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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35화 (23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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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탄의 자식들.

“바알. 당신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폭식이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 서열을 가진 악마 아냐? 저딴거 하나 처리 못해? 하, 요즘 악마들 수준이 개판이구만! 내 때는 말이야…. 엉!? 그냥 막….”

“농담할 시간은 없습니다.”

베인이 느릿하게 쓰러진 몸을 일으킨다.

사이나가 백색의 검, 나찰을 휘둘렀다. 푸른색의 날카로운 검기가 공기를 베어가르며 베인의 팔과 다리를 노렸다.

검기는 팔과 다리의 절반 정도 파고 들었다가 사라졌다. 2분전까지만 해도 간단히 베인의 팔과 다리를 베어냈던 검기였다. 눈에 보일 정도로 확실하게 베인의 내구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익숙해진 것이 모르겠지만 돌진 속도도 처음보다 빨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능력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디가 한계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대로 두면 귀찮아 질수도 있습니다.”

가장 성가신 건 베인의 회복력이었다. 사이나가 아무리 강력한 공격을 퍼부어도 재생해버리니 허공에 기술을 쓰는 것과 다름없었다.

“흐음. 좋아. 상대해줄게. 조금 흥미가 있었거든. 그 ‘악기(惡氣)’라는 것에.”

바알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데비크라는 졸개들만 상대하며 심심함을 느끼던 차였다.

“정면에서 붙을 생각이라면 관두시지요. 지금 저보다 떨어진 육체 능력인 당신은 저것의 힘을 버티지 못합니다. 손에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찢겨나갈 겁니다.”

바알은 자신의 몸을 붙잡은 사이나의 손을 탁 쳐냈다. 그녀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사이나를 쳐다봤다.

“어린 계집아. 지금 내가 이 모습이라고 해서 무시 하냐? 이래보여도 마왕이다. 저것에 당할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아. 넌 내가 무식하게 저 놈에게 달려들어 주먹이나 휘두를 거라 생각하겠지?”

“……아닙니까? 그게 당신이지 않습니까. 당신의 무식함은 마계 전역에 걸쳐 유명합니다. 오죽하면 길 가던 똥개보다 무식한 게 바알이다. 란 말이 마계에 나돌겠습니까. 어린 꼬마 악마들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아 씨. 약해지니까 너도 그렇고 그레온 놈도 그렇고 별게 다 기어오르네. ……근데 진짜 그런 말 나도는 거 아니지?”

“…….”

사이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알은 그녀의 말이 진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바알은 요근래 함께 행동하며 사이나가 농담을 하지 않는 지나칠 정도로 진지한 성격임을 파악했다. 아마도 70%의 확률로 진담이리라.

아무리 왕이 없는 곳에서 백성이 욕한다고 해도 그런 소문이 마계에 나돌았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아오 씨. 내 행동 탓도 있으니까 무식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난 무식한 게 아냐. 귀찮은 걸 안할 뿐이지.”

바알은 마계에 있을 때도 루시퍼와 달리 지배하지 않는 마왕으로 유명했다. 악마들이 자신을 따르던, 따르지 않던 내버려두었다. 신경을 거슬리는 놈이 있으면 죽였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했다.

바알의 압도적인 힘에 반해 따르던 몇몇 악마들이 있었다. 바알은 그들이 자신이 귀찮게 하지 않았기에 내버려두었다. 아니, 그들은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기도 했다.

“당신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그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만.”

“내 전투 스타일? 그건 어쩔 수 없잖아. 기술 따윈 잔재주에 불과하니까.”

바알에게 있어 기술이란 좀 더 효율 좋게 적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바알에겐 어디까지나 잔재주였다. 그녀는 그저 강하고 빠르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으로 모든 적을 분쇄할 수 있었으니까.

적을 죽이는데 기술이라는 길로 귀찮게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바알은 잔재주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건 마법처럼 일종의 다른 종류의 힘이라고.

베인이 바알의 뒤에 있는 사이나를 발견한다. 욕망을 사랑하는 악마도 질리게 하는 추잡한 욕망 덩어리였다.

“인기 좋은데? 저렇게 원하는데 한 번 안겨주지 그래?”

“미쳤습니까? 당신이나 저것을 위로해주시죠.”

“저건 내 취향이 아니야.”

바알은 사이나에게 끼어들지 말라고 못 박아 두었다.

베인이 다가온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땅이 울린다. 베인은 바알을 향해 거치적 거리는 무언가를 치우듯이 두꺼운 팔을 휘둘렀다.

바알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팔을 받아들이듯이 내밀었다.

그리고 베인이 몸이 허공에 붕 떴다. 바알의 오른쪽으로 떨어진 베인은 순간적인 충격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가 곧바로 ‘악기’에 정신을 잃었다. 몸을 본능적으로 일으킨다.

바알의 움직임을 제대로 본 사이나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릴 뻔 했다.

우선 처음엔 베인의 힘의 방향을 바꿨다. 다음으로 몸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결과적으로 베인이 공중으로 날려진 것은 자신의 힘을 가누지 못해서였다. 바알의 기술은 찰나의 순간에 들어갔다.

“그 기술은….”

“사량발천근이란 건데. 진짜 오랜만에 쓰는 거야. 힘만 쎄고 지능은 떨어지는 놈들을 상대하기 딱 좋은 기술이지.”

“……당신이 무식하다는 말은 취소하죠. 시간을 헛보내신 건 아니군요.”

“말 하는 꼬라지가 미카엘라를 묘하게 닮은 것 같아서 짜증나.”

바알이 투덜거렸다. 베인이 다시 몸을 일으킨다.

허공에서 검은 쇠사슬이 수 십 줄기가 나타나 베인의 몸을 감았다. 베인이 쇠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움직이나 수 십 줄기의 쇠사슬을 단 번에 끊는 건 힘들었다.

“너… 그건. 그 녀석의….”

“놀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간간히 시간이 날 때 마다 주인님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주인님처럼 빠른 속도로 캐스팅하는건 불가능합니다만.”

“…너 설마 일부러 저걸 내 곁으로 데려온건 아니지?”

“처음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것의 재생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니 당신의 권능이 필요하다고.”

“직접 상대해보니 알겠어. 저건 보이는 것과 달리 약해. 네가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은 죽이고 있겠지.”

“반나절 동안 죽이고 있을 시간은 없습니다. 저걸 포박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당신의 권능으로 없애버리면 됩니다.”

“말 돌리지마. 너…, 날 시험한 거냐?”

바알이 싸늘하게 물어왔다. 사이나는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는 기세를 묵묵히 받아냈다.

“자의식과잉이군요. 제가 현 상황에서 그럴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네 입장에서 난 굴러들어온 돌멩이겠지. 주인님과 알콩달콩 살고 있는데 갑자기 끼어드니 짜증날 거 아니야? 아니, 이건 조금 아닌가. 우리가 한정된 세월을 사는 인간도 아니고 굳이 연애에 집착할 일은 없으니. 지금 상태의 내가 얼마나 너의 잘난 주인님에게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겠지. 괜히 발목을 잡지 않을지 불안하기도 할 거야. 안 그래?”

“안 그렇습니다. 멋대로 추측하는 건 그만둬 주시지요.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그리고 주인님이 당신을 데려왔습니다. 저는 주인님이 아니라 당신을 믿고 있습니다.”

“…아님 말고.”

바알은 터덜터덜 베인을 향해 걸어갔다. 꼼짝달싹 못하는 베인은 바알에게 시선도 주지 않을채 팔짱을 끼고 있는 은발의 메이드를 보고 있었다. 이지가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에는 더러운 욕망과 집착이 가득했다.

“여, 자…. 여자…!”

“그 약 같은 것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이런 놈이었나. 어쨋거나 역겨운건 똑같구나.”

바알이 베인의 머리를 향해 작은 손을 뻗었다. 만지기도 싫지만 지금 상태에선 권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접촉이 필수였다. 피와 땀이 섞인 액체는 손에 닿는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 나빴다.

“영광으로 알거라.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너 따윈 먹지도 않았다.”

바알의 손에 기어나온 어둠이 베인의 머리통을 덮었다. 어둠은 단숨에 베인의 머리를 먹어치웠다.

바알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에 입가를 비틀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에너지라도 일단 비축해두면 쓸만 할 것이다.

사이나의 말대로 베인의 머리는 곧바로 재생하려고 했다. 재생속도 보다 빠르게 바알의 권능이 먹어치우지 않았다면 분명하게 재생했을 것이다.

2분에 걸쳐 베인의 몸을 남김없이 폭식한 바알은 씩 웃으며 사이나를 쳐다봤다.

“이제 만족하냐, 메이드?”

“그걸 왜 제게 묻습니까.”

조금의 지체도 없이 날아온 대답에 바알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 ⁂

“악마와 천사를 비롯해 네메스 대륙의 대부분 멍청이들이 주술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시하지. 성법이상으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제대로 사용하면 마법 이상으로 엄청난 힘인데 말이야.”

그레온이 손에든 황금색 창, 브류나크를 장난스레 흔들면서 말했다. 저 브류나크는 그레온이 직접 마법을 발동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테드가 던진 브류나크의 소유권을 멋대로 빼앗았다.

소유권을 완전히 빼앗겨서 테드가 마법 해제 명령을 내려도 사라지지 않았다. 브류나크는 이미 그레온의 마력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브류나크를 빼앗은 건 ‘마법 강탈(Magic Steal)’ 마법은 아니고… 그게 주술이냐?”

“맞아. 마법이나 주술로 만든 물건의 소유권을 강제로 뺏는 주술이지.”

섣불리 그레온을 향해 창을 내던지게 실수였다. 설마 저런 주술이 존재할 줄은 테드도 몰랐다.

“그렇게 만능인건 아니야. 주술강탈은 빼앗는 것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하거든.”

“…과거시의 권능!”

테드가 그레온의 권능을 떠올렸다. 자신의 과거를 봤다면 브류나크에 대한 정보를 당연히 알았을 테니 빼앗는 것도 간단했다.

“주술강탈은 내 권능이랑 잘 맞긴 한데 유감스럽게도 네놈의 과거는 보이지 않아. 이 창은 옛날에 한 악마의 과거에서 본적이 있거든.”

그리고 그레온은 아스타로트의 과거를 보아 테드가 브류나크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기에 이 황금창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잘 알고 있었다.

“브류나크 전개.”

그레온이 말했다. 창날을 중심으로 4개의 빛의 창날이 추가로 생성된다. 브류나크의 첫 번째 능력인 복제다.

그레온이 허공에 창을 휘둘렀다. 4개의 날이 제각각 움직이며 테드를 향해 날아왔다. 테드가 앱솔루트 배리어를 전개했다. 창날이 배리어를 두드렸다. 아무리 앱솔루트 배리어라고 해도 관통력과 절삭력이 엄청난 브류나크를 오랫동안 막을 수 없었다. 고작해야 수 십초가 전부다.

테드가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오른팔을 옆으로 들었다. 오른팔을 중심으로 5개의 하얀 마법진이 나타났다.

“프라가라흐(Fragarach).”

마법진은 하얀색 빛으로 변해 테드의 오른팔을 감쌌다.

직후 앱솔루트 배리어가 박살나며 4개의 창날이 날아왔다. 테드가 오른팔을 흔들었다. 주위에 있던 4개의 빛의 창날이 힘을 잃고 허공중에 사라졌다. 브류나크 마력의 일부가 테드의 오른팔에 흡수되었다.

“음? 뭐야, 그것도 고대 마법? 또 신기한 걸 쓰네.”

그레온이 창을 흔들었다. 4개의 빛의 창날이 다시 생성된다.

테드가 그를 향해 달렸다. 빛의 창날이 다시금 날아온다. 그 창날이 테드의 몸에 닿으려는 창날에 또 다시 사라졌다. 주의깊게 보고 있던 그레온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 그거 마법을 강제로 분해해서 마력을 흡수하는 군. 범위는 1M도 안 되고. 마력도 일부분 밖에 흡수하지 못하네. 그래도 이 창으론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겠어. 그 마법 좀 비열하네.”

“남의 마법을 빼앗는 네가 말하지 마라.”

테드가 블링크를 내버려두고 굳이 달려온 것은 프라가라흐는 마법이라면 적과 아군의 마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레온은 코앞까지 다가온 테드를 보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치켜든 주먹에도 몸을 움츠리지도 않았다. 때리려면 때려보라는 듯이 양팔을 활짝 펄쳤다.

테드의 빛나는 오른 주먹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리고 테드의 몸이 튕겨나갔다.

테드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자신이 왜 튕겨나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몸이 튕겨나가는 순간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상을 입었는데 왜, 어떻게 입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위광도 있으니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을 것이다.

“고통 교환. 이것도 주술이지. 나는 고통을 2배로 받는 대신에, 내가 입는 데미지를 네가 입는 거야. 주술이란 건 정말 재밌지 않아?”

“변태같군.”

테드는 프라가라흐를 해제했다. 주술을 없애지 못하는 이상 프라가라흐는 브류나크 대비용 밖에 되지 않았다. 상대는 주술도 사용한다. 그레온의 브류나크 하나를 대비하기 위해서 마법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테드가 블링크를 발동하려는 순간. 그레온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공간에서 밀짚인형을 꺼냈다.

“늦었어. 너와 난 이미 이어졌거든.”

그레온이 한 손으로 밀짚인형을 꽉 조았다. 테드의 신체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테드의 몸이 비틀거렸다.

“……멈춰라.”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던 핏방울이 그대로 멈췄다.

============================ 작품 후기 ============================

그대로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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