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천장에서 내려오는 해골왕을 가리키며 이차원이 말을 했다.
천장에서 내려오다니, 자기가 무슨 고대 연극에 나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줄 아나.
이차원의 경고에 울프릭은 간신히 해골왕의 위치를 알아내고 깔릴 뻔한 상황을 면하였다.
“울프릭, 심장을 공략해!”
이차원이 심장이 약점이라는 것을 알려주자 울프릭은 해골왕의 심장을 노리고 공격을 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심장을 공격해 올 줄 알았던 듯이 가볍게 막아내었다.
울프릭 역시 빠른 몸놀림으로 해골왕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해골왕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이는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울프릭이 점차 싸움에서 밀리자 이차원은 제우스 Lv2로 돌풍과 파도를 소환하였다. 그러나 돌풍과 파도에도 해골왕은 잠깐 몸을 휘청일 뿐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러게 협공으로 가자니까.
“다리를 노려!”
자신의 의견을 듣지 않아 불만을 가진 울프린이었으나, 이차원의 판단을 믿기로 하였다. 한편 이차원은 다시 제우스 스킬로 돌풍과 파도를 불러일으켰다.
이번에도 역시 몸을 잠깐 휘청일 뿐인 해골왕이었다. 하지만 울프릭은 그땔 놓치지 않고 전기톱으로 해골왕의 다릴 노리며 들어갔다.
‘됐다, 이 정도면...’
둘은 공격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골왕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한 이차원과 울프릭을 농락이라도 하려는 듯이 해골왕은 너무 쉽게 울프릭의 공격을 피하고 오히려 전기톱을 육중한 다리로 깔아뭉개버린다. 그렇게 허무하게 전기톱은 부서지고 말았다.
부서진 전기톱을 버린 울프릭은 가방에서 마지막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 세계에서 마법의 지팡이라 불리는 그것, 전기 충격기다.
“기다려. 강화해줄게.”
이차원은 전기 충격기를 강화해줬고, 강화된 전기 충격기를 받은 울프릭은 해골왕의 뒷덜미를 노리며 움직였다.
전기 충격기를 들고 날쌔게 돌아다니는 울프릭을 떨쳐내려 한 해골왕이지만, 워낙 재빠른 몸놀림에 쉽게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덩치가 커다랄수록 움직임이 둔해지는 건 당연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거기에 여기저기 사방으로 움직이는 울프릭 때문에 정신이 없자 해골왕이 잠깐 휘청거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은 울프릭은 해골왕의 목 뒤로 전기 충격기를 갖다 대었다.
이번엔 다행히 공격이 통했는지 주춤거리며 왕좌 옆으로 물러서는 해골왕, 텅 빈 눈두덩이에 공허한 영혼의 불빛이 보이는데 왠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2페이즈 시작이라는 건가. 이어서 갑자기 뭐라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저 녀석, 이 마법 지팡이에 맞고 정신 나간 거 아니야?
“그렇다고 하기엔 분위기가 뭔가 이상해.”
공기의 흐름이 갑자기 뒤바뀐듯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나 불길한 기분이 빗나가는 일은 없었다.
주문 외우기를 끝낸 해골왕의 왕좌 앞으로 자그마한 포탈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이젠 별 희한한 것들도 많이 보네.
‘저 포탈은……. 좀비나 해골 병사가 나오려나.’
그러나 이차원의 예상과는 다르게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검 하나가 쑥 튀어나왔다. 그 검을 해골왕이 잡아챘다. 이차원은 단번에 그것이 해골왕이 소환한 검을 알아봤다.
‘저건... 심판의 검이다!’
[나디저스 5세가 쓰던 심판의 검.
능력치 : ??? (개방되지 않음) ]
각성하자마자 제일 먼저 떠올렸던 아이템도 바로 저 검이었다. 그리고 그 검을 자신의 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
심판의 검은 해골왕의 크기에 맞는 크기였다. 날 끝이 굉장히 날카로워 마치 한 번 휘두르게 되면 검이 지나간 자리는 물론 그곳에 있는 물과 공기마저도 가를 거 같이 생겼다.
‘저런 무기를 가진 상대를 제압하려면, 지금 우리의 상태로는...’
해골왕이 빛나는 심판자의 검을 휘두르자 천장이 무너지면서 무형의 십자가가 울프릭을 향해 연이어 내려꽂힌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하는 울프릭이었지만 십자가가 내려꽂힌 곳은 강한 충격을 받은 듯 움푹 파인 바닥에 성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역시 지금의 울프릭으론 무리였던 거야.’
지난번 해골왕과 어떻게 싸워서 이겼는지 싸움을 복기하는데 갑자기 울프릭의 몸이 이상해진다.
울프릭이 십자가를 피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다가 창가 쪽으로 몸이 이동했을 때였다. 창문 바깥은 어느덧 밤이 되어있었고 완벽한 원을 그리며 푸른 빛을 내고 있는 달이 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순수하리만치 깨끗하고 새하얀 보름달 빛. 그 빛을 받은 울프릭이 갑자기 몸이 부풀더니 털이 나기 시작하며 늑대인간으로 변신하였다.
‘이렇게 빠른 성장 속도라니.’
울프릭과 자신이 빨간 실 패시브로 연결되면서 울프릭의 늑대인간 스킬까지 자신에게 온 건가 생각하지만, 고민을 길게 할 시간은 없었다.
‘아직 안심하기엔 일러. 늑대인간의 변신 시간은 생각보다 짧아.’
보름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 안에 해골왕을 처리해야 했다.
“울프릭, 늑대인간의 변신 시간은 짧으니 서둘러!”
상대는 그 이름과 맞지 않게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이 갈비뼈 사이로 보이는 해골왕이다.
그러나 막상 그걸 노리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지.
실제로 이차원 역시 그 심장을 노리기 위해 보름달 스킬을 사용한 후 놈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심장을 뽑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만약 당시 유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해골왕의 발에 짓눌려 질식했을 것이다. 그러자 그 순간 이차원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유현의 도움이 없었다면...... 잠깐. 내가 유현이 돼서 해골왕의 빈틈을 만든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스스로가 유현의 역할을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럴 경우 딱 하나의 문제가 걸렸다. 지금 이 게임에서 이차원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스킬은 딱 제우스 하나뿐이라는 것.
‘지금의 제우스 스킬 레벨은 해골왕한테 통하지 않는데... 이를 어쩌지.’
전에 스킬을 사용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제우스 Lv2는 해골왕에겐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
하지만 아마추어라도 지혜를 짜내기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법, 마땅한 스킬이 없는지 스킬창을 보던 이차원은 얼마 전 새롭게 얻은 스킬을 떠올렸다.
분명 정보로 보자면 스킬 두 개를 하나로 합칠 수 있다고 했었지.
‘그럼 현실 스킬과 게임 스킬을 합칠 수 있는 거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해보기로 하였다. 지금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도 했다. 합칠 스킬은 바로...
현실에선 잘 쓰지 않았던 소용돌이와 제우스 이 두 개다.
[제우스 Lv2와 소용돌이 Lv1를 합성합니다. = {V/R}포세이돈 Lv1 : 당신은 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계의 기후를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V/R}포세이돈 LV1] - 물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 바람을 태풍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 ???
- ???
- ???
스킬 레벨업 효과 - 다룰 수 있는 범위와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V/R. 게임과 현실 둘 다에서 쓸 수 있는 스킬이다.
***
“울프릭, 잠깐 비켜줘라.”
-응? 무슨 좋은 수라도 생각 난 거야?
“당연하지, 내가 지시할 테니까 그때 바로 실행에 옮겨!”
이차원은 울프릭을 해골왕에게서 떼어 놓은 후, 새로운 스킬을 사용하였다. 주변의 바람을 이용하자 태풍이 생기고 해골왕을 덮친다. 해골왕은 똑같은 수에는 당하지 않는 듯이 폼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잠깐 몸을 휘청이던 아까와 다르게 해골왕이 하늘 위로 붕 떠올랐던 것이다.
“울프릭, 심장을 노려!”
이차원의 지시에 따라 울프릭은 틈을 타서 검을 빼 들고 해골왕의 심장이 있는 위치를 정확히 찔렀다. 그러나 검은 심장을 꿰뚫고 들어가는가 싶더니 반투명한 막에 걸려 들어가지 않았다.
반투명한 막에 자신의 검이 걸리자 울프릭은 심히 당황을 한 듯 보였다.
“크흑. 들어가!”
울프릭, 검을 더욱 세게 꽂지만 검은 울프릭의 생각과는 전혀 달리 들어가지 않았다.
-뭐지? 약점이... 강화됐어?
그는 게임 속 몬스터가 현실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물을 참고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똑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해골왕의 경우 약점은 같으나 더 강화된 놈이었단 것을.
상황이 더욱 귀찮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 역시 게임시나리오가 변형되어 가면서 일어난 일인 건가.
‘젠장! 이제 무슨 수를 써야 되는 거지? 만약 이곳에 최번개나 유현 같은 실력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게다가 저 녀석은 예기치 못한 공격에 폭주한 듯 빛의 심판자 공격을 마구잡이로 퍼부어대고 있었다. 울프릭은 해골왕의 심장에 꽂힌 검을 끝까지 놓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울프릭, 피하라고! 피해!”
울프릭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골왕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갔다. 해골왕의 십자가가 울프릭을 가격하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빛이 울프릭을 집어삼키려 하였다. 마지막 힘까지 짜내어 검을 밀어 넣으려는 울프릭에게 이차원이 재빨리 다가서려 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거대한 소리가 울려오고 그 뒤로 그렉이 나타나 울프릭을 구해주었다. 하지만 해골왕의 공격은 그대로 그렉의 어깨를 강타하고 말았다.
-그렉 씨!”
그렉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울프릭이 곧장 그렉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숨은 붙어 있었다.
-살아있어.
“너 내가 피하라고 했지, 새끼야!”
자칫하면 모두가 위험해질 뻔한 상황에 이차원은 순간적으로 울프릭에게 화를 내는데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바닥에 일렁이는 성화. 십자가가 떨어진 자리에 남아있던 성화가 바닥에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차원은 이를 보고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빛의 심판자 검. 검은 성속성 무기다. 그리고 해골왕은 암속성 몬스터.
‘암속성 몬스터가 성속성 무기를 쓴다라...’
이것은 이차원이 보기에 이것은 해골왕을 처치할 수 있는 힌트처럼 느껴졌다. 이차원은 조금 전에 바닥에 일렁이는 성화를 다시 한 번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해골왕, 뒤질 준비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