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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46화 (24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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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검의 제단.

파티원 모두가 검의 공주에게 한눈이 팔린 사이에. 조시아는 진중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곳 또한 마찬가지로 천장과 벽에 총합 200개는 될법한 수의 검들이 공간을 장식하고 있었다.

애냐가 말했던 대로 그녀가 검의 공주, 즉 고대 병기라면 분명 근처에 사용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 조시아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저 여자아이가 검의 공주… 이제 어떡하지?”

카반이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그는 자신의 천족 친구에게서 검의 공주에 대해 대략적이나마 들었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병기. 어떻게 보면 골렘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보니 골렘이 아니라 사람과 닮았다. 굳이 물건으로 비유하자면 사람 크기로 만든 인형이다.

“들고 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리샤의 말에 카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기엔 검의 공주는 굉장히 가벼워 보였다. 실제론 병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거울 지도 모르지만.

“난 저 공주님보다 여기에 있는 검들을 죄다 가져가고 싶은데.”

“남자들은 보통 검보다 여자를 택하지 않아?”

이리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면서 카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말대로 명검과 미녀는 남자의 가슴을 자극한다.

하지만 눈앞의 있는 검의 공주는 무언가 다르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인건 인정한다. 그러나.

“뭔가 꺼림칙하다 말이지. 그 정체가 ‘고대 병기’이기 때문인가…?”

조금도 미동도 하지 않고 화려한 왕좌에 앉아 잠들어 있는 검의 공주에게서 불길함이 느껴졌다. 그 불길함의 원인이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불안을 더 한다.

“일단 주위를 둘러봤는데 특수한 마법 장치같은건 아무것도 없어. 짐작에 불과하지만 이곳에 있는 검을 가져가기 위해선 고대 병기를 깨울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녀가 이곳의 주인으로 보이니까.”

조시아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음. 뭐, 검의 공주를 조사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문제는 여기서 하는지 아니면 가지고가서 하는 건데. 조시아, 넌 어느 쪽이 좋아?”

“갑자기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데?”

“그야 우리 파티의 마도사인 네가 검의 공주를 조사해야 하니까. 아님 뭐야, 우리에게 맡길 생각이야? 그것도 아니면… 길드에 보낼 생각이라던가?”

“마음에도 없는 말은 하지 마. 다른 건 몰라도 길드에는 절대로 보내지 않을 거잖아?”

길드에 고대 병기를 맡기게 되면, 이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모험가 길드는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다. 최악의 경우 고대 병기를 빼앗기고 입막음으로 암살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럼 여기서 최소한의 조사를 끝 맞춰야해.”

밖에 나가면 길드에 알려질 가능성이 있었다. 카반은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리라.

“알았어. 마도사의 이름을 걸고 최대한 노력 해볼게.”

조시아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서 왕좌를 향해 걸어갔다. 바로 앞에서 검의 공주를 쳐다봤다. 하얀색 피부는 엘프인 애냐보다 더 좋아 보였고, 속눈썹 하나, 하나까지 붙어 있었다. 도저히 고대 병기로는 보이지 않는 외형이었다.

검의 공주를 향해 손을 내뻗던 조시아는 도중에 멈칫거렸다. 검의 공주의 겉모습은 아름다운 소녀다. 어디를 만져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뒤에서 카반이 뭐해, 가슴을 만져버려. 골렘 같은거잖아. 하는 소리는 일부러 무시했다.

조시아는 눈앞의 여자가 생명체가 아님을 알아도 외형을 보니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었다. 거기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애냐의 시선이 무지막지하게 신경쓰였다.

그렇기에 조시아는 무난하다고 생각한 장갑에 감싸인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온기 따윈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직후, 조시아는 왕좌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붙잡고 입을 벌린 체 가쁜 호흡을 해댔다.

놀란 파티원들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조시아의 의식에 닿지 않았다.

조시아의 몸 안에 있는 9할에 가까운 마력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검의 공주에게 마력이 빨려 들어갔다. 흡수당했다.

“조시아! 괜찮아?!”

카반의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난 조시아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다잡았다. 몸안의 마력 전부를 빼앗겼다면 기절을 넘어 목숨까지 위험했었겠지만, 다행히도 1할의 마력이 남아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어…? 왕좌에서 마법진이!”

카반의 호들갑을 들으면서 조시아는 왕좌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화려한 왕좌에서 마법진이 떠올라 있었다. 왕좌를 중심으로 마법진이 나타났기에 마치 검의 공주를 보호하는 듯 한 모습이었다.

“뭔가 위험한 것 같아! 일단 물러나!”

“이리샤의 말이 맞아! 카반! 조시아를 데리고 물러서!”

등뒤에서 여성 2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반은 그대로 뒤돌아 그녀들의 말에 따르려고 했다.

“…잠깐. 잠깐만, 카반. 이건 위험한 마법이 아니야!”

조시아는 후들거리는 몸에 힘을 주어 카반의 부축에서 벗어났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한 눈으로 마법진을 향해 다가갔다.

“이건 일종의 프로텍트야. 락… 자물쇠라고도 할 수 있어.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골렘 대부분이 비슷한 프로텍트를 가지고 있어. 골렘의 경우 프로텍트를 풀어야 주인 인식을 할 수 있어. 만약 검의 공주가 골렘과 같다면….”

“즉. 프로텍트를 풀어야 검의 공주가 움직인다는 거군. 아, 검의 공주가 움직여야 이곳에 있는 검들을 가져갈 수 있는 건가?”

카반은 마법진을 쳐다봤다. 검사인 그가 보기엔 마법진은 다 거기서 거기로 보였다.

“저거 풀 수 있겠어?”

“몇 년 전의 나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정도로 복잡한 마법진이지만… 지금의 나는 가능해.”

조시아는 자신감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프로텍트를 꼭 풀어야 할까?”

뒤쪽에서 애냐가 불안함을 담아 물어왔다. 조시아는 그녀를 보며 자신을 믿으라는 듯 웃어보였다.

“골렘은 프로텍트를 풀고 주인 인식을 진행하면 돼. 골렘에게 자신의 마력 파장을 흘러 보내면 되는 간단한 일이야. 검의 공주가 골렘과 같다면 오히려 여기서 주인 인식을 해야 해. 그리고 어쩌면 주위에 있는 검들도 가져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어절 수 없지. 얼른 시작해! 몇 시간 정도 걸려?”

검에 낚인 카반이었다.

결과적으로 프로텍트를 해제하는데 3시간이 걸렸다. 조시아는 내심 10시간을 상정했지만, 운 좋게도 마법진의 핵심부분을 간파하고 빠르게 프로텍트를 해제 할 수 있었다.

프로텍트의 마법진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조시아는 재빨리 자신의 마력 파장을 검의 공주에게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자신과 그녀 사이에 존재하는 마력 링크는 이미 존재해 있었다. 그리고 링크를 통해 마력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검의 공주의 눈꺼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녀의 머리위를 장식하고 있는 티아라와 똑같은 청은색의 눈동자였다.

그 아름다운 눈동자는 굉장히 차갑다. 생물의 것이 아닌 강철 같은 느낌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같은.

검의 공주는 조시아를 쳐다보고 그 뒤에 놀라움을 표하는 파티원들을 확인했다. 그녀의 작은 입술을 열었다.

“검의 공주 가동. 임시 마스터 학인. 현재 신체 상태 확인 완료.”

겉모습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다. 조시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검의 공주는 왕좌에서 일어섰다. 꼿꼿이 선채로 허공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소드 컬렉션 확인.”

제단의 내부를 장식하고 있던 검들이 청백색 빛의 휩싸이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31번검. 헬크라임.”

은은한 황금색의 검신이 물결치는 듯한 검, 플랑베르쥬가 그녀의 손에 나타났다. 검의 공주는 망설임 없이 헬크라임을 휘둘렀다. 공간을 왜곡해 30M 내에 대상을 거리 제약을 무시하고 베어버리는 검이다.

조시아가 그녀의 행동에 판단하기에 앞서, 카반이 울부짖었다.

“이리샤!!!!”

조시아가 뒤를 돌아봤을 때, 이리샤의 몸은 머리를 잃은 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머리는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축구공처럼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이리샤…!! 이리샤!! 이리샤아아아!!!”

카반이 연인의 머리를 붙잡기 위해 뛰었다. 그리고 등에 커다란 검흔이 생겨나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바닥을 적셨다. 카반이 바닥에 떨어졌다.

조시아가 숨을 삼키며 떨리는 눈으로 카반을 쳐다봤다. 패닉에 빠지려는 정신에 냉정함을 부여한 것은 모험가로서의 경험이었다.

카반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 증거로 떨리는 몸을 무릎을 세워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얕았나.”

칼날처럼 싸늘한 검의 공주의 목소리가 조시아의 사고를 가속시켰다. 조시아는 다시 움직이려는 검의 공주의 팔을 매달리듯 붙잡았다.

카반의 바로 옆, 바닥에 검흔이 새겨졌다.

“……마스터. 이게 무슨 짓?”

“그걸 묻고 싶은 건 내 쪽이야!! 너! 카반에게… 아니, 왜 이리샤를 죽인 거야?!!”

조시아의 입에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마법을 사용해 검의 공주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마력만 충분했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등 생물을 토벌하는 것이야 말로, 내 의무.”

검의 공주는 담담하게 말했다. 조시아를 이를 뿌득 갈았다.

“웃기지마! 내가 마스터라고 했지?! 명령이다! 당장 멈춰! 아니, 당장 자살해라! 이리샤를 죽인 대가를 치러!!”

“불가능. 임시 마스터에게 명령 권한은 없어.”

검의 공주는 처리하지 못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다시 팔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나 조시아가 온몸에 힘을 주어 검의 궤도를 비틀었다.

“……아무리 마스터라도 내 의무를 방해한다면 죽이겠어.”

청은색의 눈동자가 조시아에게 향했다. 조시아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마주 노려봤다.

“네이 년!!!”

카반의 살의가 깃든 검이 검의 공주를 머리를 노렸고, 애냐의 화살이 그녀의 사각지대를 노렸다.

“56번검. 이지스워.”

마치 채찍같은 연검이 검의 공주의 주위를 감쌌고, 애냐의 화살과 카반의 검을 튕겨냈다.

“크으윽! 아직!”

검을 놓친 카반은 곧바로 허벅지에 장비되어 있는 보조 장비, 단검을 쥐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검의 공주의 목을 꿰뚫는다고 느낀 순간, 단검의 손잡이는 어느새 그녀의 한 손에 들려 있었고, 검날은 카반의 목을 꿰뚫고 있었다.

접근 전에 있어 파티 제일로 강한 카반이 저항도 못하고 당했다. 그 사실을 파악한 조시아는 친구의 죽음에 분노하면서도 남아 있는 동료를 걱정했다.

“도망쳐!! 애냐!!!”

“큿… 하지만…!”

밖으로 나가봤자 조시아가 없는 이상 제단을 벗어날 순 없다. 왜냐하면 바다 속을 지나가기 위해선 조시아의 마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시아를 버리고 갈 수는 없다.

애냐는 활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화살촉에 녹색 빛이 서린다. 정령을 인첸트 시킨 것이다. 그녀는 최대한의 마나를 집중 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공간을 무시하는 검에 반도 날아가지 못해 갈라져 엉뚱한 곳으로 떨어졌다.

“도망쳐! 도망치라고! 애냐!!!”

애냐가 입술을 깨물며 다시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자신보다 훨씬 높은 실력의 보유자인 카반을 단칼에 죽여 버리는 검의 공주로부터 압도적인 격차가 느껴졌다. 절망이 몸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던 손이 놓아진다. 정령의 힘을 머금은 화살이 다시 검의 공주를 향해 날아간다. 허나 화살이 검의 공주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팔을 흔들어 조시아의 속박에서 가볍게 벗어난 검의 공주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곧바로 애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플랑베르쥬가 그녀의 북부를 갈랐다. 애냐의 오른팔이 그녀의 검을 잡았다.

검의 공주의 하얀 드레스가 붉은 피로 물든다.

애냐는 내장이 바닥으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웃었다.

“실수… 한 거야…!”

허리춤에 걸린 단검을 왼손으로 뽑아들어 그녀의 가녀린 목을 향해 찔러 넣은 것이다.

“불가능. 내 피부는 그런 쓰레기 검에 베일 정도로 약하지 않아.”

단검은 검의 공주의 목을 뚫지 못했다. 생채기 하나 주지 못했다. 단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애냐는 아득해지는 시선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헐레벌떡 달려오는 조시아를 보았다. 애냐가 무언가를 말하듯 입을 뻥긋거렸다가 이내 축 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애냐!!!!!”

“대상은 이미 죽음. 대답하지 못해.”

“검의 공주…! …죽인다!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떨어진 단검을 손에든 검의 공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의 공주가 플랑베르쥬를 휘둘렀다. 단검을 쥔 조시아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몸의 균형이 뒤틀리고, 그의 몸이 바닥에 무너졌다.

“왜! 도대체 왜 이렇게…!”

조시아가 눈물을 흘리며 검의 공주를 노려봤다. 할 수 있는 것은 노려보는 것이 전부였다.

검의 공주는 지긋이 조시아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되살릴 수단 있음. 저 엘프를 살리고 싶어?”

“……뭐?”

“내 조건을 들어준다면, 살려주지 못할 이유는 없어.”

검의 공주가 무감정하게 말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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