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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36화 (36/202)

36화

땅이 꺼지며 잭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거인들도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이 틈이에요, 도망치세요!

어디서 갑자기 나온 렌더가 이차원 일행을 향해 외치며 뛰쳐나왔다. 일행들은 렌더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거인들은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해 쫓아오기는커녕 일어서지도 못하였다.

그사이 이차원 일행은 도망치는 데 성공하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다 보니 세 사람은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여긴 아까 왔던 곳 같은데요.

어딜 가도 다 비슷한 광경이었다. 빼곡히 늘어선 나무들만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와 어디로 들어온 건지, 어딜 향해 가야 하는 건지 전혀 감을 찾지 못하였다.

“이러다간 다시 거인들과 마주치겠어.”

-넌 여기에 대해 뭐 아는 거 없어?

울프릭이 이차원을 보며 물었다. 물론 이차원은 게임을 통해서 볼 산맥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원래 게임시나리오에서 지나가는 길과는 너무 달라서 나가는 길을 알지 못하였다.

-지금 이 상황에 맞는 물건은 가지고 있지 않은 거야?

“이곳 길도 알고 있는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지.”

-내비게이션?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마법지도 같은 거라 생각하면 돼.”

이런 대화를 한다는 것으로 그 물건이 짠하고 나타난다는 스킬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잭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기서 기다릴까요?

-길 잃은 우릴 무슨 수로 그 덩치가 찾아오겠어. 거기에 지금 녀석의 생사도 모를 판에.

이차원도 옳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건 게임을 14년 동안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 마땅한 대응책은 물론 잭의 생사도 알 수 없다.

‘진짜 어디로 가야 하지, 앞으로 나아가려면 잭이 꼭 있어야 해. 하지만...’

그때 다시 한 번 커다란 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거인의 발소리도 들려왔다.

-또 거인인가요? 어느새 벌써.

-일단 각자 숨어요.

바짝 긴장한 셋은 커다란 바위 뒤에 나란히 몸을 숨기는데 잠시 후, 거인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곧이어 안 들려오는 거리가 되었다.

-어쩔 거냐.

“뭘?”

-잭을 찾아서 길을 찾을 건지 우리끼리 나아갈 건지 정하자고.

이차원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거인을 마주했다면 잭이 살아남아 있는 것은 불가능할 터. 그럼에도 이차원은 잭이 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잭이 있어야 길을 알 수 있다.

‘직감 하나를 믿고 계획을 실행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커.’

-전 어느 쪽이든 군말 없이 따라가겠습니다.

렌더 역시 이차원의 판단에 맡기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번에도 땅이 스윽 꺼지더니 렌더를 빨아들이듯 집어삼켰다.

“으아아아아악!”

“이런, 뭐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울프릭은 렌더를 구하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렌더를 집어삼킨 땅은 구멍처럼 뚫린 채 남아있었다. 울프릭은 이차원과 눈빛을 주고받더니 렌더를 따라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일이 더 귀찮게 흘러가는데.”

긴 통로를 내려가자 진흙으로 뒤덮인 방에 도착하였다.

-아으, 허리야, 하필 뼈에 맞아가지고 더 아프네. 어? 두 분도 내려오신 건가요?

아프다고 조잘조잘 대는 것을 보니 렌더도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다. 이차원은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진흙으로 덮인 방, 미로처럼 얽힌 굴...

분명 익숙한 풍경인데... 이차원이 생각에 잠기는데 함께 주변을 살피던 렌더도 뭔가를 눈치챈 건지 사색이 되었다.

-잠시만요, 여기 이곳은 설마...

렌더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때 이차원도 생각이 나 렌더의 뒷말을 이었다.

“히프노브 소굴.”

***

히프 종족은 뱀의 외형에 날카로운 손톱을 가지고 있는 괴물로서 매우 영리해 각 왕국의 골칫덩어리로 불리운다.

-전 이 모험에 제 목숨도 바칠 수 있지만 뱀은 정말 사절이에요. 뱀한텐 절대로 죽기 싫다구요.

렌더에게도 골칫덩어리에 끔찍이 싫어하는 존재였다.

-여기서 당장 빠져나가면 안 될까요?

-잠시만, 여기 뭔가가 있어.

무언가 발견한 울프릭이 그것에 다가갔다.

울프릭이 집어 들자 빨간색 가죽이 보였다.

-배... 뱀 시체다!

-진정해, 그냥 보호대잖아.

-그... 런가요?

렌더가 머쓱하게 고개를 돌렸다.

-엇, 그거 잭의 물건이잖아?

-그렇다면... 잭도 이곳에 있다는 건가.

울프릭은 잭의 보호대를 챙겼다. 동시에 이차원은 안도감이 들었다. 만약 잭도 이곳에 있다면, 아직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잭이 거인에게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이차원 일행이 있는 방 밖에서 뱀 특유의 혀를 날름거리며 쉭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히이익!

창백해지는 렌더와 심판자의 검을 꺼내 전투 자세를 취하는 울프릭. 그리고 그들 앞에는 일행을 발견한 히프족 전사가 빠르게 흐느적거리며 다가와 창을 겨누었다.

-이 녀석들이 히프족 전사들인가? 바쁘니까 빨리 끝내 버리겠어.

울프릭이 심판자의 검을 휘두르며 십자가를 떨어뜨리자 히프족 전사는 바로 힘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렌더가 안심하기도 잠시, 동료가 죽을 때 내는 소리를 듣고 히프족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울프릭이 히프족들을 하나하나 처치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렌더와 이차원이 그 뒤를 따르는데 그 길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꼬여있었다. 마치 굴 자체도 뱀과 같았다. 툭하면 길이 막히고 불쑥불쑥 새로운 통로에서 히프족들이 튀어나왔다.

‘차크람만 있었으면.’

이차원은 유현이 가지고 있는 차크람 때문에 이 순간 더욱 유현이 절박했다. 차크람을 던지면 미로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몬스터의 수까지 파악이 가능했으니까 말이다.

-여긴 막다른 길 같은데 이제 어쩌죠?

렌더가 잔뜩 겁에 질려 덜덜 떨었다. 앞길도 옆길도 막혔다. 다시 되돌아 나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들이 들어온 통로 쪽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히프족의 그림자다.

울프릭이 다시 검을 치켜 올려 전투태세를 갖추지만 이미 많은 공격을 해서 지쳤는지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괜찮아?

울프릭이 고갤 끄덕여 보이지만 상태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때, 렌더가 갑작스러운 말을 던졌다.

-히프족 언어를 아는 제가 협상을 해보면 어떨까요?

-그런 게 가능이나 하겠어?

-히프족은 난폭하기로 유명한 종족으로 아는데. 가능하세요?

-그렇긴 하지만... 당장 미로에 갇힌 이상 도망갈 수도 없고 하잖아요.

렌더가 말끝을 흐리는데 이차원의 머리로 흙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이차원이 고갤 들어보니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위! 위에 구멍이 생겼어.

-하지만 저길 무슨 수로 올라가나요?

-저긴 내가 올려 보내줄게.

울프릭은 [스카이워커 Lv1]을 사용하였다. 덕분에 이차원 일행은 히프족의 포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높이가 어마어마한 방에 들어온 이차원 일행, 그리고 밑에서 들려오는 히프족의 발소리에 이차원이 쉿이라고 하자 다들 숨을 죽이고 벽에 바짝 달라붙었다.

다행히 히프족은 이차원 일행을 두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조용해 졌는데?

-아마 간 거 같아.

숨어있던 렌더도 다가왔다.

-어두워서 통 보이질 않네요.

그의 말처럼 방은 어두컴컴해서 실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다려봐.”

그의 말에 이차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책상 서랍을 뒤졌다.

“분명 여기 있을 텐데... 아 찾았다.”

이차원은 노란색의 막대 같은 걸 쥐고 돌아왔다. 그리고 [복사 Lv1]을 사용하였다.

-이건 뭔가요. 마법봉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이차원이 울프릭과 렌더에게 각자 건넨 것은 바로 손전등이었다. 렌더의 물음에 이차원이 사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두 명 다 거기 있는 버튼을 눌러봐.”

이차원 말에 렌더와 울프릭이 동시에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방이 환해진다.

-대체 이런 요망한 물건은 어디서 구해오신 겁니까?

렌더가 이 세계에선 절대 없을 것 같은 물건에 기절초풍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기도 왕년에 꽤 모험을 해보았다고 자부하는, 자칭 모험가인데도 이런 위대한 물건을 만들어낸 나라는 단 한 곳도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죄다 몬스터를 죽이기 위한 창과 방패였는데 이렇게 실질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능성 장비라니. 렌더의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었다.

-대체 넌 어디서 온 거냐? 아무리 요정이라 해도 별나고 실용성 있는 게 많아.

울프릭은 매번 수상한 무기와 물건을 보내주는 이차원이 문득 궁금해졌지만, 이차원은 씩 웃어 보일 뿐이었다.

손전등을 켜고 이리저리 주변을 비춰보는 두 명. 그런데 그때 렌더 머리로 뭔가 뚝뚝 떨어졌다. 렌더는 자신의 머리에 떨어진 것을 닦으며 손전등으로 비추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끈적한 무언가의 액체였다.

재빨리 손전등을 천장으로 비추는데 천장 전체에 끈적한 액체가 고여있다. 그뿐만 아니다. 벽에는 둥근 알 같은 것들이 잔뜩 벽에 박혀 있었다.

-이게... 다... 뭐예요?

‘이거 설마.’

마치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곳은 여왕이 알을 낳는 곳이었다. 싸늘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험가님? 여기요! 저 여깄습니다!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가 보니 그곳엔 잭이 벽에 끈적끈적한 액체로 묶여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잭! 괜찮아요?

-네, 보시다시피 괜찮습니다. 혹시 저 좀 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차원이 스킬 [제우스 Lv2]을 사용하여 바람의 힘으로 액체 줄기를 전부 끊어내었다. 잭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정말 고맙습니다.

잭, 몸을 추스르며 이차원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데 그때 상태창에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빙의할 수 있는 대상이 늘어났습니다 – 잭 (사냥꾼)]

‘내가 잭으로 빙의를 할 수 있다고? 그런데 겨우 이거 도와주었다고 이 기술을 주다니, 생각보단 꽤 친절한 건가?’

이차원이 잭으로 빙의할 일이 있을까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어디선가 괴성이 들려왔다.

-저... 저기 일단 먼저 도망가는 게 어떠세요?

렌더가 심히 겁먹은 목소리로 바들바들 떨면서 말을 건넸다. 울프릭과 이차원은 렌더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전등에 비친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오고 있었다.

울프릭이 조금 전 마주쳐 전투를 벌여왔던 히프족 전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다란 큰 히프족 여왕이 갸르릉거리면서 내려오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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