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EXP 7000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2 상승합니다.]
[지원 스킬 Lv2로 업그레이드 : 교류 아이템 무게 치 증가 ]
[제우스 스킬 Lv2로 업그레이드 : 당신이 속한 세계의 작은 컵에 담긴 물은 다른 세계에서 폭풍우가 될 것입니다.]
얼어붙은 거미들을 홀로 처치한 덕에 엄청난 경험치가 차원에게 들어왔다.
단박에 레벨이 오르고 스킬이 업그레이드됐다는 안내창이 어지럽게 나타났는데, 차원은 그걸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맞다, 사람들!’
도심지에 깔린 거미들을 모두 얼려버릴 정도 위력이면 시민들이 휘말렸을 수도 있었다.
그에 바쁘게 고개를 돌리며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데, 다행히 차원의 능력은 몬스터에게만 적용된 건지 다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게임에서 아군으로 적용된 캐릭터에겐 플레이어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진짜로 현실에서 게임 속 스킬이 통했어.’
분명 자신이 스킬을 사용해 거미들을 전멸시켰지만, 이 상황에 그다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헌터로 각성했다곤 하지만, 실제로 몬스터를 마주하고 사냥한 건 난생처음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방금 일어난 상황에 놀란 최번개도 멍하니 차원의 옆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깜짝 정신을 차린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방송용 카메라로 차원의 얼굴을 찍어댔다.
그에 질세라 보도 헬기도 급급히 차원을 집중적으로 찍어댔는데, 그 화면은 전파를 타고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한 헌터가 혼자서 게이트에 있는 E급 몬스터들을 진압했다는 겁니까?
-네. E급의 거미형 몬스터였지만, 숫자는 물론이고 간간이 화염 속성을 지닌 특수 개체도 있는 터라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때 그 현장, 다시 보시겠습니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대단하네.”
금은방에서 휴대폰으로 흘러나오는 속보를 보던 이재배가 중얼거렸다.
뉴스로 보기에 엄청난 능력을 지닌 헌터가 해낸 일 같았는데, 이후엔 이재배 같은 소시민은 상상도 못 할 부와 명예를 얻을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때 이재배의 금은방엔 오랜만에 손님이 왔는데, 무려 커플이었다.
커플이라면 커플링을 맞추느라 두 개는 사가는 게 기본이니, 커플 손님은 대환영.
“어서 오십쇼. 손님. 혹시 커플링 맞추러 오셨나?”
그에 수줍게 고갤 끄덕이는 커플의 모습에 이재배는 진열장 안에서 급히 한 쌍의 반지를 꺼내 보였다.
“이거 어때요? 게이트에서 나온 금속으로 만든 건데, 요즘엔 이렇게 얇은 디자인이 더 인기-.”
그때 소리를 줄인 휴대폰 화면에 잡히는 남자의 모습이 이재배의 눈에 들어왔다.
언제 잘랐는지, 폭탄을 맞아 부슬거리는 곱슬머리부터 동네 마실 나온 것 같은 후줄근한 옷차림까지.
영락없이 자신의 아들인 이차원의 모습이었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바로는 차원이 위기에 처한 최번개 앞에 나서며 주먹을 쥐자 번쩍, 하얀 섬광이 터져 나오며 주변이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쥔 주먹을 펴는 순간 꽁꽁 얼었던 몬스터들이 바스러지며 날아가는 모습이 연출됐다.
“컥. 차원아!”
눈앞에 있는 커플은 안중에도 없는지 이재배는 휴대폰에 얼굴을 파묻을 기세로 가져다 댔다.
각성했다는 아들의 말을 믿었지만, 이 정도 능력을 가졌을 줄은 몰랐다.
불 속성 거미를 한 번에 녹여버린 능력이라면. 심장이 폭발하듯이 뛰는 이재배였다.
“자식 농사는….”
아직 저 화면 속에 비치는 장면들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재배는 거칠게 호흡했다.
***
군인들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도망치던 사람들 중에서 부상자를 솎아내 회복 능력을 지닌 헌터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남은 헌터들은 차원이 처리한 게이트의 뒤처리로 바빴는데, 최번개 유튜브 댓글창도 난리가 났다.
우리 오빠 구해준 저 사람은 누구냐는 둥, 최번개 지금 표정 반한 거 아님? 은지 말고 저 남자랑 엮즈아~ 하는 동인녀들까지 몰려든다.
반면 진지하게 이차원의 능력을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바는 흔하지. 그런데 저 정도 정확성과 파워 범위를 갖춘 헌터는 드물지 않나?
-나 헌터 방송 죽돌인데 저런 거 처음 봄.
-도대체 쟤 뭐냐? 멋있는 걸 넘어서 무서운데, 좀.
파도처럼 쏟아져 나오는 거미 무리에 물러섬 없이 우뚝 서 있다가 단 한 번의 능력 사용으로 전부 얼려버린 그 위용은 아직도 생생했다.
게다가 주변에 있는 민간인이나 헌터들에겐 조금의 피해도 입히지 않은 미친 능력 컨트롤까지.
한편 차원은 아직도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차원의 활약을 본 사람들이 주위로 몰려들어 오도 가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바맨!”
차원의 무력을 본 사람 중에선 그의 팬을 자처하며 노바맨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별명을 지어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당사자는 이 상황 자체가 웃기면서 재밌었다.
아무것도 아니던 자신이 스킬 한 번 사용했다고 이런 취급을 받다니.
그런데 갑자기 낯선 남자가 인파를 뚫고 오더니 차원 앞에 멈춰 섰다.
“방금 능력 사용하신 헌터 맞으시죠?”
“맞습니다만.”
“방금 활약상 잘 봤습니다. E급 몬스터라 해도 그런 대량을 단번에 처리하는 화력이라니. 소속 길드가 없으신 것 같은데, 저희 길드로 들어오시면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겠습니다.”
스카웃 제의와 함께 명함을 건네는데, 차원이 명함을 받으려는 순간 명함에 푸른 불꽃이 파박 튀더니 그대로 시꺼먼 그을음과 함께 구멍이 나 버렸다.
남자와 차원이 동시에 뒤돌아보니 최번개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중이었다.
“거기 불공정 계약으로 착취하기로 유명한 길드 아닌가?”
그 말에 차원도 구멍 뚫린 명함 쪼가리를 보는데, 희미하게 길드 이름이 보였다.
생각해보니 뉴스에서 언뜻 지나쳐 본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남자의 앞에 구멍 뚫린 명함을 다시 돌려주곤 최번개 쪽으로 다가갔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형이 먼저 저 구해주셨잖아요. 말 편하게 하세요.”
방송으로 보던 최번개는 학교에 한 명쯤 있을 법한 미친놈처럼 막 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역시나 컨셉이었던 모양.
하긴, 그런 말투를 현실에서 쓰는 사람이 있을 리가.
“그래. 뭐. ”
차원이 무심하게 최번개의 다리를 바라보자, 최번개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 정도야, 힐러한테 치료받으면 금방이죠.”
“그럼 잘 치료받아라.”
점점 인파가 몰려드는 통에 빠르게 자리를 뜨려 한 차원.
그러나 사람들에게 알려진 최번개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니 주변 인파는 더욱 밀집했는데, 여길 대체 어떻게 벗어나야 하나 절로 고민에 빠졌다.
“형, 잠깐만요.”
그걸 옆에서 보던 최번개는 갑자기 차원의 허리에 팔을 두르더니 바닥에 번개를 쏘아 높이 뛰며 몰려든 인파에서 벗어났다.
갑작스러운 부유에 놀란 나머지 차원은 두 다리를 허우적거렸고, 짧은 비행 끝에 원래 있던 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한적한 도로에 착지할 수 있었다.
차원은 말없이 번개를 바라봤다.
“원래, 이런 식인가.”
차원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최번개는 매우 당황한 듯이 고개를 내리깔았다.
자신은 진정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듯이.
“놀라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제 딴에는…….”
그리고 얼떨결에 최번개 연락처를 받은 이차원을 본 그의 구독자들은 더 난리가 났다.
-구리긴 한데 스타일만 바꾸면 번개급은 되겠네.
-능력치에 비해 아싸 기질이 있는데 그게 귀여워서 매력인 듯.
벌써부터 이차원의 팬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송을 마친 최번개는 카메라를 끄더니 고급 정보를 건네줬다.
“형, 혹시 3일 후에 무슨 일 있어요?”
“딱히 없는데.”
게임을 통해 자기 능력을 상승시키는 걸 확인했으니, 울프릭을 돕고 능력을 더 강화하는 것 정도?
“그럼 그때 강남역으로 오세요. 그때 D급 게이트 열리는데, 거기서 또 한 번 활약하면 길드 들어갈 때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부를 수 있을 거예요.”
D급 게이트에 관한 거면 현재 아무런 기본도 없는 새내기 헌터인 차원에겐 고급 정보나 마찬가지였다.
“너 의외다.”
“네?”
“아냐, 고맙다고.”
원래 사람은 얼굴값 한다고 잘생긴 최번개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인성에 조금 하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때 당시엔 자신이 없는 걸 전부 가지고 있는 최번개에 대한 자격지심과 질투였을 뿐이었다.
그 편견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최번개는 그대로 집으로 향하는 차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형! 3일 뒤에 강남역! 잊지 말고 꼭 봐요!”
***
집에 와 모니터를 보니 울프릭이 언덕 너머로 보이는 프라하 성을 보고 있었다.
웅장한 석벽 안쪽으로 곧게 세워진 중세 양식의 성.
언덕들이 촘촘하게 자리 잡은 터라 굳게 닫힌 정문이 아니면 쉽게 침공할 수 없는 구조라 천혜의 요새이기도 했다.
허나 울프릭은 당장 동생이 저 석벽 내부에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몸이라도 건강했으면.’
만약 저기에 없더라도 여동생이 무사하길 바라며 고개를 돌리는데, 바로 옆에 차원의 얼굴이 보였다.
-놀랐네. 요정이라는 것들은 원래 이렇게 기척이 없어?
“익숙해질 때도 됐지, 이제?”
그의 심리나 상황을 알기에 일부러 장난 섞인 말로 기분을 풀어주려 했으나 울프릭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다.
“여기서 고민만 하지 말고 움직이자고. 저 안에 당신 여동생 행방을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알고 있으니까.”
-뭐? 그게 누군데? 리지는 살아있는 거지?!
마음 같아선 떠다니는 면상을 잡고 있는 힘껏 흔들어대고 싶었으나 차원은 현재 불가촉의 존재.
“일단 프라하 성에 들어가면 바로 알려줄게.”
프라하 성의 경비병을 뚫고 나가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레칸 마을에서 받은 은화 몇 닢을 건네주자 딱히 번거로운 수색 없이 바로 들여 보내줬기 때문이다.
-듣기론 이 근방엔 꽤 질 좋은 광맥이 있다 들었는데, 형편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 같군.
“몬스터가 자주 침공하는 곳이니까. 아무리 광물을 얻어도 그걸 사용할 틈이 없는 거지.”
미리 알던 세계관 설정을 읊은 차원은 울프릭을 따라 석벽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그의 눈에 지팡이를 든 마법사가 어느 상점을 찾는 모습을 포착한다.
다크 혼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가진 차원에겐 ‘지팡이 = 마법사’ 라는 수식이 있었고, 그 마법사가 들어가는 곳은 마법에 관련된 물품을 취급하는 상점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저런 으슥한 곳에 있는 건 대개 마법 서적 상점이었지.’
여기서 슈퍼노바 말고도 현실에서 쓸 수 있는 다른 능력을 얻을 수도 있는데, 굶주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순 없는 법.
“울프릭. 잠깐 저기 좀 들렀다 가자.”
-뭐? 지금 한시가 바쁜….
“여동생 찾고 싶으면 그냥 가자니까.”
결국 차원의 생떼에 울프릭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을 하고선 치렁치렁 로브를 바닥에 끌어대는 마법사를 따라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