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33. 미카엘라
성의 내부는 깨끗했다. 너무 깨끗해서 인간미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오죽하면 사이나가 감탄을 했을까.
또 장식품이란 게 극단적으로 적었다. 복도에는 으레 있을법한 그림 작품이나 꽃병같은 것도 하나 없었다.
“이 방이… 아니군.”
테드는 근처에 있는 방문을 열며 내부를 살피고 실망한 기세를 살피지 못했다. 성안에는 수많은 방이 있었지만, 정작 무언가 있는 방은 없었다. 전부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방들뿐이었다. 이것만 봐도 이 성이 누군가가 살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거기다 이 성. 쓸데없이 넓기만 하다.
“차라리 인원을 나눠서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낙담하는 테드를 보고 사이나가 의견을 표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이곳의 인원은 총 넷으로 그녀들 전원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스킬과 마법을 이용해 연락을 하면 소통의 문제는 사라진다. 하지만 테드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시스템이 있는 곳이야. 시스템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이상은 개별행동은 위험해. 아무리 나라도 시스템에 대해선 모르니까 말이지.”
“알겠습니다.”
사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이 정도로 기분 나빠할 리가 없다.
“질문. 시스템이란게 뭐야?”
검의 공주가 물어왔다. 그녀가 예전에 활동하던, 만들어졌던 시대에는 시스템이란게 없었다.
테드는 복도에 늘어서있는 방들의 문을 일일이 열어 확인하면서 질문에 대답한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네메스의 신같은 거야. 내가 볼때는 일종의 법칙에 가깝다고 생각되지만.”
“……법칙?”
“시스템은 이 세계의 물건 하나하나에도 간섭하고 있어. 그건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야. 시스템이 있으니까 조금더 쉽게 강해질 수 있고, 시스템이 있으니까 특이한 마법이나 기술을 ‘스킬’이라는 편리한 것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지. 던전과 미궁도 시스템의 관리 하에 있고, 몬스터 또한 시스템이 관여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의문. 듣기로는 그 시스템이란 건 그분들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어. 왜 신이라고 불리지 않는 거야?”
“시스템은 언제나 기준을 가지고 움직이거든.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정해진 대로 판단하는 거야. 자기 의지 같은 건 하나도 없지. 말 그대로 시스템.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일종의 법칙.”
“……마스터의 목적은….”
“시스템의 조종이라고 해야하나. 조작이란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네. 여하튼 그거야. 시스템의 기준을 조금 변경해서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되도록 하는 거. 또는 사탄에게 불리하게 조작하는 것.”
게임으로 치자면 캐릭터의 능력을 최대로 올리거나 몬스터의 능력을 최대로 낮추는 것. 말하자면 일종의 치트. 혹은 핵.
그렇게 설명하면서 온갖 문을 열어 다녔을 때. 드디어 원하던 방을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설마 20분이나 걸릴 줄이야.”
다른 방과 달리 황금색 테두리가 있는 방의 문을 열자 서늘한 냉기가 테드 일행을 덮쳤다.
그 방의 내부는 마치 던전처럼 공간이 뒤틀려 있는 것처럼 내부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곳은 회색으로 가득 찬 도시였다.
지구에나 있을 법한 고층 빌딩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다. 건물의 숫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구에 있는 어지간한 도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가 아닐까. 특이한 점은 인기척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느껴지지 않는 점이다.
빌딩을 보자면 불이 켜져 있는 곳도 있는데 기이하게도 인기척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다. 왜 불이 켜져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뭐여. 존나 네모난 것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구만. 보고 있자니 파괴본능이 샘솟네. 아, 하나만 부수면 안 될까?”
“관둬. 바알.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우선은 이 도시가 뭔지 부터 알아야지.”
자동차 하나 없는 아스팥트 도로를 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밝은 대낮인데도 불이 켜져 있는 가로등이 있었다. 사람하는 없는데도 녹색불과 적색불을 번갈아가며 가리키는 신호등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은 물론이고 쓰레기통이나 가로수같은 것도 일절 없었다. 삭막하다는 단어가 더 없이 어울리는 도시였다.
“마치 아포칼립스계열 작품에 나오는 도시같네.”
“도시라…. 너 여기에 알고 있냐? 어떻게 이것들을 보고 도시란 걸 알았냐?”
바알이 물어왔다. 테드는 아차했다. 자신이야 지구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익숙하다 못해 마음 한구석으로 반가워하고 있지만, 그녀들은 달랐다.
그녀들에게 있어 높은 고층 빌딩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건축물로 보일 것이며, 아스팔트 도로는 시커먼 땅으로 보일 것이다. 인기척이 전혀 없기에 도시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내가 사도란 것은 알고 있지? 이 도시는 지구의 도시랑 매우 닮아 있어.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여기가 도시라고? 아주 요상한데서 살았구만.”
“내가 살던 곳은 이 정도로 발전하지는 않았는데… 뭐. 익숙해지면 편리해.”
아스팔트 도로를 걷던 테드는 이 방에 들어왔을 때처럼 조금 특이한 고층 빌딩을 찾고 있었는데 도저히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대신 근처에 있는 아무 빌딩 쪽으로 움직였다.
유리로 된 자동문이 테드를 인식하자 저절로 양옆으로 열렸다. 일행들이 조금 신기한 기색으로 쳐다본 반면에 테드는 익숙하다는 듯이 빌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눈을 크게 뜬다.
건물 내부는 밖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 같은 새하얀 공간이었다. 그리고 작거나 큰 수 십개의 화면들이 공간 내부에 여기저기 있다. 테드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 내딛었다. 새하얀 공간이라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바닥이 감촉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불안해서 뒤를 돌아보자 열려 있는 자동문이 보이며 뒤의 회색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테드는 안심하고 여기저기에 있는 화면들을 볼 수 있었다.
“이 화면 속에 나오는 것은… 몬스터?”
건장한 남성의 체격에 매의 머리를 하고 있는 몬스터가 어두운 공간을 걷고 있었다. 기억에 있는 몬스터였다. 분명 루크에이스 미궁 76층에 출몰하는 몬스터다.
“주인님. 이 화면을 한 번 보시지요.”
사이나의 부름에 테드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가리키는 화면을 보는 순간 테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얀색 늑대 귀를 가진 흑발의 여검사가 트롤 무리를 좋을 대로 학살하고 있었다. 테드가 루크에이스에서 활동할 당시에 인연이 있었던 여자였다.
“실버 울프 클랜의… 천랑이군. 조금 나이가 든 것 같긴 해도 틀림없어.”
화면이 또 다시 바뀐다. 이번에는 전혀 모르는 모험가였다. 모험가는 혹시 모를 함정에 주의하며 신중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화면은 일정 시간마다 계속해서 바뀌었다. 테드는 다른 화면들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닫는다.
“루크에이스군. 이 안에 있는 화면들은 루크에이스 미궁을 보여주고 있어. 내 생각인데 아마도 이 건물 자체가 루크에이스 미궁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 루크에이스를 관리하는 시스템의 한 부분이라고 해야하나.”
테드는 화면은 몇 개더 보고서 빌딩을 나섰다. 그리고 바로 옆 빌딩에 들어선다. 그곳 또한 새하얀 공간에 화면이 여기저기에 있는 광경이었다. 화면을 살피자 루크에이스 미궁과는 또 다른 곳이 보인다.
작은 마을이었다. 아이들이 모여서 뛰노는 광경이나, 밭일을 하고 있는 어른들의 화면이 나왔다.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어머니들이 보였고, 세상모르게 낮잠을 즐기고 있는 소년의 모습도 보였으며, 또한 방앗간에서 남자위에서 열심히 방아찧기를 하고 있는 여성의 민망한 모습도 보였다.
“저년, 저거 보소! 허리 놀림이 장난 아닌데! 한 두 번 해본게 아니야!”
바알이 화면을 보더니 킬킬 거리며 말했다. 테드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 다른 빌딩으로 들어간다. 전부 똑같았다. 다른 점은 화면이 비추는 곳이 다른 곳이라는 점뿐이다.
“……이 도시 건물 전체가 이런 거라면 조금 무서운데. 감시받으면서 생활하고 있다는 거니까.”
중얼거리면서 테드는 일행들을 데리고 마법을 사용해 도시의 위로 올라갔다. 다행히도 마법은 제대로 발동되었고 하늘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발견한다. 회색의 건물등 중에서도 유일하게 은은한 황금빛을 띄고 있는 탑같은 건물을.
테드가 곧장 그리로 날아가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색 빛덩어리가 그 건물 안에 있었다.
“찾았다. 의외로 찾기 쉬운데 있었어.”
테드가 신안을 발동했고, 저 하얀 빛덩어리가 시스템의 본체임을 알았다.
문제는 시스템을 어떻게 조작하냐는 것이었다. 테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머릿속으로 시스템에 관한 것이 들어온다. 테드는 잠시 숨을 삼켰다가 시스템을 조작하려고 했다. 우선은 바알에게 걸린 시스템의 제약을 풀어버리는 것이다.
[권한이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겠지.”
세계열쇠는 어디까지나 열쇠의 역할에 불과했다. 이곳에 들어왔다고 해서 시스템을 제 마음대로 조작한다는 것은 거의 테드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건 몇가지 있었다.
가령 실시간으로 세계 곳곳을 보거나. 사탄의 위치를 추적한다거나.
“사탄은 지금 마계에 있을 테니 추적도 불가능하겠지만… 어?”
허공에 화면이 툭 튀어나왔다.
화면이 비추는 것은 사탄이었다. 사탄이 나왔다는 것은 한 가지의 이유로 귀결된다. 사탄이 지금 네메스 대륙에 있다는 것이다.
“이 미친놈이!”
사탄이 인간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사탄의 손짓에 도시가 불타고, 하늘에서 떨어져 초토화시킨다.
테드는 혹시몰라 네메스 대륙 곳곳을 살폈다. 그리고 예쌍대로 네메스 대륙은 사탄과 그 부하 악마들로 인해 개판으로 변하고 있었다.
“시스템 당장 저 놈들을 막아!”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울부짖으며 어른들이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한다.
[권한이 없습니다.]
시스템의 대답에 테드가 이를 악물었다.
“……사이나. 바알. 부탁이 있어. 악마들을 처리해줬으면 해.”
“주인님의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심심했던 차에 잘 됐네. 사탄 새끼는… 뭐, 알아서 해라.”
바알에게 영력을 사용해 일시적으로 시스템의 제약을 없앤다. 그녀들이라면 제약이 없는 악마들이라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테드는 시스템을 조작해서 사이나와 바알을 악마들이 판치고 있는 도시로 보냈다. 다행히도 이것에 관해 권한이 없다는 빌어먹을 알림이 나오지 않았다.
테드는 남아 있는 검의 공주를 본다.
“결전. 우리는 사탄을 죽이러 가는 거지?”
“…그래. 놈을 끝내러 가자. 그 전에 잠깐. 시스템에 확인할게 있어. 아주 잠깐이면 돼.”
곧이어 테드는 검의 공주와 함께 사탄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