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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33화 (23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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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탄의 자식들.

데비크를 처리한 테드는 폐허가 된 마을을 돌아보았다. 불에타거나 한 흔적은 없었으나, 이전에는 집이었던 건물들이 박살나 잔해밖에 남지 않았다. 곳곳에 혈흔과 함께 시체 조각이 보였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마을의 주민이었다.

온전한 시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데비크가 그들을 먹었기 때문이다. 마을을 습격한 데비크의 숫자가 많았다면 시체조각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딥크스의 국경 근처에 위치한 이 마을은 규모를 본건데 인구수가 100명이 넘지 않았을 것이다.

테드가 이름조차 모르는 이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3마리의 데비크가 마지막으로 남은 마족 청년을 게걸스럽게 파먹고 있었다. 신체의 절반이 사라진 청년은 더 이상 숨을 내쉬지 않았다.

숨을 내쉴 머리가 없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데비크 2마리는 보자마자 심장을 박살내 죽였고, 시커먼 몸에 하얀 문양이 그려진 ‘사탄의 자식’이라 불리는 데비크는 약간의 실험 끝에 죽였다. 실험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른 데비크와의 차이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만, 지성을 가진 생명체와 데비크는 없었습니다.”

혹시 몰라 마을근처에 정찰을 부탁했던 사이나가 돌아와 보고했다. 씁쓸하지만 예상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작은 마을이 베테랑 모험가들도 상대하기 힘든 데비크 3마리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고했어. 바알은?”

사이나와 바알을 함께 보냈다. 사실 바알에 관해선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의 힘은 인정하지만, 단순무식한 전투가 아닌 탐색 등의 일을 잘 해내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이나가 바알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테드는 바알의 대단함을 세삼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바알을 그녀에게 떠맡겨 버린 테드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마을 입구 쪽에 앉아 있습니다. 본인 말로는 지쳐서 움직일 수 없다더군요.”

“……하하.”

사이나의 말속에 담겨 있는 옅은 불만을 느낀 테드가 마른 웃음을 흘렸다.

바알은 답이 없을 정도로 게을렀다. 정반대로 성실한 사이나는 매번 그 점을 지적했고, 바알은 코웃음치며 무시했다.

그걸로 끝났다면 바알도 편한 생활을 보냈을 것이다. 그녀가 예상치 못한 것은 사이나가 생각이상으로 더 성실하다는 점이었다. 사이나는 바알을 볼 때 마다 잔소리를 해댔다. 테드가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바알에게 일을 시키는 것 까지는 성공했다. 문제는 그녀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테드는 사이나와 함께 마을 입구 쪽으로 향했다. 반쯤 무너진 목책에 등을 기대어 앉아 졸고 있는 바알을 발견했다.

노출 가득한 옷을 입고 있던 바알은 사이나와 비슷한 짧은 치마의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사이나의 잔소리에 못이겨 결국 입게 된 것이다. 그렇다 해도 하루 종이 입고 있는 것은 아니고 자기 내킬 때와 사이나의 잔소리가 유난히 심할 때 입는게 전부였다.

“일어나. 바알.”

명령의 뜻을 담아 말하자 곧바로 바알이 몸을 일으켰다. 육체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인 것에 반해 얼굴은 느긋함의 극치였다.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으며 입가에는 한 줄기에 침이 흐르고 있다.

“뭐, 뭐야. 볼일은 다 끝났어?”

“그래. 여기서 이렇게 여유롭게 있을 시간은 없어. 가자.”

“여유는 무슨. 나도 저 메이드 따라다닌다고 존나게 고생했거든? 너도 다른 병력은 없을 거라 예상은 했잖아? 괜한 고생을 사서하는 이유를 모르겠네. 진짜.”

“예상만으론 안 돼. 만일의 경우를 확실하게 처리하며 움직여야해. 사탄교가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고 있는 지금의 기회를 잘 살려야해.”

딥크스의 국경에서부터 조용히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탄교는 현재 테드의 움직임은커녕 생사도 모르는 상태다. 바빌로니아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게 마음에 걸리지만 애쉬의 말로는 사탄교의 정보 수집능력은 별로 뛰어나지 않다는 모양이다. 바빌로니아에 있었던 일은 애쉬의 도움을 받아 2주 정도는 사탄교에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기습을 하기에 절호의 기회였다.

테드는 서쪽을 쳐다봤다. 앞으로 이틀 정도만 꾸준히 움직이면 도착하는 피레아 도시엔 사탄교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곳엔 그레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가자. 바알. 사탄교에 한 방 먹이러.”

⁂ ⁂ ⁂

테드는 산속에서 단단한 성벽에 둘러싸인 도시를 쳐다봤다. 딥크스의 도시 중 하나인 피레아로 지금은 사탄교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내부의 있는 도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인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쉽게 예상이 갔다.

피레아의 첫인상은 회색 도시였다. 근처에 있는 회색 바위산으로부터 조달된 석재로 만들어진 도시 구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도시 특유의 활발함이라던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도시의 겉모습은 테드가 딥크스에 들어오면서 지금껏 걸쳐온 마을에 비하면 아주 멀쩡한 편이었다. 애쉬가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저 도시에 머물고 있는 사탄교는 데비크를 포함해 대략 3,000 명 정도다. 그럼에도 유령도시 같았다. 3,000명에 비하면 도시가 큰 감도 있었지만 지금의 피레아는 유령도시나 다름없었다.

유령도시의 인상을 느끼게 도움을 준것은 병사들이 도시를 포위하고 있는데도 성벽 위나 도시의 높은 곳에 정찰을 위해 나온 사탄교의 병사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사탄교는 공성전을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지금 피레아를 포위하고 있는 병사들은 딥크스 출신만이 아니었다. 펠리스는 물론이고 네미슈와 브리드론의 병사들이 함께 진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건.”

도시를 포위하고 있는 병사들을 살펴보던 테드는 어느 한 지점을 보고 무심코 말을 흘렸다. 피레아 성문의 정면. 포위 병력들의 중심에 검은 머리를 나부끼고 있는 마족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입에 담배 하나를 물고 풍만한 가슴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검은 코트가 머리카락과 함께 흔들렸다. 머리에는 마족의 상징인 검은색 산양 같은 뿔이 있었으며, 황금색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성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입에 문 담배 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스승님!?

그 모습은 기억 속에 있는 메티스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 외모는 지난날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에 곧바로 알아보았다.

“왜 스승님이… 아니. 지금 딥크스의 상태를 보면 나서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지금 딥크스는 존망의 위기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다. 사탄교 뿐이라면 몰라도 3개월 전에 있었던 천사들의 학살이 문제였다. 존망의 위기는 아니더라도 더 이상 강대국이라 부르기엔 무언가 부족할 정도다.

더군다나 상대가 악마라면 메티스가 나서도 이상할 것 없었다.

“…윽.”

너무 빤히 쳐다보았을까. 돌연 갑자기 메티스가 고개를 획 돌렸다. 그녀의 시선은 정확하게 테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눈치 챘나. 여전히 감이 좋으신 분이군.”

메티스는 잠시간 테드가 있는 산을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입에 물린 담배를 한껏 들이키고서 오른손을 들었다. 그에 주위에 있던 딥크스의 마도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반응하며 메티스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메티스와 마도 병사들의 발치에 마법진이 그려진다. 메티스를 축으로 한 대마법으로 그곳으로 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는 테드에게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유동하고 있다.

테드를 확인하자마자 마법을 발동시킨 것은 아마도 메피아로부터 모종의 지시를 받거나 했을 것이다.

마법진의 위, 메피아의 머리 위로부터 검붉은빛이 모여든다. 그리고 허공의 어느 부분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실질적으로 이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메티스 한 명에 불과했다. 그녀 주위에 모여있는 마도 병사들은 그저 마력을 제공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아스트랄 스파이럴(Astral Spiral). 성문 자체를 날려버릴 생각이신가…. 저건 성문을 완전히 박살내는 걸로 그치지 않을 텐데. 도시를 복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겠어.”

어쩌면 피레아를 버릴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검붉은 빛으로 이루어진 나선의 창은 완성되었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의 빛마저 삼키며 주변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아스트랄 스파이럴은 그대로 성문을 향해 날아갔다.

성문은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찢어진다. 주위의 건물 잔해가 창의 나선을 따라 움직였다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검붉은 창은 성문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주변의 견고한 회색 성벽을 박살내고 도시의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창은 도시의 절반에 다하는 거리를 성문으로부터 일직선으로 박살내어 뻥 뚫린 길을 만들어낸 뒤, 힘을 잃고 사라졌다.

저게 대마도사다.

마법 한 번에 전쟁의 양상을 그대로 바꾸어버리는 자들이다.

마력을 쥐어짜낸 마도병사들이 기진맥진한것에 반해 메티스는 조금도 지쳐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익숙하게 코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과연 스승님.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는데. 내가 없어도 됐을지도 모르겠어.”

말을 하면서도 테드는 텔레포트 마법을 준비하며 바알과 사이나를 곁으로 불렀다. 메티스가 도시를 파괴해준 덕분에 텔레포트 마법은 무리 없이 발동될 것이다.

어중이떠중이 악마는 메티스의 상대가 되지 않지만, 서열을 가진 악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나 그레온은 32위면서도 위험한 놈이었다. 시스템의 제약이 없는 지금은 제 아무리 메티스라도 위험했다.

그는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다.

무너진 잔해속에서 시커먼 데비크들이 꾸역꾸역 기어나온다. 그것들은 주위에 있는 병사들을 발견하자말자 달려들었다. 조금의 생각도 없는 짐승 같은 모습이었다.

“텔레포트.”

테드 일행의 모습이 산속에서 사라졌다.

⁂ ⁂ ⁂

그레온은 따분한 표정으로 짐승처럼 여자를 범하고 있는 자신의 계약자를 쳐다봤다. 여자에 비해 족히 3배나 될 정도로 거대한 몸이 사정없이 엎드린 여자를 깔아뭉갠다. 의자에 앉은 그레온은 비곗덩어리에 깔린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주체하지 못하는 나른함을 느꼈다.

사실 그레온에게 계약자인 베인은 필요 없었다. 지금 당장 처분을 해도 사탄의 힘이 있기에 마계로 역소환 되지 않는다.

연약한 여자의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계약자를 살려두는 것은 단순한 변덕이었다. 그 끝없는 색욕이 언제 사라질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인의 성욕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밥 먹고 자는 것을 빼면 매일 그짓을 하고 있는데도 여자를 탐했다. 이 지경까지 오니 그레온의 입에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마법이나 주술을 건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레온이 중얼거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게 눕혔다.

지진이 일어났다. 건물이 흔들리고 벽에 금이 갔다. 머리위로 천장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레온의 나른한 기색은 변하지 않았고, 베인은 허리를 흔들었으며 여자의 비명은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벽이 박살났다. 뜨거운 햇빛을 등진 3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갑작스런 빛에 방해를 받은 베인이 시선을 찌푸리며 그들을 쳐다봤다. 그러다 그의 비계속에 파묻힌 눈동자가 반짝 빛을 발했다.

“그레온! 그레오온!!”

베인이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그레온을 불렸다. 그레온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온!!!”

돼지 멱따는 소리같은 베인의 목소리에 그제야 그레온의 시선이 베인에게 향했다.

“저거다! 저 년이 갖고 싶어! 지금 당장!”

베인이 손가락질 하고 있는 것은 은발의 메이드였다.

그레온은 주제도 모르는 계약자를 당장 죽여버릴까 하다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관대함을 베풀어 주었다.

“네게 힘은 줬어. 갖고 싶으면 직접 움직여. 난 저 망할 인간놈을 상대해야 하니까.”

그레온의 말에 베인이 방한구석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자신의 옷더미로 달려갔다.

테드는 손에든 황금의 창, 브류나크를 그레온에게 겨누었다.

“저승길 가는 김에 사탄의 심장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을래?”

“네 저승길 말이야? 뭐…, 내키면 선물로 가르쳐줄게.”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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