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268화 (268/277)

268====================

33. 미카엘라

바알에게 베인 심장을 다른 천사의 권능으로 빠르게 회복한 미카엘라는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온 작은 체구의 여자를 바라봤다. 하얀 천옷을 대충 감싸듯이 입고 있으며, 등에는 자신과 같은 12장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키는 150cm 정도이며 바닐라색 머리카락은 목덜미를 가릴 정도로 짧고 푸른색 두 눈은 날카롭다.

겉모습만 보자면 가녀린 소녀나 다름없지만, 미카엘라는 그녀의 몸이 매일의 단련으로 인해 근육질이 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 천계에서 그녀만큼 수련에 매진하는 이는 없으리라.

“오셨군요. 가브리엘. 당신을 애타게 기다렸답니다.”

“……미카엘라. 소식은 들었어. 에프리온에 악마가 침입했다지? 그것도 바알이.”

가브리엘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겉모습처럼 소녀의 목소리였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네가 데려온 건 아니지?”

가브리엘의 푸른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난다.

“제가 그들을 천계에 데려올 이유는 없어요. 또한 데려올 방법도 없지요.”

“네가 천계에 돌아온것과, 바알이 천계에 나타난 시기가 교묘해. 더군다나 그들은 너를 찾고 있어.”

“가브리엘. 당신은 저와 바알의 사이를 알고 있어요. 바알이 저를 찾는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바알이 천계에 있다는 사실이지요. 알겠나요? 이건 둘도 없는 기회에요.”

“……둘도 없는 기회라. 미안하지만 나는 이번에 나설 생각이 없어.”

미카엘라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바알에 비한다면 한 수 아래라고 하지만, 가브리엘은 천계 최고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를 따르는 천사들 또한 적지 않다.

“천계를 배신하는 건가요?”

가브리엘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며 미카엘라의 두 눈을 쳐다봤다.

“아니. 단지 꺼림칙할 뿐이야. 네가 이 일에 관련되어 있으니까. 어쩌면 지금의 일도 네가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천계는 위험해요. 가브리엘. 겨우 그런 이유로 천계가 부서지도록 내버려 둘 생각인가요?”

“그들은 미카엘라. 너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어.”

“저를 넘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임은 틀림없겠죠. 비록 최악의 방법이겠지만요. 하지만 알아둬요. 바알은 최대의 적이에요. 그녀의 손에 죽어간 천사들을 잊지마세요.”

“……나는 네가 아무도 모르게 했던 일을 알고 있어.”

미카엘라의 몸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코웃음치며 반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가브리엘이었다. 그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미카엘라는 살짝 떨리는 몸을 가다듬었다. 당황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걱정마. 떠벌릴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필시 천계에 혼란에 일어날테고 너는 수습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테지.”

“……그럼 무엇을 원하시나요?”

“난 이 이번에 빠질거야. 솔직히 말해서 이 일이 네가 계략한 일인지 의심돼. 강대한 적보다 믿을 수 없는 동료가 더 성가시거든.”

“그렇군요. 하지만 다른 천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나는 에프리온에서 가장 먼 곳에서 있으니까.”

그럼. 하고 가브리엘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미카엘라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의미심장했다.

“……언젠간 본격적으로 틀어질 날이 있을 거라곤 알고 있긴 했지만… 설마 지금 이럴 줄이야….”

작게 한탄을 내쉰다. 가브리엘과 가브리엘 직속의 고위 천사들은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내 미카엘라를 웃음을 지었다.

여기는 천계. 전투가 가능한 천사라면 엄청나게 많으며, 자신 휘하의 고위 천사와 우리엘 휘하의 고위 천사들의 숫자만 합해도 1만에 달한다. 가브리엘이 있었다면 좀더 피해를 줄이고 확실하게 바알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응? 무슨 말이지?”

어느새 무장을 갖추고 방안으로 들어온 우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미카엘라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금 생각할게 있어서요. 우리엘. 준비는 끝났나요?”

“준비는 끝났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항상 훈련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에프리온으로 진격하는 일만 남았다.”

“그렇군요. 그럼 곧바로 에프리온으로 움직이도록 하죠. 악마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바알의 목숨을 취하는 거에요.”

“바알의 목숨은 뭣 모르고 천계에 쳐들어온 어리석은 자의 합당한 대가이며,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뭔가요 우리엘. 신경쓰이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복도에서 가브리엘을 만났다.”

미카엘라는 아주 미세하게 얼굴을 굳혔다. 설마 가브리엘이 우리엘에게 무언가 말 했나?

지금 상황에서 우리엘의 도움은 필수불가결이다.

“그 녀석이 사정이 있어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 녀석이 전투에 빠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나. 더군다나 이번의 적인 바알인데도 말이다. 그 사정이란게 조금 신경쓰이는군. 혹시 알고 있나?”

“아니요. 저도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어요. 아마도 그녀가 있는 서쪽에 무언가 일이 터진 게 아닐까요.”

“음.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겠군. 그럼 작전에 관해서인데… 놈들이 성스러운 영웅의 전당을 박살내고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일반 천사들이 모여 있는 도시와 조금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놈들의 행위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모독이다.”

“네. 그 말대로에요. 고인을 욕보는 불경한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지요. 우리엘. 당신은 병력의 대부분을 이끌고 정면으로 가주세요. 그들의 숫자는 고작해야 넷. 총 3만에 달하는 병사들을 어떻게 할 수 없지요.”

“그럼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저는 제 측근을 이끌고 바알을 노리겠어요. 오늘이야말로 바알과의 지긋지긋한 악연에 종지부를 찍도록 하죠.”

“좋다. 정면을 제압하고 곧바로 네게 가세하겠다. 하지만 만약 바알이 정면에 나선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제가 바알을 노리듯이. 그녀 또한 저를 노릴테니까요. 그것보다 저는 우리엘이 걱정이에요. 당신이 상대해야하는 테드 크루시안이라는 인간은 보통이 아니에요.”

“악마를 메이드로 거느리고 고대 병기를 사용하는 대마도사 급의 인간이란 것은 들었다. 거기다 그 바알을 이겨서 노예로 부려먹는다고 했던가? 오히려 불타오르는군. 진정한 적은 바알이 아니라 그 놈이군.”

“방심하지 마세요.”

“누구한테 말하는 거지. 이것은 전쟁이다. 나는 결코 방심하지 않는다.”

우리엘이 자신의 가슴의 갑옷을 주먹으로 쾅쾅 치며 호기롭게 말했다. 미카엘라가 그에게 웃음을 지었다.

우리엘은 천계 최고의 무장이다. 그의 능력은 대전쟁때 이미 증명되었으며, 그의 휘하에 있는 고위천사들은 치열한 전쟁을 이미 겪은 백전노장들이다. 그 능력의 뛰어남은 물론이고 인품까지 뛰어나 믿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이유 모를 불안은 뭐지?’

미카엘라와 우리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바알이 박살낸 영웅의 전당은 그리스의 신전과 닮은 건축물이었다. 새하얗고 커다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기둥은 처음 봤을 때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다. 지금은 바알의 주먹에 의해 완전히 박살나 바위덩어리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장소에서 테드는 새하얀 후드를 뒤집어쓰고 백색 바탕에 금색 자수가 들어간 육각형 관위에 앉아 있었다. 원래라면 미카엘라를 찾아갈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굳이 찾아갈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천계는 적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곳. 어디를 가나 천사가 넘쳐나고, 미카엘라가 두려움에 떨며 도망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미카엘라의 입장에서 자신의 영역에 쳐들어온 바알은 처리하기 딱 좋은 기회였으니까. 오히려 여기서 도망치면 곤란해지는 것은 미카엘라 쪽이었다. 바알을 처리할 기회를 놓치게 되니까.

그러니 이곳에서 기다린다. 일부러 정보를 수집하는 정찰병들을 붙잡지 않았다. ‘영웅의 전당’을 파괴하는 모욕을 주어 피할 수 없는 명분을 미카엘라에게 주었다.

‘내가 미카엘라를 찾겠답시고 여러 도시를 들쑤시고 다니면 관계없는 희생자만 늘어나겠지.’

적들이 채비를 갖추고 덤벼들겠지만 상관 쓰지 않았다. 질거란 생각은 일절 들지 않았다.

‘바알에겐 만약을 위해 검의 공주와 사이나를 붙여 났으니 괜찮겠지. 그녀들에게도 미카엘라와 바알의 1대1 상황을 만들어주라고 단단히 일러났고.’

그 미카엘라가 혼자서 쳐들어올 리가 없기에 검의 공주와 사이나를 바알에게 붙여 두었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가 앉아있는 육각관은 도발의 의미였다.

영웅의 전당 최심부에 있었던, 과거 미카엘라, 가브리엘, 우리엘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던 대천사 라파엘의 시체가 들어 있는 육각관.

천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영웅인 라파엘을 모욕하는 일이다. 이 도발은 틀림없이 먹힐 것이다.

“천계에 온 것 부터가 이미 시비를 걸려온 것이니. 고인 모욕쯤이야. 기꺼이 해주지.”

테드가 중얼거리며 양다리를 편하게 벌리고 허벅지 위에 양팔을 올리고 허리를 약간 숙였다. 그렇게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생각에 잠겨 기다리고 있자니. 저 멀리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기척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테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구름이 끊입없이 펼쳐진 것 같은 하늘에는 하얀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천사들로 가득차 있었다. 대략적으로 살핀 결과 약 3만 정도다. 모두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고 있다. 아마도 정예라 불릴 수 있는 자들이다.

이전의 테드였다면 상대하는 것 따윈 꿈에도 못 꾸었을 것이다. 제약을 가진 메타엘을 하나 상대하는데도 쩔쩔 멨으니까.

천사들의 중심에는 한 남성이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같은 밝은 색의 붉은색 짧은 머리를 가진 사내였다. 12장의 날개를 가진 것을 확인하며 그의 인상착의가 바알에게 들었던 우리엘과 똑같다는 것을 눈치 챈다.

테드와 우리엘의 두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테드의 붉은 안광이 아른거렸다.

“딱 한 번. 관용을 베풀어주지. 돌아가라. 우리가 노리는 것은 너희들이 아니라 미카엘라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는 구나! 너는 이미 최대의 모욕을 저질렀다! 그 대가는 너의 목숨이다! 너의 오만함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겠다!”

“뭐. 그럴 줄 알았다. 이미 갈 때까지 간 내가 할 소리는 아니었지. 하지만 알아둬라. 너희들이 직접 단 한번 뿐인 기회를 차버렸음을.”

“이 승리의 창으로! 너를 단죄하겠다!”

우리엘이 은색의 장창을 번쩍 들어올리며 외쳤다. 그의 12장의 날개가 힘차게 펼쳐지며, 시퍼런 불꽃이 그의 창을 휘감는다. 그의 권능인 ‘정화의 불’이 발동된다.

“듣기로는 이곳 영웅의 전당이 천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지.”

테드가 등을 꼿꼿이 세우며 아공간을 열었다. 아공간에서 검은색의 마도서, ‘사자의 서’와 완벽하진 않지만 대부분 수복한 이시스를 꺼낸다.

마도서가 책장을 펄럭이며 마력을 뿜어내면서 스스로 부유한다.

은은한 백색의 빛을 발하는 이시스는 오랜만이라는 듯 테드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오늘 이곳에서 너희들이 가장 치욕스럽게 여길 역사가 새겨질 것이며.”

마도서를 향해 손을 뻗는다. 불길한 마력을 내뿜으며 펄럭이던 책장이 멈춘다.

“너희들은 이곳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이시스의 역할은 보조다. 아무리 대마도사의 경지를 뛰어 넘은 지금의 테드라고 해도 지금 시작할 마법은 혼자서는 조금 버겁기 때문이다.

“오늘부로 이곳은 지옥이다.”

테드를 중심으로 허공에 9개의 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문이 있었으며, 뼈로 이루어진 문이나 불타오르는 문도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제 1 지옥문 도산(刀山).

제 2 지옥문 등활(等活).

제 3 지옥문 아비규환(阿鼻叫喚).

제 4 지옥문 독사(毒蛇).

제 5 지옥문 니자부타(尼刺部陀).

제 6 지옥문 풍도(風途).

제 7 지옥문 초열(焦熱).

제 8 지옥문 마하발특마(摩訶鉢特摩).

제 9 지옥문 흑암(黑闇).

9개의 지옥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의 위에 회색의 투박한 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 10 지옥문 무간(無間).

무간이 열렸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