용해 구울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공격을 받고도 구울은 쓰러지지 않았다. 반면 최번개는 구울을 처리한 줄 알고 보스를 향해 갔다. 결국 그 구울은 예리나의 바로 뒤까지 쫓아와 입을 벌렸다.
“꺄악!”
“누나 뒤에!”
“내가 맡을게!”
다행히 이차원이 빠른 대처로 [검술 Lv3]를 이용해 처리하였다.
“고마워.”
“최번개, 마무리 확실하게 해.”
이차원이 최번개의 뒤를 이어서 공격하는 구울을 처리해주며 말한다. 덕분에 이차원 팀은 주변 구울들의 행동을 파악하며 대처할 수 있었다.
예리나가 실수하면 은지가 커버해주고, 이차원은 은지를 커버하는 최번개를 커버해줬다.
쿵짝이 아주 잘 맞는 완벽한 호흡이었다.
반면 이지스 팀은 여전히 구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 헤매는 모습이었다.
“야! 내가 뒤에서 하나 커버하랬지?”
“죄송합니다.”
“정신 차리고 똑바로 안 해?”
예원이 소리칠 때마다 무서워서 허둥지둥 대는 느낌이었다. 일만 하는 팀원들에게 채찍만 날리고 있으니 그게 잘 될 일이겠는가. 거기에 하필 예원은 자신의 팀이 밀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가 치솟아 오른 상태였다. 예원은 이차원 팀을 매우 신경 쓰고 있었다.
이차원 팀은, 최고의 호흡을 보여주며 구울을 상대하고 있었다.
‘더럽든 깨끗하든 무슨 상관이야. 이기면 그만이지.’
그래도 어찌저찌해서 두 팀은 비슷하게 성의 내부에 도착하였다. 성의 내부는 어둡고 길도 복잡하였다. 이차원은 마침 히프족 동굴에 갔다 왔던 적이 있기에 팀원들을 이끌며 잘 헤집고 나아갔다.
‘히프족 동굴에 갔다 온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저 녀석들, 어떻게 이 길을 잘 파악하고 갈 수 있는 거지?”
이지스 팀은 이차원 팀에게 뒤처져 그들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데 바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초반 구울과는 다른 상위 구울들이 뒤에서 기습해왔다.
“모두 조심해, 여기 이 녀석들, 한층 더 강해졌어!”
이차원의 경고 떨어지기 무섭게 은지는 갑작스러운 기습에 방어하지 못하고 바로 위기에 처해졌다.
“누나!”
“은지야!”
상위 구울에게 당하기 직전, 다행히 이차원이 방패를 사용해 구울을 막아내었다.
“가, 감사합니다.”
“이곳은 위험하니까 서로 잘 뭉쳐 다녀.”
이차원의 도움과 카리스마 있는 지시에 은지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차원은 이를 모른 채 곧장 심판자의 검을 휘두르며 십자가를 떨어트려 구울들을 순식간에 처리하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건 이지스 팀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갑자기 강해진 구울들에 의해 힘을 제대로 못 쓰고 있었다.
“이쪽에 도움 요청!”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결해!”
팀워크가 갈수록 무너져갔다. 심지어 예원은 위험에 처한 상황이 되자 공격을 피하기 위해 같은 아군인 지민의 뒤로 숨었다.
“누나, 지금 이게 무슨...”
결국 지민이 구울의 공격을 받고 그대로 날아갔다.
“젠장.”
예원은 염력 스킬로 성벽 내부를 부숴가며 상위 구울들에게 타격을 입히려고 시도해보지만, 워낙 빨라서 쉽지가 않다.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자 예원은 다시 애꿎은 팀원들에게 뭐라 하기 시작했다.
“일어났음 뭐라도 하라고, 좀!”
“지금 다쳐서 치료받은 거 안 보여요?”
“치료받았으면 빨리 전투에 복귀해야 할 거 아냐?”
그 말을 들은 하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예원을 실눈으로 째려보았다.
“빨리 안 와? 뭐 하는 거야!”
예원의 독재 같은 지시로 인해 지민은 결국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아무튼 저 여자 성질머리 하고는...”
지민은 숨을 고르며 온 힘을 모아서 모래 폭풍을 소환하는 스킬을 사용했지만 구울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접근을 하다 보니 앞으로 나아갈 진전이 없었다.
그들을 지켜보는 이차원 팀은 대놓고 이지스 팀을 비꼬았다.
“여기와 다르게 저기는 통솔이 엉망이네요, 과연 누구 잘못일까요?”
“웃어. 아직은 밟힐 타이밍 아니니까.”
“저게 진짜!”
이차원 팀은 그대로 이지스 그룹의 오합지졸 행태를 보며 비웃으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어느덧 그들의 앞에는 자그마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힘을 짜내어 빛에 도달하였다. 그곳엔 모두가 찾으려 했던 보스가 등장했다.
확실히 일반/상위 구울보다는 조금 더 크고 팔이 기다랗고 몸 색도 더 진한 것이 훨씬 더 강해 보인다.
“우선 나와 번개가 먼저 보스한테 가볼게, 어떤 힘이 있을지 모르니까.”
“응, 둘 다 조심해.”
이차원과 최번개는 동시에 보스를 공격하려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서 있던 땅이 갈라지더니 중심을 잃고 그대로 벽으로 들이받게 됐다.
“뭐야, 보스에게 저런 힘도 있었어?”
“하지만 공격해온 방향이 이상한데... 앗!”
은지의 시선을 따라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보니 공격이 날아온 쪽은 다름 아닌 이지스 팀이었다.
“쟤네들 드디어 살인이라도 하겠단 거야?”
“네. 제대로 미쳤어요.”
평소 조용하던 은지도 헌터가 헌터를 공격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헌터가 헌터를 공격하다니, 이건 헌터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룰이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은지는 예원이 이렇게까지 더럽게 나올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더 기가 찼다.
은지는 이차원과 최번개에게 서둘러 달라붙어 힐로 치유하였다. 하지만 보스는 큰 소음 때문에 이차원 팀의 위치를 알아내 버리고 말았다.
“저 녀석들 드디어 끝이네”
“쟤들만 사라지면 우리도 좀 편해지겠지?”
“어서 빨리 죽어라!”
예원의 독설과 독재에 더는 견디지 못하겠는지 이지스 팀 일원들은 독설을 날렸다.
“누나들, 모두 피해요!”
“바... 방패가.”
벽에 부딪힌 충격 때문에 이차원의 검과 방패는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날아갔다.
“조금만... 조금만 더!”
치료를 하고 있던 은지의 마음도 다급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그 자리에서 전멸하고 만다. 이차원이 다른 방법을 물색하던 그때,
“저기, 모두 나를 잊은 거야?”
예리나는 그런 셋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몰려오는 구을들에게 양손을 뻗어 올렸다. 그러자 지진이 일어나 주변 구울들을 다가오지 못하게 길을 벌렸고 위협적인 바위를 소환해 보스의 발을 묶었다.
“어, 그건 처음 보는 스킬인데.”
이차원과 나머지 일행들도 처음 보는 예리나의 스킬에 놀라는데 예리나가 어깰 으쓱하며 말하였다.
“너희들만 성장하는 건 아니라고.”
***
한편 이차원 일행이 발을 묶어둔 보스를 향해 이지스 팀이 틈을 타 공격을 시도하였다.
“도와줘서 고맙다, 땅개들아!”
“저 녀석들이!”
예원을 중심으로 이지스 팀은 보스를 향해 공격하였다. 그러나 공격했을 때는 어느 틈에 보스는 천장을 타고 넘어와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뒤늦게 지민이 뒤에 있는 보스를 발견했다.
“뒤에! 누가 나 좀 커버해줘!”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신호를 받은 팀원들이 몸을 돌리는 것보다 보스가 팔을 휘두르는 게 훨씬 더 빨랐다. 팀원들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지민은 공격을 받고 바닥에 쓰러지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속도와 힘에 예원은 당황하였지만, 지민에게 다가가 도와주지 않을망정 오히려 팀원들을 또다시 다그쳤다.
“뭣들 하는 거야?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싸워!”
예원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예원이 이렇게 허둥대는 이유는 바로 코앞까지 보스가 와있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이러실 겁니까?”
이지스 팀의 탱커 하류는 지민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도 꿈쩍 않는 예원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경멸의 표정을 짓고는 방패와 창을 든다.
“이차원이면 분명 구했을 겁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왜 그딴 새끼 이름을-”
“혼자 잘 해보십시오.”
“뭐 이 새끼... 야!”
예원이 하류한테 한마디 쏘아붙이려는데 이미 그는 지민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류는 쓰러진 지민을 구하러 빠르게 달려갔다. 그러나 보스는 그대로 지민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하류에게 던져버렸다.
갑자기 날아든 지민의 몸 때문에 피하지도 못하고 하류가 받아내려 하자 손에 들려 있던 창이 지민을 찌르고 말았다. 지민의 피가 자신의 손을 타고 흐르자 하류는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이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네가 그러고도 길드장이야? 도와달라고!”
하류는 간신이 몸을 일으켜 쓰러진 지민을 살피며 예원의 도움을 구했다. 하류가 애타게 예원을 부르고 있지만, 예원의 표정은 싸늘한 채 못 본 척하였다.
“이봐! 당신보고 얘기하는 거라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예원은 팀원은 안중에도 없는지 오직 보스를 잡을 방법만 생각 중이었다. 애초에 지민과 하류 모두 예원에겐 일회용 팀원일 뿐이었으니까 예원은 쓰고 버린 물건처럼 대하였다.
“조용히 죽어. 전투 중에 죽은 걸 영광으로 받아들여.”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하류는 분하고 자신들을 물건 취급하는 예원에게 살기의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는데-
“넌 정말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구나.”
예원이 뒤돌아보니 심판자의 검을 든 이차원이 자신을 경멸스럽게 보고 있었다.
“지금이 타이밍이야.”
“뭐라는 거야.”
이차원은 자신을 신경질스럽게 노려보는 예원을 뒤로하고 보스에게 달려들었다. 등에 메고 있던 빛의 심판자의 검을 꺼내 휘두르는데 그 순간 무형의 십자가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그것은 게임 속에서보다 죽은 자들을 구원해주듯 성스럽고 환한 빛을 내뿜으며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