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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결전.
34. 결전.
기사 사론은 눈이 부실 정도로 새파란 하늘과 대조적으로 붉게 불타는 도시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나고 자랐으며, 지켜야하는 도시는 한 마리의 악마로 인해 멸망에 치닫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시민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울린다. 당장 그들에게 달려가 도와주고 싶은 사론이었지만 이 사태의 원인인 한 악마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만은 없었다. 기사로서 도시를 파괴한 원인을 척결해야 한다. 저 악마가 있는 한 늦든 빠르든 시민들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빼어든 검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상대는 도시 하나를 장난치듯이 멸망시킨 악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건 해서는 안 될 이이다. 자신은 기사다. 지켜야 할 시민들을 버리고 목숨을 연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의 검에 푸른빛의 마나가 서린다. 박쥐같은 날개를 펼치며 하늘에 떠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악마의 시선이 사론에게 향했다.
“그 갑옷과 검… 기사인가. 너희 같은 어리석은 족속들을 알고 있지. 제 목숨하나 가누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지킨다는 게 가당찮구나.”
사탄이 재밌는 희극이라도 본 것 마냥 웃었다.
사론은 그 비웃음에 맞서면서 검을 양손으로 잡고 오른쪽 어깨위로 들어올렸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다.”
저 악마와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차라리 도움을 요청하는 시민들을 구하는 것이 더 나을 선택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악마가 도시 위에 있는 한 늦든 빠르든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의 경우, 아주 적은 확률로 저 악마가 죽는다면 살아 있는 모두를 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약간의 상처를 남긴다면 어딘가 살아남은 기사나 병사들이 저 악마를 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저 빌어먹을 악마에게 닿을 일격을 위해 몸 안의 마나를 한계까지 쥐어짜낸다. 막대한 마나의 무리한 운용은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만들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사론의 푸른색 검기가 새하얀 검강으로 변한다. 본래라면 사용하지 못했을 검강을 막대한 마나를 이용해 일시적으로 만들어냈다.
“기사인 내가! 기사도를 버릴 수는 없다!”
“역시 기사라는 것들은 끝까지 웃기는 놈들이군.”
“기사를 모욕하는 그 발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사론의 검이 하얗게 불타오른다. 검강이 극에 달했다.
사론이 망설임 없이 검을 대각선 아래로 휘둘렀다. 반월 모양의 백색의 검강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흥.”
사탄은 그 조악한 기사의 일격을 바라보며 코웃음쳤다.
남들 눈에는 제대로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를지 몰라도 사탄의 눈에는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느릿하게 보였다. 피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러나 피할 이유가 없었다.
조금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검강이 사탄의 검은 피부에 부딪혔다. 바위에 부딪힌 물풍선처럼 검강이 흩어져 사라졌다.
그 절망적인 광경을 본 사론의 다리가 무너지듯 쓰러진다. 검을 지팡이삼아 일어서려고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의 인생 최대의 일격의 후유증은 당장 전투를 속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 피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어도, 손톱이 피부에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어도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정신력만으로는 부족했다.
“네놈은 내가 봐온 기사들 중에서도 중증이군. 그 정도면 정신병이다. 적당히 하고 절망해라.”
사론이 기침과 함께 피를 게워냈다. 몸 안이 뒤틀렸다. 마나를 더 이상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솔직히 말하면 검을 들 힘도 없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누군가가 나타나 너를 막을 것이다!”
사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외치는 것 밖에 없었다.
“영웅이나 신을 말하는 건가? 너희들 기준의 영웅은 내 기준으로는 고블린이나 다름없다. 아. 신이라면 있군. 너의 눈앞에 있는 이 내가 바로 마신이니 말이다.”
사탄이 웃었다. 그가 손을 휘젓자 도시를 태우던 시뻘건 불꽃이 한층 더 강해진다.
또한 사론의 주위로 불꽃이 일렁이며 나타났다. 불꽃은 사냥하는 맹수처럼 천천히 사론을 향해 다가간다.
사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피할 힘따윈 남아 있지 않았다. 저 앞의 악마를 즐겁게 하지 않도록 검을 지지대 삼아 서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신이시여.”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는, 네메스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을 찾았다. 그 만큼 사론은 절박했다. 눈앞의 스스로를 마신이라 칭하는 악마를 죽일 초월적인 존재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바랬다.
불꽃이 점점 다가왔다. 뜨거운 열기에 땀이 비오듯이 내려온다. 그러나 땀을 불의 열기에 곧바로 증발한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땀을 흘림에도 건조한 사론의 뺨에 차가운 물방이 떨어졌다. 눈을 감고 있었기에, 열기 속에 있었기에 그 감촉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두 번째의 물방울이 뺨을 때린다.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가 연거푸 그의 몸으로 떨어진다.
“……이건 비?”
갑자기 일어난 이변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속에 있으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봤다.
부자연스러운 먹구름이 있었다. 먹구름은 지금 막 나타나기라도 한 듯이 불타는 도시 전역으로 소용돌이치듯 펴져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는 비가 많아졌다.
10초가 지났을 무렵에는 장대비가 되어 도시를 물로 흠뻑 적셨다. 사론의 몸도 금방 젖어버리고 그 주위에 있던 불꽃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도시를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던 불길이 점점 사그라지며 사라진다.
사론이 무의식적으로 악마를 찾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의 일은 악마의 짓거리가 아닐터다. 악마는 도시를 파괴하려고 들었으니까.
붉은 머리의 악마는 어느 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론이 있는 쪽이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사론의 뒤쪽이었다. 사론이 사탄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피로로 인해 흐릿해지는 시선 속에서 하늘에 있는 새하얀 인영을 발견한다. 그는 하얀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며 먹구름이 태양빛을 가리는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새빨간 안광만큼은 또렷하게 보였다.
“……신?”
그를 보며 사론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메스 대륙에 신은 없다.
“테드 크루시아아안!!”
느닷없이 사탄이 고함을 질렀다. 깜짝 놀란 사론이 사탄을 바라보자, 그는 날개를 한껏 펼치며 그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테드가 손을 들었다. 검지를 뻗어 사탄을 가리켰다.
시퍼런 번개를 머금으며 방전하고 있는 먹구름에서부터 소리 없는 뇌전이 번뜩이며 사탄을 향해 내리쳤다. 한 순간 사방이 밝아졌고, 사탄이 바닥에 쳐박혔다.
테드의 손가락은 내려가지 않았다. 이어서 뇌전이 사탄을 향해 몰아친다.
사론이 세아라기로 십 몇 번이다. 그리고 뒤이어 세상을 찟는 듯한 소리가 뒤늦게 지상으로 떨어졌다.
소리가 멈추지 않고 번개도 멈추지 않는다.
벼락이 백번 넘게 사탄을 향해 떨어졌을 때, 사탄을 가리키던 테드의 검지가 접혔다.
사론은 뒤늦게 찾아오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사탄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짓밟힌 벌레처럼 뻗어있는 사탄의 모습이 보였다. 그 검은 몸에 번갯불이 사라지지 않고 파지직 거리고 있었다.
“……죽었나? 저 악마가?!”
사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탄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일어선다. 감전되었던 몸은 어느새 완벽히 회복되어 있었다.
“완전해진 전해진 내 육체에 상처를 입힐 줄이야. 평범한 번개가 아니군.”
사탄이 목을 흔들었다. 우두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찌뿌등한 몸이 풀려나간다.
“좋은 전기 마사지였다. 안마사.”
“……곧 죽을 놈이 입만 살아서는….”
테드가 손을 내렸다.
사탄이 허리를 아래로 숙여졌다. 어마어마한 중력이 사탄의 몸을 짓눌렀다. 단단한 지면이 파인다. 아니, 파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면이 쩌억쩌억 거리며 당장이라도 붕괴할 것처럼 금이가고 있었다.
허나 사탄은 느리면서도 확실하게 허리를 쭈욱 폈다.
“천 배 정도인가…. 아주 풀코스로 나를 즐겁게 해주는 구나. 다음은 뭐냐?”
사탄이 득의양양하게 웃을 때, 그 품으로 검의 공주가 축지를 이용해 파고들었다. 손에든 청색의 단검으로 그 심장을 향해 찔렸다.
“오호. 인형이 아닌가. 그때는 저 놈과 같은 편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 나를 죽이기 위해 손을 잡았군.”
사탄은 천에 달하는 중력을 버티면서 태연히 손을 뻗어 단검을 날을 붙잡았다. 검의 공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번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완전해졌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점이다.
“59번검. 프로즌 브레이커. 발동.”
푸른색 단검이 산산이 부서져 나간다. 동시에 사탄의 몸에 얼음이 달라붙더니, 그의 몸을 침식하듯이 뒤덮는다. 졸지에 사탄은 얼음속에 갇히게 된다.
보통의 생물이었다면 곧바로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사탄이다. 이 정도는 겨우 잠시간의 속박에 불과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얼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340번검. 둠스데이. 197번검. 홀리워크.”
흑과 백의 두 개의 장검을 꺼낸다. 각각 마검과 성검인 그것들을 서로 갖다 붙인다. 그에 검들이 제각각 빛을 내며 합쳐진다.
“시크릿 넘버 3. 아포칼립스 블레이드.”
나온 것은 회색의 바스타드 소드. 검의 공주는 그 검을 양손을 쥐었다. 이 검은 ‘심판의 검’에 미치진 못하지만 소멸의 힘을 가지고 있다. 즉, 사탄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검이다.
사탄의 몸을 감금하던 얼음이 부서진다. 그 타이밍을 노린 검의 공주가 검을 휘두른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몸이 4개로 흐릿하게 보였다. 잔상 혹은 환영이라 할 수 있는 그것들이 사탄의 몸을 중심으로 무희가 춤을 추듯이 검무를 한다.
4개의 회색의 검이 사탄의 몸을 사정없이 베어 가른다. 검날은 확실하게 사탄의 검은 피부를 베어내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치명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숙하게 검날이 들어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사탄의 상처는 1초가 지날때마다 재생하고 있었다.
사탄이 손을 뻗었다. 4개의 환영중 검의 공주를 본체를 손쉽게 찾아내 그 머리를 붙잡는다. 검의 공주가 벗어나기 위해 사탄의 팔을 베어내거나 복부를 발로 차는 등의 발악을 했지만, 작은 생채기가 생기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사나운 벌레에 물리는 기분이다.
“인형은 돌려주지.”
검의 공주의 머리를 붙잡고 테드를 향해 집어던졌다.
검의 공주의 몸은 순식간에 음속을 초월한다. 그 여파만으로 주위의 건물이 박살나고, 검의 공주의 새하얀 드레스가 마찰에 의해 타올라 순식간에 재로 변한다.
테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의 공주를 향해 마법을 발동했다. 충격과 속도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맨몸에 회색의 검하나만 달랑 들고 있는 그녀를 받아든다.
“……불가능.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아. 이미 저건 그분들의 영역에 달했어.”
“완전해졌다는 게 그건가….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지.”
테드가 정면을 바라봤다. 도약한 사탄이 테드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테드는 반사적으로 앱솔루트 배리어의 마법진을 전개한다.
사탄이 웃으며 권능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창조한 루나틱 블레이드를 높이 치켜들었다. 검을 아래로 내리긋자 앱솔루트 배리어가 종이조각처럼 찢겨져 나간다.
“아무리 위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마법! 그 마법을 상대하는 것에 있어선 이 검만큼 편리한건 없지!”
테드가 한 손을 들어 검남을 붙잡았다. 마법이 아니라 영력을 두른 손이었다. 마력이라면 몰라도 영력이었끼에 루나틱 블레이드는 베지 못했다.
“옆구리가 비었군!”
사탄의 발차기가 테드의 몸에 작렬한다.
검의 공주를 안은 테드가 날아가 바닥에 쳐박혔다.
순간적으로 발동한 충격 감소 마법과 위광의 방어력이 아니었다면 조금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일격이었다.
테드는 품안에 있는 검의 공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심판의 검은?”
“…머리 부분 손상률 23%. 머리를 붙잡혔을 때 손상이 제법 컸어. 지금 심판의 검을 꺼내기 위해선 약 85초의 시간이 필요해.”
“더럽게 길군. 손상 부위의 수복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0초. 최대한 수복에 신경 쓰고 있어. 그때까지 전투는 불가능해. 괜히 적의 전력을 확인한답시고 공격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시킨 일이니 신경쓰지 말고 수복에나 집중해. 30초 정도야 아무 문제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 심판의 검이란 것 없이 쓰러뜨릴지도 모르지.”
테드는 마법으로 검의 공주를 조금 떨어진 곳에 공간 이동시키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사탄이 세계간섭의 권능으로 주위에 루나틱 블레이드 20자루를 창조해 테드를 겨누었다.
“방금의 공방으로 알았다. 네 육체능력의 한계를 말이다. 그리고 이 검들은 마법으로 막지 못하겠지. 죽어라.”
20자루의 루나틱 블레이드가 테드를 향해 유성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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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Trace on!
오늘은 투표일입니다. 다른 건 아니고. 뭐,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