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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52화 (25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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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의식

“죽기 딱 좋은 날이야(It is a good day to die).”

청백색의 빛의 입자가 붉은 대지를 뒤덮었다.

보기 좋게 퍼진 입자는 이내 빛을 발하며 연소하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불꽃은 곧이어 지상에 있는 자들의 몸에 달라붙어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비명이 연옥을 가득 채운다. 불을 끄기 위해 물을 소환하거나 지면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 그러나 소용없다.

불처럼 보이는 청염은 엄밀히 말하자면 불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자가 있는 한, 물속에 있어도 설령 바다 속에 있어도 타오른다. 산소가 없다고 해도, 주위의 기온이 절대영도라고 하더라도 입자가 있으면 타오른다.

최악인 점은 이 입자를 자신도 모르게 들이마시게 되었을 경우다. 입자가 몸속에서 연소하여 내장이 타는 감각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입자를 막으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마나로 이루어진 방어벽… 마법 배리어나 결계 같은 것으로는 막을 수 없다. 이 푸른색의 입자는 마나와 만나는 순간 연소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법 배리어는 곧바로 파랗게 타오를 것이다.

입자를 막으려면 집안에 틀어박히는 쪽이 훨씬 더 낫다. 가장 좋은 것은 방공호라도 들어가는 것이다.

“크으아아아악! 마법이…! 발동되지 않는다!”

“빌어먹을! 신체 강화도 불가능하다! 젠장!”

“사탄이시여어어어!!”

입자가 타오르며 그들의 몸을, 세포를 파괴한다. 파랗게 불타오르는 사탄교도들의 입가, 눈, 코, 귀 등의 몸 안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입자와 부딪힌 마나가 연소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입자에 의한 일시적 마나 공백 지대 형성. 통칭 죽음의 지대가 만들어진다.

이 마법의 진정 무서운 점으로 마나를 이용한 공격, 방어 등 모든 것들이 불가능해진다. 당연히 회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입자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0초. 그 정도 시간으로는… 악마를 죽이는 건 불가능한가.”

하급 악마라면 몰라도 이곳에 모여 있는 악마들은 최하가 상급 이상이었다. 마력이 없더라도 가지고 있는 신체능력이 입자에 의한 세포파괴를 어느 정도 견디기 때문이다. 거기다 회복속도까지 빠르다.

악마가 아닌 사탄교도들 중에서 버티는 자들이 있었다. 가지고 있는 회복 포션을 허겁지겁 들이마시거나 몸에 들이부으면서 버티는 것이다. 그래봐야 2~3초 더 살게 해주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앞에 벌어진 광경은 테드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추잡한 광경이었다.

다 함께 사탄을 외치던 사탄교도들이 제들끼리 포션을 빼앗기 시작한 것이다. 포션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들은 동료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마법을 발동하고 20초가 지났을 때, 사탄교도들의 대부분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탄교도는 동료로부터 빼앗은 포션으로 생명을 연장한 놈들이었다.

27초 무렵에 완전히 연소한 입자 탓에 파란 불꽃이 빠르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악으로 버티던 악마들 몇몇이 죽어나갔다.

30초. 파란 불꽃이 사라졌다. 대부분이 재초자 남기지 못하며 사라졌다. 시체가 남아 있는 경우는 양호한 편에 속했다. 사탄교도들 중에서 살아 남은 것은 20명 이하다. 그것마저도 사지 멀쩡한 자들은 없었고, 죽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일 정도로 몸의 절반 이상이 녹은 놈들도 있었다.

악마는 살아 남은 놈들이 많았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전투를 속행할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해보였다.

“……저 거대한 새는 뭐야.”

테드는 검은 심장의 앞에 있는 검은색의 새를 보며 눈가를 좁혔다. 까마귀와 비슷한 외향을 하고 있었는데 크기가 무려 5M에 달했다. 테드는 똑똑히 보았다. 저 거대한 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는 입자를 바람으로 날려 보내는 것을.

“안드라스란 놈이야. 권능은 변이. 그럭저럭 쓸만한 녀석이지. 서열은 네 메이드 보다 높을 걸?”

바알의 말에 테드는 미간을 좁혔다. 저 빌어먹을 정도로 기분 나쁜 심장을 파괴하고 싶었으나,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는 안드라스는 쉬워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의 주위에는 바론과 세르미나까지 있었다.

“네가 신경 써야 할 건 저것들만이 아니야. 다른 놈들까지 아주 뿔이 단단히 난 모양이야.”

박쥐날개를 퍼덕이며 한 악마가 날아왔다. 그 등뒤로 제각각 짐승의 날개를 하거나, 하피처럼 팔이 날개로 되어 있는 악마들이 날아온다. 그 아래에는 하늘을 날지 못해 달려온 악마들이 있었다. 수는 대략 50정도다. 뒤늦게 도착하는 악마는 세지 않은 수였다.

“이곳으로 당당히 날아온 그 기개만은 인정해주마!!”

악마가 태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에 있던 악마들도 제각각 의기양양하게 날아온다. 입자에 괴로워하던 것이 방금전이었는데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단단한 멘탈이다. 아니면 금붕어 뺨칠 정도로 기억력이 나쁘거나.

놈은 테드의 목을 향해 우악스런 손을 내밀었다. 인간의 목정도는 1초도 되지 않아 찌그러진 캔처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설마 내가 마법사라고 얕보는 건가?”

테드는 그의 손을 향해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듯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감각으로 놈의 손을 잡고 뒤에 따라오는 악마들을 향해 휘둘렀다.

“이, 이 무슨 힘이…!”

악마는 경악했으나 말을 끝까지 이루지 못했다. 뒤에 날아오는 악마와 부딪혔기 때문이다. 테드는 마치 둔기처럼 손에 든 악마를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설마 내가 아무 준비 없이 여기에 왔겠냐? 신체 강화 마법을 몇 십 개나 걸어뒀지. 앞으로 3분 정도 밖에 유지 안 되겠지만… 그 시간에는 너희들 보다 훨씬 웃도는 힘을 가지게 되지.”

뒤에 있던 악마들이 기겁하며 타겟을 바꿨다. 테드가 아니라 사이나 쪽이다. 테드는 그들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 명복을 빌어주었다.

사이나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악마를 향해 바알을 내밀었다. 바알은 인상을 쓰며 주먹을 내뻗는다.

“이런 씨발! 천하의 바알이 방패 신세라니!”

상급 악마 한 마리의 머리가 그대로 산산 조각 났다. 뇌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뒤늦게 몸통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바알은 시스템 제약 탓에 약해졌다고 들었는데!”

“제약… 어, 잠깐…. 여긴….”

한 악마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바알이 그 악마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곳은 아스타로트의 연옥. 네메스 대륙과는 다른 개념의 공간. 시스템이 개입할 수 없는 곳. 결론적으로 말해 이곳에 있는 악마는 시스템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제 됐어. 메이드. 이거 놔.”

사이나는 바알의 말에 따라 순순히 그녀의 목덜미에서 손을 뗐다. 바알은 허공에 서있었다. 오로지 마력만을 이용해 허공에 떠있는 것이다.

그녀도 처음부터 제약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제약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건 3분 정도 전으로 테드가 마법으로 일행들의 신체를 강화할 때였다. 시스템 제약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기에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참고로 사이나는 훨씬 이전에 알고 있었는데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테드에게 다행인 점은 바알에게 배신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녀가 여기서 적으로 돌아서며 귀찮다는 말로는 끝나지 않는다. 높은 확률로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테드가 그녀에게 걸었던 종속마법이 유지되고 있었다. 강하게 명령하면 바알은 들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난 기분이 좋아. 쭉 차고 있던 족쇄가 벗겨진 기분이야. 아주 씨발 질질 쌀 정도로 상쾌하다고. 그러니 나랑 좀 어울려 달라고. 버러지들아.”

악마들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상대는 자타공인 마계최강.

서열 1위의 광폭의 마왕.

주먹 한 번에 산이 박살나고, 발길질 한 번에 강이 날아간다.

천재지변도 바알의 앞에선 귀여운 재롱에 불과하다는 말이 괜히 나도는게 아니었다.

“그, 그걸! 모두 사탄의 약을 먹어!!”

한 악마가 두려움을 떨쳐내듯 소리를 질렀다. 그에 악마들이 부랴부랴 약을 꺼내기 시작한다.

“어쭈 대놓고 쳐먹네? 내가 아주 물로 보이나 봐?”

바알이 손을 까딱였다. 지면에서 시커먼 어둠이 위로 솟구쳐 악마들을 삼켰다. 그것은 승천하는 용 같기도 했으며,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암 같기도 했다.

살아남은 상급 악마는 감히 덤빌 생각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바알. 저 검은 심장이 심상치 않아. 조금씩이지만 고동이 빨라지면서 악기의 양도 많아지고 있어. 얼른 해치워.”

테드가 바닥에 내려서며 말했다. 자신이 움직여도 되지만, 바알을 움직이는게 훨씬더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예이. 예이. 주인 놈 명령인데 당연히 들어야지.”

바알이 장난스럽게 대꾸하고서 허공을 박찼다.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심장을 지키듯 서있는 안드라스의 앞에 나타나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하듯 손을 흔들었다. 그 작고 가벼운 손에서 느껴지는 것은 압도적인 마력이다.

“안녕. 짐승아. 네 뒤에 있는 좆같이 생긴거에 볼일이 있는데. 비켜주겠니?”

안드라스는 바알을 쳐다보며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그의 몸이 꾸물거리며 변이하기 시작한다. 부피가 점점더 거대해지고, 몸에는 사자, 호랑이, 악어, 상어, 독수리 등의 얼굴들이 나타나고 그것들의 팔과 다리가 몸 곳곳에 생겨난다.

여러 짐승과 동물들을 억지로 한데 뭉쳐놓은 듯한 역겨운 형상이었다.

“아무리 바알, 너라고 해도… 아스타로트님을 방해할 순 없다!”

“하여간. 악마 새끼들은 좋게 말해줘도 통 못알아 쳐듣는단 말이지. …뭐, 살려줄 생각은 없었지만.”

주먹을 쥔다. 안드라스가 막아서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주먹은 안드라스는 물론이고 그 뒤에 있는 심장까지 찢어 발길테니까.

그러나 바알은 주먹을 내지를 수 없었다. 빠르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바로 자신의 옆을 향해 바알이 무의식적으로 휘두른 막대한 힘이 담긴 오른팔을 베어냈다. 난입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의 작은 품안에 파고들어 바알의 매끈한 배에 커다란 칼을 쑤셔 박아 넣은 것이다.

바알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 피는 난입자의 길다란 백금색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가 입고 있는 하얀 드레스를 빨갛게 더럽혔다.

“넌… 뭐야.”

“검의 공주. 그럼 잘가, 좀 강한 하등생물아.”

바알의 복부를 관통한 대검의 칼날이 황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바알은 얼굴을 굳혔다. 어마어마한 성력이 검으로부터 느껴졌다.

그리고 대검에서 황금빛 폭발이 일어났다.

바알은 백스텝을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대검의 날이 지나치게 좋은 덕에 아슬아슬하게 검날에서 벗어나 폭발을 피할 수 있었다.

“이 씨발년이! 어디서 나타난 잡년이야!”

호기롭게 외친 바알이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저 여자의 움직임은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속도도 속도지만 검을 들고 움직이는 방식이 궤를 달리했다. 아마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높은 무술의 경지다.

살의와 적의를 담아 하얀 난입자를 노려보던 바알을 그녀가 자신이 아니라 다른 곳에 시선을 두는 것이 보였다.

“아….”

멍청한 얼굴로 멍한 소리를 내뱉으며 한 곳을 본다. 바알은 무심코 그녀의 시선을 눈으로 쫓았다. 그녀가 보는 것은 테드였다.

“아, 아아… 아!”

그녀의 눈은 크게 떠지고, 입은 벌어진다.

무표정이었던 얼굴에 격렬한 감정이 깃든다. 시간이 갈수록 진정하기는커녕 점점더 심해진다.

“…이, 이이, 이, 이이이…!”

그녀의 몸이 덜덜 떨렸다. 바닥에 떨어진 대검이 몸에 따라 흔들리며 바위에 부딪혀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그녀는 질 나쁘게 망가진 인형 같았다.

“이 하등생물이이이이이!!!!”

검의 공주의 입을 통해 분노가 표출되고, 대검을 앞으로 내세워 테드를 향해 돌진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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