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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49화 (24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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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의식

“이 사실은 모험가 길드가 알고는 있는지….”

테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곳은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이 불가능한 중립구역이다. 몬스터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모험가 길드가 가장 먼저 나서야 한다.

“죄, 죄송합니다. 그거 까지는 잘….”

“아뇨. 촌장님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단순한 푸념이에요. 그나저나 여러분은 도시로 이주할 생각은 없나요? 한 번 몬스터가 습격했다는 것은 또 몬스터가 습격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테드의 말에 노인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안색으로 말했다.

마을 사람 전원이 도시로 이주하는 것 자체는 힘든 일이다. 마을을 버린다는건 생활 기반… 그 동안 유지해온 농지같은 것들을 아예 버린다는 말이 된다. 도시에 가서 새로이 일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무엇보다 도시의 집은 상당히 비싸다.

“그렇군요.”

테드는 그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과 같은 몬스터의 습격은 다시 없을 수도 있고, 도시로 간다고 해서 잘 산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테드가 간섭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험가님은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왠지 신경 쓰여서 말이죠. 저 몬스터들이 무엇 때문에 무리지어 움직였는지 그 원인을 조사해볼 생각이에요.”

“괜찮으시다면 마을에 머물지 않으시겠습니까? 누추한 마을입니다만…, 모험가님이 머무를 좋은 집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노인은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왔다. 테드가 일반적인 모험가였다면 그도 이정도로 저자세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은 몬스터 무리를 마법 몇 번으로 가볍게 해치우는 광경을 보고 최대한 테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대하고 있었다.

그가 테드를 마을에 머무는 것을 제안 하는 이유는 다시 습격해오는 몬스터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지금 습격해온 몬스터 무리 규모의 몬스터가 다시 습격해온다면 테드 없이는 막을 수 없다. 전멸은 확정이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이런 일은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해요. 그래야 여러분들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겠죠.”

노인의 제안을 부드럽게 거절한 테드는 노인과 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떠났다.

마을의 입구에선 사이나와 바알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이나는 깔끔하게 서있었고, 바알은 땅바닥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테드를 보자마자 곁으로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야야. 좀 늦었네. 마을 처녀랑 한 판 땡기고 온 거냐?”

바알은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넣으며 음흉하게 웃었다. 테드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을에 머문 시간은 20붅 전후 밖에 되지 않는다. 마을 처녀랑 그렇고 그런 짓을 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더군다나 마을 처녀의 외모는 평범했다. 사이나의 기준에 맞춰 눈이 높아진 테드에겐 관심도 가지 않는 외모였다.

“일정을 좀 바꿔야겠어. 몬스터 무리가 왔던 쪽으로 가자.”

사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보였다. 그녀가 테드의 의견에 토를 달 리가 없었다. 그러나 바알은 테드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잠깐. 농담하지 마. 우린 미카엘라 년의 갈보를 따먹으려 가야 한다고!”

“중립구역의 몬스터가 무리를 지어 행동하는 건 역사적으로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무언가가 있어. 난 그걸 확인해야겠고.”

“그 샹년은 시간을 주면 줄수록 잡기 힘들어져. 그건 알고 있을 텐데?”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얼마 안 돼. 아마 사흘을 넘지 않을 거야. 겨우 그 정도의 시간이야. 미카엘라가 준비를 했다면 이미 준비를 끝마쳤을 거고. 미카엘라에게 사흘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해서 그녀가 큰일을 할 수 있다곤 생각하긴 어려워.”

“너 그년을 존나 얕보고 있어.”

바알은 테드를 한 번 찌릿하고 노려보았다. 테드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포기의 한숨을 내뱉은 것은 바알 쪽이었다.

“……그래. 지금은 주인인 네 뜻에 따라야지. 난 노예에 불과하니까. 씨발. 뭐해, 빨리 안가?”

“결국은 갈걸. 바알, 도대체 왜 끝까지 개기는 거냐?”

“닥쳐. 병신아. 좆도 아닌 일 가지고 시간만 버리기는…….”

투덜거리는 바알을 뒤로하고 테드는 몬스터가 왔던 쪽, 마을의 뒤쪽 숲을 향해 움직였다.

바알은 시간만 버리는 일이라고 했으나 중립구역의 몬스터가 무리지어 마을을 습격하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몬스터의 표정은 꼭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표정의 경우 테드의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하지만.

숲에 들어서고 얼마 걷지 않아 몬스터의 시체를 발견했다. 시체는 짐승에게 파먹고 난뒤에 버려진 것 같은 형태였다.

부패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에 죽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이나. 바알. 느껴져?”

“예. 주인님. 숲의 안쪽에서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집니다. 없애버리고 싶군요.”

“악기(惡氣)라고 했던가? 그거랑 비슷한데 그레온의 것 보다 더 농밀한 느낌이야. 몸에 달라붙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뭔가 질척질척한 게 굉장히 기분 나쁜데.”

테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말대로 굉장히 불쾌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몬스터가 무리지어 행동한 것은 이 기분 나쁜 악기가 원인이라고.

“아마 사탄교겠지. 이 정도의 악기면… 최소 간부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아스타로트일지도 모르고.”

아스타로트일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기껏 숨었는데 이런 눈에 띠는 짓거리를 아스타로트가 하리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주인님.”

“응?”

사이나의 부름에 투시를 하면서 숲의 안쪽을 확인하고 있던 테드가 작업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바알과는 언제 잠자리를 가질 예정이신지요?”

“……쿨럭.”

예상치 못한 질문에 테드는 마른기침을 토했다. 옆에 있는 바알은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봤다.

바알은 테드와 함께 지내는 동안 밤에 몇 번이나 덮치러 온 적 있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때로는 어른의 모습으로 또는 어른이 되기 직전의 모습으로. 본판이 뛰어나다 보니 어느 모습이나 귀엽고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테드는 바알을 건들지 않았다.

사이나의 관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른 모습의 바알을 봐도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그건 왜 묻는 거야?”

“저는 일전에도 말했듯이. 주인님이 바알을 안아도 상관없습니다. 악마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남자가 여러 여자를 안거나, 여자가 여러 남자를 안는 건 조금도 특이하지 않으니까요. 주인님을 매일 밤 상대하고 있는 저로선 주인님의 막대한 성욕을 알고 있습니다. 기본이 1시간이고, 최근 들어 육체가 전성기에 들어서면서 성욕이 더 강성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런 주인님이 바알을 건드리지 않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군요.”

“내가 성욕이 많은 건…….”

테드는 땀을 삐질 흘리며 변명거리를 떠올렸다. 3가지 정도가 떠올렸다. 그 중 하나는 무차별적으로 복용한 정력제 때문이다. 드래곤 하트가 결정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이나가 말했던 대로 육체의 전성기다. 올해 23살인 테드는 스스로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컨디션을 느끼고 있었다.

속된 말로 물이 오를 때로 올랐다.

“사이나가 아름다워서 그런거야. 사이나는 몇 번을 봐도 조금도, 전혀 지겹지가 않다니까!”

“지금의 페이스로 계속 된다면. 아무리 저라도 언젠가는 질리게 될 거라 생각됩니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니까, 그러네!”

“가능성은 있습니다. 요즘 사정까지의 걸리는 시간이 조금씩이지만 길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5분이었는데 요즘은 2~30분이지 않습니까.”

“……조루가 의심되었 던 부끄러운 과거지. 하지만 내 똘똘이는 한 번 한걸로 가라앉지 않는다고! 그리고 2~30분은 최대한으로 버텼을 때의 시간이야.”

“제가 듣기로 평균 섹스 시간은 10분이하라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2~30분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제게 질려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정보는 누구에게 들은 거야? 바알이지? 바알 맞지?”

바알은 일부러 티내듯이 휘파람을 불며 테드의 시선을 피했다. 테드는 맞다고 시인하는 바알의 태도에 이를 갈았다. 사이나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알이 뒤에서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었다.

“무엇보다… 바알에게 걸린 제약을 빠르게 풀 방법이 성관계를 가지는 것만큼 효과적인게 없다고 생각됩니다.”

“……알고 있었어?”

테드가 일부러 사이나와 바알에게 알리지 않았던 사실이다. 바알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지금 이상으로 귀찮게 달라붙을 것이 분명하고 사이나의 경우에는…….

“지금 주인님에겐 바알의 힘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주인님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주인님은 혼자 이십니다. 한손으로 열손 당해낼 수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미카엘라가 노린다면 그 점을 노릴 것이 틀림없겠지요. 그건 주인님의 유일한 약점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테드를 위해서 나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테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강하게 말한다면 사이나는 알았다며 더 이상 이 말을 꺼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그녀와 괜히 불화의 씨앗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사이나. 너는 그걸로 괜찮은 거야? 내가 다른 여자랑 뒹굴어도 괜찮은 거냐고.”

“괜찮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드물게도 감정이 담겨 있었다. 짜증이 아니다. 그렇다고 질투나 분노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아니었다.

테드는 걸음을 멈추고 사이나를 쳐다봤다. 은발의 메이드가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뒹구는 것은 저도 용납하기 힘듭니다. 제가 비록 악마라고 해도… 여자니까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랑하는 남자의 위험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습니다.”

“……알았어. 생각해볼게.”

테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곧바로 답을 주셨으면 합니다만.”

“그건 좀 봐줘.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테니까. 솔직히 바알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감이 잡히지 않거든.”

성관계를 가진다고해서 바알의 제약이 곧바로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지금의 사이나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그 짓을 해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앙? 그건 그냥 넘길 수 없는데. 내가 도움이 안 된다고?! 저 메이드 보단 도움이 되는게 당연하잖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주인님의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

바알의 말은 완전히 무시한 주종은 다시 정면을 보며 숲의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중에 바알이 욕설을 내뱉었지만, 그건 항상 있던 일이었다.

그리고 테드는 어느 지점에 도착해 멈추었다. 특별한 지점은 아니었다. 주변은 나무가 우거져 있고 덤불이 자라 있는 사람과 몬스터의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테드의 바로 앞 공간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 듯이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공간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듯한, 흔들리는 수면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부터 악기가 흘러나오고 있어. 마법 결계는 아니고… 주술인가? 주술같은 느낌은 아닌데.”

“멍청아. 이건 권능이야.”

바알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두 눈을 날카롭게 변하고, 입가에는 시니컬한 미소가 걸렸다.

“네가 지긋지긋하게 외치는 아스타로트 놈의 권능인 ‘연옥’이지. 축하해 새꺄. 숨은 아스타로트를 여기서 찾은 넌 운이 좋은 편이야.”

“아스타로트…….”

테드가 작게 중얼거리며 일그러진 공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일그러진 공간 자체에는 위험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이건 워프게이트와 비슷한 역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연옥은 놈의 공간이야. 안락한 집보다 더 좋은 홈그라운드지. 아마 들어가는 순간 놈에게 들킬거야. 연옥 안에는 놈이 노예처럼 부리는 악마들이 득실거릴 테니 각오하고 들어 가는게 좋을 걸?”

“각오라면 이미 되어 있어. 널 만나기 전부터.”

테드가 연옥의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 작품 후기 ============================

대답이며 정해져 있지.

…답정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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