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22화 (22/202)

22화

“누나, 흑왕 길드는 어때요?”

흑왕 길드는 한창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는 길드로, 요즘 CF에도 나오는 유명 헌터 층을 보유해 다른 헌터들 사이에서도 우량 길드라는 인상이 강했다.

“어? 뭐라고?”

허나 은지는 최번개의 말엔 통 집중하지 못한 채 카페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미 내부는 최번개와 은지를 알아보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두 사람을 보곤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들어댔다.

게다가 그중엔 ‘은지짱’이라 적혀있는 팻말을 든 남자가 카페 밖에서 은지를 향해 소릴 지르는데 은지 부끄럽다는 듯 휙, 고갤 돌려버린다.

“요즘 인기 있는 헌터들은 이 정도는 기본인데.”

CF는 물론이고 드라마나 각종 대중매체에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들이 가진 영향력을 생각하면 연예인 이상이었다.

“아니, 난 익숙하지가 않아서.”

이미 너튜브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최번개는 여유롭게 가끔 제스처를 취했고, 그와 달리 사람들 관심이 익숙하지 않은 은지는 요근래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기쁜 것도 한편,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방금 제가 한 말은 어때요?”

“응?”

“흑왕 길드요. 여기서 보내준 제안들도 우리한테 좋을 것 같은데.”

그에 제안서를 보였다.

원래 헌터는 길드에서 지정하는 멤버들로 팀을 꾸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번개와 은지는 두 사람의 시너지를 생각해 특별히 팀으로 짜는 걸 허락하는 걸 기본으로 여러 가지 제안들이 적혀있었다.

“장비들도 최고급 지원이고, 소모품들도 보급해 준대요.”

“흑왕 길드. 다 좋긴 한데….”

은지의 말끝이 흐려졌다.

흑왕 길드의 메인 헌터들이 죄다 구독자 300, 400만씩 하는 헌터 스트리머들이라 확실히 배울 점이 많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같이 인지도도 올라갈 터.

하지만 맨 마지막, 보기도 힘들 정도로 빽빽한 글자들 사이에 있는 계약금 분배율이 문제였다.

“이 분배 너무한 거 아니니? 우리가 A나 S급 수준은 아니라지만.”

“하긴. 2:8은 너무 갔다. 그럼 무쌍 길드는 어때?”

무쌍 길드에서 제안한 것들이 흑왕과 비교하면 조금 떨어지지만, 한국에서 가장 왕성한 게이트 공략을 이끄는 곳이다.

모두 게이트 공략 자체를 최우선으로 삼은 길드답게 많은 실전으로 무장한 헌터들이 많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 같은 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은지의 표정은 흑왕 이야기가 나왔을 때보다 더욱 안 좋다.

“왜? 별로야?”

“응. 거긴 좀.”

은지는 무쌍 길드와 관련된 흑역사가 있었다.

과거 무쌍 길드에 속한 헌터들과 토벌을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헌터들에게 서폿을 왜 그런 식으로 하냐고 하루 종일 욕을 들어서 운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니, 서포터 헌터가 힐을 못 하면 어쩌자는 거야?

-탱커가 라인 관리를 못 하잖아요. 장난하는 겁니까?

-아, 진짜. 실드를 왜 그딴 타이밍에 거는 거야? 기본도 안된 어중이떠중이를 데려왔어.

그때 들었던 말들 중 일부분이 기억나니 은지의 표정은 더 안 좋아졌다.

실제로 당시 상황을 보면 은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는데도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까 내리기 바빴던 무쌍 길드 헌터들.

“거기가 게이트 공략 중심인 길드라서 정해진 빌드들을 좋아하는 헌터들이 많거든.”

“아아, 그럼 누나랑 안 맞겠네.”

최번개도 이해하곤 다른 제안들을 찾아봤지만, 모두의 마음에 드는 제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다 까고 나면 남는 곳도 없겠는데.”

나름 까다로운 은지의 결정에 고민하는 최번개.

그때 메일 하나가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왔는데, 또 다른 제안서였다.

“역전 길드? 이게 어디야?”

최번개는 듣도 보도 못한 길드의 제안에 고개를 흔들어댔으나, 은지의 표정이 바뀌더니 흥미를 보였다.

“거기 아직도 있어? 해산했다고 들었는데.”

“누나가 아는 곳이야?”

“원래 잘나가던 길드였는데 여왕벌 사건 터지고 망한 곳이야.”

은지 말에 최번개가 알만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헌터계도 나름 남초다 보니 여왕벌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아무튼 요즘 여왕벌들이 문제라니까.”

“여왕벌만 문제게? 여왕벌이나 거기 놀아나는 헌터들이나 다 똑같지 뭐.”

“뭐, 여긴 망한 길드니까 넘기자.”

“잠깐, 조건이 뭔데?”

최번개는 손가락을 조금 움직이다 입을 벌렸다.

“7대 3?”

다른 곳은 계약금 3:7 비율인데 여긴 무려 회사가 3이고 헌터가 7.

물론 기울어져 가는 길드라 다급하니 이런 배당을 내민 건 머리론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조건이 너무 좋은 것이다.

“일단 만나보기라도 할까.”

은지의 말에 최번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나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역전 길드에 대해 들은 차원은 최번개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하는데, 모니터로 보이는 울프릭의 표정이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까부터 자주 고개를 드는 걸 봤는데,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느낌도 드니 차원은 절로 걱정이 들었다.

“보름달이 뜰 모양이구만.”

그에 렌더도 같이 하늘을 보곤 휘영청 떠오른 만월을 보며 중얼거렸고, 그에 울프릭이 흠칫 놀라며 렌더를 쳐다봤다.

그 날카로운 시선에도 능청스레 시선을 회피한 렌더.

렌더와 울프릭을 보던 차원은 자신이 모르는 어떤 것이 있다는 걸 직감하지만, 당장은 시간이 없었다.

보름달에 대한 게임시나리오가 있었나.

게임 밖에서 실제 플레이를 하는 것과 인물들의 속마음을 들으며 진행하니 아직도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혹시나, 있다면 차원이 수차례 게임을 했음에도 알지 못한 히든 중의 히든 시나리오이리라.

“보름달 얘긴 다녀와서 들을게. 간다.”

“얘기할 게 뭐 있다고. 야!”

차원은 그 말을 끝으로 곧장 최번개를 만나러 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최번개와 은지가 테라스에서 손을 흔들어댔다.

“형, 이쪽이야.”

그리고 최번개의 외침에 그들 주위로 몰려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차원에게 향했다.

“어? 노바맨이다.”

E급 거미 게이트에서부터 시작된 차원의 행보는 최번개의 방송을 타며 점점 유명세를 탔다.

아무런 기록도 없던 신규 헌터의 움직임이라곤 볼 수 없는 전투 센스와 다수를 상대로도 모자람 없는 딜링 능력까지.

차원 본인은 모르지만, 그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헌터 팀이나 길드들은 벌써 물밑 작업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리곤 손님들이 이제 차원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차원은 갑작스런 인기에 조금 당황스러워하는데 최번개가 직접 달려와 차원의 손을 붙잡고 인파를 헤집고 나갔다.

“은지 누나나 형이나 숙맥이라니까.”

“됐고, 메일이나 보여줘 봐.”

그 말에 최번개는 길드 제안 메일들을 쭉 보여주고 마지막 역전 길드에 대해 설명했다.

“배당은 7대 3이에요.”

“우리가 3인가?”

“아뇨. 7이요.”

“헌터 측에 7을 준다고? 제대로 된 길드 맞아?”

“물론 배당이 좋은 대신 다른 길드에서처럼 지원이 빵빵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보험 같은 것들 보면 다른 길드랑 별반 다를 바 없는데, 정도면 괜찮은 조건이죠?”

“한번 만나도 좋을 것 같아요.”

최번개와 은지 모두 내심 만나보고 싶어 하는 눈치다.

이차원은 아무렴 상관없었다. 사실 길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지니까.

일주일 전만 해도 헌터로 각성할 줄 몰랐던 그였으니까 당연했다.

“그럼 이쪽이랑 약속 잡자.”

“사실 이미 잡았어요.”

“뭐?”

이야기는 빨라지니 차원이야 좋긴 하지만, 자기들끼리 이미 약속까지 잡아놓고 자신을 부른 것에 황당해하는데 갑자기 후줄근한 옷차림의 남자가 그들 테이블로 걸어온다.

“설마….”

“안녕하십니까. 역전 길드 길드장인 김역전이라고 합니다.”

이차원을 비롯한 최번개와 은지의 표정도 황당하게 굳었다.

김역전, 그는 길드장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1g의 포스도 없는 사람이었다.

게이트와 헌터가 등장한 초기에야 헌터들의 모임인 길드의 장은 강한 헌터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길드는 기업 같은 색이 강해지고 강함보단 사업적 색이 짙은 사람이 맡는 게 일반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두머리가 가지는 카리스마라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니.

그제야 최번개와 은지도 자신들이 뭔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닌가 싶었다.

***

“재계약할 때 계약금 비율 인상이 있나요?”

“메인 헌터 리스트도 보고 싶어요.”

“길드에서 커버 가능한 게이트 평균 등급은 어떻죠?”

“아니, 그전에 게이트 토벌 의뢰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긴 합니까?”

길드라는 건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하마 같은 녀석이었고, 그 거대한 기업체를 돌리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게이트로 뛰어드는 헌터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완벽한 케어가 필요했었고, 길드가 바로 그 방파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덕분에 헌터는 게이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대부분을 길드에 바쳐도 별말 하지 않는 것이고.

헌데 배당금을 적게 받는다니 걱정이 절로 든 차원 일행은 속사포로 질문들을 내뱉어댔다.

“저기, 한 사람씩 천천히 질문 해주시면 좋겠는데.”

김역전은 진땀을 빼며 차원 일행의 질문 세례를 천천히 정리해 나갔다.

예전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헌터들이 네, 네, 네. 밖에 안 했는데 이차원 일행은 질문이 꽤 많았다.

그게 바로 작금 현실임을 다시 상기한 김역전은 천천히 항목들을 따져가며 차원 일행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써댔다.

“우선 처음에 최번개 헌터가 질문하신 사항에 대해선….”

김역전이 하나하나 응답을 하려던 찰나, 차원에게 전화가 왔다.

연락처에 저장은 안 됐지만, 이미 익숙해져 버린 번호.

바로 김인성의 전화번호다.

‘이 새낀 왜 자꾸 전화질이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만남을 시작으로 현재 차원이 가진 김인성에 대한 호감도는 바닥을 뚫고 마이너스가 된 상황.

그에 쿨하게 전화를 씹는데, 끈질기게도 전화는 계속 왔다.

“형, 누구야?”

“됐어. 쓸데없는 전화야.”

계속해서 오는 전화와 끊는 공방이 이어지던 찰나, 카페 앞으로 낯익은 세단이 타이어 마크를 새기며 등장했다.

역시나 그 세단에서 내리는 사람은 김인성이었다.

“야이씨!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차원은 물론 다른 일행들도 대뜸 없는 김인성의 등장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다.

“누가 들으면 평소에 전화 주고받는 사이인 줄 알겠네.”

“이제부터 그런 사이 되면 되는 거 아냐. 내 번호 즐겨찾기로 지정해 둬.”

내가 왜? 라는 표정을 하자 김인성이 물었다.

“싫어?”

“당연하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예상이나 했다는 듯 이차원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이 인간 또 왜 이래?’

차원은 김인성 이상한 행동에 또 뭔 짓을 하려는 건지 의아해하는데 수상해하는 건 최번개도 마찬가지.

그는 작게 속삭였다.

“형, 제가 처리할까요?”

은지도 미리 준비하는데, 갑자기 그들 앞으로 다가온 김인성이 고갤 숙였다.

“그동안은 미안했다. 도와줘라. 부탁한다.”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가 여태 그랬던 건가.

저 자존심 덩어리 김인성이 먼저 숙이고 들어오자 차원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당황해하는데, 그래도 저 성격에 직접 찾아와 이렇게 할 정도면 뭔가 큰 문제가 생기긴 한 듯했다.

“뭐야, 갑자기?”

“네가 하는 모든 말 다 들어줄게.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도와줘.”

“내가 하는 모든 말 다 들어준다는 거지?”

김인성이 고개를 숙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차원은 그런 그의 앞에 다가가 한마디를 건네었다.

“그럼 내 앞에서 당장 꺼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