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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14화 (14/202)

14화

두 사람의 합류는 최적의 순간에 이뤄졌다.

한창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오크들의 이목을 끌던 차원을 도와 사람들을 게이트 밖으로 안내하고 놈들의 발을 묶어준 덕분에 오크를 상대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주변에 있던 헌터들도 몰려와 게이트 밖으로 나온 오크들은 얼마 안 가 싹 청소할 수 있었다.

“형, 게이트 안에 진입할 거죠?”

“당연하지. 다들 동의하십니까? 우리 셋으로는 벅찰 것 같아서.”

이대로 내버려두면 방금 밖으로 나온 오크들 이상의 오크들이 튀어나올 테니까.

차원은 자신과 번개, 은지를 도와 함께 싸워준 헌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들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때 차원은 뒤편에 있는지도 모를 카메라맨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저분들 데려갈 거야?”

“형, 지난번 게이트 공략 영상 조회수 못 봤어? 게다가 형 모습 찍으려면 필수라고.”

솔직히 차원도 지난 D급 게이트 때 카메라맨들이 보여줬던 능력에 놀라긴 했다.

그 난전 상황에서 순식간에 안전한 장소를 찾아내 몸을 숨기고 생생하게 전투 장면을 촬영한 거에 질릴 정도였으니까.

어차피 저들도 위험한 걸 알고 따라오는 걸 테니, 별말 하지 않기로 하고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초록으로 우거졌던 D급 게이트 때완 달리 나무 하나 없이 탁 트인 시야의 평야.

“다들 저기 보세요.”

은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는데, 드넓게 이어진 지평선 아래에서 거무튀튀한 연기 몇 줄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이곳에서 한가롭게 캠프파이어를 하는 건 아닐 테니, 저곳이 오크들의 군락지일 터.

그리고 그 확인이 무섭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서부터 녹색 피부의 괴물들이 구물구물 몰려오기 시작했다.

후각이 예민한 몬스터로 유명한 오크답게, 차원 일행의 등장에서부터 냄새를 맡은 것이다.

“아무튼, 저놈들은 개 코 뺨친다니까.”

각자 무기들을 쥐고 달려오는 그 모습에 최번개는 혀를 차대며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은지는 최번개에게 버프 하나를 걸어줬다.

“신속의 바람!”

은지의 손끝에서부터 불어오는 하얀 산들바람이 최번개의 몸을 감싸자 앞으로 달려가던 그의 움직임이 더욱 민첩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몸과 무기를 가볍게 해 민첩성을 높이는 버프로, 그와 여럿 합을 맞춘 경험이 있었기에 최적의 순간에 최적의 버프를 걸어 줄 수 있었다.

신속의 바람에 걸린 최번개는 오크 무리 옆으로 이동해 낙뢰를 떨어뜨리며 놈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여긴 저희가 막을 테니 보스부터 찾아주세요!”

게이트를 닫으려면 보스를 처리해야 하지만, 이렇게 대군을 상대하며 보스까지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차원도 은지의 외침에서 그 뜻을 알아차리고 스카이 워커를 이용해 오크들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오크 몬스터 보스는 후방에 있는 게 일반적이었지.’

내려오자마자 다시 하늘 위로 솟구치는 차원.

하지만 몇 번인가 높다랗게 뻗은 나무만큼 올라가 주변을 살폈으나 오크들 중에선 보스로 보이는 오크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곳에 없는 건가 생각하던 순간, 그의 뒤통수 쪽에서 최번개의 외침이 들려왔다.

“형! 은지 누나요!”

그에 은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오크들에게 기습당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차원은 급히 허공을 내달려 그녀를 향해 날아갔고, 주변에 있는 오크 한 마리와 자신의 위치를 바꿨다.

“크루룩?!”

옆에 있던 동족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인간이 나타나자 놀란 오크는 움찔 움직임을 멈췄는데, 차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겨드랑이 쪽에 천둥을 떼어낸 것 같은 창을 쑤셔 넣었다.

“괜찮아?”

“네, 덕분에요.”

실드가 특기인 그녀이기에 오크의 기습에도 별다른 상처는 없었지만, 꽤나 놀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최번개도 근처 오크들을 처리하며 다가오자 은지는 최대한 내색하는 모습 없이 말했다.

“전 신경 쓰지 말고 보스부터 처리해주세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전 힐러예요. 게다가 실드가 특기죠. 저 혼자 회복될 때까지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돼요.”

자신 때문에 시간이 끌린다면, 그 틈에 오크들이 외부로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차원은 부상자를 그냥 버려두고 가는 것 같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데, 최번개가 그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형. 지금 우리가 안 가고 버티는 것도 누나한테 실례에요.”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 여기서 가지 않는 건 최강힐러인 은지의 실력을 믿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럼 잘 숨어있어.”

은지가 고갤 끄덕이자 최번개와 함께 다시 오크 무리들에게 내달렸다.

“보스로 보이는 놈 있으면 바로 말해!”

“알았어요!”

최번개의 손을 따라 푸른 전류가 마른하늘에서부터 쏟아져 내리고, 차원의 손끝에서 날아가는 샛노란 번개의 창이 오크들을 꿰뚫어댔다.

보스 전을 대비해 최대한 체력을 배분하며 싸워나갔지만, 군락지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오크 놈들에 저절로 치가 떨릴 정도였다.

“화수분도 아니고. 끝도 없네, 진짜!”

이내 최번개가 다시 한 번 번개를 내리꽂은 순간 사방에 눈부신 빛무리가 퍼져 나갔고, 평원 한가운데에서 그 빛에 뭔가가 반사되는 게 차원의 눈에 들어왔다.

그에 위로 솟아올라 확인하니, 조악한 무기를 지닌 다른 오크들과 다르게 번쩍이는 도끼를 가진 오크 한 마리가 보였다.

게다가 다른 놈들에 비해 덩치도 커다랗고, 얼굴엔 위협적인 화장을 한 게 여타 오크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저놈이 보스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차원은 최번개와 함께 전선을 뚫으며 보스를 향해 내달렸다.

“저리 비켜!”

최번개의 낙뢰에 오크 무리가 산개하며 길을 텄고, 두 헌터는 그저 오크 대장을 향해 뻥 뚫린 초원을 내달리면 끝이었다.

하지만 차원은 그런 오크들의 모습에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원래 오크란 놈들이 호전성 빼면 시체인 놈들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차원과 최번개의 공세에 동족들이 쓰러져도 공포라는 걸 모르는 듯 계속해서 달려들었던 것이고.

그런데 지금 놈들은 일부러 번개를 피하며 길을 터주고 있었다.

‘마치 우릴 끌어들이려는 것 같이… 아.’

순간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동시에 보스 근처에 있던 오크들이 보였다.

나무 몽둥이나 활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물건을 들고 있던 놈들과 여타 다른 무기.

대나무같이 안쪽이 뚫린 대롱을 입에 물고 있는 녀석들은 차원과 최번개를 향해 독침을 쏴 됐다.

“형!”

이내 최번개가 이차원의 앞에 나서며 날아오른 침들을 전부 몸으로 받았다.

차원은 급하게 쓰러지는 그를 부여잡고 움직이려던 찰나, 그의 발목에서부터 시큰한 고통이 올라왔다.

다른 쪽에서 발사한 독침이다.

‘이런… 젠….’

급하게 게이트 내부로 들어오느라 평상복을 입고 있던 차원은 무력하게 독침에 맞은 것이다.

순간 몽롱한 졸음이 몰려오더니, 차원도 마찬가지로 툭 쓰러졌고, 그 장면을 멀리서 찍고 있던 카메라맨의 표정이 점점 질려갔다.

“뭐야, 진짜 기절한 거야 야! 최번개! 일어나!”

***

두 사람과 헤어진 은지는 시냇가 근처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차원과 다르게 방어복을 챙겨 입은 그녀였지만, 오크들의 무기에 스친 어깨에선 불그스름한 물이 계속해서 번져나가고 있었다.

은지가 손바닥을 상처에 포개자 은은한 연둣빛이 고통을 줄여줬지만, 그리 빠른 회복이라 볼 수 없었다.

서포팅 헌터로서 힐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레벨 자체가 높지 않아 그리 큰 회복력을 기대할 순 없었던 것.

그리고 스스로도 그걸 알기에 긴 한숨을 내뱉었다.

힐러가 회복력이 낮다는 건 큰 단점이었고, 초반 능력을 모두 실드에 집중한 덕분에 안티팬도 많은 편이었다.

‘그 사람들이 민폐캐라 불리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순 있지.’

그런데 그때 근처에서 오크들의 휘파람 소리 들리고 은지는 바위 뒤로 재빨리 몸을 숨기고 상황을 엿보는데, 절로 헛숨을 삼킬 정도의 광경이 펼쳐졌다.

차원과 최번개가 꼼짝없이 묶여 어디론가 끌려가는 중이었는데, 정신을 잃은 듯, 두 사람은 질질 끌려가는 와중에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어디로 데려가든 그 끝이 그리 좋지 않은 건 자명했고, 은지는 조용히 그 뒤를 밟았다.

얼마 정도 지나자 오크들이 도착한 곳엔 물이 가득 찬 커다란 냄비가 놓여 있었고, 나머지 오크들은 사냥의 성공을 기뻐하는 듯 춤을 추며 나무를 넣고 불을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은지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두 사람은 오크들의 저녁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공격 능력이 전무하다 싶을 정도인 은지가 저 오크들을 처리하고 두 사람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태창을 열어 봤다.

그녀가 가진 능력은 각종 버프와 미약한 치유, 그리고 나무뿌리를 조종하는 것뿐.

아니, 하나가 더 있다.

얼마 전에 D등급 게이트를 토벌하면서 레벨업으로 하고 배운 새로운 스킬.

[천상의 빛 Lv1 : 밝은 빛을 내뿜어 몬스터의 시야를 앗아가고 기절시킬 수 있습니다.]

버프라기보단 군중제어기에 가까운 기술이지만, 현재 은지에게 이보다 쓸 만한 기술은 없었다.

천상의 빛으로 눈을 가리고 두 사람을 탈출시킬까 했지만,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깨어나기 전에 오크들이 먼저 깨어나면?’

서포터 헌터인 그녀는 다른 헌터와 비교해도 완력이 부족했고, 두 사람을 동시에 업고 도망치는 건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물론 그녀의 자랑인 실드를 사용해 시간을 벌어볼 순 있겠지만, 오크 무리의 매타작을 버틸 내구성은 아니었다.

잘못하면 그냥 같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계획에 절로 침이 삼켜졌다.

그런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나 싶은 와중, 은지는 과거 한 장면을 떠올렸다.

차원이 D등급 게이트를 해결할 당시 오우거에게 당할 뻔한 자신과 위치를 바꿔 도와줬던 그때.

당시 자신과 몸을 바꾼 이차원의 선택은 무모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자신도 두 번이나 차원을 도와줬으니 은혜는 충분히 갚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생각을 바꿔서 만약 그 순간 자신이 차원이었다면?

‘난 그 순간에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차원 씨가 내 상황이라면?’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라면 도박수라 해도 걸었을 것이다.

아니, 사람을 구하는 데 도박은 없었다.

‘도전만 있을 뿐이니까.’

***

정신을 잃었던 차원은 후끈한 열기에 차차 눈을 떴고, 주변 상황을 둘러보곤 깊게 한숨을 쉬어댔다.

찌그러진 냄비 안에서 점점 뜨거워지는 물과 밖에서 자기를 보는 오크들의 눈을 보아하니, 만찬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물론 재료는 자신과 최번개였고.

당장 냄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팔다리를 묶은 밧줄은 튼튼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가진 능력을 사용하려 하지만, 역시나 상태 이상에 걸려 스킬 발동이 불가하다는 안내창만 떴다.

혼자선 탈출할 수 없던 차원은 여전히 정신을 잃어있는 최번개를 머리로 툭툭 쳐서 깨웠다.

“으으, 뜨거워.”

“쉿. 조용히 해.”

상황파악을 하려는데 갑자기 최번개 얼굴로 고추장이 푹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후추, 액젓에 된장까지.

전부 슈퍼마켓과 편의점에서 턴 양념들이었다.

‘이러려고 식자재 있는 곳만 털어댔구나.’

오크의 지능이 생각보다 높았다.

이놈들끼리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지만.

식자재 마트를 털어서 인간처럼 요리를 할 줄이야.

점차 빨갛게 변해가는 국물에 차원과 최번개의 얼굴은 점차 심각해졌다.

“이게 무슨…. 형, 우리 진짜 오크 밥 되는 거예요? 이대로 죽는 거 아니겠죠?”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허나 온도가 끓는점을 지났는지 갑자기 뜨거워지고 이차원과 최번개는 좁은 냄비 안에서 몸부림쳤다.

어떻게 해서든 묶인 손을 풀려고 발악하는데 그 순간 천상에서 내려온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죽긴 누가 죽어요!”

그 외침을 들은 오크들은 절로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고, 이내 은지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황금빛 섬광에 눈이 먼 오크들은 괴성을 지르며 눈두덩이를 매만지기 바빴다.

천상의 빛으로 주변 오크들을 쓰러뜨리고 탕 속에 묶여있는 두 사람의 밧줄을 풀어낸 은지.

“다행이다. 깨어 있어서. 빨리 가요!”

밝게 웃으며 말하는데 차원과 최번개의 표정이 굳었다.

은지 뒤로 드리워지는 그림자 하나.

오크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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