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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워프로 무한성장-2화 (2/202)

2화

-방금 그쪽이 바람으로 마차를 날려준 덕분에 통으로 구워지는 건 면했네. 그쪽이 우릴 구해준 건가?

“…….”

화려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귀족가 도련님 느낌이 나는 외모는 넝마로도 숨길 수 없었다.

그 아래론 단련된 다부진 육체와 자신감 넘치는 동작까지.

울프릭이란 캐릭터가 원래 이랬나 당황스러워 말까지 더듬는데 당황스럽긴 울프릭도 마찬가지였다.

곧이곧대로 너는 게임 속 캐릭터고 네가 죽으면 나도 죽으니 도와준다는 말을 하면 퍽이나 믿어줄까?

설명할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자 최대한 머리만 굴리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리처드가 아는 척을 해댔다.

-그럼 요정이네, 요정. 맞지 않아?

“요정?”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자신을 요정이라 볼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울프릭은 요정이란 말에 얼굴이 밝아졌다.

-요정이라면 나도 알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들을 수호하는 신비한 존재들.

그런 존재가 자신을 도왔다는 말에 울프릭은 수려하게 인사를 했다.

-울프릭이라고 하는 필부요. 그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도록 하지.

“아니, 울프릭. 내가 더 고맙지.”

알아서 요정으로 착각해주시고. 물론 뒷말은 차원만이 알 수 있게 목구멍 아래로 삼켰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요정이라고 속이는 것만큼 자신을 설명할 방법은 없는 듯 보였으므로, 그냥 요정을 하기로 했다.

게다가 지금 이곳에 있는 울프릭을 포함한 npc들은 그가 요정인지 아닌지 구분할 방법도 없으니 진실은 저 멀리에 있는 법.

이차원이 요정이란 소릴 듣자 원래 스토리와 다르게 목숨을 건진 노예들은 모두 신의 가호라도 받은 듯 떠다니는 차원의 얼굴 아래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요정님. 저희의 기도가 신께 닿았습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졸지에 신의 대리인 비슷한 것이 된 차원은 당황스러움에 무릎을 꿇은 노예들을 바라봤다.

그때 차원의 시야에 모든 일의 원흉인 마부가 슬금슬금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노예상을 그냥 도망가게 놔둘 순 없기에 차원은 슬쩍 턱짓만으로 마부를 가리켰다.

-저기, 벌레 기어가는데.

그 말에 울프릭은 물론이고 연신 절을 해대던 노예들의 고개가 마부에게 향했다.

하기사 자신들을 데려와 노예로 팔던 이에게 보내는 시선이 고울 리 없었고, 마차가 전복된 통에 자유를 찾았으니 당연했다.

-저 녀석은 손 좀 봐줄 필요가 있지 않나?

-당연하지.

-요정은 무슨 요정! 이 몬스터가!

마부가 허리에 차고 있던 채찍을 꺼내 차원의 얼굴을 후려쳤다.

팡! 하는 소리에 공기를 때리는 강렬함이 묻어나왔지만, 마부에겐 안타깝게도 채찍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차원의 얼굴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뭐야! 이런 빌어먹을!

채찍이 안 통하는 걸 보자 이어서 주먹을 날리지만, 마찬가지로 주먹은 허공만 관통할 뿐이었다.

‘진짜 요정이 맞는 건가?’

저렇게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 다면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생각에 빠진 울프릭과 그저 감탄 어린 시선으로 그를 보는 노비들.

신기하듯 보고 있는데 정작 이 사단의 주인공인 차원의 시선은 마부의 목 주변에 눈이 갔다.

분명 그가 알던 게임 지식으론 마차가 불탄 후, 마부의 시체를 뒤지면 꽤나 값진 물건이 나왔었는데, 저 옷 아래 숨겨진 불룩한 것이 그건가 싶었다.

“일단 벌레 먼저 처리하고 가는 게 좋지 않나?”

-그게 좋겠군.

결국 차원에게 어떤 공격도 안 먹힌다는 걸 느꼈는지 뒷걸음질만 치던 마부는, 근처에 있던 노예 하나가 다리를 걸자 뒤통수로 넘어졌다.

마부는 이판사판이라 생각하곤 되려 눈을 부릅뜨며 그들을 노려봤으나, 노예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슬슬 다가갔다.

-잠깐,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결국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마부. 그러나 노예들은 넘어진 마부에게 달려들며 자신들이 당했던 짓을 그대로 갚기 바빴다.

처절한 구타에 못 이긴 처절한 비명소리가 언덕 아래편에서 울려 퍼지던 그때, 찢어진 마부의 옷가지 사이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이게 뭐야?

한창 주먹을 날리던 노예 중 하나도 그걸 보고선 거침없이 손을 뻗었는데, 손가락 끝에 걸려 올려진 건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탐욕스러운 누런 빛깔이었다.

-이거 금이야?

한낱 마부의 목에 걸려 있기엔 너무나 값진 금빛 목걸이.

게다가 목걸이의 가장 묵직한 부분에는 큼지막한 보석까지 박혀 있었다.

그걸 보자 노예들의 목젖이 자연적으로 꿀렁였지만, 앞으로 나선 울프릭은 재빨리 목걸이를 낚아채고 차원 앞으로 가져갔다.

-이걸 원하는 건가?

계속해서 목걸이를 보던 차원의 탐욕에 물든 눈길을 읽었는지, 눈치 좋게 먼저 행동한 울프릭이다.

“내가 가져도 괜찮겠어? 저 사람들도 꽤나 밝히는 눈친데.”

실제로 이 물건을 밖으로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능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설령, 가져갈 수 없을지라도, 저 정도의 목걸이라면 이 게임 속 현실 세계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터.

-우리 목숨 전부 구해줬는데, 이 정도 보답은 당연한 일이지.

그 말에 목걸이를 탐내던 노비들도 아무런 불만 없이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그러던 찰나, 피투성이가 된 마부는 재빨리 기어오며 차원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그 목걸이만은 안 됩니다, 요정님!

아까까진 차원을 몬스터라 부르던 마부도 금세 그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

-그 목걸이는 저희 집안에서 3대째 내려오는 증조할머님의 유품으로….

-유품은 무슨. 그때 신상이라고 자랑했으면서.

옆에 있던 리처드의 중얼거림에 분위기는 더욱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게… 그러니까. 유품 중에서도 신상… 으악!

마부의 헛소리가 이어지지 못 하게 노예들은 다시 그를 끌고가 신나게 밟아대기 시작했고, 목숨만 살려달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알겠습니다! 목걸이는 드릴 테니 제발 목숨만은…!

그에 울프릭의 손에 들렸던 목걸이의 형체가 점점 일렁이더니, 차원의 방에 있는 키보드 위로 툭 떨어졌다.

혹시 자기가 또 헛것을 보는 건가 싶은 마음에 허공에서 나타난 목걸이를 직접 만져보는데, 금속 특유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의 아버지가 금은방을 한 터라 순금은 신물나게 만져본 경험이 있었다.

차원은 본능적으로 목걸이가 진짜 금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진짜 됐잖아?”

현실과 게임이 교류되는 거라면 아이템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진짜 혹시나 하던 생각일 뿐이었다.

만약 이 게임 속 아이템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다크 혼에 숨겨진 온갖 것들이 전부 내께 될 수 있다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27살 먹도록 변변한 직업도 없이 글을 쓰는 자신을 묵묵히 지원해줬던 아버지 이재배.

두 번째로 밀린 집세를 달라며 밤낮 할 것 없이 집에 들이닥쳐 소릴 질러대던 집주인 아줌마.

그 외 밀린 전기세나 인터넷 비와 같은 수많은 고지서들까지.

그 모든 것들을 180도 뒤바꿀 수도 있는 기회가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다.

“살아갈 수 있다. 아니, 잘 살 수 있어.”

지금 자신이 각성한 능력이 결코 헛된 게 아니라는 걸 피부로 느낀 그는 목걸이를 챙기고 방문을 나가던 찰나, 다시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울프릭에게 말했다.

“울프릭. 다음 목적지인 세레칸 마을로 가려면 여기서 조금만 더 가서 계곡 오른쪽 위로 가. 거기에 있으니까.”

-뭐? 그걸 어떻게….

“요정은 모르는 게 없는 법이야.”

이미 게임을 통해 숱하게 다녀본 이동 루트라 보지도 않고 가는 법을 술술 읊은 차원은 모니터 속, 벙찐 표정의 울프릭을 두고 곧장 방을 나갔다.

***

이재배가 운영하는 금은방.

예전에는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들과 단둘이 소박하게 먹고 살만했으나, 근래에는 파리조차 들지 않았다.

턱에 얼굴을 괴며 생각에 잠긴 이재배는 순간 옆 치킨 가게 주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름은 재배면서, 자식 재배는 다 망쳐놨구만. 쯧.

자신과 더불어 아들까지 싸잡아 욕을 먹이는 그 고급진 농담에 무릎을 칠 정도였지만, 자식욕 듣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는 법.

“에이, 재수 없는 영감탱이.”

치킨집 사장을 떠올리며 낮게 욕을 지껄여댔지만, 그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부분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곤 나이 스물일곱을 먹도록 변변찮은 직업도 구하지 못했고, 유일하게 하는 글 쓰는 일도 영 시원찮았다.

그래도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응원했고, 제 딴엔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주니 스스로는 아들에게 별 불만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사랑 없이 자랐던 아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자기 옆에 있어 준 것만으로도 어디냐는 생각도 있었고.

그래도 하는 일만 잘 되면 참 좋은 아들인데.

그런 생각과 함께 푹 한숨을 쉬는데, 가게 종이 울리더니 사람이 들어왔다.

“어서 오….”

“아버지.”

손님이 아니라 아들인 차원이었다.

게다가 차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는 모습에 이재배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는 낯 하던 녀석이 오늘은 왜 저러지? 또 공모전 떨어졌나?’

아니, 27년간 봐온 아들이 그런 상황이라면 저런 표정을 짓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자기 몰래 빚이라도 진 건가?

혼자서 온갖 걱정을 하던 찰나, 아들은 무심하게 품속에서 목걸이 하나를 들이밀었다.

“이게 뭐냐?”

“일단 확인만 해주세요, 아버지.”

“어디서 이런 잡동사니는 주워와선.”

뭔가 먼지 비스무리한 게 묻어서 보석 빛깔도 탁해 보인 터라 장난감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손님은 없으니 아들 부탁 정도야 들어줄 수 있었던 이재배는 목걸이 보석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그 위에 불빛을 비췄다.

“어….”

“아버지?”

순간 이재배는 목걸이을 들고 돋보기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점점 표정이 이상해졌다.

“너, 이거 어디서 난 거냐?”

“네?”

“목걸이에 박힌 보석. 이거 타파이트잖아!”

극히 드문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보석의 종류로, 일반인은 평생 보기 힘든 것이었다.

현실성 있게 설명하자면 1캐럿당 4000만원 가량의 가치를 지닌 놈이라는 것.

방구석에서 컴퓨터 키보드나 매만지던 아들이 이런 목걸이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놀란 이재배는 급하게 아들의 어깨를 부여잡고 흔들어댔다.

“훔친 거냐?”

“훔치다뇨. 제가 아버지 아들인데, 그런 짓 하겠어요?”

놀란 나머지 순간 의심을 하긴 했지만, 평소 차원의 성격으론 이런 물건을 훔치고도 자신에게 속일 자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목걸이를 든 이재배의 손은 계속해서 떨리기만 했다.

그의 안목으로 대충 감정한 결과 그의 손에 8500만원 상당이 들려있으니 말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 거냐? 이건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야?”

“아버지. 그것보다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게 뭐가 있냐? 혹시 빚이라도 진거야?”

“저 각성했습니다, 아버지.”

결국 차원의 폭탄선언에 어떤 반응도 못 하고 어버버거리는데 정작 이차원은 너무나 침착했다.

“아버지. 이거 파실 수 있겠죠?”

“그래, 그래. 팔수야 있지.”

“그럼 저 500만 현금으로 주세요.”

아직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조차 안가는 이재배는 몽롱한 얼굴로 금고에서 500만원짜리 돈뭉치를 차원에게 건넸는데,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5만원 권 100장을 가지고 금은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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