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최번개는 나이에 맞지 않게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잘생긴 얼굴과 위력은 적지만 눈에 띄는 능력.
타고난 것들을 이용해 너튜브와 스트리밍 방송이 인기 궤도에 올랐고, 같은 등급 헌터들과 비교하면 최상위 권에 속할 이익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넓은 아파트는 수많은 스태프들로 북적였다.
오늘 있을 생방을 대비한 작업 때문이다.
“오늘도 자신 있지?”
“그럼요.”
“그럼, 네가 누군데.”
네가 누구냐.
그저 상대를 높이기 위해 아무런 생각 없이 내던진 말에 최번개의 얼굴이 굳으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누굴까?
깐죽거리며 틱틱거리고 항상 앞으로 나서는 방송에서의 최번개?
그것도 아니면 게이트가 나올 때마다 죽고 싶지 않다고 몰래 겁을 먹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최번개?
“제가 누굴까요?”
“왜 갑자기 그래, 진지하게.”
“장난이라굿!”
“짜식, 놀랐잖아.”
허나 최번개는 아직 그 질문에 진지한 답변을 할 자신이 없었다.
두 최번개는 모두 현재 자신에게 없으면 안 됐으니까.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장난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며 능글맞게 넘어갔다.
아직 성인도 안 된 그가 이런 고급 주택에 거주하며 살 수 있는 것도 모두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 덕분이었으니까.
허나 최근 들어선 더 어릴 적부터 해오던 연기 페이스가 깨질 것 같았다.
‘젠장. 그깟 E등급 거미들 때문에.’
얼마 전에 있었던 대형 게이트 사건.
최번개 스스로도 가지고 있는 헌터의 능력이 낮고 약하다는 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잡졸 수준은 아니지만, 웬만한 스트리밍 헌터라면 쉽게 잡을 만한 몬스터에게 죽을 뻔하리라고는 생각조차 안 할 만큼의 자긍심은 갖고 있었고, 그날 자신을 도와준 이차원이란 헌터가 아니었음 거미밥이 됐을 거란 사실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실수.
그저 엔터테이먼트 감각으로 해오던 게이트 공략은 자그마한 실수 하나로 죽음의 경계를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는 현실감을 피부로 느끼곤 이전과 같이 마냥 즐기는 식으로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대중들이 원하지 않았고, 유리창 너머 반사된 자신의 굳은 표정을 보다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넌 최번개니까.’
유리창에 공포에 떠는 최번개를 남겨두고 고갤 돌려 표정을 최대한 밝게 하고 거실로 나가면 스탭들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하이루 하이루. 번개 왔다굿~.”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아진 최번개를 본 스탭들과 PD가 웃는다.
“번개야. 오늘 이차원이라는 헌터 포함해서 딜러 2명으로 구성되는 건가?”
“아니죠, 행님들! 그분이 빠지면 섭섭하죠. 힐러 한 분이 저희 둘을 케어하러 오신다는 사실!”
***
차원은 고갤 들어 올렸다.
촘촘하게 걸려있는 조각구름들 사이로 따스하게 내려오는 햇빛에 반사되는 기다란 유리의 거체.
“최번개. 돈 많이 벌었나 보다.”
그의 거처라는 아파트를 보며 차원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수많은 구독자를 끌어모았던 최번개의 인기를 보면 이런 아파트에 사는 것도 결코 사치는 아닐 터.
나도 언젠간 아버지 모시고 이런 곳에서 살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정문에선 최번개와 스탭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형, 오셨어요!”
그리고 달려오는 최번개 뒤로 보이는 낯익은 여자를 보던 차원은 아는 체를 하며 중얼거렸다.
“어. 혹시 최강힐러 채널….”
“안녕하세요. 최강힐러 은지라고 합니다.”
수줍게 고갤 숙이며 인사하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따라서 사라락 내려앉았다.
역시 최번개처럼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다르게 수줍은 모습의 갭을 보여주니, 차원의 생각보다 쑥스러움이 많아 보였다.
‘게이트에선 소리도 곧잘 지르고 동작도 큼직했던 것 같은데.’
다시 정신을 다잡은 차원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차원이라고 합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수줍게 그의 손을 잡는데, 스탭들은 그 모습을 촬영해대고 있다.
‘진짜 방송이구나.’
액정 너머로만 보던 화면에 자신도 들어간다는 것에 뭔가 기이한 기분이다.
비로소 자기가 방송에 찍히고 있다는 걸 실감하자 차원의 행동이 저절로 굳어지는 게 보였고, 그걸 본 최번개가 서로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형, 카메라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게이트 공략할 땐 신경 쓸 겨를도 없어질 테니까, 저흰 저희 할 것만 하면 돼요.”
“그래.”
“자, 그럼 저희 팀 계획 브리핑부터 시작할게요.”
이번 공략 팀원을 모집한 최번개가 미리 준비한 계획을 읊었다.
비록 헌터 이런저런 이야길 했지만, 차원은 그냥 간단하게 본론만 추려 정리했다.
“군부대가 D급 게이트 통제하기 전에 상황 정리하고, 보스 전리품만 빼 오자는 거지?”
“넵. 전리품이랑 이번 공략 방송 수익은 똑같이 n등분 해서 나누는 거고요.”
최번개는 이미 뒷정보를 통해 게이트가 정확히 강남역 어디서 열리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그의 계획에 불만이 없던 차원과 은지 모두가 동의했고, 세 사람은 게이트가 열리기 한 시간 전에 목표인 강남역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최번개의 얼굴을 알아보고 소녀팬들이 몰려들 테지만, 게이트가 곧 열릴 것임을 알고 있는 군부대가 진작부터 시민들을 대피시킨 덕에 생각보다 한산했다.
차원은 게이트가 열릴 신분당선 3번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 뒤엔 은지와 최번개가 따랐는데, 아직 현장 자체가 폐쇄되거나 그러진 않아서 세 사람은 무리 없이 게이트가 열릴 예상 지역에 숨어서 대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많던 스태프들은 다 사라지고 촬영감독 한 명만 세 사람을 따라와서 송출 중이다.
“저 사람들, 안 위험해?”
“괜찮아요, 형.”
최번개도 제일 경험 많은 사람들로 데려온 덕분에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단다.
안전한 지역을 찾고 기가 막힌 장면들을 담아내기로 유명하다는 촬영팀들.
“최번개. 무리하지 마.”
“에이, 감독님. 저 최번개예요.”
최번개가 여유롭게 웃어 보이는데, 순간 저 앞쪽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일그러진 공간 중심에서 거무튀튀한 구멍 하나가 뚫리더니, 마치 유리가 깨는 듯 강렬한 충격이 일며 D급 게이트가 생겨났다.
“역시, D급인가.”
그때 봤던 E급 게이트보다 풍기는 기운이나 가지고 있는 빛깔 같은 게 더 흉흉하니, 겉으로만 봐도 위험해 보인다.
차원이 작게 심호흡 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저 끝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자식들 뭐야!”
군부대 측 인원인 김인성이었다.
“어이, 거기 도둑놈 셋! 거기 안 서?! 이거 군부대 관할 게이트야!”
“아직 정식 관할도 아니면서!”
아까 시작 전, 최번개의 설명에 의하면 정부가 토벌 아웃소싱을 맡기는 건 맞지만, 게이트 전체 부산물을 독점할 권리는 없다고 했다.
‘하긴, 현재 사회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자원들도 돌아가는 실정이니까.’
오히려 부산물을 독점하려고 군부대랑 협상해 헌터들이 게이트 진입하는 걸 막는 게 양아치라는 것.
“그렇다네요.”
“그렇다면, 김인성.”
차원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김인성을 향해 차분하고도 날카롭게 중지를 올렸고, 세 명의 헌터들과 촬영팀들은 보란 듯이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저 새끼가!”
김인성의 통렬한 외침을 뒤로한 채 난생처음 진입한 게이트.
진공청소기에 빨려들어 가는 흡입감에 이어 자신의 몸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기이한 감각의 연속에 저절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시계로 보이던 지하철역 풍경은 수채화 그림을 물에 담근 것처럼 녹아내리더니,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
게이트를 넘자 후덥지근한 불쾌지수가 절로 느껴지는 열대 숲속이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콘크리트 밀림에 있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식물들 사이로 바람이 나부끼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신기하다.’
아열대 밀림은 녹색 지옥이라 불리며 인간에겐 큰 공포로 작용한다.
게다가 차원은 이런 현장에는 처음으로 발을 디딘 순간.
그러나 그에게선 이상하리만치 공포라는 건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어떻게 걸어나가야 할지가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빨간 실의 효과인가?’
호감도로 인해 얻은 울프릭의 능력 5%.
초보 헌터로 1의 경험도 없던 차원의 머릿속에 이런 지식이 있는 현상을 설명할 길은 그것밖에 없었다.
“여긴 최대한 빨리 벗어나자.”
이차원의 말에 은지와 최번개 모두 발걸음을 빨리했다.
김인성과 그가 스카우트한 헌터 팀과 마주치면 껄끄러워지니 최대한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형, 처음이시니까 제가 앞으로….”
“내가 선두에 서도 돼?”
어차피 숲의 중심부로 가는 것이 목적.
마치 울프릭과 함께하는 것 같은 든든함에 차원은 스스로 선두를 자원했다.
원래라면 최번개도 초행인 그에게 D급 게이트에서 선두를 맡기진 않으려고 했지만.
‘그때 형이 보여준 스킬 위력은 탈 E급이긴 했어. 게다가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서는 거 보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겠지.’
차원이 아무것도 없이 나서는 미련한 사람은 아니라 믿은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은지도 그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차원은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초록색 미로에 발을 내디디며 거침없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구부렁한 나뭇가지를 밀어내고, 늘어진 덩굴들을 정리하는 모습에서 마치 전문가의 그것이 보였다.
덕분에 차원이 지나간 길을 뒤따라 가는 최번개와 은지는 그저 편하게 뒤를 따르면 됐다.
“와, 형. 무슨 정글에서 태어났어요?”
허나 그것도 잠시.
점점 앞으로 나아가던 차원의 발에 뭔가 채였다.
“어, 이거 뭐지?”
최번개가 그걸 주워들고 면밀히 확인하자, 같이 보던 차원의 표정이 점점 구겨졌다.
울프릭과 함께 임프 대장을 추격하다 자주 보던 그 표식.
임프들의 영역에서나 볼 수 있는 표식이었다.
임프란 것들이 원래 바퀴벌레처럼 늘어난다는 설정이라 임프가 살면 이런 문양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건 다크 혼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
“형, 뭐 아는 거 있어요?”
“임프 놈들이 영역 표시할 때 쓰는 문양이야.”
“임프요?”
임프라는 몬스터가 있었나?
최번개와 은지 모두 그런 반응을 보이던 찰나, 그때 뒤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셋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라고 하기엔 너무 육중한 그림자.
차원이 재빨리 고갤 돌리는데, 역시나 그곳엔 게임 속에서나 보던 임프 주술사의 오우거가 자릴 잡고 있었다.
그 못생긴 녀석이 주둥이를 벌리고 뭐라 외치려던 순간, 차원의 몸이 한 발짝 더 빠르게 움직였다.
[{R} 디텐션 LV1 : 상대방과 자기의 위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오우거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은지와 자신의 위치를 뒤바꾼 차원.
순식간에 오우거 앞에 나타난 차원은 고름투성이 오우거 피부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러자 손가락 사이에서 새하얀 에너지가 파지직거리며 놀아났고, 이내 찌릿한 전류의 파동이 퍼져 나가며 오우거의 거대한 몸뚱이가 나무들을 부러뜨리며 쓰러졌다.
“형, 역시 개쩌는 헌터였구나?”
자신도 반응하지 못하는 빠른 순간에 행동하는 반사신경이라니.
허나 당사자인 차원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게임에서만 나오던 몬스터들이 현실에서도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