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울프릭. 일어나.”
울프릭은 쓰러져있는 그렉을 살피고 있었다.
-미안하다.
울프릭은 자신 때문에 다친 그렉 때문인지 예민해진 상태였다.
“일어나. 성화를 이용해서 공격해야겠어.”
울프릭은 이차원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화를 이용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울프릭이 이차원을 보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이차원은 십자가가 떨어진 자리에 바닥이 갈라지며 성화가 일렁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로 저걸 이용할 거야.”
저걸 어떻게 이용할 건지 울프릭은 아직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구름이 다시 보름달을 감싸 안았다. 늑대인간이었던 울프릭이 인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인간으로 돌아온 울프릭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괜찮아?”
너무 많은 시간 동안 변신 상태로 있다 보니 울프릭의 체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저 해골왕을 처리할 생각 해.
울프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골왕은 다시 울프릭을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크헉.
힘이 빠져 버린 탓인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울프릭은 해골왕에게 대놓고 얻어터지고야 말았다. 십자가가 울프릭의 근처에 떨어지며 떠오른 울프릭을 해골왕이 주먹으로 치며 벽으로 날렸다. 바닥으로 떨어진 울프릭은 여전히 미동도 할 수 없었다.
해골왕은 그런 울프릭을 장난감 가지고 놀듯 집었다 던지기를 반복하였다. 이차원이 백업으로 포세이돈을 사용해 해골왕을 공격하였음에도 처음 때와 똑같이 해골왕은 조금 몸을 휘청일 뿐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다.
‘또야... 그새 다시 강해졌어.’
이차원은 적잖이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하기야,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 버리면 그 누가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으랴. 이차원이 지금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해골왕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지는 거 같아... 설마 클리어 시간이 길어질수록 강해지는 건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상황을 헤쳐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구석에서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기침 소리의 주인은 바로 그렉이었다.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은 이차원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그렉에게 향하였다.
그렉에게 달려가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정신을 차린 그렉은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고 어깨에서 난 피는 흥건히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위험해, 이대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렉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상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해골왕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울프릭, 거기에 생명이 위태로운 그렉. 이차원은 더더욱 혼란 속에 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무언가 할 수 있는 존재는 이차원 그밖에 없었다. 여기서 그마저도 무너지게 된다면 말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된다.
‘지금 이곳은 내가 14년간 해왔던 게임 속이야,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분명히 있어.’
이차원은 우선 그렉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요.”
이차원은 전에 등록해두었던 회복 스크롤을 그렉에게 사용하였다. 비록 바로 회복되는 아이템이 아니라 서서히 아무는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 전보단 기운을 되찾기 시작하는 그렉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약해서 도움도 못 드리고...
이 싸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의 그렉에게 이차원은 격려의 말투를 보냈다.
“목숨까지 버리려 했잖아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때 상태창에 뜨는 새로운 메시지.
그렉과의 호감도 최대치를 달성에 성공하여 그렉에게 빙의할 수 있게 됩니다.]
빙의 – 그렉(레벨20/기사)
***
-내가 네놈 따위한테 질 거 같으냐.
해골왕은 떡실신한 울프릭을 끝까지 괴롭힐 심상인지 그냥 죽여주지 않았다.
해돌왕은 울프릭이 전투 불가인 상태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괴롭힐 생각이었다. 울프릭을 벽에 집어 던지는 것은 물론, 일부러 십자가를 울프릭을 피하면서 맞추어 공중에 뜨게 했다가 바닥으로 고꾸라지게 하고 심지어 울프릭을 검의 면 쪽으로 해서 쳐내기도 하였다.
얼굴은 피범벅이고 온몸이 멍과 상처투성이가 되었음에도 기절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해골왕은 그런 힘없이 축 늘어진 울프릭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다리로 가슴팍을 짓눌렀다.
-크흑..!
울프릭은 마지막까지 해골왕의 다리를 주먹으로 쳐내고 있지만 통하지 않았고 점점 통증이 몸을 덮쳐오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가다간 갈비뼈가 부러지고 말 것이 뻔하였다.
-네... 놈은 절대로...
울프릭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더 이상 남은 시간이 없다 생각한 그 순간,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만해라. 돼지 잡을 때도 그렇겐 안 죽인다.”
울프릭을 발로 짓밟던 해골왕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그곳엔 쓰러져 있던 그렉이 서 있다.
울프릭도 서 있는 그렉을 발견하였다.
-...그렉?
그렉으로 빙의한 이차원은 검을 바닥에서 일렁이고 있던 성화 속에 넣어 달구고 있었다. 심판의 검에 딸린 능력이라 그런지 검이 달궈지는 것을 넘어서 검날 위에 성화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한 그렉의 몸에 빙의한 이차원은 해골왕을 향해 내달렸다.
해골왕은 이미 공격 패턴을 예상했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왼팔을 들어 심장부터 막고 오른팔로 심판자의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애초에 이차원은 심장을 노리려던 것이 아니었다. 이차원이 심장을 노리는 척하다가 울프릭을 짓누르고 있는 다리를 향해 구르면서 검을 휘두르자 해골왕의 다리가 살코기가 썰리듯 잘려버린다.
뜻밖의 공격에 준비를 하지 못한 해골왕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더니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쓰러지면서 급하게 심판자의 검을 휘둘러 보지만 중심을 잃은 탓에 심판의 십자가가 엉뚱한 곳에 떨어진다.
-흐읍!
이차원이 다시 검을 휘두르며 해골왕에게 달려드는데 이번엔 검을 든 오른손과 마법 구체를 소환하는 왼손을 동시에 휘두르며 반격을 시도하였다. 이내 검과 마법 구체가 빠르게 이차원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차원은 반격을 해올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단 듯이 검을 피하며 자신에게 날아드는 영혼의 불꽃을 가볍게 튕겨내고 해골왕에게 돌진해 빠르게 해골왕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 칭호 ‘해골왕의 눈물’ ]
[ 효과 – 스켈레톤 속성 몬스터에게 추가 데미지 +36% ]
크하아아악!
마침내 이 상황을 종결시킬 종결의 소리가 울렸다. 해골왕은 매우 고통스럽다는 듯이 몸을 유난스럽게 움직였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었던 고통을 네놈에게 전부 되돌려주마.
갑자기 심장에 칼이 꽂힌 해골왕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이동하더니 기괴하다 싶을 만큼 입을 찢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의 입 밖으로 그동안 해골왕이 죽였던 영혼들이 하나둘씩 해방되어 승천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분노와 슬픔에 잠겨있던 영혼들이 하늘로 승천해 나갈수록 해골왕의 모습은 점점 무너져 내리더니 끝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기진맥진한 얼굴로 바라보는 이차원과 울프릭. 해골왕이 마지막으로 뱉어낸 영혼은 다름 아닌 나디저스 5세의 영혼이었다.
천하의 쓰레기이자 공포정치를 했던 폭군이나 다름없던 그마저도 둘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듯 승천하면서 사라졌다.
[EXP 50000이 상승하였습니다. 8 레벨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킬 개방 전이 Lv1 : 당신이 가진 아이템을 공유하게 됩니다.
현재 공유 가능한 아이템 제한 개수 1개 / 스킬 레벨 상승효과 : 개수 증가
해골왕을 처리하자 이차원의 눈앞에 안내문이 나왔다.
‘내가 가진 아이템을 공유할 수 있다? 울프릭과 더 강력하게 유대관계가 맺어진다는 말이네.’
하마터면 울프릭과 그렉, 둘 다 잃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천만다행으로 그 누구도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당신 뭐야...?
-뭐가?
울프릭은 표정이 싸늘하게 굳은 채 그렉을 쳐다보았다. 분명 자신보다 약하고 힘도 없던 그렉인데 기절했다 일어나곤 순식간에 해골왕을 처치했으니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너 정체가 뭐냐고.
울프릭이 그렉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그렉은 갑자기 픽 쓰러져버렸다.
***
이차원이 그렉의 몸에서 빠져나오자 그렉은 그대로 다시 기절해버린 것이다,
“나야.”
그리고 다시 나타난 이차원이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병 걸린 환자 표정을 짓고 있는 울프릭한테 말했다.
“강한 척 그만하고 누워. 제대로 얻어터졌네.”
황당해하는 울프릭을 눕히고 마지막 치료 스크롤을 사용하자 울프릭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하였다.
-그럼 그때 날 구해주었던 게 요정, 너였냐?
이차원은 대답 없이 울프릭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집중했다. 울프릭은 그런 이차원을 빤히 보다 고갤 획 돌리더니 작게 말한다.
-...고맙다.
“뭐가 고마운데? 고마운 게 한두 개가 아닐 텐데.”
울프릭을 놀리듯 말하는 이차원이었다. 기력을 되찾은 울프릭은 이차원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선다.
“가만있어.”
몸을 움직이는 울프릭을 말리는데도 이차원의 말을 무시하고 곧장 왕좌로 걸어가더니 왕좌 바로 앞에 떨어진 심판의 검을 들어 올린다.
“이거 꽤 탐나는데.”
울프릭은 검을 들어 올리며 잘빠진 검을 살피며 감탄했다. 크기는 어느덧 해골왕이 들었을 때와는 달리 작아져 있었다. 확실히 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검이긴 했다. 그러나 자신이 갖고 싶다는 말과 다르게 울프릭은 검을 곧장 이차원에게 가져다준다.
-너 가져라. 이제 네가 왕이야.
검을 이차원에게 주자 키보드 앞으로 심판자의 검이 소환된다. 이차원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심판자의 검을 갖게 됐다. 검은 정말 이름 그대로 영롱하기 그지없었다.
‘이 검은…… 방송, 너튜브에서도 보기 힘든…….’
사실 소문으로만 들어봤었다.
이런 검이 실존한다고.
[나디저스 5세가 쓰던 심판의 검.
능력치 : ??? (개방되지 않음) ]
능력치는 개방되지 않았지만,
이 검을 현실로 들고 나갔을 때의 그 파괴력은 검의 외형만으로도 느껴졌다.
그냥 생긴 것부터 강한 헌터들의 무기들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이제 황제 폐하라고 불러야 하냐.
“아니. 난 이거면 됐어. 왕은 저놈 시키자고.”
-누구?
울프릭은 이차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자 쓰러져 있던 그렉이 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끝났어요?
분명 정신을 차렸는데 갑자기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후 어떤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주위를 보니 이미 싸움은 끝난 듯 보였으니 그렉이 놀라워했다.
“그래. 저놈이면 봐줄 만하다.”
울프릭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그렉의 용맹함을 인정하듯 동의하였다. 하지만 그렉이 더욱 놀랐던 건, 이어진 이차원의 말이었다.
“그렉. 당신이 새 왕이 되는 건 어때요.”
나도 그 왕국을 맘대로 주무를 수 있게.
뒷말은 삼킨 차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