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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미카엘라
33. 미카엘라.
“아주 개판이군 그래.”
테드는 미카엘라가 머물고 있는 ‘미카엘라 교단’의 본교가 위치한 신성도시 ‘메아폴’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메아폴은 더 이상 도시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건물 중에서 성히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땅바닥에는 수 십 개의 운석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처럼 크기가 제각각 다른 크레이터가 가득했다.
“먼지도 엄청나군.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데. 들었던 대로 처참한 상황이구만.”
나흘 전 프리티스에 밀입국한 테드는 식당에서 우연히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금으로부터 일주일전 메아폴이 멸망한 것을 알았다. 사탄과 싸운 다음날에 메아폴이 멸망한 것이다. 멸망의 이유는 악마들의 대규모 침공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메아폴은 멸망한 도시 중에 하나일 뿐이다. 하늘을 찢고 마계에서 흘러나온 악마들은 네메스 대륙에 있는 30개에 달하는 도시를 멸망시켰다. 도시민들 대부분이 죽었지만, 일부는 마계에 끌려들어갔다. 주로 납치된 인간은 모험가처럼 ‘마나’를 어느 정도 수련한 자들이다.
납치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테드는 곧바로 사탄의 짓이란 걸 알았다. 이 어처구니 없는 납치행위는 아마 사탄이 말했던 완전해진다는 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미카엘라가 있는데도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이곳에만 특별히 사탄이 강림하기라도 한 건가?”
테드의 중얼거림을 다시 작아진 바알이 받았다. 그녀는 테드의 영력 덕분에 다시 마력이라는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악마들이 무더기로 쳐들어 왔다며? 사탄이 손을 썼을 테니 제약도 뭐고 없는 악마들일테니 미카엘라 년도 상대하기 벅찼을 거야. 저번에 보니까 완전히 제약이 풀린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제약이 걸려있더만.”
사이나와 함께 서있는 바알은 드물게도 진지한 표정이었다. 오늘 아침부터 그녀는 웃음기를 싹 지우고 날카롭게 기세를 벼르고 있었다. 정말로 미카엘라와 오늘 끝을 볼 생각인 것이다.
“정말 그 상태로 미카엘라와 싸울 수 있겠어? 뭣하면 영력을 빌려줄 수 있다만.”
바알의 몸에 걸린 사탄의 권능을 풀기 위해 테드는 영력을 연구하고 실험했다. 그 결과 사탄의 권능을 풀어 바알이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추가로 영력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시스템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얻을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바알이 영력을 받아들이는 양이 한정되어 제약에서 벗어난 상태로 있을 순 있는 시간은 약 20분이 한계라는 것이다.
“지금의 미카엘라와 1대1로 붙는다면 20%면 충분해. 그 샹년은 조금도 봐주지 않고 처음부터 진심으로 할 테니까. 지난 시간동안 놀기만 한건 아니라고. 그 년을 대비한 공격도 많이 준비했지.”
바알이 주먹을 쥔 오른손의 손목을 빙글빙글 돌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미카엘라는 습격한 악마들에게 반격했으며, 지금까지 메아폴을 떠나지 않고 머물면서 교단의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아. 근데. 씨발. 섹스좀 했다고 제약이 풀리는 건 아니지 않냐? 이럴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존나게 박히는 건데! 넌 왜 알고 있으면서도 안 박냐?!”
자신에게 돌아오는 구박에 테드는 고개를 저으며 무시했다. 그리고 도시의 안쪽으로 걸어간다.
아까부터 도시의 안으로부터 이쪽을 살피는 듯한 시선이 있었다. 아마도 미카엘라는 자신들이 찾아온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똑똑한 여자이니 분명 그 목적도 알고 있겠지. 도망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넌 나와 미카엘라의 1대1 상황만 만들어주면 돼. 그거면 충분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해.”
“그런 약속이니까 말이지.”
“마계 최강인 이 바알님이 진심으로 나서는 것이니까. 질 리가 없어.”
“그 근본없는 자존심은 여전하네.”
바알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사이나를 쳐다봤다. 사이나 또한 바알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몇 번 테드와 함께 잠자리를 가지면서도 그들의 관계는 여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야. 메이드. 너도 내 전투에 끼어드는 건 용서 못해.”
“끼어들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바알이야 말로 주인님의 노예로서 꼴사납게 패배하지 마시길.”
“안 진다니까 그러네!”
테드 일행은 도시의 안으로 들어갔다. 파괴된 도시는 1주일이 지났지만 복구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악마들에게 납치되거나 살해당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다른 도시로 가거나 작은 마을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도시의 복구에 힘쓰는 자들은 적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먼지가 흩날린다. 그 속에서 묵묵히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인 테드 일행을 힐끗 바라봤다.
공허한 눈동자가 있었으며, 희망을 잃지 않은 눈동자도 있었다. 몇몇은 부러움과 질시에 가득찬 눈동자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테드 일행을 한 번 훑어보다가 다시 묵묵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테드 크루시안님이시죠?”
도시의 안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테드의 앞에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가장 앞에 있는 것은 하얀 천으로 몸과 머리를 감싼 여자였다. 드러난 얼굴은 새하얗다. 일반적인 사제가 아니라 수녀였다. 그녀의 뒤에는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있었다. 테드에게 말을 건 것은 수녀쪽이었다.
“……그런데요?”
“미카엘라 교단의 대수녀인 나리안이라 합니다. 미카엘라 님에게서 당신을 데려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부디 저희를 따라와 주시지 않겠나요?”
“미카엘라라….”
상대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뒤에있는 사제와 성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태도는 적을 상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당연히 함정일 가능성이 있었다. 바알의 말대로라면 미카엘라는 정면으로 싸우는 것 보다 암수를 펼치는 쪽이니까.
“미카엘라가 저희를 보고 싶다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몇몇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몸을 움찔 거렸다. 미카엘라를 존칭없이 말하는 테드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이미 언질을 받은 것인지 그들은 검을 뽑지 않았다.
“미카엘라 님의 뜻을 감히 저희가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당신들을 데려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뿐입니다.”
“저희는 미카엘라와 사이가 엄청 안 좋거든요. 그 정돈 알고 계시죠?”
“미카엘라님과 사이가 좋지 않으신 건가요…? 혹시 다른 종교… 가브리엘 교단 측 사람이셨나요?”
나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 태도는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 같았기에 테드가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뭐, 여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제가 뭘 믿고 당신들을 따라갑니까? 함정일지도 모르는데.”
“미카엘라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코 함정같은게 아닙니다. 미카엘라 님은 당신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야기라… 어떻게 생각해 바알?”
테드가 바알을 쳐다봤다. 바알의 얼굴은 썩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대수녀를 한 차례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난 고년이랑 이야기 할 것 없는데. 하고 싶지도 않고.”
“들었죠? 제 의견도 바알과 같아서 말이죠.”
테드가 손을 들었다. 하얀 마법진이 손바닥위에 나타난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여기서 제압한 뒤에 미카엘라가 있는 장소를 알아낼 생각이었다. 적어도 바알과 미카엘라가 전투를 치르는 순간 그들이 나서서 귀찮게 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성기사들이 몸을 움찔거리며 손바닥을 검에 가져다 대려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대수녀가 앞으로 나서며 그들의 행동을 막았다.
“미카엘라 님은 이 말도 전하시라 하셨지요. 검의 공주가 자신의 곁에 있으며, 사탄을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륙의 평화가 우선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검의 공주. 과연. 그게 깨어난 건 미카엘라의 짓이었나. 미카엘라는 검의 공주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지?”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검의 공주가 미카엘라의 곁에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검의 공주는 미카엘라의 한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미카엘라와 검의 공주가 만나고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다.
“확실히 흥미가 동하는 이야기인건 맞아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데.”
영력을 한층 더 끌어 올린다. 마력이 아닌 영력으로 된 마법진의 기세가 주변을 짓눌렀다. 성기사들이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그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든다.
“검의 공주는 사탄을 멸할 검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테드가 마법진을 없앴다. 대수녀의 말은 테드의 흥미를 돋구는데 성공했다.
“대화를 나눌 생각이 들었어요. 안내하시죠.”
“휴. 다행이군요.”
아리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장 자신들을 따라오라면서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길을 걷는 도중 바알이 불만스런 눈으로 테드를 쳐다봤다.
“야. 설마하는데. 우리 목적을 잊은건 아니지?”
“안 잊었어. 그냥 정보만 얻은 뒤에 죽여도 상관없어.”
“이건 함정이 틀림없어.”
“설령 함정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나라면 그 정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 검의 공주를 상대할 자신도 있어.”
“…에이씨. 또 허탕 치는 거면 가만 안 둬.”
바알의 경고에 테드가 걱정말라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바알이 갈갈이 날뛰었다.
⁂ ⁂ ⁂
미카엘라가 있는 곳은 무너진 성당의 지하였다. 원래는 낡은 물건이나, 계절에 맞지 않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이는 곳이었지만, 성당이 폐허가 된 지금은 미카엘라가 사용하는 방이 된 곳이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테드 크루시안.”
미카엘라는 푸른색의 머리카락처럼 차분한 음색으로 테이블에 앉아 말했다. 그녀의 옆에는 검의 공주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일전에 본적있는 마녀, 세르미나가 앉아 있었다.
검의 공주는 청은색 눈동자를 빛내며 테드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살의보다는 호기심이 담겨 있다.
반면에 세르미나는 멍한 얼굴이었다. 간간히 허공을 바라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그 행동이 꼭 자신의 팔자를 한탄하는 것 같았다.
“바알과 사이나… 라고 했던가요. 일단 앉아요. 차가 식으면 본래의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없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가장 먼저 의자를 꺼내 앉은 것은 테드였다. 곧이어 사이나가 앉았고, 바알이 벌레라도 씹은 표정으로 미카엘라를 노려보면서 거칠게 의자를 빼내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 씨발년아. 지금 이게 뭐하자는 수작이야?! 우리가 너 따위랑 하하호호 거리며 차나 마시러온 줄 알아? 앙?”
“여전히 당신의 말투는 저질스럽군요. 바알. 조금쯤은 품격이란 걸 배우는게 어떤가요? 뭣하면 제가 가르쳐줄 수도 있어요.”
“좆까! 내가 왜 여기에 온줄 알아? 네년 목 따러 왔어. 개년아!”
“여전하시군요.”
미카엘라의 시선이 테드에게 향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인물은 테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테드가 바알의 어깨를 붙잡았다. 적을 만난 개처럼 으르렁거렸지만, 테드에게 붙잡힌 바알은 날뛰거나 하지 않았다.
“미리 말하는데 본론부터 말해. 바알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사이가 하하호호 하는 사이는 아니잖나.”
“그렇게 나오실 줄 앙고 있었어요. 그러니 본론부터 말하죠. 사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제게… 정확하게는 검의 공주에게 있어요. 검의 공주는 사탄을 죽이기 위해 제게 협력하기로 했고요.”
“본론을 말하라니까. 내게 원하는게 뭐야?”
“제게 협력하세요. 테드 크루시안. 네메스 대륙을 구하고 싶으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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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