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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37화 (23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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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탄의 자식들.

“시험하기 딱 좋은 버러지들이 모여 있구나!”

그레온의 몸을 노리고 사방에서 검은 사슬이 쇄도했다. 상대의 마나를 봉인하는 다크 체인이다. 아무리 그레온이라도 통하리라.

그러나 테드의 예상은 빛나갔다. 그레온은 다크 체인의 효과를 알고 있음에도 피하지도 않았다. 마치 귀찮다는 듯이 그대로 사슬이 자신의 몸을 휘감는 것을 가만히 보았다.

팔과 다리, 목, 날개, 허리 할 것 없이 휘감은 사슬은 팽팽하게 당기기 시작한다.

“같잖군!”

그레온이 거대한 몸을 한 차례 흔들었다.

그의 몸에서 봉인되어야 할 마력이 뿜어지며 검은 사슬이 속절없이 떨어져 나갔다.

테드가 그 광경을 보고 아래에서 혀를 찼다. 검은 사슬의 효과가 아예 통하지 않았다.

“통하지 않는 건 권능뿐만이 아니군.”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음에 당황할 법도 한데도 테드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검은 사슬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디버프 계열의 마법은 조금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굳이 저주 마법을 사용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화력으로 찍어 눌러 주지.”

“화력? 이 압도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냐?! 화력이란 것은…….”

공중에 떠있던 그레온의 몸이 한순간 사라지고 테드의 바로 앞에 나타난다. 블링크같은 공간이동 계열의 마법이 아니라 단순한 고속 이동이었다. 테드는 자신보다 배는 큰 그레온과 눈이 마주치면서도 두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런 힘을 말하는 것이다.”

그레온이 주먹을 내뻗었다. 주먹은 테드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췄다. 주변이 풍압으로 휩쓸려 나갔다. 휘말린 병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다행히 약해졌군. 힘에 취해 주술은 버린 거냐?”

“이 힘을 보고도 모르겠나? 이 힘에 비하면 주술과 마법은 단순한 잔재주에 불과하다!”

방금전까지의 그레온은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그가 서열 32위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권능으로 대상의 과거를 보면서 주술이나 마법, 기술과 약점 등을 파헤쳤기 때문이다. 주술과 마법은 엄연한 힘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힘을 얻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주술과 마법은 잔재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주위를 봐라! 주먹 한 번이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풍압에 주변이 날아갔다! 이것이 바로 나의 힘이다!”

“거들먹거리긴. 그 모습이 되고서 지능이 낮아졌나? 유감인 일이군.”

“건방진 놈. 이해하지 못한다면 되었다. 네놈의 죽음으로서 인정하게 하리라.”

그레온이 검은색 손톱을 휘둘렀다. 그에 맞춰 테드가 살짝 뒤로 물러났다. 명검보다 날카로운 손톱은 테드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했다.

“……어떻게 피했지?”

그레온은 이 모습이 되고나서 권능이 강해진 것을 느꼈다. 정식으로 실험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는 과거뿐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볼 수 있었다.

그레온이 본 미래에선 테드가 입고 있는 옷 때문에 치명상은 입히지 못했지만, 공격은 확실하게 적중했다.

자신이 본 것은 미래가 아니라 환상이었나? 아니, 그럴 리가. 그건 분명 과거를 보는 감각과 비슷했다.

다시 확인해보면 그만이었다. 그레온이 다시 손톱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방금과 달리 페이크를 섞었다. 피하려 한다면 오히려 맞을 것이다.

테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톱에서 일어난 시커먼 검기가 테드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네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그레온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는 자신의 공격이 적중하는 미래를 보았다. 이번에는 방금전과 다르게 확신이 있었다. 이건 환상 따위가 아니라 분명히 미래시의 권능임을.

“네놈의 공격은 바알보다 느리다. 압도적인 힘이라고 했나? 바알의 주먹과 비교하면 네놈의 주먹은 귀여운 고양이수준이군. 턱이라도 쓰다듬어 주랴?”

“이… 주제도 모르는 놈이!”

그레온이 자신의 ‘악기(惡氣)’를 주먹에 담았다. 시커멓게 일렁이는 주먹이 테드를 향해 뻗어져 나왔다. 테드는 피하는 대신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상대적으로 거대한 그레온의 주먹은 작은 테드의 손바닥에 가로막혔다.

“얼어붙어라. 프로즌 프리즌(Frozen Prison).”

지독히도 차가운 냉기가 그레온의 주먹부터 얼리기 시작해 팔을 타고 몸으로 올라갔다.

그레온이 악기를 한 차례 뿜어냈다. 몸을 얼리던 한기가 그대로 사라졌다.

그레온이 날개를 펼쳐 하늘로 올라갔다. 그레온이 있던 자리에 얼음 창이 한 무더기로 박혔다.

“어느 정도 알겠군. 너 미래가 보이는 거지?”

미래를 볼 수 있는 테드는 도중에 미래가 바뀌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전투 도중 갑작스럽게 변하는 미래에 의아함을 가지면서도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미래는 항상 바뀐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두 번째로 미래가 바뀌자 테드의 생각도 바뀌었다. 첫 번째는 우연이라 치더라도 연속적으로 전투 도중 미래가 바뀌는 일이 우연으로 발생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 나의 권능이 진화를 이뤄낸 것이다. 그런데 네놈은…… 아니, 그런가! 네 놈도 보이는 구나?!”

그레온이 곧바로 눈치 챘다. 테드는 무심코 저지른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 그레온이 눈치 채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질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방금 미래시의 권능을 각성한 그레온과 테드는 숙련도가 달랐다. 덤으로 테드는 그레온이 아주 가까운 미래, 약 1초 정도 앞의 미래 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먼 미래를 본다면 이 문답에 의미따위는 없을 테니까.

“익숙해진다면 귀찮게 되겠군. 지금부터 전력으로 간다. 암브로시아(Ambrosia).”

직후 테드의 몸이 사라졌다. 그레온이 섬뜩한 눈동자를 굴리며 찾다가, 뒤늦게 미래를 보면 된다는 것을 깨닫고 권능을 발동하는 순간 그의 가슴을 뚫고 검이 튀어나왔다.

“미래시의 선배로서 가르쳐주지.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해도 무적이 되는 건 아니야. 미래는 순식간에 바뀌고, 미래를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큰 빈틈은 미래를 보기전의 순간이지. 전투에 활용한다면 숨 쉬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무심코 손에서 흘린 동전을 뇌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반응할 정도의 숙련도가 필요하다! 방금 막 각성한 네놈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네 이놈…! 이깟 검으로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레온이 양손으로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을 쥐었다. 힘을 주어서 부러뜨리면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명검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힘이라면 간단히 부술 수 있었다.

“이건 네가 생각하는 평범한 검이 아니다. 라그나로크 발동.”

검신에 새겨진 마법이 발동하면서 그레온의 몸에 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테드는 검의 손잡이를 놓고 블링크를 사용해 아래로 내려왔다.

소멸의 불꽃은 곧바로 사정없이 하늘에 떠있는 그레온의 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세포조직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박살나는 것이다.

하얀 불꽃은 멈추지 않을 것이니 극악한 재생능력은 오히려 고통만 늘려줄 뿐이다.

“끄아아아아아악!!”

피레아 도시에 있던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테드의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느 정도 두려움을 떨쳐냈지만, 그레온의 분노와 고통이 담긴 비명을 들은 그들의 몸은 자연스럽게 위축되었다.

“이… 정도로…! 날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피부가 녹아내리고 핏물이 증발하는 고통 속에서도 그레온이 팔을 움직였다. 갑작스런 고통에 놓쳤던 검을 다시금 잡는다. 그리고 힘을 주어 부러뜨렸다. 불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온몸의 피부가 불타고 녹아내린 흉측한 모습의 그레온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뛰어난 신체능력이 없었다면 분명 확실하게 죽었을 것이다.

그의 몸은 녹아내린 피부가 다시 돋아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재생하고 있었다. 테드는 그 모습을 보고서 혀를 찼다. 회복 능력 하나만큼은 어쩌면 바알보다 더 뛰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확실히 알았다! 아스타로트의 말대로 네놈은 위험하다! 이곳에서 죽여주마!”

하늘위에 스물에 달하는 붉은색 마법진이 나타난다. 그레온이 전개한 헬플레임 마법이다. 불탄 것이 어지간히도 억울한 모양이었다.

“멍청하긴. 냉정을 잃고 대마법을 무턱대고 발동하다니… 그렇게 아팠나?”

테드가 말한 직후 그레온의 몸 주위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아공간과 이어진 마법진 속에서 무수히 많은 검들이 튀어나와 그레온의 몸을 꿰뚫는다.

머리, 몸통, 팔목, 허벅지, 날개. 온갖 부위에 검에 꿰뚫린 그레온이 묽은 안광을 빛냈다.

“겨우 이따위 검으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마라! 헬플레임!”

마법이 발동된다. 하늘에서 시뻘건 불꽃이 마치 비처럼 도시에 내려왔다. 테드와 사이나, 바알이라면 별 문제 없이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도시안에 있는 병사들의 경우엔 다르다.

그들은 비처럼 떨어지는 지옥의 불꽃을 피할 정도의 실력도, 강철마저 간단히 녹여버리는 불꽃을 막을 수 있는 도구도 없었다. 이대로 있다면 도시가 지옥이 될 것은 자명했다.

도시에서 검은 나비가 날아올랐다. 하나가 아니다. 너무 많아서 셀수가 없을 정도의 검은 나비였다. 갑자기 땅에서 솟아나듯 나타난 그것은 곧바로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정확하게는 떨어지는 헬플레임을 향해서다.

불꽃과 나비가 부딪혔다. 상식적으로는 불꽃이 나비를 태워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빨간 불꽃이 검은 나비에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불꽃이 사라졌다. 검은 나비는 태연스럽게 허공을 날았다.

“이 마법은 본적이 있다. 이건 마녀의…!”

“스승님이군.”

테드는 피식 웃었다. 저 검은 나비는 스승님의 상징과도 같은 마법이었다. 그녀가 나설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헬플레임을 막을 마법을 준비하지 않았다.

“진짜 끝낼 시간이다. 그레온. 아, 그러고 보니 넌 사이나를 좋아했었지? 걱정마라, 사이나는 내가 행복하게 해 줄테니. 라그나로크(Ragnarok)!”

테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레온의 몸에 꽂힌 무수히 많은 검이 일제히 마법을 발동한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란 하얀 불꽃이 그레온의 몸을 태웠다.

그레온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추락한다.

그 거구가 땅에 닿기도 전에 하얀 불꽃에 휩싸여 그의 몸이 사라졌다. 완전한 죽음이다. 테드는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속임수 같은 건 없었다.

그레온은 죽었다.

테드는 암브로시아를 해제했다. 몰려오는 피로에 숨을 내쉰다. 아스타로트 다음으로 난적이라 생각했던 그레온을 처리했다.

딥크스 곳곳에 남아 있는 데비크와 악마들이 있지만, 그들은 곧 모험가와 병사들의 손에 정리 될 것이다.

“일단은 한 건 해결인가. 다음으로 노려야 할 건… 아스타로트인가.”

신경 쓰이는 것은 천사 측이었다. 사탄교를 처리하면 곧바로 천사가 본성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시스템과 맺은 계약은 사탄교가 대륙에서 사라지는 순간 완성되기 때문이다.

테드의 생각은 이윽고 배신자까지 닿았다. 아직 누구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미카엘라라고 강력히 의심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심증에 불과했다. 테드가 딥크스로 파견되는 것을 알고 있는 건 각국의 수장과 정상급 간부들뿐이다.

또한 그레온의 과거를 보는 권능을 생각하면 배신자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있거나, 없거나 둘 중에 고르라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나지. 세상이란게 워낙 요지경이라서.”

테드는 사이나와 바알보다 먼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메티스를 쳐다봤다. 스승은 언제나처럼 담배를 입에 물고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의 냉정도 잃지 않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도시 전체를 범위로한 마법을 펼쳤으니 지칠만도 했다. 그러나 지친기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는다.

테드의 기억 속에 그녀의 약한 모습은 없었다.

“오랜만이네요. 스승님.”

“……네게 스승님이란 소리를 듣는 건 어색하군.”

메티스에게 테드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었다. 만난적은 있어도 한 번 뿐이다. 그에게 무언가를 가르친 기억도 없었다.

“저는 익숙하지만요. 그런데 스승님이 직접 나서실 줄은 몰랐어요.”

“일이 좀 심각하다. 어쩌면 네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스승님이 도움이 청할 정도면… 보통일이 아니란 건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리죠.”

테드가 알고 있는 메티스는 국가의 일이나, 자신의 일같은 시시한 것에 나서지 않는다. 당연히 타인의 도움도 청하지 않는다. 그녀가 심각하다고 한다면 대륙 규모로 심각한 일이다.

“말은 똑똑히 들어라. 나는 네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도움을 달라곤 하지 않았다.”

“아. 네. 그렇네요. 그 심각한 일이란 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너를 가르친 건 정말 나였나?”

테드를 한 차례 노려본 메티스는 입안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뱉었다. 담배는 바닥에 닿기 직전에 불에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너도 알고 있으면 나쁘지 않을 테니 알려주마. 일련의 무리가 고대 병기를 찾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

테드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 작품 후기 ============================

유난히 재수가 사나운 날이었습니다.

장염에 걸리지 않나, 음료수를 컴퓨터에 쏟지를 않나. 의자가 고장 나지 않나.

내일은 운이 좀 따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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