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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27화 (27/202)

27화

울프릭의 도끼로 움직이기 시작한 오크들은 일사불란하게 해독제를 흩뿌렸고, 바람을 타고 날아간 해독제를 마신 트롤들은 정신을 못 차리며 하나씩 나가떨어졌다. 거기에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모여있던 트롤들도 해독제를 흡입하자 몽둥이질을 멈추고 온순해지기 시작했다.

이차원 일행들은 트롤들의 행동을 보고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다.

-대화가 가능할까요?

-힘들긴 하겠지만 불가능하진 않죠.

역시 언어술사다. 그는 오크뿐만 아니라 트롤과도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세뇌의 저주로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뿐이리라.

렌더가 트롤에게 다가가 트롤 언어를 구사하자 트롤도 렌더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렌더와 트롤의 대화는 한참 이어졌다.

-어이, 뭐라는 거야?

울프릭은 이 상황이 답답하다는 듯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기다려봐. 뭐든 나오겠지.

이차원은 울프릭을 막았다. 성격 급한 것이 마치 붉은 천을 보고 금방이라도 달려드는 황소와도 같았다. 성격 하난 화끈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꽤 시간이 흐른 거 같아 내심 불안해졌다. 왠지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거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렌더가 돌아보며 말을 전해준다.

-새벽. 여자. 로브를 입은 남자들. 흑마법.

울프릭은 렌더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순 없었지만, 표정이 굳어졌다. 울프릭은 렌더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이봐, 정말 그렇게 말했어?

울프릭은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단 표정을 지었다.

-그게 끝이야? 다른 말은 없어?

불안한 울프릭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렌더를 다그치지만 렌더도 머리가 부서질 것 같았다. 아무리 언어학자라지만 몬스터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기다리세요. 저도 나름 노력 중이에요.

울프릭과 렌더가 투닥거리는 사이 이차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울프릭이 왜 이렇게 초조해하는지 아는 이차원이었기에 섣불리 끼어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여자와 로브를 입은 남자들이 자기들이 사는 영역에 들어왔고 족장이 경고를 하자 흑마법으로 족장을 마비시켜 죽였다는군요. 그 후 나머지 트롤들은 정신을 잃었다 하였고요.

“세뇌를 당해버린 건가.”

-네. 성 외곽을 부수는 것이 마지막 기억이라는군요.

이차원은 걱정스런 얼굴로 울프릭을 바라보았다. 표정이 흙빛으로 변해 좋지 않은 울프릭이었다. 그런 표정을 짓는 울프릭을 보며 이차원은 눈치를 챘다.

이제 울프릭은 확신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을. 어쩌면 여동생 리지가 자신이 알고 있는 리지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잔혹한 생각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리지도 트롤처럼 세뇌를 당한 걸 수도 있지 않나.

울프릭은 조금 절박한 표정으로 이차원에게 묻는다. 울프릭의 손이 주먹을 쥔 채 미세한 떨림이 울리는 걸 보았다.

“그래.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지.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이차원 말에 울프릭의 표정이 조금 더 절망적으로 변한다. 그의 꼭 쥐어진 손에서 마치 희망의 꽃잎들이 잿더미로 변하여 그의 손가락 틈새 사이로 흘러나오는 듯한 풍경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낙담만 할 상황은 아니었다. 리지가 정말 세뇌를 당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확정 지을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당장 우리가 알 수 없는 거야. 울프릭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리지를 믿는 거야. 네가 리지를 믿지 않는다고 이미 벌어진 일들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지금 당장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울프릭은 이차원을 바라보았다. 이차원은 어두운 표정이 아닌 걱정하지 말라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딘가 안정되고 포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차원의 말에 울프릭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였다. 그 혼자 짊어지고 있던 고민이 조금이나마 해결된 거 같다라는 느낌이 들어서 이차원은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울프릭의 호감도가 200 오르면서 보름달 관련한 스킬 하나가 해금되었다는 문구가 이차원의 눈앞에 나타났다.

[{R}분신술 lv1]

보름달 옆에 보니 분신술이 따라붙어 있었다.

‘늑대인간으로 변신 후에 쓸 수 있는 스킬같은 건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에게 있어 강력한 무기가 생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차원이 새로운 스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그렉을 구한 드레이크가 달려왔다.

-이제 다 끝난 거겠죠? 우리 마을 안전한 거죠?

드레이크가 그렉을 업으며 이제 끝인 건가 싶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차원은 덤덤하고 강인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끝나긴. 지금부터가 시작이지.”

-네? 아직도 무언가 해야 할 일이 남은 건가요?

“당연하지,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야.”

이차원 말에 울프릭이 피식 웃었다.

-진짜 왕을 끌어내리겠단 거냐?

이차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

이차원의 표현에 드레이크와 그렉 모두 벙찐 얼굴로 그들을 쳐다봤다. 이차원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려서 혼동을 하고 있었다.

-어이, 지금 장난치는 거지? 설마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

-안내해. 진심이니까.

그리고 울프릭도 이차원의 옆에 서며 합세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드레이크와 그렉은 서로 눈치를 보지만 그들이 트롤의 세뇌도 푼 만큼 이 마을을 핍박하는 독재자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에 믿어보기로 한다.

-계획은 있는 거겠지?

울프릭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이차원을 보며 물었다.

“없어.”

그의 물음에 당당하게 즉답을 하는 이차원이었다. 울프릭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책 없는 이차원을 흘겨보았으나, 정작 이차원 자신은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거 같았다.

***

성에 도착하니 이곳 주변으로부터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성이 더욱 높아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위화감과 웅장함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원래 게임시나리오대로라면 일렉시아 성에서 꽃 상인을 만나 잡일을 도와준 뒤 동생의 행방을 찾아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사실상 일렉시아 성은 다음 지역으로 넘어갈 발판 정도였지 비중이 큰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때 유저들 사이에서 일렉시아 성과 관련해 화두가 되었던 것이 있었다.

‘일렉시아의 성의 서브 퀘스트.’

서브퀘스트 중 왕에게 도전하기란 게 있는데 왕이 내려주는 퀘스트를 전부 다 깨고 난 뒤에 왕을 조롱한다라는 선택지를 선택하면 왕이 플레이어블인 울프릭과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하고 유저가 여기서 승리할 시 세계관의 영물 중 하나인 ‘심판의 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보 글을 올린 유저의 말에 따르면 ‘심판의 검’은 후반부까지 나름 유용하게 쓰이는 검인데 이유인즉슨 후딜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딜이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이차원이 이 공략 글을 떠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실에서 독재자를 암살할 순 없어도 지금 게임 속 독재자는 충분히 처단이 가능하다. 이차원은 문득 게임 속에 이제 아무렇지 않게 스며들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다.

‘내가 언제부터 이 게임 속에서 일상생활하듯 편하게 다니게 된 건지 모르겠네. 이젠 이곳이 현실 같은 게임인지 게임 같은 현실인지 구분도 안 갈 정도야.’

이제 이차원 본인도 게임 속이 다른 세계로 느껴진다. 현실인지 게임인지 분간이 안 간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울프릭이었다.

무려 게임을 한 14년 동안 보아왔던 캐릭터여서 울프릭에 관한 건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현실로 만나게 되니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고, 이젠 이차원도 울프릭의 동생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거기엔 울프릭의 고집이 센 부분도 있긴 하지만 자신과도 은근히 잘 통한다는 것도 한몫하였다. 그렇게 성문에 도착한 울프릭은 성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지만 아무도 나오질 않고 열어줄 기미도 보이지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울프릭의 말대로였다. 문을 아무리 두드려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오직 고요함뿐이었다.

“순순히 나오진 않을 거야. 우리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고.“

이차원은 울프릭을 보며 말을 건넸다. 울프릭은 이차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듯 고민에 빠졌다. 이 말대로 정보를 들었다면 이차원 일행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이 순순히 문을 열어줄 리는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럼 이 안을 어떻게 해서 들어가지?

“각자 주변을 한번 둘러보는 게 어때?”

-좋아, 모두 구역을 나누어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나 흠을 찾아보지.

울프릭은 각자 맡아서 조사할 부분을 정해주었다. 울프릭의 행동력을 이차원은 알고 있었지만, 게임 할 때 느꼈던 것보다 더욱 의지가 되는 부분이었다.

모두가 흩어져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모래와 띄엄띄엄 놓여있는 나무 몇 송이뿐이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하나 생각했지만, 거리와 높이를 보고 바로 무리라는 걸 알았다. 그때,

-여기 공성 사다리가 있습니다!

그렉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전원이 그렉의 구역으로 모여 확인해보니 충분히 길고 튼튼한 사다리였다.

-잘 찾았어, 그럼 모두 사다리를 통하여 넘어가자.

***

이차원 일행은 공성 사다리를 타고 3층 창문으로 넘어갔다. 창문을 열자마자 시체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코에 들어오자마자 냄새가 흘러가는 방향대로 몸 곳곳을 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차원과 울프릭 모두 코를 막으며 바닥에 착지하는데 신발 밑으로 첨벙 소리가 들렸다. 얼마 안 가, 뒤따라오던 그렉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복도로 이어지는 문 밑으로 마르지 않은 피 웅덩이가 고여 있었고 문 앞엔 시녀의 잘린 머리가 있다. 굉장히 깔끔하고 완벽하게 잘려있는 시체였다.

이차원과 울프릭 일행들은 범상치 않은 것을 깨닫고 재빨리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트롤한테 당한 걸까요?

-아니요. 그러기엔 시신이 너무 깨끗합니다.

-그럼 대체 누가 이런 잔인한 짓을...

분명히 있는 병력을 다 데리고 성안으로 들어가 숨었다는데 시녀가 죽어있다니. 그것도 목이 잘린 채로. 트롤에게 당한 거라면 시신이 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어야 했다. 울프릭도 그에 동의한다며 고갤 끄덕이고 방 내부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방 내부는 트롤에게 공격받은 것 치고 깨끗했고 어디 하나 부서진 곳도 없다.

“암살이야.”

-대체 누…….

그렉이 말을 하려는 순간 울프릭이 그의 입을 막았다.

-쉿.

울프릭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누군가 복도를 지나쳐 간 것이다.

이차원은 울프릭과 눈짓을 주고받은 후 복도로 나가 살폈다. 둘은 방문을 끼고 복도를 살며시 보았다.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바로 복도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는 검은 그림자였다.

울프릭은 조심히 손을 휘저어 그렉을 불렀다. 조용히 움직이며 한 발 한 발 검은 그림자를 향해 움직였다.

검은 그림자의 뒤를 조심히 쫓아 어느덧 뚜렷한 형체를 볼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흡!

그렉은 순간 놀라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그렉의 입을 막은 울프릭과 이차원은 검은 그림자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보았다. 그들도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였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정체는... 사람의 머리를 저글링처럼 굴리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였다.

‘저주술사다...’

역시 트롤의 짓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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