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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40화 (24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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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검의 제단.

테드는 환락가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에 들어서는 것 같았다.

환락가의 입구까지 만해도 세계는 지나치게 조용했던 감이 있었다. 그러나 환락가에 들어서자마자 떠들썩한 소음과 함께 열기가 느껴졌다. 밖과는 온도 자체가 달랐으며 마석등에 의지한 어두컴컴한 거리와도 달랐다.

가장 크게 거슬리는 것은 여자의 향수 냄새였다. 입구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헐벗은 창부들은 한 사람이라도 많은 손님을 맞기 위해 가게 앞에 나와서 아양을 떨고 있다.

창부의 7할 정도가 용인이고 나머지 3할 정도가 타종족의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낮에 보았던 시장에서 일하는 여자들보다 얼굴 표정이 좋았다. 적어도 거리에 나와 있는 창부들 중에는 억지로 자신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여자는 없어 보였다.

“저기, 오빠. 들렸다가지 않을래? 잘해줄게.”

한 창부가 테드의 팔을 잡으며 달라붙었다. 어깨와 쇄골, 가슴 윗부분이 훤히 들어나느 옷을 입은 연갈색 머리의 그녀는 팔을 젖가슴 사이에 끼우며 말했다. 정신을 빼앗는 듯한 여자의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찔렸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녀의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 테드보다 많아 보였다.

“이거 놔. 다른 곳에 약속이 있어.”

“아잉. 그러지 말고. 정말 잘해준다니까?”

“놓으라고.”

테드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창부는 짧게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환락가에는 가끔 얽히면 좋은 꼴을 못 보는 위험한 자들이 찾아온다. 그런 자들은 아예 얽히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창부들 사이에선 유명했다. 그리고 지금 창부는 테드에게서 위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테드는 애쉬가 가르쳐준 길을 떠올리며 환락가를 걸었다. 도중에 혼자 다니는 테드를 노리고 창부들이 몇 번이나 달라붙었지만 그때마다 단호히 비키라고 말했다. 다행히 말을 하면 알아들어서 끈덕지게 매달리는 창부는 없었다.

“이런 곳은 영 안 맞는단 말이지.”

남자로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회귀전의 자신이었다면 몰라도 현재의 자신에겐 창관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창부들의 외모가 뛰어나도 사이나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사이나를 떠올리면 벌거벗은 여자들이 무더기로 달려들어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왜 굳이 이런 곳에 자리잡은건지 모르겠군.”

테드는 건물로부터 새어나오는 빛과 마석등의 빛을 의지하며 환락가를 걸었다. 가끔 길을 잘못 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근처에 있는 사내나 창부에게 묻자 곧바로 길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도착한 곳은 3층 목조 건물의 창관이었다. 건물 주위에 허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이름 모를 붉은색 꽃이 가득 심어져 있는 이 창관은 흔히들 고급 창관이라 말하는 곳이었다.

건물에 붙어 있는 간판에 적힌 창관의 이름은 ‘차오르는 달’. 테드의 목적지였다.

고급창관이라서 그런지 건물 앞에 나와서 호객을 벌이는 창부는 없었다. 그러나 건물의 문은 활짝 열려 있으며 1층에 대기하고 있는 창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건물 앞에 서자 창부들의 시선이 테드를 향해 몰려들었다.

리자드맨을 제외한 온갖 종족으로 이루어진 10명이 넘는 고급 창부들은 끈적한 시선으로 테드를 쳐다봤다. 이곳은 1층의 대기실에서 창부를 골라 방으로 들어가 일을 보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테드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창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불 먹은 살쾡이를 만나고 싶다.”

테드의 말이 끝나는 순간 몇몇 창부들의 눈빛이 돌변했다가 순식간에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아, 뭐야. 대빵 언니의 손님이었잖아.”

“얼굴은 내 취향이었는데 아쉽다.”

창부들은 제각각 아쉬운 소리를 내면서 테드를 향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한 명의 창부가 테드를 향해 나긋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속옷이 훤히 비치는 얇은 드레스를 입은 고양이 수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있는 곳으로 안내할게요. 따라와 주세요.”

성숙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목소리를 조금 어렸다. 테드는 그녀를 따라 1층의 방 한 쪽으로 움직였다.

테드는 언니라는 사람이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다.

고양이 수인은 붉은 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섰다. 방은 생각했던 것보다 좁았으나 사람 2명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

내부에는 침대와 서랍을 제외한 가구는 일체 없었고 방안에는 몽롱한 향기가 깔려 있었다. 이 방의 용도는 명확했다.

덤으로 불 먹은 살쾡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테드가 따지기 전에 그녀는 몸을 숙여 침대의아래에 들어가 무언가를 건들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방안을 낮게 울리고 침대가 오른쪽으로 섰다. 침대아래에는 어느새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아니, 뭘 번거롭게 그런 장치를….”

“본래 여기에 창관이 들어서기 전에 이곳은 암살자들의 본거지였어요. 이 장치도 그들이 설치 한 거죠. 그리고 저희 언니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런 걸 좋아하거든요.”

테드는 그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창부의 요염함은 사라지고 사무직에 일하는 여성같은 차가운 분위기가 흘렸다. 지금의 분위기가 본래 성격인 듯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계단을 내려오자 이전의 보았던 방 크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공간에는 문이 여러개 있었다. 그녀는 여러 개의 문중 한 곳에 다가서더니 노크나 말도 없이 문을 활짝 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집무실의 풍경이 나오면서 의자에 앉아 있던 검은 머리의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족은 인간으로 살쾡이 같이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여자였다.

“어서 오세요. 테드 님. 아, 서영아. 넌 가서 일보면 돼.”

“그럼.”

서영이라 불린 여자는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고서 문을 열고 되돌아갔다.

“자. 여기까지 오느라 힘드셨을 텐데. 저 소파에라도 앉으시죠?”

테드는 마련되어 있는 소파에 앉았다. 소파 앞 테이블에는 방금 막 끓은 듯한 차가 두 잔 놓여 있었다. 테드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바라봤다.

“내가 여기에 오는걸 알고 있었나?”

“정확하게는 이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알았죠. 여기에 드나드는 인원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파악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오는 길에 정보원으로 보이는 자들은 없었는데.”

“이 거리에 생활하는 창부들 중 몇몇이 저의 정보원이지요.”

불 먹은 살쾡이의 말에 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이름 모르는 그녀는 애쉬가 드래프리온으로 잠입시킨 부하 중 한 명이었으며 애쉬가 실력이 뛰어나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음. 그럼 불 먹은 살쾡이.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알고 있겠지?”

“저는 케니스라 부르면 되요. 이것도 본명은 아니지만 여기서 사용하는 이름은 그것이니까요. 그리고 테드님이 저를 찾아온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죠. 아스타로트를 찾고 있으시겠죠.”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빠르겠군. 아스타로트는 어디에 있지?”

일주일 전에 드래프리온으로 들어온 테드는 완벽한 준비를 걸쳐 사흘 전에 드래프리온의 왕궁에 침입했다. 본래라면 그곳에 아스타로트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스타로트는 어디에도 없었다.

왕궁에 있던 것은 방탕하게 생활하던 3마리의 악마뿐이었다. 서열을 가지지 않은 하급의 악마로 처리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결국 그날 기습의 성과는 악마 3마리가 전부였다.

“너무 급한 남자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없어요. 우선은 차분히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나는 여기에 놀러온 게 아니야.”

테드가 단호함을 담아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스타로트가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른다. 그에게 더 이상의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듣기로는 테드 님은 어린아이를 희롱하는 걸 좋아하는 상당히 유쾌한 분이시라고 들었는데.”

“어떤 개자식이 그렇게 유언비어를 퍼트렸는지 내게 알려주겠나?”

소문의 출처는 말을 더럽게 듣지 않는 바알을 몇 번 골려준 것을 본 시민들의 입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은 그게 테드 크루시안이라는 유명인인건 모르는 모양이지만.

테드는 케니스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탓도 있었고, 짜증난다는 이유로 소문의 근원지인 시민들을 일일이 찾아내 박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됐고. 아스타로트가 어디에 있는 지나 말해.”

“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아스타로트가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몰라요.”

테드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분위기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여자였다. 비밀을 가진 신비한 여자.

그런데 한순간에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었다.

케니스는 어딘가 백치미가 느껴지는 웃음을 지으며 테드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테드 님이 알고 싶으실 정보는 알고 있죠. 사탄교의 데비크 양성소… 아니, 인체 실험소에 대한 정보죠. 흥미 있나요?”

인체 실험소라는 말에 테드는 사정없이 얼굴을 찌푸렸다. 마음속 깊은곳에서 흘러나오려는 살의를 애써 눌러댔다.

사탄교의 우두머리인 아스타로트를 쫒는다는 목표를 생각하면, 케니스가 말하는 인체 실험소에 관한 것은 아예 듣지 않는 게 좋았다. 그러나 ‘인체 실험’이란 소리를 들어버린 이상 신경쓰여서 어쩔 수가 없다.

“드라닉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실험소가 있어요. 사탄교에선 양성소라고 불리는 모양이지만… 제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데비크를 만들기 보다는 인체 실험을 위한 곳이에요.”

케니스는 작은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사건을 발견하고, 일종의 직감과 호기심에 조사를 시작해서 이 인체 실험소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곳에선 주로 ‘사탄의 피’와 관련된 실험을 행하죠. 어떻게 해야 사탄의 피를 더욱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그런 종류 말이에요. 참고로 알약 형태로 팔려나간 ‘사탄의 피’ 대부분은 이곳에서 만들어 졌어요. 그리고… 사탄의 자식도 이곳의 실험의 산물이라 할 수 있죠. 실험소에서 몰래 빼낸 생존자에게 들은 이야기이니 틀림없어요. 애쉬님에겐 곧 보고 할 예정이었는데. 테드님에게 먼저 말하게 됐네요.”

“내가 들을 정보는 그게 전부인가?”

“실험소에는 관리하는 악마가 있다고 해요. 서열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강한 악마라고해요. 안타깝게도 이름이나 권능에 관해선 알아내지 못했어요.”

“내가 들을 정보는 그게 끝인가?”

“그곳은 경비가 워낙 삼엄해서요.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힘든 일이죠. 생존자도 정말 힘들게 빼냈어요. 보아하니 테드 님은 거기를 습격하실 생각이군요?”

테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냉정히 생각했을 때. 현재로선 아스타로트의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않고, 거기를 파괴하는 게 사탄교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아스타로트가 거기에 있을 지도 모르고.”

“그 가능성은 상당히 낮겠지만… 그곳을 습격해준다는 건 감사한 일이네요. 거기에 대한 정보를 알고 상당히 짜증이 났거든요.”

케니스는 한 시름 놓았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서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소파에 앉아 있는 테드를 향해 다가왔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적당히 식은 차를 후르릅 원샷 했다.

“이건 실험소의 지도에요. 건물 외부의 모습과 생존자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서 확실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침입에는 아예 없는 것보단 도움이 되겠죠. 그리고 아스타로트에 관한 건데… 저를 비롯한 정보원들이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요.”

“딱히 그것 때문에 힐난할 생각은 없다.”

테드는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걸 그녀가 모른다고해서 뭐라고 한다면 그거야 은혜도 모르는 개새끼다.

“그리고 이 지도는 필요 없다.”

“…침입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내가 해야할 건 전쟁이지. 침입이 아니야.”

테드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고, 드라닉에 마련한 호텔에서 사이나가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게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사이나의 시선이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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