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31. 검의 제단.
“오오. 쌔끈빠끈한데?”
바알의 저열한 말에도 볼텐은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바알은 직접 만나는 것은 그녀도 처음이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그녀의 막돼먹은 성격에 관해서는 알고 있었다. 악마들 사이에선 바알에 관한 것은 유명했다.
“처음 뵙네요. 서열 1위의 광폭의 마왕님. 전 볼텐, 안개의 악마라 불리지요.”
볼텐이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그 탓에 웨이브진 붉은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풍만한 가슴이 크게 출렁였다.
피투성이의 바알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피보다 붉은 눈동자로 볼텐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외모만 따진다면 악마들 중에서도 빼어나다 할 수 있었다. 육감적인 몸매를 보자면 서큐버스의 피가 섞였을지도 모른다. 바알은 머릿속에 안개의 악마라는 키워드를 입력해 정보를 검색했다. 유감스럽게도 나오는 정보는 없었다.
“처음 보고, 처음 듣는 듣보잡인데. 서열을 가진 악마는 아니구만? 뭐하는 년이냐?”
바알은 자신의 몸에 묻은 피와 내장찌꺼기를 권능인 폭식으로 흔적도 없이 처리하며 물었다.
“마계 구석에서 제법 이름 날렸다고 생각했는데… 바알님의 귀에 들어가기엔 부족했나 보네요. 서열도 가지지 못했으니 당연하지만요.”
모욕이라 할 수 있는 바알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넘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분노는 느껴지지 않는다. 바알은 눈앞의 여자가 아스타로트 계열이라고 생각했다. 표정을 속이고, 잔머리를 굴리는 놈들.
바알은 눈앞의 여자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졌다.
“그래. 무슨 볼일이냐? 용건만 간단히 말해.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죽이지 않고 들어주고 있는 지금.”
“용건이요? 사실 별거 없어요. 그저….”
볼텐이 한 손으로 자신의 뺨에 손을 대었다. 눈이 곱게 휘어지고, 입이 찢어지며 미소를 그린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섬뜩한 미소로 품고 있는 것은 조롱의 뜻이다. 그야 말로 악마에 어울리는 웃음이다.
“그 유명한 바알이 약해졌다기에 보러왔을 뿐이에요. 그리고 겸사겸사 내 손에 처리하려고?”
바알의 주먹이 볼텐의 머리를 강타했다. 펑! 공기 터지는 소리가 통로에 반사되어 메아리치고, 볼텐의 머리 부분에는 희뿌연 안개가 흩어지고 있었다.
바알이 그녀의 몸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발차기는 검처럼 허공을 그었고 볼텐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양분했다. 볼텐의 몸이 안개로 변해 공기에 녹듯이 사라졌다.
“안개의 악마… 이 뜻이었나. 그래도 좀 놀랐는 걸. 두 번째 공격은 권능을 쬐끔 담았는데.”
몸을 안개로 만드는 권능이라면 폭식이 흡수해야 정상이나, 폭식은 안개의 일부도 흡수하지 못했다. 혹은 폭식이 흡수했음에도 안개라는 특징 때문에 아예 느끼지 못했거나.
바알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새하얀 안개가 뭉쳐지더니 이내 육체를 구성했다.
붉은 머리칼의 미녀가 입가를 길게 찢으며 웃고 있었다.
“하하하! 그 바알의 공격이! 내겐 전혀 통하지 않아!”
“아, 씨발.”
큰소리로 득의양양하게 웃는 볼텐에 기분이 급격히 나빠진 바알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요즘 별 좆같은 것들이 나대네.”
“아스타로트는 널 상대하지 말고 도망치라고 했지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
바알의 몸 주위로 희뿌연 안개가 모여들었다. 서늘한 안개를 바알의 하얀 피부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안개는 바알의 몸을 꽈악꽈악을 조이더니, 순식간에 가시로 돌변했다. 새하얀 가시가 바알의 피부를 찔렀다. 피가 몸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씨발! 왜 못 먹는 거야?”
폭식이 안개를 전혀 먹지 못했다.
바알이 오른 발을 들어 바닥을 내리찍었다. 충격파가 퍼진다. 주변의 벽이 찌그러지고, 바닥엔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몸에 달라붙었던 안개가 우수수 떨어져 사라졌다.
피부에 뚫린 구멍은 순식간에 회복해 사라졌다. 피부를 타고 중력의 부름에 따라 아래로 흐르던 피도 폭식으로 모조리 흡수한다. 바알은 처음의 깔끔한 모습을 되찾았다.
“네 권능은 내 안개에 통하지 않아! 물론 내 몸에도.”
볼텐이 자신감 넘치는 모델이 무대위를 걷는것처럼 바알을 향해 움직였다.
고혹적인 움직임이였다. 만약 바알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면, 아니 동성애자였다면 시선 한 번쯤은 던져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알은 동성애자도, 양성애자도 아니었다.
바알의 눈이 민소매 블라우스에 감싸인 볼텐의 가슴 쪽으로 향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출렁이고 있다. 속옷을 하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너 일부러 그렇게 걷는 거, 피곤하지 않냐?”
“어머? 자연스러운 걸음인데 왜 그래? 아, 몸매에 자신이 없어서 그러니? 하긴 내가 그런 유아체형이었다면 절망해서 죽었을 거야. 그런 색기도 없는 몸으로 어떻게 살라는 건지. 그런 의미에서 바알 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아앙? 이년이 성질 돋구네!”
바알의 입가가 일그러지고 이마에는 핏대가 섰다.
마계에서 바알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건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알이 무시당하지 않았던 것은, 악마들은 외모만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권능과 힘이었다.
“…좋아. 오랜만에 나도 한 번 돌아가 볼까.”
몸에 뿌연 안개를 휘감으며 바알을 향해 걸어가던 볼텐이 두 눈을 크게뜨며 멈춰 섰다. 눈 깜짝 할 사이에 풋내 나는 바알의 육체가 자신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욱 농밀한 어른의 육체로 바뀌었다.
바알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딱하는 샌들의 굽소리가 통로를 울리고, 볼텐보다 더 큰 가슴이 흔들렸다. 볼텐은 바알의 몸을 한차례 훑어보고 짜증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네 진짜 모습? 바알은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다는 소문이 진짜였나 보네.”
“하, 숨겨? 여러 가지로 편했을 뿐이야. 그리고 내가 이 모습이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힘조절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거든?”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아무리 네가 공격해봤자 나에겐 피해를 줄 수 없어. 권능이 통하지 않는 내 안개는 무적…….”
말을 잇던 볼텐의 몸에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들이닥쳤다.
‘사탄의 피’를 통해 강화된 그녀의 몸이 속절없이 박살나며 안개로 변했다. 그리고 충격파가 사라지고 다시금 몸이 구성된다. 그녀는 바알의 주먹에서 발생한 단 한번의 풍압으로 너덜너덜해진 통로를 확인하고 입가를 말아 올렸다.
“말은 끝까지 들어. 내 안개는 무적이야. 적어도 물리공격에 한해서는 말이지.”
아스타로트에게서 바알은 폭식을 제외한 특수 공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 자랑하는 폭식도 자신에게 통하지 않는다.
바알은 결코 자신을 죽일 수 없다. 그녀가 공격하면 할수록 지치는 것은 그녀뿐이다. 시간은 자신의 편이다.
“무적?”
바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리고 배를 부여잡고 폭소했다. 그녀의 높은 웃음소리가 밀폐된 공간에서 울린다.
“푸하하하하하! 무적이라고? 고작 그 따위 힘으로?”
생각지도 못한 말에 바알은 살의도 잊은체로 웃어 댔다. 눈가에는 눈물마저 맺혔다.
바알이 진정한 것은 그로부터 1분 정도가 흐른 후였다. 그녀는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볼텐을 쳐다봤다.
바알이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알겠다. 애송아, 오백년도 못 살았지? 연장자로서 가르쳐주마. 이 세상에 무적 따윈 없어. 자기를 무적이라고 생각했다면, 아직 적수를 만나지 못한 것뿐이야. 그리고 말이야.”
바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깜짝 놀란 볼텐이 안개가 감싸고 있는 팔을 휘둘렀다. 닿는 순간 안개는 수 십 개의 칼날로 변해 바알의 몸을 난도질 할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무적을 칭해? 개좆밥이. 주제를 알라고.”
오른쪽 어깨에서 고통이 몰려왔다. 볼텐이 시선이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향했고, 사라진 팔과 뿜어져 나오는 빨간 피에 비명을 내질렀다.
“끼아아아아악!!!”
“시끄러. 팔 하나 떨어진 것 가지고 너무 시끄럽잖아. 자칭 무적.”
이번엔 반대 쪽 팔이 툭하고 떨어졌다.
“왜…, 왜 이게…?”
“보이지도 않지? 그게 네 한계야.”
“지금의 내 신체능력이라면 네 움직임 따윈…! 왜, 안개가 발동하지 않는 거야?! 바알! 무슨 짓을 한 거야?!”
바알은 그저 볼텐의 사각에서 그녀의 팔을 빠르게 찢어냈을 뿐이다. 뒤늦게 반응하는 꼴을 보아하자니 굳이 사각을 노릴 필요는 없었던 듯 하지만.
“존나 빡대가리라서 모르는 것 같으니, 저승길 선물로 가르쳐 줄게. 이거라도 알고 가야 덜 억울하겠지.”
바알이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붙잡아 몸이 안개로 변하는 것을 막는다.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잘랐다. 손톱을 이용하니 손쉽게 잘려나갔다.
“권능은 말이야. 일종의 존재의 격이야. 이렇게 말해도 멍청한 네년은 모르겠지. 간단히 말해주자면 영혼의 질이야. 넌 아마도 그레온 자식이 먹은 이상한 약 비슷한 걸로 능력을 강화시켰겠지.”
그 약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바알도 모른다. 지금 내뱉은 말은 단지 테드의 말을 듣고 생각한 바알의 추측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레온의 경우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측이다.
악기라는 것으로 영혼의 질을 강제로 높여 권능을 진화시키고, 권능에 대한 내성을 강제로 가진다.
“정신 계열 권능을 생각하면 쉽지. 그건 약한 놈들, 그러니까 격이 떨어지는 놈들은 저항할 수 없지만, 강한 새끼들은 아예 통하지도 않잖아? 네 안개가 통하지 않게 된 건 단순히 내 쪽이 격이 더 높기 때문이야. 내가 했지만 존나 친절한 설명이네.”
“처음에는! 처음에는 통하지 않았잖아?!”
볼텐이 사지가 잘려 몸통만 남은 몸을 움직였다. 그 탓에 어깨와 허벅지의 절단면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고통이 몰려오지만 이를 악물었다.
볼텐도 수 백 년을 살아온 악마다. 고작 팔이 잘린 아픔에 정신줄을 놓을 정도의 약한 정신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처음의 비명은 고통보다는 충격에 의한 것이었다.
바알은 웃으면서 그녀의 복부를 향해 검지를 뻗었다. 검지의 손톱이 피에 젖은 블라우스를 가볍게 베어내고, 그 속살에 닿는다.
볼텐의 새하얀 피부에 바알의 손톱이 아무 저항 없이 파고들었다. 소리도 없이, 마치 두부를 가르는 칼처럼 손톱이 들어갔다.
“고문같은 시시한 짓거리엔 흥미 없어. 하지만 주제도 모르는 년을 보면 그냥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거든. 아, 질문에는 대답해줄게. 빡대가리야. 나 정도 되면은 권능의 힘을 한 지점에 모아 존재의 격을 높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거든.”
손톱으로 그녀의 배꼽아래를 긋는다. 피가 흘러나왔다. 바알이 검지에 힘을 주어 내장을 이쑤시개로 찍듯이 눌러 끄집어낸다. 어딘가 줄줄이 소세지 같은 새빨간 창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미 절명하고도 남을 치명상이었지만, 악마의 뛰어난 신체는 겨우 팔다리가 잘리고 창자가 끄집어내진 걸로 기능이 멈추지 않는다. 악마 특유의 뛰어난 획복력이 발휘된다.
더군다나 볼텐은 소량의 사탄의 피를 일정 주기로 투입하고 있었다. 팔 다리를 포함해 이 정도 치명상이라면 10분 정도면 흔적도 없이 낫는다.
몸안에 들어온 바알의 마력이 그녀의 재생력을 막고 있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 살려줘. 바알. 아니, 바알님…!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앞으로 마계에서 조용히 지낼테니… 부디…!”
“씨발년아. 어디까지 날 실망시킬 셈이냐? 악마라면 악마답게 쿨하게 뒈져. 추하게 목숨 따위 구걸하지 말라고.”
“이건 아니야…!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야…!”
“삶이란 게 원래 그래. 생각대로 되는 건 좆도 없지.”
다시 손톱을 긋는다. 방금 배꼽 아래를 그어 창자를 빼냈다면, 이번엔 배꼽을 가로 질러 젖무덤을 지나 목젖의 바로 아래까지 긋는다.
검지와 중지에 힘을 주어 틈을 벌리자 꿈틀거리는 내장이 훤히 보였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나 악마나 별 다를바 없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바알이 시니컬하게 웃으며 말했다.
============================ 작품 후기 ============================
꿈틀꿈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