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마법사를 따라 들어간 으슥한 상점은 그야말로 돼지우리가 따로 없었다.
누렇게 바랜 스크롤과 종잇조각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고, 사방에선 타다 만 심지에서 피어오르는 촛농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다.
게다가 내부엔 고양이 한 마리가 이리저리 날뛰더니 울프릭의 다리 사이로 지나갔고, 천장에 달린 철장엔 독수리 두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울어댔다.
순간 그것들을 본 울프릭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나 먼저 나가 있으면 안 될까?
“무섭냐?”
-무섭다니! 그냥, 저런 귀찮은 놈들을 왜 키우는 건지 모르겠으니까. 털 날리고, 시끄럽고, 게다가….
“쉿. 잠깐.”
울컥 뭔가 말하려는 울프릭의 말을 끊은 차원은 슬며시 상점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였는데, 그들보다 앞서 들어온 마법사와 이곳의 주인으로 보이는 늙수그레한 노파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말한 스크롤 들어왔어? 들어오면 내 몫은 무조건 남겨놓는 거 알지?
-그거 가격 꽤 나가는데. 살 돈은 있는 거야, 자기?
-곧 생긴다니까. 이번에 왕국에서 공고 하나가 내려왔는데, 임프 족이 점령한 세피리티 숲 탈환 작전에 공을 세운 자들에게 금괴를 내린다나 봐.
-어머, 자기가 공을 세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지.
-꿈꾸는 건 자유니까. 그래, 열심히 해 봐.
고혹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주인장은 마법사의 말에 건성으로 호응했다.
왕국에서 공고를 내릴 정도의 임무에서 고작 견습 딱지가 붙은 마법사가 뭘 할 거라는 기대감 따윈 없었으니까.
적어도 전문가 수준의 마법사는 와야 될까 한 일인데 말이다.
마법사도 그녀의 말에 숨겨진 의도를 느꼈는지 얼굴을 구긴 채 상점을 나갔다.
-거기, 이제 그만 나오시지?
순간 자신이 숨어있는 벽을 향해 말하는 주인에 울프릭은 화들짝 놀랐다.
그저 노파로 보이는 인물이 숨어있는 자신을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여긴 내 가게야. 당신들은 내 바운드리 안에 있는 거라고.
이내 차원과 울프릭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조금 당황하는데, 주인장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결국 울프릭이 몸담고 있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보이며 그녀 앞에 섰다.
-행색을 보아하니 마법사는 아닌데.
- 금 나간 사람하고 얘기한 ‘공고’에 대해 정확히 듣고 싶소.
허나 주인장은 울프릭 말고 그의 옆에 떠다니는 차원을 보며 기겁하더니 되레 물어왔다.
-세상에. 저 기괴한 건 대체 뭐야?
-요정이지.
-여정? 저게?
주인의 눈썹이 추켜 올라갔다.
요정이 저딴 식으로 생겼단 말을 평생 처음 들은 건 둘째로 치더라도 요정은 오직 엘프만을 섬긴다 들었는데 눈앞에 있는 울프릭, 저 사내는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다.
‘귀도 짧고, 마력도 미약해. 엘프는 아닌데, 그렇다면 저건 대체 뭘까?’
개인적인 지식욕에 의해 눈을 가늘게 뜨며 차원을 관찰하기 바쁜데, 울프릭은 그녀의 시선을 막으며 자신의 질문을 다시 이어나갔다.
-공고, 뭐냐니까.
-참, 한창 바쁜데. 광장 게시판에 공고문 붙어있으니 확인해 봐. 그게 더 정확할 거야.
그에 울프릭을 강제로 치우곤 다시 시선을 차원에게 붙였다.
처음엔 기괴하다 느꼈는데, 이거 보다 보니 정이 든 건가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차원은 그 끈적한 시선을 이겨내며 반대로 아까 나왔던 화젯거리를 다시 꺼내 들었다.
“방금 말하던 스크롤은 뭐지?”
-어머나, 말도 할 줄 알아?
“이야기 돌리지 말고.”
-스크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딴청을 피우는 걸 보니 파는 손님을 가려야 할 정도로 귀하거나 구린 물건이라는 뜻.
그리고 그런 물건들은 대체로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다.
“혹시 돈을 원한다면 주겠어.”
-자기, 그거 알아? 세상엔 돈보다 더 값진 경험이 있는데.
***
-괜찮냐?
울프릭의 걱정 어린 말에 차원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주인장이 정보를 알려주는 조건으로 내건 것은 이차원을 한 번 만져보는 것이었다.
물론 시스템으로 물리적인 접촉에 영향을 받지 않는 터라 얼마든지 수락한 차원.
허나 어떻게 된 일인지, 이곳 주인장은 차원의 머릴 쓰다듬을 수 있었다.
‘소름 돋네. 대체 어떻게 만진 거야?’
방금 촉감이 실제같이 느껴졌기에 차원의 몸에는 소름이 돋아날 지경.
-그래도 네가 원하던 정보는 얻었잖아.
주인장이 말하길, 방금 견습 마법사가 찾고 있는 건 바로 속성 변환 스크롤이었다.
말 그대로 일정 시간 동안 기술의 속성을 변환시켜주는 스크롤.
예를 들어 파이어볼 마법을 시전하기 전 스크롤로 얼음 속성을 선택하면 타오르는 불덩어리 대신에 휘몰아치는 냉기의 구체를 쏘아낼 수 있게 된다.
이게 엄청난 메리트라는 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일.
그저 스크롤 한 장 찢는 것으로 화염 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캐릭터로 위력을 줄이지 않고 얼음이 약점인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다는 거니 가지고만 있다면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스크롤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것을 현실 밖으로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유용하다는 말은 그 가치를 온전히 담지 못했다.
그것을 현실 세계에 가져나갈 수만 있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헌터의 속성을 다른 속성으로 임시로나마 바꿔줄 수 있는 스크롤이라니.
‘문제는 가격인데.’
이 효용성 덕분에 망겜 속에서의 가격 또한 어마어마할 정도.
“아까 공고 이야기가 나왔지? 그거나 확인하러 가자.”
당장 왕국에서 직접 내려오는 공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큼 돈 되는 일도 없었다.
‘임프를 잡는 공고라…. 내가 플레이할 때는 없던 공고였다.’
이 게임을 죽어라 해본 차원도 몰랐던 공고.
분명 어딘가 게임의 시나리오가 변경되었다는 것을 느낀 차원은 울프릭을 공고가 있는 쪽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광장에는 울프릭 말고도 공고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자기 키만큼 거대한 대검을 지고 검은 갑주를 입은 전사와 무수히 많은 활과 화살을 걸고 있는 궁수, 잘하면 땅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수염을 기른 마법사들도 있었다.
울프릭과 이차원,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광장 게시판에 붙은 공고를 보는데 별다른 내용은 없다. 엿들었던 내용 그대로다.
게다가 보상은 무려 금괴 5G.
‘5G라면 스크롤 사고도 남겠는데.’
세계관 설정상으로도 큰돈이니, 이렇게 많은 모험가들이 공고 앞에 모인 것도 당연한 일.
차원은 남은 돈으로 다른 스크롤 몇 개를 더 챙기려는 김칫국을 마시는데, 그의 생각을 읽은 울프릭이 문득 의문을 품고 묻는다.
-여동생 정보는 대체 누가 아는 거지? 난 여동생을 찾으러 왔지, 이 공고에 쓰여있는 것? 고작 숲에서 임프 녀석들이나 잡으려고 온 게 아니야.
이대로 시간을 끌면 울프릭이 혼자서 갈 수도 있겠단 생각에 차원은 대답 대신 울프릭을 내벽 쪽으로 데려갔다.
-여긴 또 어디지?
“조용히 따라만 와.”
아까 마법 스크롤 상점처럼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나 싶던 울프릭. 허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벽에 의해 그늘진 지역에 위치한 꽃을 파는 상점이었는데, 방금 들렀던 스크롤 상점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어디에 눈을 둬도 형형색색의 꽃들이 시야를 밝혀주고, 향긋한 꽃 냄새가 분위기를 띄워 준다.
무엇보다 상점 주인도 심술 궂어 보이는 할머니가 아니라 어여쁜 처녀 npc.
울프릭은 꽃집을 보더니 잔뜩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 얼굴을 하며 차원을 바라봤다.
-장난해? 이딴 덴 왜 데려온 거야?
정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단체는 기대도 안 했다.
하지만 온갖 소문이 모이는 술집은커녕 저리 평화로워 보이는 꽃집이라니.
-여동생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 있다고 했잖아.
그 말에 울프릭도 투덜거리며 꽃집 주인을 빤히 바라봤다.
그런데 그때 차원의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일단 동생에 관해서 물어보고 있어. 난 잠깐 자리 좀 비울게.”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모르는 번호다.
이후 통화버튼을 누르자,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왜 이리 늦게 받아요? 관심 좀 받았다고 콧대가 높아진 모양인가.
이 싸가지 없는 말투와 목소리.
차원은 어디서 들었나 기억을 더듬던 와중,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게이트 근방에서 만났던 그 싹바가지 없는 군무원이다.
***
-집 앞이니까 나오십쇼.
고작 말 한마디에 사람 기분을 두 번 먹이는 재능이란.
대체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한 게 첫 번째였고, 용무도 말하지 않고 다짜고짜 나오라는 게 두 번째다.
게다가 김인성이라는 이름의 군무원은 한술 더 떠 차원이 뭐라 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것 봐라?”
그래, 어디 무슨 이유인지 들어나 보자.
집 밖으로 나서니 김인성은 팔짱을 끼고 세단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차원의 가슴팍에 서류를 던지는데, 반사적으로 서류를 낚아챈 차원은 내용을 확인했다.
“D급 게이트?”
3일 후 강남역 인근에 D급 게이트가 발생한다는 정보였다.
최번개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지만, 서류엔 부가적인 정보들도 추가되어 있었다.
‘그때처럼 특수 객체로 속성을 지닌 몬스터가 나올 확률이 있다니.’
속성을 가지게 된다는 건 단순히 겉모습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신체 능력 또한 같은 등급이라도 궤를 달리하니, 당시 폭발탄에 허우적대던 거미들도 화염 속성을 얻기만 하면 마치 방탄이라도 된 듯 물러섬이 없었던 걸 기억하면 이해하기 쉬웠다.
게다가 서류를 받은 차원이 새롭게 알게 된 건 바로 김인성의 정체.
그는 관악구청에서 일하는 스카우터였다.
현재 정부는 각 구청에 스카우터를 파견하였고, 스카우터는 근무하는 구청으로부터 특정 반경에 게이트가 생성될 거라는 탐지 정보를 받으면 근처에 사는 헌터들에게 먼저 연락해 그룹을 짜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는 건가?’
차원은 최대한 머리를 굴려댔다.
김인성의 인성은 둘째 치더라도, 그가 자신에게 이번 게이트에 관한 정보를 가져온 거라면 정부에서 약속한 계약금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등급.
슈퍼노바가 강력한 위력을 지녔다지만 통하는 건 E급까지.
아직 낮은 스킬 레벨로 인해 D급 던전에서 난사하기엔 무리가 있는 기술이었다.
무엇보다 김인성의 인성 자체도 마음에 안 들었고.
“싫습니다.”
“기껏 중급으로 취급해주려 했더니 제 발로 복을 걷어찹니까? 그러다 후회하십니다.”
나지막한 욕지거리만 남긴 채 서류들을 챙긴 김인성은 세단을 타고 떠났다.
물론 차원도 그저 홧김에 이런 짓을 벌인 건 아니었다.
차원도 D급 게이트 공략을 하는 것이 좋았다.
일전에 슈퍼노바를 사용해 거미들을 학살했을 때 떠올랐던 상태창 메시지들.
[EXP 7000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2 상승합니다.]
[지원 스킬 LV2로 업그레이드 : 교류 아이템 무게치 증가 ]
[제우스 스킬 LV2로 업그레이드 : 당신이 속한 세계의 작은 컵에 담긴 물은 다른 세계에서 폭풍우가 될 것입니다.]
차원의 성장은 차원이 다크혼 세계에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증가시켜주는 것이 확실시 된 바.
이 현실에서의 성장이 다크혼 내의 울프릭에게 더 파워 풀한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차원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차원은 게이트 공략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만약 그가 김인성의 제안을 통해 이번 토벌에 참여했더라면, 그 공은 스카우터인 김인성에게 돌아갔을 일.
그렇다면 차원은 김인성이 아닌 다른 루트로 토벌에 참여해야만 했다.
“후회는 누가 할지… 두고 볼 것도 없지.”
비릿한 미소를 짓던 차원은 곧장 최번개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번개는 이번 D급 게이트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고, 그런 그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포함 시킬 방도를 갖고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