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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Epilogue.
테드가 네메스 대륙의 진정한 신이 되고나서 네메스 대륙에 더 이상 이방인… 사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을 제외하면 변한 것은 딱히 없었다.
모험가들의 미궁을 찾았으며, 몬스터도 시시때때로 나타났다. 시스템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네메스 대륙에 있는 모든 이들은 누구나가 기적을 체험했다.
과거 사탄이라는 악신이 악마를 이끌고 체험했을 때, 네메스 대륙의 인구수는 절반이상으로 줄어들었다. 시스템의 제약없이 권능을 발휘하는 악마는 재앙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고, 재앙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악신에 대적하는 신이 탄생한 것이다.
원래는 인간이었던 그는 인간을 초월하고 네메스 대륙의 진정한 신이 되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악마로 인해 파괴되었던 도시와 마을이 복구되었으며, 악마로 인해 죽었던 자들이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 기적을 두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한 자들은 감히 신을 부정할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또 다른 기적을 보았다. 흔적도 없이 소멸한 달이 다시 밤하늘에 나타난 것이다.
네메스 대륙의 누군가는 신의 눈치를 살피며 숨죽이며 전정긍긍했으며, 누군가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술잔을 들어올렸다.
대부분의 네메스 대륙의 주민들은 최초로 탄생한 네메스 대륙의 신을 찬양했다.
누구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스템에 의해 직접 두 눈으로 신화의 한 장면을 확인했다.
“네메스 대륙의 유일신이자, 마법의 신! 테드 크루시안을 위하여!”
누구나가 그의 모습을 다시 보기를 원했다. 하지만 테드 크루시안이 나타나거나, 보았다는 말은 소문만이 무성할 뿐, 실제로 확인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 신은 통치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 ⁂ ⁂
바알은 매의 눈으로 마계의 딱딱한 돌바닥위에 머리를 박고 있는 악마들을 노려봤다. 총 3천에 달하는 악마들은 제각각 신음과 땀방울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3배에 달하는 중력을 견디면서 벌써 7일 동안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다. 악마의 뛰어난 육체에도 한계가 찾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웠다.
“야! 거기 닭벼슬! 씨발놈아! 제대로 안해?! 확 통닭으로 만들어 버린다?!”
바알의 고함소리에 그들은 일제히 긴장했다. 이전에 바알에게 개기다가 반나절 동안 개처럼 얻어터지고 죽어버린 서열 199위의 악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오, 병신 새끼들! 사탄 새끼한테 달라붙냐? 니들 인마! 내가 엉?! 걔가 내 개쩌는 테크닉에 안 빠졌으면?! 내가 그 녀석의 이게 아니었으면?! 어엉?!”
바알이 새끼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렸다.
“니들 다 뒈진거야! 내가 사정사정해서 어쩔 수 없이! 사탄의 협박 때문에 사탄에게 협력한 니들을 살려 준거야! 엉?!”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나. 바알. 네 말대로 저것들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탄에 협력했다.”
바알에게 말한 것은 긴 은발의 남성이었다. 중성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그는 고귀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야. 루시퍼. 부족하다고. 부족해. 저것들은 정신머리가 글러먹었어. 악마가 되가지고 협박에 굴한다는 게 말이 되냐? 쪽은 저 개새끼들이 다 팔고 다닌다고!”
“악마도 생물이다. 살고 싶다는 본능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 거기다 사탄은 터무니 없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악마로서 가오가 있지! 협박당할 바에야 그냥 싸우다 뒈지라고! 병신들아!”
루시퍼는 작은 몸으로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는 바알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바알에게 걸린 저 땅바닥에 머리박고 있는 악마들에게 약간의 동정심이 생긴다. 오늘 아침에 눈에 낀 눈곱만큼.
“바알. 사이나가 결혼한다고 들었다. 그게 언제지?”
씩씩 거리던 바알은 루시퍼의 물음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너, 자기 딸의 결혼식이 언젠지도 모르냐? 아비 맞냐?”
“유전적으로 확실하게 내가 사이나의 아비다.”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병신아. 네가 직접 물어봐. 나한테 묻지 말고.”
“마지막으로 대화한 게 130년이 넘어간다. 다 큰 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군.”
“병신. 그냥 물어보면 되지. 아니면 니 마누라한테 물어보던가. 알고 있을거 아냐?”
“아내가 직접 알아보라는군. 아니면 너도 모르는 건가?”
“야! 내가 인마! 신이랑 떡을 오질나게 친 년이야! 그걸 모르겠냐?”
“사위랑 했다는 건가. 바람인가?”
“바람은 무슨 그냥 즐기는 거지. 근데 사위라 잘도 말하네. 너 그놈이랑 만난 적도 없잖아.”
“사탄을 이긴 남자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한가? 그나저나 사이나의 결혼식은 언제 어디서 시작하지?”
“안 가르쳐줘 씨발놈아!”
바알이 소리를 꽥 지르고 루시퍼를 발로 찼다. 하늘을 날아가던 루시퍼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모습을 감췄다.
“아. 그놈이랑 떡을 못 친지 꽤 되는데… 결혼하고 나면 나 버리는 거 아니겠지? 이제 그 놈 아니면 만족 못 할 것 같은데.”
바알이 허공을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쭈, 닭대가리! 또 자세 내려간다! 앙?! 너 진짜 통닭 되고 싶냐?!”
⁂ ⁂ ⁂
테드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검은색 넥타이를 어색한 듯 연신 만지작거렸다. 항상 편한 복장을 추구하고, 정장이란 것을 입을 기회가 별로 없다보니 갑옷을 입은 것 마냥 갑갑하며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넥타이를 조정하면서 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시스템을 이용해 네메스 대륙에서 좋을 대로 날뛰고 있는 악마들을 정리한 테드는 창조주 제울을 만났다.
창조주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초면이 아닌 창조주는 지나치게 쿨했다.
테드는 그에게 클리어의 보상. 소원을 빌었다.
바로 사탄과 악마들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창조주는 그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루어주었다. 그리고 잘해봐라. 라는 말을 남기고서 쿨하게 사라졌다.
사탄과 악마에 의해 파괴된 도시와 전투로 인해 소멸한 달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부탁하지 않았던 일이다. 아마도 그의 서비스이니라.
그리고 우주에 잊어먹고 온 검의 공주가 일주일 뒤, ‘스페이스 데드’의 스킬을 사용해서 돌아와 생지랄을 떨었던 것은 작은 헤프닝에 불과했다.
정장 마이의 단추를 채웠다.
네메스 대륙의 신이 되고서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시스템을 만지거나 미궁을 없애거나 하지 않았다. 네메스 대륙은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밸런스는 완벽하게 맞춰져 있었다. 굳이 신이 있을 필요가 없을 정도다.
“오. 슈트 핏 제대로 받는데.”
테드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투블럭으로 깔끔하게 커트한 머리카락과 슬림하게 단련되어 있는 몸은 모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럼 가볼까.”
화장실을 나서자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여성이 가장먼저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색의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검은색 자켓을 입고 있는 여인이었다. 연예인 뺨치는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가운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테드와 마주치자 그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요. 괜찮습니다.”
외국인으로 보이는데도 그녀의 입에서 능숙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주위에 있던 남자들이 깜짝 놀랐다. 외국인인줄 알고 말을 거는 것을 망설이고 있던 자들이 수두룩했다. 그 중에서 노골적으로 테드를 노려보는 이도 있었다.
테드가 사이나를 향해 오른팔을 내밀자 그녀가 익숙하게 팔짱을 꼈다.
사이나의 왼손 약지에 있는 백금반지의 다이아몬드가 천장에 달린 조명빛에 유난히 반짝거렸다. 결혼반지를 확인한 남자들이 탄식했다.
테드는 주변으로부터 쏟아지는 질투와 시기를 코웃음으로 받아치고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결혼식의 방명록을 작성하는 곳이었다. 테드는 상의 주머니에서 축의금이 든 봉투를 꺼내들었다. 얇은 봉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안에 들어 있는 것은 1억짜리 수표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 백억을 넣고 싶었지만, 그럴 경우 커다란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아주 예전에 은혜를 입었다는 식으로 편지로 함께 넣어났으니 아마 의심 없이 수표를 받아줄 것이다.
수표를 추적한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 세계의 신에게 조금 도움을 받았으니까.
“어머. 처음 보시는 분이네요. 신랑측의 지인이신가요?”
방명록에 ‘결혼 축하합니다. 행복하세요.’라는 상투적인 말과 사인을 남기던 테드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고운 한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 있었다.
테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주의 하며 입을 열었다.
“예. 그렇죠. 뭐. 그 녀석이 결혼하다고 들어서요. 이렇게 축복해주러 찾아왔죠.”
“그렇군요. 옆에 계신 여성분은… 부인이신가요?”
“예. 3개월 전에 결혼했죠. 사정이 있어서 외국에서요. 예쁘죠?”
테드가 사이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이나는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제가 본 어떤 사람보다 예쁘네요. 혹시 외국에서 오셨나요?”
“예. 좀 많이 먼곳에서 셋이서 왔죠.”
“…셋이라면?”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테드의 일행으로 보이는 자는 없었다.
“아내가 홀몸이 아니거든요.”
“어머! 축하드려요. 전혀 그렇게 안보였는데.”
“얼마 되지 않았어요.”
테드는 그녀에게 하얀 봉투, 축의금을 건넸다. 중년 여성은 그 봉투를 받아들이며 적혀 있는 이름을 확인한다.
“…강성운?”
“예. 제 이름이죠. 외국에서는 테드라고 불리지만요. 일단 저도 한국인이거든요. 특이한가요?”
“아뇨. 잠깐 제 딸, 성아와 이름이 비슷해서요. 성씨까지 똑같네요. 성운씨는 어딘가 남편을 닮았어요. 성아와 나란히 있으면 남매로 착각할지도 모르겠어요.”
무심코 말을 걸어버린 것도 그탓이라며 그녀가 호호 거리며 웃었다. 테드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그러나 뺨이 경련하고 있었다. 눈물이 날것같은걸 억지로 참는게 스스로가 알 정도이니 아마 매우 어색한 웃음이 아닐까.
잠시 뒤, 테드가 망설이듯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부탁이요? 곤란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요? 무례한 짓이란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생각나서요.”
그녀는 테드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딘가 울것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인연이니 괜찮겠죠.”
그녀가 양팔을 벌렸다. 테드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포옹했다. 테드의 뺨을 타고 눈물이 타고 흘러내렸다. 참으려고 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만약 아들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아마도요.”
10초 정도 그녀와 포옹했던 테드가 물러나면서 깜짝 놀랐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왜 그러세요? 제가 뭔가 실수라도…?”
테드가 당황해서 묻자 그녀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자각했다. 왜 흘리는지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사이나가 그녀를 향해 하얀 손수건을 건넸다.
“고마워요.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화장이 많이 번지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자, 눈앞의 청년 또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팔을 허공에서 이리저리 흔들며 어찌할 줄 모르는 게 상당히 당황한 모양이다.
“추한 꼴을 보였네요. 성운씨 탓이 아니에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시집가니, 최근 작은 일에도 눈물이 자주 나오거든요. 오늘은 울지 않기로 했는데… 실패했네요.”
그녀가 손수건을 내려다봤다. 화장이 번져 있어서 하얀 손수건을 더럽혀져 있었다.
“아. 손수건을 제가 빨아서 드릴게요.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아뇨. 그런 수고를 끼칠 순 없습니다. 저희는 결혼식이 끝나면 곧바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그녀가 미안한 기색으로 사이나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이윽고 옆에서 다른 객이 찾아왔다. 테드는 그녀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서 사이나와 함께 식장으로 들어섰다.
늘어서있는 의자에 사이나와 함께 앉은 테드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님. 그 분은….”
“어머니야. 이곳엔 강성운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과에서 없어지는 바람에 기억하지 못하시거든.”
“기억을 주입하면….”
“그건 가짜잖아. 그럴 생각은 없어.”
테드는 잠시 눈을 감았다. 제 아무리 테드가 한 차원의 신이라도 인과를 복구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과를 억지로 새기는 것은 가능했다. 다만 그렇게 하면 높은 확률로 인과 자체가 붕괴해버려서 이 세상 자체가 멸망할 수도 있었다.
“사이나. 나는 만족해.”
다시 눈을 뜬 테드가 평소처럼 씩 웃으며 그녀의 아랫배를 향해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그녀의 안에 있는 자신과 그녀의 생명의 씨앗이 똑똑히 느껴졌다.
“남자일까. 여자일까?”
“아직 성별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주인님이라면 알 수 있지 않나요.”
“미래를 보면 그렇긴 한데…. 그러고 싶지 않아. 이건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싶거든.”
테드가 사이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드디어 결혼식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테드는 입장하는 신랑을 매섭게 노려봤다.
좀 말끔하게 생겼는데. 제비같이 생기기도 했고. 중소기업에서 일한다고 했던가? 성격이 나쁘지 않다고 듣긴 했는데.
테드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새어나오려는 조짐이 보이자, 사이나가 재빨리 그녀의 손등을 꼬집었다. 정신을 차린 테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기운을 갈무리했다.
이어서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입장한다. 옆에 아버지와 함께 들어온다. 테드는 그 둘을 번갈아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기억속에 있는 여동생은 마냥 어렸는데, 이렇게 보니까 어색하다.
“예쁘게 자랐네. 뭐, 사이나보단 못하지만.”
매우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결혼식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봤다. 테드 로선 아마 절대로 잊지 못할 결혼식 중 하나다. 이윽고 모든 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사진을 찍는 시간이 다가왔다.
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오랜만에 뷔페를 간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사진 찍지 않으실래요?”
테드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 것은 한복을 입은 중년 여인. 어머니였다.
테드는 잠시 망설였다. 이곳은 자신의 차원이 아니지만 힘의 제약을 제외하면 어떤 행동의 제약도 없었다. 이곳에 오기전 이곳의 신들 중 한 명인 크루시안에게 마음대로 즐기다 가라는 말을 들었다.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테드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굳어서 억지로 웃는 모습이 역력한 새신랑에게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사이나와 함께 끄트머리에 선다. 문제라고 한다면 사이나의 미모가 너무 뛰어나는 바람에 사진의 주인공이 신랑 신부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대충 한 두 장 정도만 찍어줄 생각이었다.
이윽고 신부가 부케를 내던졌다.
“저 절망적인 운동신경은 여전하군.”
테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바로 뒤에 있는 친구에게 던질 생각이었겠지만, 엉뚱하게도 부케는 더욱 많이 날아가 사이나에게 날아왔다. 얼떨결에 받아든 사이나가 자신을 바라보는 신부, 시누이를 향해 한 번 웃어주었다.
“확실히 부케의 뜻이….”
“받는 사람이 결혼한다는 거였지. 유부녀가 받을만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된거. 이쪽 세계에서 한 번 더 결혼할까? 보고 있으니 나도 하고 싶어졌어. 하객은 얼마 없겠지만.”
“실은 제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한 번 더 보고 싶으신건 아닌지요?”
“들켰네. 사이나를 당해낼 순 없다니까.”
테드와 사이나가 마주보며 웃었다.
결혼식은 끝났다.
⁂ ⁂ ⁂
테드는 자신의 배위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억지로 눈을 떴다. 몇 번이나 느끼는 거지만 물리적인 충격으로 눈을 뜨는 것은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테드의 배위에는 뭐가 불만인지 볼을 잔뜩 부풀린 검은 머리와 붉은 눈이 인상적인 새하얀 피부의 여아가 있었다. 제 엄마와 똑 닳아 귀여운 아이는 테드가 일어났음에도 배위에서 제자리 점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딸아. 이 아빠는 엄청 피곤하단다. 배위에서 날뛰는 건 그만두지 않을래?”
“벌써 7시라고요!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잖아요!”
테드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7시이고, 9시에 출발하기로 했잖아. 엄청 여유인데.”
“일어나요! 아빠! 약속했잖아요?! 그리고 저 심심해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엘리제. 아빠 손은 깨무는 게 아니야.”
테드가 상체를 일으키자 강제로 푹신한 침대위로 넘어진 엘리제가 꺄르르 웃더니 침대에서 내려가 밖으로 뛰어 나갔다.
“엄마! 아빠가 깨어났어요!!”
아무래도 엘리제의 행동 뒤에는 그녀의 입김이 닿았었나보다.
테드는 피식 웃으며 침대에 내려섰다가, 벽에 걸린 여러개의 액자를 쳐다봤다. 아기자기하게 장식되어 있는 액자들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두 개의 커다란 액자에는 결혼식 사진이 있었다.
하나는 하객들과 함께 네메스 대륙에서 찍은 결혼사진.
하나는 사이나와 둘이서 지구에서 찍은 결혼사진.
평소에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어쩌다 한 번씩 눈에 들어오게 되고 추억을 생각하게 된다.
“아빠! 바알 언니가 왔어요!”
상념에 잠겨 있던 테드는 생기가득 한 엘리제의 외침에 깜짝 놀랐다.
“뭐야, 바알도 온 거야? 엘리제, 아빠가 누누이 말하지만 절대로 그 녀석을 닮으면 안 된다. 그리고 바알은 언니 아니야. 외모에 속으면 안 돼. 할머니… 아니. 화석이야. 화석. 바알 화석이라고 불러.”
============================ 작품 후기 ============================
에필로그를 맞았습니다. 후기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에필로그의 내용을 해칠것 같아 다음회에 적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