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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67화 (26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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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미카엘라

목 바로 아래에서 하복부까지 선이 생기더니 이내 날개처럼 양옆으로 퍼진다. 그리고 그 내부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 안은 은색으로 가득했다. 뭔지모를 장치들이 빛을 발하며 돌아가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청은색으로 빛나는 코어가 있었다. 테드가 코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시스?”

자신이 가진 보주 이시스와 굉장히 비슷했다. 그러나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이시스 보다 몇 단계나 더 높은 곳에 있다. 테드가 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해부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검의 공주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한 불가능한 이야기다.

“기체명 검의 공주. 정식 마스터 인증 절차 실행. 내 코어를 만져.”

흥미를 애써 접으며 테드는 손가락으로 검의 공주의 코어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몸 안의 영력이 강제로 빠져나간다. 양은 매우 적어서 기분 나쁘고 뭐고 할 것 없었다.

“인증 완료. 테드 크루시안. 이제부터 네가 내 정식마스터야. 이제 저 여자는 필요 없는데. 죽일까?”

어느새 꺼내든 루나틱 블레이드의 검끝으로 세르미나를 겨누며 물어왔다. 그녀가 테드의 의사를 구한 것은 테드가 정식 마스터이기 때문이다.

테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한 자세그대로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세르미나를 쳐다봤다.

“일단 한 가지 묻겠는데. 바론을 어디다 두고 혼자 다녀?”

“그 놈은 저 인형한테 죽었어. 그리고 꼭 말투가 내가 바론의 여자라도 되는 것 같잖아. 그거 굉장히 기분 나쁜걸.”

“연인 아니었어?”

“바론과 내가 연인이라… 토가 나오는 일이야. 나는 놈이 봉인을 풀어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놈과 같이 다녀야 했어.”

이제야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는가 했더니… 이놈의 팔자는 하고 세르미나가 한숨을 푹 내쉬며 투덜거렸다.

“…그래. 스승님에게 들었어. 여동생이라지. 스승님은 네 이야기를 할때 조금 슬퍼보이더군.”

“……흥.”

“스승님의 얼굴을 봐서 이번 한 번은 봐줄게. 그러니 한 번 만나봐. 가족이란 건 싫어도 생각나는 법이고. 마냥 싫어할 수만도 없으니까.”

“신경끄시지. 네가 그리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까.”

발할라를 해제하자 세르미나가 곧바로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해 사라졌다. 테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바닥에는 볼 품 없는 나무 열쇠가 들려 있었다.

“그럼. 끝장을 보러 가볼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열쇠를 손에 쥐고 앞으로 내민다. 열쇠를 옆으로 돌려 잠긴 문을 여는 시늉을 하자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일그러짐은 이윽고 문이 되어 천계와 이어진다.

세계열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사용자가 한 번 갔던 곳이라면 공간적 제약과 거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갈 수 있게 된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한 시간에 한 번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 ⁂ ⁂

테드는 처음 천계를 천국과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천사들이랑 사는 곳이니 천국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는 천국과는 다른 곳이다. 중간계나 다름없다. 흙이 있고, 나무가 있고, 동물이 있다.

중간계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목숨을 위협하는 생물, 즉 몬스터가 없다는 점과 하늘이 새하얗다는 점이다.

“여기가 천계인가. 뭐. 의외로 별거 없네.”

테드가 주변을 둘러보며 태평하게 감상을 말했다. 그들은 천계의 한 도시로 전이되었다. 그들의 건축물은 주로 돌과 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간계와 비교하자면 오히려 중간계의 건축기술이 더 발달 했다고 느낄 정도다.

“비둘기들이 왜 이리 많이 날아 다녀? 짜증나게.”

새하얀 하늘위로 새하얀 날개를 파닥이며 비행하고 있는 천사들을 보며 바알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사이나와 검의 공주는 말이 없었다. 사이나야 원래 말이 없으며 이런 것에 흥미를 보이지 않으니 테드도 이해 하지만. 검의 공주는 의외였다. 검의 공주의 성격을 생각하면 당장 검을 뽑아들고 섬멸하겠다며 천사들에게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니까.

“…어?”

갑작스레 나타난 테드를 발견한 것은 우연히 지나치던 금발 머리의 천사다. 등에 날개를 한 쌍 가지고 있는 남자는 테드 일행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사는 집안에서는 몰라도 외부에서는 날개를 숨기지 않는다. 숨길 이유가 없거니와 날개를 자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 편이 더 편하기도 하고.

또한 날개의 개수에 따라 그 자가 가지고 있는 힘을 알 수 있다. 물론 날개가 한 쌍이라고, 힘이 없다고 해서 핍박받는 건 아니다.

“너희들은 뭔가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네. 그게 말로만 듣던 중간계 코스프레야?”

천사가 날개를 접어 지상에 내려오며 물었다.

테드는 하얀 재킷에 달린 후드를 머리에 쓰고 있고, 사이나는 미니스커트 메이드 복장. 바알은 중요 부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탱크톱과 핫팬츠. 검의 공주는 보기에도 불편해보이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다.

반면에 남자 천사가 입고 있는 옷은 하얀 천 옷이다.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어져있으며 날개를 고려해 등 부분이 드러나 있다. 대부분의 천사들이 편의성을 위해 그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날개가 있는 그들이 굳이 땅을 걸어 다닐 이유는 없으니까.

“……코스프레라… 뭐 그렇지. 근데 미카엘라는 어디있는 거야?”

“미카엘라 님은 왜… 아니…! 이 기운은 마력…?!”

가까이 다가오던 천사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사이나와 바알의 몸에 있는 마력을 느낀 것이다. 그가 당황한 얼굴을 하며 테드 일행을 번갈아 쳐다봤다.

“네, 네놈들! 천사가 아니구나! 어떻게 천계에 들어온 거지?!”

그가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펼치고 하늘 위로 올라갔다. 좀처럼 없는 소란에 주위에 있던 천사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그들 또한 사이나와 바알의 마력을 느끼고서 심각한 얼굴로 경계를 했다. 그 중에는 성력을 끌어올려 당장에라도 전투에 돌입할 기세를 흘리고 있는 천사도 있었다.

“전투 천사다! 전투 천사를 불려!”

요란법석을 떨고 있는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테드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나타났다. 손에는 제법 잘 만들어진 창을 쥐고 있으며, 다리와 팔, 가슴같은 부분적인 갑옷을 입고 있는 천사였다.

부른지 1분도 지나지 않아 달려온 전투천사다.

“정체를 밝혀라! 침입자놈들!”

“귀찮은데 그냥 죽여 버리자.”

바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해왔다.

테드는 한 순간 솔깃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의 목적은 미카엘라다. 관계도 없는 천사들까지 죽일 생각은 없었다.

“…저쪽에서 덤벼든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괜히 학살을 벌일 이유는 없어. 그럴 시간도 없고. 일단은 미카엘라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자. 미카엘라는 가장 유명한 천사이니 아무리 말단이라도 어디 있는지는 알겠지.”

“뭘 그리 소곤소곤 거리냐! 이곳이 어딘지 아느냐?!”

전투 천사의 호통이 쩌렁쩌렁 울러 퍼졌다. 테드가 눈살을 찡그렸다.

“어디긴 어디야. 천계겠지.”

“무례한 놈! 이곳은 과거 천사의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무덤이자, 전당인 곳이다! 천계에서 가장 성스로운 도시 ‘에프리온’이다! 허가 받지 않는 네놈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체를 밝히고 투항해라!”

전투 천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렇게 말해도 전혀 모르겠는데. 미카엘라가 어디 있는 지나 말하지 그래? 우린 미카엘라에게 볼일이 있거든.”

테드가 담담하게 물었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전투 천사가 호통을 내질렀다.

“정체를 밝히고 투항하라는 말이 들리지 않느냐?!!”

“큰일인데. 말이 통하지 않아.”

“그러니까 처리하자고.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뭘그리 빙빙 돌아가려 하냐? 이 귀여운 주먹이 알아서 미카엘라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줄거야.”

바알이 자신의 주먹을 들어 올리더니 손등에 입을 쪽 하고 맞추었다. 현재 그녀는 기분이 아주 살짝 나아졌다. 이유는 천계에 오면서 시스템의 제약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100%의 힘을 발휘해 미카엘라를 줘팰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마력…! 설마 악마인가?! 악마가 천계를 침공한건가! 이럴 수가! 너희들은 이 크론슈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전투 천사 크론슈는 창을 꼬나쥐고서 외치고 있었다. 평화롭기 그지 없는 천계에서 전투천사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거의 대부분을 언제 있을지 모르는 전투를 대비해 훈련하는 것이 전부다. 즉, 크론슈는 실전경험이 전무했다. 실전과 비슷한 훈련은 있어도 어디까지나 훈련에 불과했다. 그는 처음으로 전투 천사 다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흥분하고 있었다.

“……죽이진 마 바알. 알아낼게 있으니까.”

테드가 한숨 쉬며 말하자 바알이 씩 웃었다.

“그 정도 분별은 나도 하거든.”

바알의 발끝이 살짝 지면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새 하늘에 떠있는 크론슈의 앞에 있었다.

“……어?”

눈앞의 느닷없이 나타난 바알에 크론슈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녕. 운 좋은 병신아.”

바알의 주먹이 크론슈의 정수를 후려쳤다. 크론슈의 몸이 지상으로 빠르게 낙하하며 쳐박힌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크론슈가 기침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에서 피가 줄줄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래보여 명색의 전투 천사다. 고작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크론슈가 창에 성력을 부여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권능은 근육의 조작이었다. 별볼일없는 권능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순간 근육의 강도를 올리거나 단단하게 만들어 폭발적인 신체능력을 뿜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바알은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크론슈의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설마… 도망간건가! 기습 후 도망이라니… 이 얼마나 비열한! 하는 짓을 보니 역시 악마가 틀림없군!”

“아주 쇼를 하고 있네.”

등뒤에서 들린 소녀의 목소리에 크론슈가 흠칫 놀라 재빨리 창을 휘둘렀다.

창은 바알의 손에 맥없이 붙잡혔다. 바알이 조금 힘을 주자 마른 나뭇가지처럼 간단히 부러진다. 크론슈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입을 살짝 벌렸다.

“일단 좀 맞자.”

“기, 기다려라, 이 악마야!”

크론슈의 말을 들어줄 이유가 바알에겐 없었다.

바알이 주먹을 연속적으로 내질렀다.

크론슈가 그 주먹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뭔가 보여야 반응이라도 하지. 아예 보이지 않는 주먹을 어떻게 피하란 말인가.

보지 않고 느낀다? 그것도 불가능하다. 온몸을 두드리는 주먹이다. 그 통증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다. 더군다나 어찌나 교묘하게 때리는지. 아픔은 엄청나게 느끼게 하는 주제에 실제로 치명상이라 할 수 있는 공격은 하나도 없었다.

“머, 멈춰라! 크론슈를 풀어줘라!”

“외견과 달리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군!”

크론슈를 구하기 위해 근처에 있던 천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바알의 주먹의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미카엘라 씨발년! 개썅년! 갈보!”

펑! 펑! 펑!

분명 주먹으로 사람을 패는데 축구공을 차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으아아아아아!! 미카엘라아아아아아!”

테드는 천사를 쥐어패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바알에게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하얀 하늘이라… 그냥 구름이 하늘을 가득채운 것 같아서 시시한데. 보고있으면 눈만 아파오는 것 같고. 안 그래?”

“그 말대로입니다. 주인님. 대충 훑어봤는데 마계보다 못하군요. 천계는 정말 시시한 곳인 것 같습니다.”

“인정. 하등생물이 다 그렇지 뭐.”

바알의 주먹질은 약 2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 작품 후기 ============================

모든 천사들은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엔 날개를 닦아주는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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