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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44화 (24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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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검의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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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에 들어오는 사탄교도들은 모조리 죽이고, 발견한 생존자는 텔레포트 마법으로 마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빠르게 내부를 탐색한 그녀는 목적하던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은 두꺼운 철벽으로 둘러싸인 네모난 방이었다. 천장의 높이는 5M가 넘고, 방의 넓이는 작은 저택과 맞먹을 정도다. 이 방은 중간에 유리가 박힌 벽을 두고 또다시 2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사이나가 있는 쪽은 관찰하기 위한 곳으로 사탄교도들이 미쳐 정리하지 못한 자료들이 대규모로 남아 있었다.

사이나는 서류 한 장을 대충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이곳에 있는 서류들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유리 너머를 쳐다본다.

거기엔 5마리의 데비크를 뭉쳐 놓은 듯한 형상의 괴물체가 있었다. 몸 곳곳에서 촉수가 솟아나서 지렁이처럼… 아니, 연가시 처럼 기분 나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의미 없어 보이는 촉수의 움직임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사탄교도와 데비크는 남기지 않고 처리하라는 주인님의 말을 떠올리고 성실히 이행하기로 했다.

“권능으로 처리하는 게 좋겠군요.”

최적의 처리 방법은 곧바로 떠올렸다. 유리벽은 시야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기에 벽 너머로 충분히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사이나가 오른손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괴생물체가 격렬하게 반응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촉수가 지면과 벽을 후려친다. 유리에도 촉수가 부딪혔다. 위험한 괴물의 관찰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만큼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괴물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짓눌린 듯 몸이 터져나갔다. 피가 유리에 까지 튀겼으며, 촉수 몇 가닥이 끊어져 바닥에 축 늘어졌다.

“…….”

괴물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다시 권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괴생물체의 몸은 더 이상 찌부러지지 않았다.

사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괴물의 몸은 현재 살이 터져나가고 뼈대만 간신히 남아 있는 상태다. 촉수는 가장 굵은 2개를 제외하면 전부 끊어져 있다. 그 2개도 짓밟힌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고작이다.

사이나가 유리벽의 옆에 설치되어 있는 문을 향해 움직였다. 권능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죽일 수 없다면 직접 들어가서 죽이면 된다.

사이나는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문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흔들렸다. 자동으로 락이 풀린 것이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후덥지근한 열기와 지독한 피비린내였다. 그리고 뒤늦게 짐승 배설물같은 악취가 찾아왔다. 어떤 것이나 기분 나쁜 감촉이었다.

괴물은 문이 열리며 들어온 신선한 공기 때문인지 혹은 인기척 때문인지 사이나를 향해 3개가 붙어 있는 머리를 조금 움직였다. 6개의 흐릿한 적안은 사이나에게 향해 있었다.

“주, 죽여… 우, 우릴… 죽여줘…!”

노인, 어린아이, 여자, 남자 등의 모든 연령대의 목소리 몇 개가 한데 겹쳐진 것 같은 소리였다. 그것은 애처롭게 자신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사이나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새하얀 검을 꺼냈다. 괴물과는 8발자국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굳이 가까이 다가갈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여러 차례 검을 휘둘렀다. 초승달을 닮은 푸른색의 검기가 괴물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괴물의 몸체는 잘려나갔다.

괴물의 심장 위치를 몰랐기에 사이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움직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검기를 날려 보냈다. 20번 정도 보내자 그것은 완전히 토막나 꿈틀거리지도 못했다.

백색검, 나찰을 거두고 혹시나 싶어 괴물의 시체를 살피던 사이나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건.”

권능으로 시체속에 있는 것을 허공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검붉은 피 속에 있던 것은 주먹만한 검은 구슬이었다.

그건 이전에 베인이란 자가 먹었던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다만, 크기가 몇 십 배는 컸다.

사이나는 이걸 파괴하는게 옳은 행동일지 잠시 고민하다가 챙기기로 했다.

어쩌면 중요한 물건일지도 모르니 챙겨 가면 주인이 칭찬해줄지도 모른다는 아주 약간의 흑심을 품었다.

“아니, 이건 순순히 주인님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니까요.”

⁂ ⁂ ⁂

날개달린 데비크를 단번에 해치우고 실험소의 지하로 들어온 테드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걸레라 해도 손색이 없는, 누더기 같은 옷을 몸에 걸친 6~7세 정도의 어린아이들 7명 사이에 서있었다. 사탄교도의 옷을 입을 입고 있는 남자는 양손으로 장검을 꼭 쥐고서 테드를 노려보며 안쓰러울 정도로 많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애들 사이에서 꼴사납게 뭐하는 짓거리냐. 얌전히 앞으로 나와.”

남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몸을 한차례 크게 떨고서 바로 옆의 남자아이의 목에 검날을 가져다 댄 것이다.

테드의 신경을 더 거슬리게 하는 점은 남자아이는 조금의 반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기 따윈 조금도 없는 죽은 동태 같은 눈으로 테드를… 아니, 정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움직이지 마…! 이 괴물놈! 네놈은 이것들을 구하려고 여기에 온 거겠지?!”

“……이것들이라.”

테드가 조용히 되뇌었다. 인체 실험의 피해자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자니 미약하게 열불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회귀 전의 자신이었다면 전투 중에 이런 종류의 분노는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지,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꺼지라고! 이것들을 죄다 죽여 버리기 전에! 아, 이 녀석들이 목적이었지? 한 마리 정도는 데려가도 상관없으니 데려 가든가!”

남자의 손에 따라 떨리는 검날은 남자아이의 목에 상처를 냈다. 검날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을 확인하는 순간, 테드는 곧바로 시간을 멈췄다.

남자에게 다가가 검을 빼앗고, 멱살을 잡아 어린아이들 틈에 있는 그를 빼내어 조금 떨어진 곳의 벽으로 밀쳤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검으로 팔과 다리를 베고 다시 시간을 움직였다.

남자의 팔다리가 피와 함께 떨어지고 몸통이 바닥으로 엎어졌다. 뒤늦게 갈라진 비명소리가 울렸다.

남자의 후두부에 발을 턱하니 올린 테드는 손에든 목소리에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게 주의하며 물었다.

“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지?”

“씨발! 씨발! 씨발! 왜 갑자기 나타나서는! 곧 있으면 승진이었다고…! 씨발! 미래도 보장되어 있었고! 부하도 생기고, 미녀도 안을 수 있었다고! 네가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네가! 네가!!”

자신의 피로 된 웅덩이에 강제로 머리를 박고 꽥꽥 비명을 내지르던 남자가 분노해서 외쳤다. 그의 입에서 테드를 향한 저주의 말은 쉴 틈 없이 흘러나왔다.

테드는 어이없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 봤다.

“왜 네가 화내는지 모르겠군. 여기서 화낼 자격이 있는 건 저 아이들 일텐데.”

“네가 오지 않았다면 저것들의 미래도 행복하게 변했을 거라고! 전부 네놈이 저것들의 인생을 망친거다!”

테드는 진지하게 그의 기억을 들여다 볼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뻔뻔하게 말 할 수 있는지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저것들에게 무슨 짓을 했냐고?! 씨발! 아무것도 안했어! 그냥 방에 쳐박아두고 음식을 먹인게 전부야!”

“그걸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하나?”

“씨발, 진짜라고! 저것들은 어려서 데비크로 만들어도 쓸모가 없어! 어중간하게 커서는 먹이조차도 되지 않는다고! 음식을 주고 길러주고, 미래의 사탄교도가 될 수 있도록 교육까지 시켜줬으니 감사인사를 받아야 할 정도라고! 씨발!”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악을 쓰듯 외쳤다.

신경쓰이는 단어가 여럿 있었다. 교육이라는 것은 당연히 평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짐작이지만 아마도 세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먹이조차 되지 못 한다는 건 뭐지?”

“왜 괴물새끼야. 흥미 있냐? 막태어난 갓난아기는 영혼이 순수해서 질좋은 먹이가 된다고 들었거든? 그래서 좀 귀해. 데비크 중에서도 가망 있는 놈들에게 특별식으로 주지! 한 30번 정도 먹으면 그게 ‘사탄의 자식’이 되거든.”

“…….”

“궁금한건 다 풀렸냐? 응? 그럼 발 치워 새끼야!!”

테드는 남자의 머리를 밟고 있는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의 얼굴이 지면에 짓눌리고 코가 박살났다.

“씨이발! 뭐해 애새끼들아! 보고 있지만 말고 아까 말했던 대로해! 지금 당장! 애미, 애비가 보고 싶지 않냐?!!”

남자는 필사적으로 한 곳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서 외쳤다.

움찔거린 아이들이 누더기 같은 옷 속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들고 테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7개의 단도가 테드의 허리와 허벅지 부분을 찌른다. 그러나 검날은 테드의 옷을 뚫지 못했다. 위광을 뚫기에는 지나치게 약했다. 하물며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해 깡마른 아이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테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이 쓸모없는 것들! 이 식충이 놈들! 이 은혜도 모르는 벌레 같은 것들!”

남자가 어린아이들을 향해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 그에 아이들은 더욱더 단도를 찔러댔다. 테드는 한숨을 내쉬고 손에 들고 있는 검으로 남자의 등에 찔러 넣었다. 머리를 밟아 박살내지 않은 것은 아이들의 몸에 놈의 더러운 피와 뇌수가 묻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하! 씨발, 이럴 줄 알았지!”

피를 쿨럭 토해내고 핏발 선 눈으로 눈물을 흘러대면서 남자는 웃었다. 분노와 증오를 비롯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담겨 있는 웃음이었다.

테드는 그의 다음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분명히 자신에게 저주의 말을 쏟으리라.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놈의 저주는 아무런 효력도 없을 테고, 운이 좋으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테니까.

그러나 테드의 예상은 틀렸다.

“잘 들어 쓸모 없는 애새끼들아! 네들 애미, 애비는 실험에 실패해서 폐기처리 된지 오래야!”

남자의 말이 끝나고 약간의 텀을 두고 6개의 단도가 떨어져 바닥과 부딪혔다.

몇몇 아이는 힘없이 주저앉았고, 몇몇 아이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러나 한 아이 만이 반응이 달랐다. 죽은 눈을 하고 있던 아이의 눈에는 살의가 넘쳐났다. 검었던 눈은 붉게 변했다.

“살아 있다고 했잖아!”

아이가 외쳤다. 테드조차 놀랄 정도로 서슬퍼런 목소리였다.

“하하하하! 그걸 믿냐?! 이래서 애새끼들은 싫다고! 혼자 생각할 줄은 모르지! 거짓말도 아무 의심 없이 믿지! 그래. 넌 좀 똑똑했지. 근데 그래봤자 짜증나는 애새끼라고! 아, 씨발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니들을 죽여버리는 건데!”

“으아아아아아아아!!”

아이가 비명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단도를 남자를 향해 찍어 내리려고 했다.

테드가 한 손으로 아이의 어깨를 붙잡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그만 둬. 그 놈은 이미 죽었다.”

아이가 날뛰는 것을 멈추었다. 붉게 변한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테드는 아이를 놓지 않았다. 아이의 몸을 놓았다간, 아이가 놈의 시체에다가 분풀이를 할 것 만 같았다. 거기다 붉게 변한 눈이 신경쓰였다.

남자는 아이들을 가둬놓고 음식만 먹였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게 사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가둬놓은 곳이 특이할 수도 있고, 음식도 이상한 약을 타거나 할 수도 있었다.

‘죽여야 하나?’

테드의 눈동자가 마성으로 인해 붉게 변하는 것처럼, 데비크의 눈동자가 붉은 것처럼. 붉은 눈은 일종의 표식이었다. 이대로 놔두면 나중에 화근이 될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피부가 검게 변하지도 않았고, 꼬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데비크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남는다. 어쩌면 데비크 보다 더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데비크도 아니고, 제대로 이성을 가지고 있어. 죽일 이유는 없어.’

진심으로 아이들을 죽일지 고민했던 자신에게 약간의 경멸의 감정을 품으며, 테드는 눈앞의 아이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듯이 덮었다.

그는 아이를 대하는 것이 서툴렀다.

“여기까지 오면서 구출해낸 생존자들이 있다. 어쩌면 너희들의 부모가 있을지도 모르지.”

아이들의 시선이 테드에게 모여들었다.

눈동자에 담겨 있는 것은 희망이었다.

테드는 그 시선을 느끼며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희망적인 말은 했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의 부모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한 없이 낮다.

“……너희들을 그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주마. 이딴 곳에 일초라도 머물고 싶지 않겠지?”

아이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테드가 마력을 일으켰다. 바닥에 푸른 마법진이 빛나며 나타난다.

아이들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 점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테드는 텔레포트 마법을 발동해 아이들을 보냈다.

만약에.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저 아이들을 발견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테드는 움직였다.

이제 남은 것은 실험소를 흔적도 없이 파괴하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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