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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65화 (26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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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미카엘라

“제게 협력하세요. 테드 크루시안. 네메스 대륙을 구하고 싶으시잖아요?”

테드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가장먼저든 의문은 검의 공주가 미카엘라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검의 공주는 마족과 천족을 극렬히 싫어했다. 한 번 그 이유를 물으니 천사와 악마를 닮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즉, 천사와 악마를 싫어하니 자연스럽게 천족과 마족도 다른 종족보다 더 싫다는 것이다.

미카엘라를 만나면 우선적으로 검부터 들이 밀었을 검의 공주가 어떻게 미카엘라와 함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네메스 대륙을 구하고 싶은건 맞아. 사탄의 힘이면 충분히 네메스 대륙의 위험이 되는 것도 공감할 수 있어. 근데 네메스 대륙을 구할 힘이 네게 있다고 생각 할 수는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그 힘은 제가 아니라 검의 공주에게 있어요. 그리고 검의 공주는 현재 제게 있고요.”

테드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검의 공주와 미카엘라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 둘 사이에 있었을 무언가가 신경 쓰였다.

검의 공주는 여전히 테드에게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관찰하듯이 쳐다본다.

“아. 그러셔. 그럼 내가 나설 필요는 딱히 없지 않아? 둘이서 사탄의 목을 치든 뭐든 하면 되잖아.”

“그게 가능했다면 저를 죽이러온 인물들과 이렇게 차를 마시고 있진 않겠죠. 검의 공주가 없었다면 진즉에 도망갔을 거에요. 지금의 저로서는 당신과 바알을 이길 수 없으니까요.”

그녀의 말을 들은 테드는 미카엘라의 주위에 다른 천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카엘라는 천사들과 함께 있을 때야말로 진정한 힘을 발휘 한다. 주변에 다른 천사가 없는 지금 미카엘라를 죽이기 위한 최적의 기회다.

옆에 있는 바알이 주먹 쥔 두 손을 움찔움찔 거리는 것에 이해가 갈 정도다. 지금 같은 기회는 다시없을 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전부터.”

미카엘라의 눈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녀가 위험을 깨닫는 순간 프리티스 전체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테드의 본래 목적은 프리티스가 끼어들지 못할 정도의 최단 시간으로 미카엘라와의 결전을 치르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겨우 나흘 전에 알았지요.”

테드가 밀입국한 순간부터 알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알았지?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는데. 마법으로 모습을 바꾸고 제법 많은 돈까지 사용해 흔적이 남지 않게 움직였어.”

“비밀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네요. 여기선 말하는 쪽이 당신의 신뢰를 살 수 있겠죠. 나흘전에 사탄이 제 앞에 나타났어요.”

테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말에 순간적으로 미카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박자 늦게 테드가 입을 열었다.

“……사탄이? 용케도 살아 있네. 아니면 사탄에게 목숨 구걸이라도 하셨나?”

테드가 비아냥거렸다. 머리로는 사탄이 미카엘라를 찾아온 이유를 모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만약. 사탄과 미카엘라가 손을 잡았다면 미카엘라가 이렇게 당당히 말을 꺼냈을 리가 없다. 그러니 그 가능성은 낮다.

“목숨 구걸이라… 그런 구차한 짓거리를 제가 했을 거라 생각하나요?”

“네년이면 하고도 남았지. 다리까지 벌리고 살려달라 빌었겠지. 샹년아.”

중지를 뻣뻣이 세우며 바알이 말했다.

미카엘라는 바알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바알. 당신은 나서지 말아주시겠어요?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니까요. 아예 영원히 입을 다물면 좋을 텐데.”

“야. 테드! 슬슬 내 인내심이 바닥을 기고 있거든? 언제까지 저년을 좋을 대로 지껄이게 내버려 둘거야? 궁금한게 있다면 일단 다리 하나부터 자르고 물으면 되지 않아?”

“우선 진정해. 바알.”

테드가 바알의 어깨를 지긋이 눌렀다. 들썩들썩 거리지만 멈추지 않았다. 바알은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테드의 말을 따라주었다. 성관계를 가진 이후 그녀는 묘하게 고분고분해졌다.

“네가 사탄과 만난 건 의외야.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가는데. 제약이 풀린 바알도 사탄을 어떻게 하지 못한 걸. 지금의 네가 사탄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곤 생각되지 않아. 어떻게 사탄을 만나고도 무사할 수 있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확실히 그때는 위험했어요. 지난 악마들의 침공에 도시가 파괴될 정도의 피해도 입었으니까요. 사탄은 제게 거래를 하기 위해 찾아왔어요.”

“…그 거래란 건?”

“재촉하지 않으셔도 말할 생각이에요. 사탄은 제게 천사를 바치라고 말했죠. 빠르게 완전해지긴 위해선 천사를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더군요. 마계에는 자신의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먹이가 될 만한 악마들이 죄다 숨어버리는 바람에 찾아내는 것에 시간이 걸린다는게 이유였죠. 듣기로는 루시퍼와 허상의 마왕인 네비로스가 결탁하는 바람에 귀찮아졌다더군요.”

“천사를 바친다라… 네가 살아 있다는 것은 거래에 응했다는 거로 생각하면 되나?”

사탄의 성격이라면 거절한 미카엘라를 그대로 내버려둘 리가 없다. 아쉬운대로 눈앞의 대천사를 먹어치웠을 것이다.

테드가 손가락 끝에 영력을 모았다. 검의 공주가 몸을 움찔거리면서 언제든지 소드 컬렉션을 사용해 검을 꺼낼 수 있게 준비한다.

“저를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최고천사에요. 제가 동족을 팔 리가 없잖아요. 거절했죠. 우리의 계약은 이미 끝났으니까요. 제가 아스타로트… 사탄을 도울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예상한대로 사탄을 저를 죽이려고 했죠. 때마침 검의 공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었을 지도 모르죠.”

“……검의 공주는 둘째치고 계약이 이미 끝났다는 말은….”

“어머. 이미 알고 있지 않으셨나요?”

미카엘라가 가증스러운 동작으로 한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고까운지 바알이 바닥에 침 퉷하고 뱉었다.

미카엘라가 재차 말을 잇는다.

“저번 회담 장소에서 당신이 말하셨잖아요. 아스타로트와 만났지 않냐고.”

그건 반신반의 하면 던진 말이었다. 증거는 없고 예측으로 이루어진 말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잊고 있었던 일이고,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스타로트와 만났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를 이 네메스 대륙에 소환한 것도 아스타로트지요.”

“사탄교의 수장이 너희를 소환했다라… 그럼 시스템과의 계약도 거짓이었나?”

“그건 정말이에요. 단지 순서가 다를 뿐이죠. 시스템보다 먼저 아스타로트와 하나의 계약을 맺었어요. 교활한 아스타로트는 저희를 소환할 때 수 많은 악마들을 거느리고 있었죠. 그대로 싸웠다면 아무리 저라도 부족했고요.”

“거래라기보다는 협박에 가까운 거였군.”

“바로 그거에요. 아스타로트는 저희를 살려주는 대신 천사 셋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죠.”

“하. 그래서 넙죽 바쳤나? 바알의 말이 틀린 게 아닌데?”

테드가 조소했다. 회담장소에 미카엘라가 나왔다는 것은 이미 아스타로트와의 거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뜻이니까.

“저는 그들을 팔지 않았어요. 그들이 스스로 나서며 희생했죠. 저속한 악마 따위는 절대로 꿈도 꾸지 못하는 아름다운 자기희생이죠.”

“강요가 아니라?”

“그들을 모욕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그들은 현명한 자들이었어요. 그 상황에서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저를 살리는 길을 택했죠. 그들은 찬사받아 마땅한 자들이에요.”

“얼굴도 모르는 자들을 찬사할 생각은 없어. 그래도 놀라운걸. 네가 이렇게 순순히 말 할 줄이야. 물론 믿고 안 믿고는 내 선택이지만.”

“말했잖아요. 당신의 힘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앞으로 같이 일할 사람의 최소한의 신뢰는 필요한 법이죠. 더 이상 궁금한건 없으시죠?”

“어딜 그냥 넘어가려고.”

테드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검의 공주를 가리켰다.

“아직 전부 설명하지 않았잖아. 검의 공주와 너의 관계. 그리고 내 힘… 아마도 너희들은 ‘영력’이 필요한 거겠지. 아니면 마법이 필요하거나. 어느 쪽이든 어디에 사용하는지 알아야 겠어.”

“당신의 힘이 필요한 이유부터 말해드리죠. 검의 공주는 사탄을 죽일 수 있는 검이 있다고 했지요. 그 검의 이름은….”

“심판의 검. 위대한 그분들의 검이야.”

미카엘라의 말을 검의 공주가 가로챘다.

“뭐하는 검인데.”

“영멸검. 죄를 저지른 그분을 심판하기 위한 검이야. 그분들에게도 법은 있었으며, 타락하는 자들도 있었으니까. 그 대표적인 게 사탄이라 불리는 반역자. 이 검은 그분들에게 아주 치명적인 검이야.”

그녀가 말하는 ‘사탄’은 아스타로트를 지칭하는 게 아니었다. 마계에서 전설이 된 오리지널 사탄이다.

“그 좋은 검을 왜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았지? 그 검을 처음 사탄이 나타났을 때 사용했다면 지금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거 아냐?”

테드가 투덜거렸다. 검의 공주는 사탄을 보자마자 흥분해 달려들었고 광속 탈락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전투에서 벗어나게 됐다.

“사용 불가. 내가 이 검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 이 검을 사용하기 위해선 그분들의 힘이 필요해.”

“……영력 말인가. 그래. 내 힘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알겠군.”

네메스 대륙에 있어 유일하게 영력을 다룰 수 있는건 테드 뿐이다. 잘 찾아보면 영력이란 힘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테드 만큼 잘 다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이 특별한 힘을 다룰 수 있다면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럼. 그 검이란 것좀 한 번 보자. 얼마나 잘난 검인지 확인해야겠어.”

“여기 있음. 네 눈앞에 있잖아.”

검의 공주의 말에 테드가 고개를 획획 저어 주변을 확인했다. 검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있는데.”

이번에 검의 공주는 말하는 대신에 두 번째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네가?”

“정답. 내가 심판의 검이야. 정확하게는 ‘검의 공주’는 검집. 그러니 나는 심판의 검을 휘두를 수 없어.”

“그거 또 충격적인 이야긴데…. 그럼 왜 너는 미카엘라에게 협력하고 있는 거지?”

“그건 제가 설명하죠 괜찮겠죠?”

미카엘라가 끼어들었다. 검의 공주는 그녀를 쳐다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탄이 제 앞에 나타났을 때, 저를 죽이기 위해 검의 공주가 찾아 왔죠. 사탄을 보고 목표물을 바꿨고 사탄은 검의 공주와 잠시동안 싸우다가 깔끔하게 마계로 돌아갔어요. 저는 검의 공주에게 거래를 신청했죠. 저를 살려주는 대신에 사탄을 죽일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우선 순위 변동. 천사따위 보다 반역자의 처단이 더 무겁고 시급하니까. 하등생물은 그 후에 섬멸할거야.”

검의 공주가 말했다.

미카엘라가 어깨를 한 차례 으쓱였다.

“저는 마계로 갈 수 있는 문을 열 수 있어요. 정확하게는 마계에 심어둔 천사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지만요. 그건 중요하지 않죠. 중요한 건 사탄이 준비를 끝내기전에 마계로 찾아가 죽일 수 있다는 거죠. 테드 크루시안. 당신의 일은 심판의 검으로 사탄을 죽이는 거에요. 제가 마계로 보내드리죠.”

“과연. 날 마계로 보낼 셈인가. 그럼 어떻게 돌아오라는 거지?”

“사탄을 처리하신 다면 제가 꺼내드리죠. 믿지 못하시겠다면… 그렇네요. 네메스 대륙은 사탄의 손에 떨어지겠죠. 애석한 일이에요.”

미카엘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는 테드를 일단 마계로 보내고 나면 마계에서 꺼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기타 다른 방법으로 마계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그 방법들은 테드가 마계에 가자마자 봉쇄할 생각이었다. 철저하게 감시하고 관리한다면 테드는 영원히 마계에 있어야 할 것이다.

‘듣기로는 옆에 있는 악마 메이드와 서로 사랑한다고? 그럼 영원히 마계에서 서로 사랑하시지요.’

미카엘라가 속으로 웃고 있을 때, 바알이 테드를 불렸다.

테드는 바알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눈치 채고서 씩 웃었다.

“야. 테드.”

“미안한데 말이야. 내 대답은 거절이야. 여기서 죽으라고 미카엘라. 발할라(The Valhalla).”

테드가 결계 마법을 발동했다. 지하 내부가 한 차례 일그러지고 바알이 미카엘라를 향해 뛰듯이 달려들었다. 미카엘라가 놀라 자리에 박차고 일어났다. 바알의 주먹이 미카엘라의 오른뺨에 부딪힌다.

“제압 우선.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 그분들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왜 모르는 거야?”

검의 공주는 바알을 무시하고 테드의 앞에 나타나 그 목에 검을 겨누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 루나틱 블레이드. 바론에게 빼앗은 검이다. 그 검 덕분에 적들을 위축시키는 발할라의 효과가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내 제안이다. 검의 공주.”

“……제안?”

“사실 말이야. 여기에 오기 전에 암시장에 들려서 만들었거든. 미카엘라가 도망치면 곤란하기도 하고, 사탄이 완전해지는 것도 걱정되기도 해서 말이지. 난 이상한데서 운이 좋아서 말이야. 돈이 좀 깨졌지만 매물이 있어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의미 불명. 뭘 만들었다는 거야?”

“세계열쇠.”

검의 공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하는 물건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하고 중얼거린 테드가 세계열쇠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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