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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50화 (25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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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의식

의식에 들어서기 직전, 아스타로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태양이 없는 하늘은 새빨갛고, 덥다 못해 뜨거운 공기가 가득한 연옥이었다.

울퉁불퉁한 대지 위에는 2천 명이 넘는 정예 사탄교도와 100에 달하는 악마들이 오로지 아스타로트만을 보고 있었다. 아스타로트는 그들을 한 차례 둘러보고서 오른손에 쥐고 있는 맥동치는 검은 심장을 머리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사탄교도들이 목청이 찢어져라 함성을 내질렸다. 아스타로트는 고동치는 사탄의 심장을 쳐다봤다. 심장이 두근 거릴 때마다 농도 짙은 악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악기는 벌써 아스타로트의 연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만약 연옥의 문을 열어두지 않았다면 연옥은 악기에 가득차서 이곳에 모인 사탄교와 악마들에게 중압감을 부여할 것이었다.

아스타로트의 입장에선 은밀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연옥에 악기가 가득차면 자신 또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었다. 방해를 피하기 위해 중립구역을 선택했으니 다른 국가가 빠르게 눈치 챈다하더라도 이미 늦어 군대를 보낼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의식은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는다. 기껏해야 반나절이다.

아스타로트는 함성 소리가 잦아지자 입을 열었다.

“오늘 이곳에서!”

우렁찬 포효가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마력을 아낌없이 담은 목소리는 연옥의 끝까지 닿았으리라.

“사탄이 부활하리라!”

아스타로트는 번쩍 들고 있던 검은 심장을 자신의 눈높이로 내렸다. 얼굴의 앞에 가져다 대고서 마치 사랑스러운 여인에게 키스를 하듯, 박동 하고 있는 검은 심장의 윤기 흐르는 표면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아까보다 더 큰 함성소리가 새빨간 하늘을 놀래 켰다.

아스타로트는 함성 소리에 대답하듯이 입을 쩌억 벌려 검은 심장을 크게 베어 물었다.

검은 심장이 터지며 시커먼 피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아스타로트는 멈추지 않았다. 며칠은 굶은 거지처럼 심장을 탐했다. 손바닥에 있던 심장을 전부 먹기 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스타로트는 술에 취한 것 처럼 시선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몸의 내부가 뜨거워지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러나 사탄교의 교주로서 비틀거리는 짓거린 할 수 없으며, 꼴사납게 구역질을 하는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다려라.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태평을 가장하며 필사적으로 쥐어짜낸 말을 내뱉으며 아스타로트는 핏발선 눈을 감추기 위해 눈꺼풀을 내렸다.

아스타로트의 몸에서 지독한 악기가 뿜어져 나왔다. 새까만 악기는 마치 끈적한 액체처럼 변하여 아스타로트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애벌레의 고치 같은… 아니, 생물의 심장같은 모습을 형성한다. 3M가 넘는 거대한 검은 심장은 천천히, 그러나 크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박동 했을 때, 사탄교도들이 소리를 질렀다.

두 번째 박동 때, 사탄교도들이 눈물을 흘렸다.

세 번째 박동 때, 그들은 사탄의 이름을 외쳤다.

“사탄!! 사탄!! 사탄!!”

그것은 사전에 정해 놓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누구로부터 시작된 외침인지 알 수 없으나 사탄교도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심장 박동에 맞춰 그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사탄!! 사탄!! 사탄!!”

사탄교도들의 열렬한 외침을 들으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이가 있었다. 사탄교도들의 앞, 심장의 근처에 있는 악마 무리에 끼어 있는 바론이었다.

스킨헤드의 바론은 쪼그려 앉은 채로 바닥에 침을 찍 내뱉었다.

“이게 뭐라고…. 시끄럽구만, 진짜.”

평소라면 바론의 지저분한 행위에 짜증은 랬을 마녀는 그의 뒤에서 팔짱을 낀 체로 흥미롭다는 듯이 검은 심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겉모습은 심장이지만 용도를 따지자면 자궁에 가깝다. 아스타로트는 난자이고, 사탄의 심장은 정자다. 방금 수정이 되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사탄은 탄생할 것이다.

“이봐, 바론. 경고하는데 허튼 짓거리 할 생각이라면 당장 접는게 좋을 거야.”

비쩍마른 난쟁이 노인이 다가왔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은 당장에라도 관짝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붉은색의 두 눈동자 만큼은 소름끼칠 정도로 생생하다.

“……그냥 시끄럽다고 한 것뿐이야. 안드라스 양반.”

악마 서열 55위의 짐승의 안드라스.

세르미나와 바론이 힘을 합쳐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의 힘을 가진 악마다.

“운이 좋구나, 바론. 그레온이 이곳에 있었다면 네 속셈을 일찌감치 파악했을 터. 그럼 너의 비명은 아주 듣기 좋은 자장가가 될 것이었는데. 정말 아쉽구나.”

“…하? 영감. 억측은 관둬. 그렇게 말하면 마치 내가 잠재적 배신자같잖아.”

안드라스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눈동자에는 분명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

“그럼 아니더냐? 네놈의 썩어빠진 정신 상태는 분명히 배신을 준비하고 있을 터.”

“아냐. 아니야. 아니라고. 세 번이나 아니라고 말했어. 그리고 내가 배신할 이유가 없잖아?”

“너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재미본위가 아니더냐? 인간같지 않은 이유로 살인하고, 배신하며, 학살하는 것이 바로 너지.”

바론이 웃음을 지었다. 즐거워서 웃는 것도 아니었으며, 곤란해서 웃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습관적인 웃음이었다.

“배신은 안 해. 아무리 나라도 배신하면 죽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바론은 자신을 향해 적의를 내비치고 있는 수 십 명의 악마들에게 들으란 듯이 말했다.

이곳에서 바론의 평판은 최악이었다. 최근에 마음에 들지 않는 악마를 죽인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탄교의 악마는 바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있다. 만약, 아스타로트가 바론을 건들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바론은 진즉에 악마들의 손에 갈가리 찢어졌으리라.

“…언제 네놈이 본성을 드러내는 지 지켜보고 있겠다.”

안드라스는 그 말을 끝으로 바론에게서 등을 돌렸다. 바론은 그의 작고 굽어져 어딘가 고블린을 닮은 등을 쳐다봤다.

‘……슬슬 질리는데.’

지나칠 정도로 무방비해 보이는 안드라스의 등을 계속해서 보던 바론은 이내 고개를 돌려 침을 찍 내뱉었다. 주위에 있던 악마 하나가 더랍다는 듯이 바론을 쳐다보고선 자리를 피했지만, 바론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사탄의 의식이 시작되고 5시간이 지났을 무렵, 아스타로트에게 연옥의 가호를 받은 악마들은 이변을 확인했다. 누군가가 당당히 연옥에 침입했다.

짐승이나 몬스터라면 연옥의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악기에 꼬리를 말고 도망쳤을 것이니, 최소 지성을 가진 자들이다. 또한 연옥의 들어왔따는 것은 악기의 두려움을 떨쳐 냈다는 뜻이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자들이란 뜻이다. 중립구역에는 모험가가 활발하게 일하니 아마도 꽤 뛰어난 모험가들 일 것이다.

“내가 가지.”

“아니, 본인이 가겠다.”

“금방 처리하고 오겠소.”

5시간 동안 천천히 박동하는 심장만 보느라 지루함이 턱끝까지 올라온 악마들이 제각각 자신이 가겠다고 의견을 표현했다.

바론은 흥미없다는 듯 커다란 심장을 보며 침을 찍찍 내뱉을 뿐이었다.

“그만. 너희들이 나설 필요는 없다. 여기가 어디인지 잊었나?”

안드라스의 말에 악마들이 혀를 찼다.

이곳은 아스타로트의 연옥의 안. 이곳에 없는 하급 악마들의 단위는 몇 천에 달하고, 그들이 최우선적으로 연옥의 침입자를 배제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심장에 모여 있는 악마들이 나설 이유는 없었다.

“우리들의 일은 침입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곳에서 안드라스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악마는 없었다. 악마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맥동하며 악기를 뿜어내는 심장을 쳐다봤다.

그로부터 20분 뒤, 새로운 침입자가 다른 입구에서 나타났다.

⁂ ⁂ ⁂

기분 나쁜 곳이다.

이것은 테드가 연옥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것이었다.

사막보다 더 심하다고 생각되는 열기, 나무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이 새빨간 하늘과 대지로 이루어진 세상. 그야 말로 지옥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바알. 아스타로트의 연옥이란 건 도대체 뭐야? 공간계열 능력이야?”

“공간계열은 맞지. 이 연옥은 아스타로트의 독자적인 세계니까. 존나 넓은 아공간이라고 이라고 해야 하나? 뭐, 네 아공간처럼 살아있는 생명체를 넣지 못한다는 제한 같은 건 없지만. 아스타로트는 연옥에 자신의 부하를 기르고 있어.”

“부하라… 악마겠군. 얼마나 많은 거야?”

“몰라, 인마. 그거 까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 자식 부하 숫자까지 내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없어.”

바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연옥의 특징 같은 건? 혹시나 해서 묻는데 공기 중에 독같은 게 있는 건 아니지?”

“여긴 그 빌어먹을 보라색 세계가 아니야. 그리고 어차피 독 정도는 통하지도 않잖아. 짜증나게 기본적인 것 같지 물을래? 엉?”

“이 공간 자체에 특이한 것은 없다는 건가.”

“내가 알기로 그 새낀 제각각 특징이 다른 연옥을 가지고 있어. 내가 알고 있는 건 3개 정도인데 아마 4~5개의 연옥이 있을 걸?”

“그럼 이 연옥은 네가 모르는 연옥이야?”

“아니, 알고 있는 연옥인데. 놈은 주로 이 연옥에 부하들을 기르고 있지.”

테드는 정면을 쳐다봤다. 커다란 바위의 뒤쪽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악마가 나타났다. 엘프처럼 귀가 길쭉한 자들도 있었고, 몸의 절반이 곤충의 몸인 자들도 있었다. 숫자는 얼추 100이 넘는데 제각각 개성이 넘치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붉은색 눈동자만은 똑같았다.

“……역시 악마. 양반은 못되는 군.”

테드가 마력을 끌어 올리기 전에, 사이나가 테드의 앞으로 나섰다.

“주인님이 이런 조무래기들 까지 처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력을 아껴두시지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사이나의 손에는 보기에도 아름다운 백색의 레이피어가 들려 있었다.

악마들은 아름다운 메이드의 등장에 저들끼리 희희덕 거리기 시작했다.

“오올. 운이 좋은데! 저런 여자를 볼 수 있을 줄이야! 태어나서 저런 예쁜 여자는 처음이야!”

“내가 찜했으니까 눈독 들이지마라?”

“자, 잠깐. 저 여자 사이나 루키페르아니야? 마계에서 들었던 외모와 완전 똑같은데!”

“병신! 서열을 가진 대악마가 뭐하러 아스타로트님의 연옥에 오겠냐? 우리는 명령 받은 대로 침입자를 제거하면 돼.”

“……나. 저번에 안드라스 님이 말하는 거 우연히 들었는데 말이야…….”

한 악마가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악마는 두 다리가 흑염소의 다리였고, 시커먼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서열 81위의 악마… 사이나 루키페르가 한 인간의 노예가 되었다고….”

악마들 사이에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야, 농담 하지마. 재미없거든.”

한 악마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곳에 모여 있는 자들은 하급 악마다. 서열은 꿈에도 꾸지 못한다. 가지고 있는 권능도 보잘 것 없어서 신체능력을 이용하는 것 보다 못하다.

그들에게 있어 서열을 가진 최상급 악마는 감히 넘보지도 못하는 높은 산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손가락 질 한 번에 죽어나가는 것이 하급 악마들의 인생… 아니, 마생이었다.

“아, 아니. 그 말대로야. 사이나 루키페르 일리가 없지. 서열 81위가 뭐가 아쉬워서 인간의 노예가…….”

처음 사이나를 알아본 악마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잇다가 사이나의 검기에 베여 목이 날아갔다. 100명이 넘는 악마들은 새하얀 검이 언제 휘둘러졌는지 파악조차 못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동료 악마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씨발! 이게 뭐야! 서열 악마를 상대해야 한다는 소린 못들었다고!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악마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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