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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32화 (32/202)

32화

주변을 보니 울창한 나무들이 길 양옆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이파리들은 푸르고 컸으며 그것을 지붕 삼아 사이사이에 둥지를 튼 새집도 보였다. 그 때문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점술사를 따라 뒤를 걷고 있던 이차원과 울프릭의 시야에 들어온 광경이었다.

-이 사람, 정말 믿어도 되는 존재 맞지?

“우리가 찾는 사람을 알고 있는 거 같았어. 혹시 모르잖아? 그게 네 동생일지.”

처음엔 믿기 힘들었다. 우리가 찾던 사람, 리지를 이렇게 금방 찾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리지가 아니라 해도 우리에게 득이 될 정보가 있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따라가자 했던 것이다.

점술사를 따라 도착한 곳은 겉은 통나무로 지어졌고 천막으로 하늘을 가려놓은, 오두막집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형태의 집이었다. 집에 들어가 보니 수염이 가득한 남정네가 테이블 하나를 끼고 앉아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한 남성이 있었다. 큰 덩치에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남자였는데 딱 봐도 깐깐한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확 느껴지는 남자였다.

남자는 뭔가 불만이 있는 건지 혼자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점술사가 들어오자 곧장 다리를 풀며 반듯한 자세로 바뀌었다.

-뭘 멀뚱히 보고 있어? 인사 안 해?

남자는 점술사 말에 우락부락한 몸을 이끌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저만한 남자를 말 한마디에 쩔쩔매게 하는 점술사는 저 남자에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체구였다.

‘저 점술사가 어느 정도의 힘이 있길래 저 말도 안 되는 덩치를 가진 남자가 옴짝달싹을 못 하고 있는 거야?’

울프릭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였다. 그도 어찌 된 영문인지 그저 점술사와 덩치를 왔다 갔다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은 내가 온다고 했던 손님이다.

점술사에 의해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이차원과 울프릭을 발견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굉장히 놀란 모습이었다.

-그것 봐. 내가 이쪽으로 온다고 했지?

점술사가 자신의 선견지명에 대해 스스로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남자는 갑자기 이차원과 울프릭 앞에서 넙죽 절을 했다.

-일렉시아 성의 영웅을 직접 만나 뵙게 돼 영광입니다!

울프릭은 자신들에게 절을 하고 있는 남자를 지나쳐 점술집을 둘러본 후 점술사에게 다가섰다.

-사람이라곤 이 남자뿐인 거 보니 이 사람인가?

-맞아. 당신들 사냥꾼 필요하잖아.

역시나 이차원의 생각대로 리지가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존재처럼 보였다. 점술사의 말을 듣고 남자를 훑어보는데 확실히 일반인치고 큰 덩치와 몸 곳곳에 난 상처 그리고 무기까지. 온몸으로 사냥꾼이라 외치고 있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진 알고 찾아온 거예요?”

이차원이 물음을 던지자 남자가 고개를 들어 재빨리 끄덕였다.

-네 알다마다요. 볼 산맥을 넘으려는 거죠?

이차원은 울프릭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서로 이 남자를 데려가자는 데 동의를 한 모양이다.

-그럼 지금 바로 갑시다.

그런데 말투와는 달리 선뜻 남자는 발걸음을 떼어주지 않았다.

-왜 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뻔하잖아. 막상 가려니 겁나는 거지.

당연하다는 듯이 건넨 울프릭의 말에 남자가 대답하였다.

-거인이 출몰한 후로 거길 건너는 사람 열의 일곱은 실종됩니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호기심에 갈 곳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열에 일곱이 실종? 도대체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이차원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맞춘 점술사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당신이 보기에 어때요? 우리 미래가.”

점술사가 잠시 눈을 감더니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암흑이 가득하지만 희미한 빛도 함께 보여. 비명횡사하진 않겠어.

“정말 그게 다인가요?”

-제 예측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이 되긴 하는데, 정말 이대로 출발해도 괜찮은 걸까. 이차원의 마음이라도 읽은 듯, 남자가 대답했다.

-가기 전에 위장복을 구해야 합니다.

-거인이라면 눈이 큰 걸로 아는데 위장복이 쓸모가 있을까요?

-다들 거인의 시력이 눈이 큰 만큼 좋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거인에게 인간은 진드기 같은 존잽니다. 위장복으로 몸을 잘만 숨긴다면 바로 옆에 있어도 들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 위장복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 거죠?

-위장복은 지미가 제일 잘 만들죠.

남자의 대답에 울프릭이 한숨을 쉬었다.

-지미라고 하면 우리가 알아? 어디로 가야 되냐고 묻는 거잖아.

-아, 그렇군요. 리프 마을 북쪽으로 가시면 모험가 상점이 하나 있는데 거기로 가시면 됩니다.

남자는 모험가 상점이 있는 위치를 손으로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아, 그리고 제 이름은 잭입니다. 앞으로 편하게 불러주세요.

***

잭의 말대로 리프 마을 북쪽엔 모험가 상점이 하나 있었다. 이차원과 울프릭이 모험가 상점에 들어서자마자 왼발에 목발이 붙어 있는 남자가 절뚝이면서 다가왔다.

-잭의 소개로 왔는데요.

-결국 오셨군요. 그놈이 볼 산맥에 간다길래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이차원은 지미와 대화를 하였고, 지미가 잭과 오랜 동료였고 둘도 없는 소꿉친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차원의 눈에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이차원이 절뚝이는 지미의 다리를 유심히 쳐다보자 이를 의식한 지미가 멋쩍게 웃었다.

-아, 이거요. 하하. 엄청 대단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 그 사연에 대해 말해줬으면 하는데.

지미는 그들에게 다리가 왜 그렇게 됐는지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들으셨겠지만 잭이랑 전 소꿉친구입니다. 그리고 둘 다 항상 궁금해했어요. 세상에 진짜 거인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잖아요? 동화 속엔 거인이 늘 나오는데 실제 거인을 본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러다 잭이랑 사냥을 하던 중 큰 발자국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게 무지 컸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이 정도면 거인 발자국 아니냐고 했는데...

웃으며 말하던 지미의 표정에서 어딘가 모르게 씁쓸함이 보였다.

-그날 사냥이 끝나고 술집에 갔더니 어떤 남자가 산보다 더 큰 게 움직이는 걸 봤다고 하는데 느낌이 오더라구요. 진짜 거인이 나타났구나. 잭이랑 전 우리가 거인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정말 거인이 나타난 거라고 했지만 아무도 우리 말을 안 믿었어요. 그러니까 점점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그놈이나 저나 우리가 맞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밤낮 거인을 추적하고 다녔어요. 그러다 진짜 거인을 마주치게 된 거죠.

-설마 다리를 다치게 된 게 그날인가요?

-네. 그놈이 손바닥으로 땅을 치는데 산이 뒤집히더라구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때 전 다리를 잃었고, 잭은 오른팔을 다쳐 아직까지 활을 쏘지 못합니다.

지미의 얘길 들은 이차원과 울프릭은 모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눈치챈 지미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크게 웃는다.

-그렇다고 그날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 옛날 일이고 무엇보다 저도 목표가 생겼거든요.

한때 잭과 같은 사냥꾼을 꿈꿨지만, 다리를 잃고 난 후엔 꿈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지미의 눈에선 열정이 빛나 보였다.

-그동안 거인을 추적하면서 쌓은 지식으로 거인 전문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여자들한테도 그편이 더 먹힐 거 같고. 동정받는 건...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그동안 사람을 사귈 때마다 자신의 다리를 향한 동정 어린 시선을 얼마나 받아온 것일까. 그날만 아니었더라면... 그도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크흠... 이거 또 분위기가 가라앉았네요. 아 맞다, 위장복을 찾으시는 거죠?

-네. 저희도 잊고 있었네요. 거인 눈을 속일 만한 것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

지미가 그들을 끌고 간 것은 어떤 서재였다.

-어이, 이곳은 재단소가 아니라 서재잖아?

울프릭과 이차원이 왜 여기로 자신을 데려온 건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지미가 수많은 책장들 사이로 책 한 권을 꺼내 가지고 돌아왔다.

‘이건... 식물 백과?’

이차원이 지금 상황에서 너무나 뜬금없는 식물 백과사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미는 책을 펼쳐 자작나무 페이지를 펼치더니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봐. 위장복을 달라니까 이딴 건 왜 보여주는 거야.“

이차원 역시 울프릭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고 있었다. 허나 이내 자신이 있는 곳이 게임이란 걸 깨닫고 알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지미가 곧 자신들에게 재료를 구해오라고 내릴 퀘스트의 일종인 것이었다.

-위장복이란 건 해당 지형과 동일화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볼 산맥엔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많죠. 그리고 이 두 나무의 특징이 각각 섞여 있는 것이 자작나무입니다.

지미의 말을 들은 울프릭과 이차원이 백과사전을 다시 제대로 보는데 그곳엔 자작나무 사진과 함께 설명이 적혀 있었다. 더불어 그곳엔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효능이 매우 좋다고 나와 있었다.

-여기 적힌 대로 자작나무 가지와 이파리를 구해오세요.

“그거면 됩니까?”

-아니요. 산이 나무로만 이뤄진 건 아니죠. 볼트 산맥엔 잡초가 많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니 진녹색 염색약과 실타래가 필요합니다.

-설마 이걸 다 우리보고 구해오란 건 아니겠지?

-지금 재료가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재료를 구해오란 소리에 울프릭이 잠시 넋을 잃고 있었다.

“너무 당황스러워하지 마, 한두 번도 아니잖아?”

이차원이 아직도 멍한 표정의 울프릭을 데리고 상점을 나섰다. 이차원과 울프릭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트톨 서식지였다. 지미가 자작나무가 가장 많은 곳이 트롤 서식지라고 추천해줬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세뇌도 풀렸다,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을 발견한 기억력 좋은 트롤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뭐라는 건지 아냐?

“나라고 알겠어?”

울프릭과 이차원이 자신들 앞에서 떠들어대는 트롤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트롤의 언어를 구사하며 나타난다. 트롤과 대화할 수 있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존재라면... 렌더밖에 없다.

-여긴 왜 왔냐고 하는군요?

-렌더 네가 왜 이곳에... 그 전에 자작나무를 구하러 왔다고 먼저 말해줘.

이차원의 말에 렌더가 다시 트롤과 대화를 하더니 고갤 끄덕인다.

-자기들이 도와주겠다네요.

-그럼 다행이고. 이제 대답해야지, 네가 어째서 이곳에 있어?

렌더는 미소를 슬쩍 내보였다.

-저도 당신들 여행에 끼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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