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234화 (23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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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탄의 자식들.

“저승길 가는 김에 사탄의 심장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을래?”

“네 저승길 말이야? 뭐…, 내키면 선물로 가르쳐줄게.”

그레온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기지개를 키면서 테드의 옆에 있는 메이드복을 입은 바알을 쳐다봤다. 이미 그녀의 과거를 보아 단번에 사정을 파악했다.

아스타로트가 지금 바알의 꼴은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으로도 조금 유쾌해진다.

“그 꼴은 뭐야. 바알. 잘 어울리는데? 평소에도 그러고 다니지 그랬어?”

“닥쳐. 애송이. 평소처럼 찌그러져 있지 그러냐? 응?”

“그때는 내가 힘이 안돼서 그랬고. 광폭의 마왕 바알이 개만도 못해졌는데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오겠어?”

“하. 이 새끼 이거. 좀 만져줘야 정신 차리겠네.”

“난 상관없는데 그쪽은 아닌가봐.”

그레온이 실실 웃으며 바알의 어깨를 잡는 테드를 바라봤다.

테드로선 바알을 그레온과 맞불힐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바알이라도 1%의 힘밖에 발휘하지 못하는 지금 그레온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여기 오기 전에 말했지. 바알. 넌 데비크를 상대해줘.”

“아오. 진짜. 제약만 없었어도! 씨발!”

바알은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돌을 발로 찼다. 돌은 허공을 날아가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데비크의 머리에 부딪혔다. 데비크의 머리가 산산조각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곧 재생될 것이다.

“차, 찾았다. 찾았다고!”

구석에서 옷가지를 뒤지던 베인이 무언가를 손에 쥐고 벌떡 일어났다. 커다란 손에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작은 유리병이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뒤룩뒤룩 살찐 손가락을 어색하게 움직여 병마개를 열었다.

유리병을 손바닥 위로 탈탈 털자 검은색의 작은 구슬들이 무수히 떨어졌다.

베인은 손바닥 위에 남은 20개 정도의 검은 구슬을 망설임 없이 자신의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흐흐. 맛있어….”

베인이 으그적으그적 구슬을 씹을 때마다 두툼한 턱살이 흔들렸다. 떳는지 감았는지 모를 두 눈은 사이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사이나가 미간을 찌푸리자 베인의 사타구니에 달린 흉물이 꿈틀 거렸다.

“추하군요.”

사이나가 오른손을 들었다. 무언가를 움켜쥐는 시늉을 한다. 권능인 지배를 발휘해 베인의 머리통을 터트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당황한 사이나가 서둘러 백색의 검을 꺼냈다. 그녀의 의문에 대답한 것은 테드와 대치하고 있던 그레온이었다. 그레온은 테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여유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저 녀석이 먹은 건 좀 특별한 거라서 말이야. 직접적인 권능은 통하지 않아. 바알같은 규격외의 권능은 아직 실험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검이나 마법으로 상대하는 걸 추천할게. 아. 권능을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겠네.”

“아주 여유 만만이시군. 날 앞에 두고도 그 반응이면 상당히 기분 나쁜데.”

“사이나가 아니라 다른 놈이었으면 이런 친절도 베풀지 않았어. 나는 사이나에게 점수 딸 수 있고, 넌 사이나와 바알한테 버프 마법을 걸어줄 시간도 벌고. 서로 이득이 되니 나쁘지 않잖아?”

그의 말대로 테드는 버프 마법을 걸어주고 있었다. 사이나에겐 필요 없어도 바알은 다르기 때문이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주위에 느껴지는 데비크의 기척이 많았다.

“네 자만감에는 기가 찰 정도군. 이전과 같이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은 마라. 지금 네 몸이 인형이 아닌 것쯤은 이미 파악했으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땐 내가 봐준거야. 아스타로트의 부탁으로 다른 임무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넌 그때 이미 죽었어.”

입가에 조소를 담으려던 테드는 갑자스레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 몸을 흠칫거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기운의 근원지를 확인한다.

살찐 알몽의 남성, 베인이었다. 그의 몸은 마치 돼지처럼 붉은빛을 띄고 있었으며 온몸의 혈관이 피부위로 솟았다. 몇몇 혈관은 터져서 새빨간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베인은 가렵다는 듯이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피부를 박박 긁었다.

“저건… 뭐냐.”

테드가 긴장감을 가지고 물었다.

베인의 모습은 혐오스럽긴 해도 강해보이진 않았다. 테드가 긴장하는 것은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이질적인 기운 때문이다. 마력… 아니, 마나로 기반하는 기운이 아니었다. 테드가 가진 영력처럼 독립된 다른 무언가다. 미지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아, 저거? 나도 잘 몰라. 아스타로트는 ‘악기(惡氣)’라고 부르지만. 저건 다룰 수 있는 힘의 종류가 아니야.”

“설명 고맙군 그래.”

테드가 망설임 없이 황금색 창을 내던졌다. 목표는 그레온이 아닌 베인이었다. 그는 눈앞의 그레온 보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더욱 신경 쓰였고, 가장 먼저 없애기로 했다.

“어이쿠. 안되지. 안 돼.”

지면에서 솟아난 갈색 밧줄 5개가 브류나크의 창을 붙잡았다. 브류나크는 묶인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테드가 눈가를 좁혔다. 저건 마법이 아니라 주술이었다.

밧줄은 브류나크를 꽉꽉 조이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창이었다면 이미 부러지고도 남았다.

“저건 사이나가 상대하게 놔두라고. 아, 그래도 버프 정도는 걸어줄까. 악의 축복(Evil Bless).”

그레온이 손바닥을 흔들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나온 검붉은색의 빛이 베인의 몸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효과는 일반적인 블레스와 같은 전체 능력 상승이다. 버프이면서도 저주이기에 대상의 생명력을 일부 소모한다는 단점과 기분 능력 상승폭이 일반 블레스의 2배 이상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 일부라는 게 상당히 많은 양이라 요즘은 극악무도한 흑마법사 정도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마법이었다.

베인의 지방이 꿈틀 거린다. 물렁한 살덩어리의 피부가 검붉게 변하면서 울퉁불퉁한 돌덩이로 보일만큼 단단해진다.

“네 계약자를 죽일 셈이냐?”

“이번이 2번째 인데. 고작 악의 축복 좀 심하게 건 걸로 죽지 않아. 죽어도 상관없고. 저렇게 보여도 사이나를 이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거든. 적당히 시간 정돈 벌어주겠지.”

“…여자. …여자! 여자!!”

몸에 적응하듯 움찔거리던 베인이 거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일보를 내딛자 바닥이 움푹 파이며 건물이 흔들렸다.

“……사이나. 할 수 있겠어?”

“문제없습니다. 곧바로 처리하고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저건 부탁할게. 난 이놈이랑 좀 놀아야겠어.”

사이나를 향해 움직이던 베인이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신체능력이 순식간에 강화된 탓에 적응을 못한 것이다. 베인이 일어나기 위해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힘을 견디지 못한 바닥이 또 다시 파이고 손가락이 우드득거리며 부서졌다. 손가락은 곧바로 재생됐다.

“여자아…! 여자!!”

고통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지능 자체가 낮아졌다. 지능을 포기하는 대신 신체능력을 극대화 시킨 것이다. 버서크 스킬이나 마법과 비슷하다.

“아놔. 나만 쩌리 된 거야? 마왕 체면 말이 아니네. 진짜.”

바알은 불평하면서도 착실하게 주위에 기어 나오는 데비크를 처리했다. 데비크 정도는 1%의 힘으로도 충분히 손쉽게 없앨 수 있었고,  테드에게 강화 버프까지 받았다. 저것들에게 지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바알은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는 베인을 쳐다봤다. 온몸에 혈관이 터졌다가 회복되기를 반복하고 있어서 그 주위는 이미 피투성이다. 저건 이미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데비크 보단 쌔보이긴 한데… 역겨워서 상대하기 싫어지네.”

고개를 돌리자 그레온을 향해 덤벼드는 테드가 보였다.

“저 마법사 놈은 정신병 있나. 왜 잘난 마법은 놔두고 육탄돌격하고 지랄이야.”

바알은 사정없이 달려오는 검은색 개, 데비크를 발로 찼다. 몸이 산산조각난다. 심장도 파괴되었는지 재생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함성소리와 더불어 지축을 울리는 발걸음소리가 한데 섞여 울렸다. 도시를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진격하는 것이다. 바알과는 관계 없는 일이었다.

바알은 테드와 사이나의 전투를 방해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주위에 있는 데비크를 죽여 나갔다. 광폭의 마왕이 잡몹처리 담당이 되었다는 사실에 서글픔을 느꼈다.

“그 악마계약이란 스킬의 숙련도를 얼른 올려야 되는데…. 뭐 방법 없나.”

건물 천장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데비크를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주먹은 데비크의 가슴팍에 그대로 명중한다. 데비크의 몸이 그대로 날아간다. 벽과 부딪혔음에도 멈추지 않고 몇 미터를 날아간 데비크는 처음 일격에 심장이 박살나 재생하지 않았다.

바알은 또 다른 데비크를 발견했다. 쓰러져 있는 아이 형태의 데비크를 파먹고 있는 기괴한 하얀색 문양을 한 데비크였다. 딥스크 국경 근처의 마을에서 본적이 있다. 그녀가 테드에게 듣기로 사탄의 자식이라고 불리는 놈이다.

“일반 데비크와 다를 바 없다고 하던데.”

바알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인지 데비크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붉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나며 피로 점칠된 검은 입사이에 뾰족한 송곳같은 이빨이 빛났다.

놈이 달려들었다. 바알이 발길질을 날렸다. 데비크는 무자비하게 박살낸 발길질이었다.

그녀의 발은 데비크의 가슴을 타격했다. 그러나 데비크는 뒤로 날아가지 않았다. 충격을 그대로 견뎌낸 것이다.

“…허?”

의외의 상황에 바람빠지는 소리를 낸 바알이 자신의 머리를 노리는 데비크의 손톱을 간단히 피해냈다. 내구도는 물론이고 속도까지 일반 데비크 보다 빠르다. 일반 데비크와 별 다를 바 없다는 테드의 말이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나중에 보복해줄 생각을 하며 오른 주먹을 꽉 쥔다.

그리고 전력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시스템의 제약이 없었다면 에이션트 드래곤을 한 방에 죽이는 어마무시한 공격이지만, 제약에 의한 지금은 조금 위험한 주먹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눈앞의 데비크를 박살내는 데는 문제없었다.

“존나 시시하네. 진짜.”

산산조각 나는 사탄의 자식을 심드렁하게 쳐다본 바알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옆으로 사이나가 날아갔다. 벽에 부딪힌 메이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일어섰다. 겉으로 보기엔 상처는 없어보였다.

쿠르릉 지형지물이 박살나는 소리가 울리며 베인이 바닥을 굴렸다. 한 차례 구른 뒤에 베인이 둔중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여, …자! 메이…드!. 여자!!”

“설마 저딴거에 당한거야? 실망인데. 루시퍼 딸내미.”

바알이 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리며 무릎을 굽혀 자세를 잡는다. 마침 심심했던 차에 좋았다.

베인이 바알의 앞으로 다가왔다. 양팔을 활짝 벌려 품안으로 잡으려고 한다. 바알이 보기엔 빈틈 투성이였다. 속도는 느리기 그지없었고, 자세는 엉망이라 몸의 중심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다.

“피하십시오. 힘도 약하면서 괜히 끼어들지 마시고요.”

베인이 양팔을 오므리고, 그녀가 주먹을 내지르려는 찰나에 사이나가 바알의 뒷덜미를 잡고 물러났다.

“아 씨. 저거 없애기 딱 좋았는데. 왜 방해야?!”

“일반 물리적 공격은 통하지 않습니다.”

“딱 봐도 데비크의 변종같은 걸로 보이는데. 심장을 파괴하면 되잖아. 심장!”

“저건 데비크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미 머리를 박살내고, 심장을 파괴했습니다. 불로 태워도 보았고, 전격으로 지져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습니다.”

“여자아아아!!”

베인이 커다란 다리를 움직였다. 처음에는 걷는 수준이었는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지날수록 뛰기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바닥을 굴렀다. 일직선으로 밖에 움직이지 않았기에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알. 당신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폭식이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 작품 후기 ============================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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