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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15화 (15/202)

15화

지도자 놈은 자신의 주먹보다 작은 은지의 머리를 강하게 움켜쥐더니, 그대로 들어 올려 바닥에 휘둘렀다.

그녀의 여린 몸과 땅거죽이 만나는 순간 파편과 흙먼지가 위로 솟구쳐 오르며 불끈거리는 팔 근육이 장식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커헉!”

흙먼지 사이에서 은지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실드를 둘러 목숨에 지장은 없었지만, 모든 충격은 흡수하지 못해 약간 흘러들어온 충격은 그녀의 폐를 잔뜩 긴장시켜 호흡을 막았다.

“누나!”

속박에서 풀려난 최번개가 내달리며 짜릿한 전류를 온몸에 둘렀다.

이내 자신의 손아귀에 둥그스름한 형태로 모았다.

이번에 새로 배운 [전류 폭탄]을 오크 지도자에게 던지자 전기의 구슬은 본래의 형체인 강렬한 전류도 돌아갔다.

사방으로 퍼지는 스파크에 땅바닥에 그을음이 생기며 밝은 섬광이 여기저기 피어올랐는데, 오크 지도자는 슬쩍 최번개를 내려다보곤 큼직한 어금니와 잇몸이 전부 보이게 웃어 보였다.

“크와아악!!”

그리곤 기둥 같은 팔뚝을 휘두르는데, 소리에서부터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

그냥 당하면 최번개의 목뼈가 무사하지 못할 걸 예감한 차원은 순간 자신과 위치를 바꾸려 했는데, 그의 몸 위로 반투명한 기운의 막이 하나 씌워지는 게 보였다.

그에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빠져나온 은지의 팔이 보였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녀가 실드를 씌워준 것이다.

이윽고 오크 지도자의 주먹과 실드가 맞부딪히자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리곤 최번개가 저 옆으로 날아갔다.

사람이 저렇게 날아가는 건 난생처음 보는 차원은 자기도 모르게 멀어져가는 최번개를 보다 정신을 차렸다.

“크르륵.”

차례차례 다른 헌터들을 처치하고. 이제 자신을 향해오는 오크 지도자와 마주했다.

손바닥을 마주치고 떼자 그 사이로 샛노란 전류가 튀겨대며 기다란 창 한 자루가 나타났다.

움직이기 편하게 호흡은 반만 들이켜고, 미끄러지듯 오른발을 내디디며 라이트닝 스피어를 내질렀다.

날카로운 전기의 창날이 지도자의 살가죽을 가르려는 순간, 그의 도끼가 두어 번 허공을 가르며 번쩍이더니 차원의 라이트닝 스피어를 찢어발겨댔다.

‘역시 보스. 일반 오크랑 가진 완력 자체가 달라.’

이번엔 소용돌이를 사용해 난자하는 칼바람을 불러일으켰으나,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이 통하지 않는 걸 확인한 차원은 명백한 실수라는 걸 눈치챘다.

저 오크 지도자 하나만으로 D등급 이상의 게이트의 위험도를 지녔으니, 이미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은지는 날아간 최번개를 차원 근처로 끌고 와 치유에 전념했지만, 이미 지도자의 부름에 응한 오크 무리들이 개떼같이 달려들며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쿨럭!”

붉은 피가 조금 섞인 기침을 해댄 최번개가 일어나며 주변을 살폈다.

“형. 주변 뚫고 지나갈 수 있겠어요?”

“저 보스만 없으면 가능한데.”

처음과 다르게 오크 지도자는 허공에 도끼를 휘두르며 위협적인 기세를 뿜어대고 있었다.

이대로 셋이 살아서 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다른 헌터들이 자신을 구하러 오는 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우리 조금만 버텨보죠. 구조대가 올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최번개가 손가락 사이로 번개를 튀겨대며 전투를 준비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이번 게이트가 발생하는 것도 예상 못 한 건이야. 우리가 당하기 전에 다른 헌터가 오는 건 그다지 희망적인 이야긴 아니지.’

차원 일행 사이에 맴도는 절망감을 느꼈는지 오크 지도자는 비웃기라도 하듯, 기분 나쁜 웃음소릴 내며 도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물론 차원에겐 지도자 놈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칠 능력은 없었지만, 절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대로 그가 자릴 뜨면 저 도끼는 최번개나 은지에게 향할 것이 분명할 테니 말이다.

다시 라이트닝 스피어를 뽑아낸 차원은 지도자의 도끼가 아니라 그걸 쥐고 있는 손에 시선을 걸어뒀다.

‘막아내는 건 절대로 무리겠지.’

맹렬하게 공기를 가르며 장작 쪼개는 기세로 내리 찍히는 도끼에 차원도 라이트닝 스피어를 내질렀고, 오크 지도자의 손을 쳐내 공격 자체의 궤적을 흘려냈다.

묵직한 도끼가 차원의 몸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땅바닥에 찍히자 도끼날의 면적 그대로 선명한 자국을 남겼고, 그 충격의 여파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었다.

순간의 공격으로 공격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마치 달인과 같은 움직임을 보여준 차원이었지만, 스스로도 방금 건 요행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크 지도자는 다시 도끼를 번쩍 들어 차원의 목을 내려치려는데, 그 순간 실드가 생성됐다.

“미안해요. 저도 지금 한계치라….”

은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끼질에 잘게잘게 부서지는 실드.

“혀엉!”

최번개는 도끼 앞에 쓰러진 차원을 향해 소리쳤고, 전류 폭탄을 만들어 던지려는데, 그의 발바닥에서부터 무언가 간질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최번개는 물론이고 오크들과 지도자, 쓰러진 차원도 그걸 느꼈고, 얼마 안 가 진동은 점점 커져가더니 땅거죽 전체에 금이 일었다.

동시에 중심을 잃은 오크들이 풍선 인형처럼 힘없이 휘청거리는데, 저 멀리서 차원의 눈에 익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예리나 씨?”

“빨리 이리로!”

차원과 최번개는 멍하게 있기도 잠시, 마지막 실드를 쥐어짜고 쓰러진 은지를 들쳐 메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

한 시간 전, 전에 D급 게이트 공략에 참여했던 예리나와 그녀의 팀원들은 사당역 근처 카페에 모여있었다.

“해체하죠.”

“그게 맞을 것 갖네요. 간신히 F급 게이트를 닫아도 계약금 나누면 남는 것도 없고.”

“상성이 안 맞는 건지, 조합이 구린 건지.”

그녀의 팀은 얼마 전, 차원의 팀에게 겪었던 수모를 비롯하여 그동안의 임무 성과를 돌이켜봤을 때 팀을 해체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대로 포기하긴 이르지 않을까요? 조금만 더 노력 해봐요.”

“노력? 이 바닥이 노력으로만 되는 바닥은 아니지. 게다가 당신이 우리 계약금을 그 허접이들한테 주지만 않았어도 이 꼴은 안 났어. 알아?”

결국 쌓아두던 불만은 지난 일을 계기로 터졌고, 그를 시작으로 모두 예리나를 노려보며 자릴 박차고 일어났다.

당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을 했다 믿었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른 법.

망연자실한 얼굴의 예리나는 카페로 나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지금 그 사람은 뭐 하고 있을까?’

커다란 오우거와 대량의 임프 무리, 강대한 보스 몬스터를 앞두고도 아무런 거리낌 없던 이차원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고, 결국 예리나는 그의 행보를 알기 위해 최번개의 방송을 틀었다.

[라이브 중, 실제 상황.]

‘아무튼, 조회수 모으려고 어그로 하고는.’

그 방 제목에 그냥 지나치려 하는데, 어그로 치곤 너무 강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고민하던 예리나는 결국 방송을 키는데, 화면엔 이차원과 최번개가 꽁꽁 묶여 오크들에게 끌려가는 게 아닌가?

조금 지나자 의식을 잃은 두 사람을 냄비에 넣는 장면까지 보자 예리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요리될 위기잖아?’

그에 자신이 받았던 도움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있었기 댓글로 게이트 위치를 알아내고 곧장 현장으로 달려온 거였다.

“그렇게 된 거죠.”

“진짜 죽다 살았어요. 고마워요.”

오크 지도자에게 얻어맞고 아직 골 안쪽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감사 인사를 전하는 최번개.

그에 예리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머리에 붕대를 감아줬다.

헌터들이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붕대로, 단순한 붕대가 아니라 힐 스킬의 효능이 묻어난 헌터 전용 물건이라 그저 감기만 해도 가벼운 치유 효과를 주는 물건이었다.

차원도 예리나 가져온 구급키트로 상처를 치료했다.

물론 최번개 말대로 한시름 놓긴 했지만, 완전히 살았다곤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급하게 도망치긴 했지만, 이곳은 엄폐물 하나 없는 넓은 평야라 얼마 가지 못해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거기에 게이트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오크 군락지를 지나야 했지만 이미 침입자가 들어온 걸 아는 오크들의 경계는 더욱 심해졌고 순찰이 강화됐기 때문에 도저히 빠져나갈 틈이 안 보였다.

“결국 방법은 하나네요. 보스 몹 잡고 게이트를 닫는 거.”

“그런데 무슨 수로요? 저희가 가진 거 다 사용했는데 하나도 안 먹혔는데.”

방금 전투로 얻은 절망감은 아직 최번개의 가슴속 깊게 뿌리 내렸다.

자신은 물론이고 일행 중 가장 높은 공격 능력을 가진 차원의 스킬들도 통하는 게 없었다.

“게다가 지금 제 실드로 다른 분들을 제대로 커버할 수도 없어요.”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손 놓고 있을 거예요?”

예리나의 말에 최번개도, 은지도 한풀 꺾인 사기를 다시 끌어올릴 수 없었다.

그만큼 오크 지도자에게서 느낀 격차가 커다란 것이다.

하지만 차원만은 유일하게 다시 몸을 일으켰다.

오크 놈들에게 두들겨 맞아 온몸이 쑤셨지만, 이대로 놈들 저녁밥이 되는 건 절대로 사양이었다.

‘앞은 오크 놈들이 몰려올 평야. 그리고 뒤쪽은.’

깎아져 내리듯 반듯한 절벽이었다.

게다가 높이 또한 얼마나 높은지, 떨어지면 목숨은 절대로 장담 못 할 정도였다.

“절벽이라….”

이내 그의 두뇌가 재빨리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는 상태창을 열고 끊임없이 생각에 빠졌다.

분명 가능한 방법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도박수였다.

만약 그의 계산이 조금이라도 엇나간다면 절대로 살 수 없는 계획.

그러나 어떤 공격 스킬도 통하지 않는 지금에선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방법 찾았어.”

그 말에 팀원들 모두 그를 올려다봤다.

“잘 들어. 미친 작전이 될 거니까.”

***

차원의 계획에 따라 가장 눈에 띄는 최번개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며 수십 오크들을 끌고 왔다.

이내 최번개는 대기하던 예리나를 스쳐 지나갔고, 그녀는 적당한 순간에 지진을 일으켜 최번개에게 쏠린 오크들을 분산시켰다.

“찾았어요!”

그리고 그사이 오크 지도자를 찾은 은지가 이 사실을 이차원에게 알리는데, 차원은 라이트닝 스피어를 시전하고 절벽을 향해 달렸다.

‘애초에 다른 선택지는 없어!’

실패하면 죽고, 시도하지 않아도 죽는다면 시도는 해보고 죽는 게 낫지 않겠는가?

오크 지도자가 신경질적인 발걸음으로 저만치 보이는 차원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은지가 놈의 눈앞에 천상의 빛을 만들어내 던졌다.

그러나 역시나 등급이 높은 오크 지도자를 상대로 스킬은 먹히지 않고, 이는 이차원의 라이트닝 스피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를 본 최번개와 예리나도 동요했다.

오크 수가 너무 많아서 보스를 빨리 처치하지 못하면 여기서 다 같이 죽을 판국이다.

“은지 씨! 여긴 놔두고 최번개랑 예리나 쪽으로 가주세요!”

차원은 그 말과 함께 오크 지도자를 끌고 절벽으로 내달렸다.

건방지게 자신을 바라보며 비웃는 표정을 지은 이차원에게 단단히 열이 받은 오크 지도자는 빛나는 도끼를 돌리며 화가 잔뜩 난 상태.

마침내 절벽 끝에 다다른 차원은 자기가 가진 모든 스킬들을 퍼부어댔지만, 오크 지도자는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의 도끼를 크게 들어 올리며 휘두르자 방금 전까지 차원이 서 있던 곳이 붕괴됐다.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으나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절벽에 몸을 반쯤 걸친 상태가 된 차원.

이를 놓칠 리 없는 오크 지도자가 그를 들어 올리는데, 녹색의 어깨너머로 위기에 처한 팀원들이 보였다.

점점 뒤로 밀리는 최번개와 예리나. 은지는 간절한 눈빛으로 이차원을 뒤돌아보고 있다.

오크 지도자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 순간 빈틈을 파고든 이차원의 스킬 디텐션!

오크 지도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전에 둘의 위치가 바뀌면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그가 가지고 있던 오크의 빛나는 도끼가 차원의 지척에 떨어졌다.

이어서 도끼를 들어 올리는데 갑자기 오크들이 싸움을 멈추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뭐지? 도끼 때문인가?’

차원은 도끼를 들고 의아해하는데 싸우고 있던 팀원들 모두 힘이 풀려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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