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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30화 (23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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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탄의 자식들.

“너 아스타로트와 만났지?”

회담의 분위기는 냉수라도 쏟은 듯이 조용해졌다. 몇몇은 헉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숨을 삼키며 미카엘라의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미카엘라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제정신이신가요?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고 그런 태도를 보이시나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당장 이곳에 모인 분들에게 사과하세요.”

“충분히 제정신이야. 여기가 어딘지도 잘 알고 있고. 내가 무례를 하고 있는 건 오로지 너 뿐인데 저분들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군.”

“…지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내뱉은 말인가요? 당신은 저를 무시하고 있군요.”

고작 인간주제에. 라는 뒷말은 하지 않았다. 미카엘라는 분위기에 휩쓸려 망발을 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분노는 느끼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이 있었기에 참는 것뿐이었다.

“내가 내뱉은 말인데 퍽이나 모를까. 그리고 너를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니야. 오히려 경계하고 있지.”

네미슈의 무녀는 12장의 날개와 황금빛의 검을 가진 천사에게 사이나가 살해당한다고 했다. 천사 중에서도 12장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자는 극소수다. 거기에 황금빛의 검이라면 더욱더 확실하다. 테드는 그 특징을 듣자마자 미카엘라 임을 확신했다. 사이나가 미카엘라의 손에 죽는다는 미래를 들었다. 경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아스타로트 보다 신경이 쓰였다.

“이젠 내 질문에 대답하시지. 묵비권을 행사해도 상관없는데, 그럼 나는 너와 아스타로트가 만났다고 생각하겠지.”

“당신만 그렇게 생각하겠죠. 저와 아스타로트가 만났다면, 아스타로트는 죽었을 거고 사탄교는 이미 머리를 잃은 오합지졸로 전락 했을거에요.”

“즉. 만나지 않았다고?”

“네. 그렇게 말했어요. 혹시 귀라도 안 좋으신 건가요?”

“말이 조금씩 거칠어지는데. 기분이 언짢은 신가봐.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스타로트를 만난 걸로 밖에 생각되지 않아.”

미카엘라가 하아. 하고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만약 그녀가 연극배우를 했더라면 연극의 역사에 한 획을 긋지 않았을까.

“당신은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잊으셨나요? 사탄교는 실수로 우리를 소환했어요. 그리고 아스타로트는 사탄교의 본거지인 드래프리온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죠. 그리고 저희는 시스템에게 직접 사탄교의 배척을 직접 부탁받기도 했지요. 그런 저희가 그날, 네메스 대륙에 막 소환된 날에 아스타로트를 만났더라면 저나 아스타로트 둘 중에 하나는 죽었을거에요.”

“우선 첫 번째로 사탄교가 실수로 너희를 소환 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것들은 지금까지 전문적으로 악마를 소환해왔어. 네가 말한 실수는 마법진을 조금만 확인해도 예방할 수 있는 실수에 불과해. 그리고 ‘소환’이란 것도 의심 되거든. 시스템상 소환은 계약이 먼저 완료되지 않으면 발동되지 않아.”

“사탄교에는 시스템의 힘을 무시하는 힘이 있어요. 그 때문에 사탄교의 악마들은 시스템의 제약을 받지 않죠. 그들은 그 힘을 이용해 악마를 소환하려다 실수로 우리를 소환했어요.”

“즉. 너는 사탄교에게 강제로 소환당했다는 거군. 수 없이 많은 천사들 중에 미카엘라가 우연히? 그것도 고위 천사들과 동시에? 어디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군요. 당신의 말을 들으니 의심하는 것도 당연해요. 하지만 우연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일어나기에 우연이라고 하죠. 그리고 어쩌면… 시스템이 관여했을 지도 모를 일이고요.”

미카엘라가 다시 미약한 권능을 담아 말했다. 테드의 말에 휩쓸려 의심을 품기 시작한 자들이 금세 의심을 줄였다. 미카엘라의 농간을 깨달은 것은 테드 뿐이었다. 그러나 화면 너머에 있는 국가 수장들에게까진 권능이 미치지 않는다. 프리티스의 천왕을 제외한 국가 수장들은 제각각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회담에 있는 자들은 어차피 어중이떠중이들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자들이다.

테드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아마도 처음부터 시기 좋게 나타난 천사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을 것이다. 비록 천사들이 사탄교를 적대한다고 하더라도 외부 세력인 만큼 경계는 했으리라.

“우연만큼 써먹기 좋은 말은 없지. 나도 우연을 좋아하니 이번은 넘어가주지. 하지만… 기건 대답해줘야 겠어. 너를 소환한건 누구지?”

미카엘라는 테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서 원탁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화면속에 비치는 각국의 수장들에게 시선을 주고서 미간을 찌푸려 화난 얼굴을 만들고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장소를 사탄교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나요. 어째서 제가 이곳에서 심문을 받아야 하죠?”

그녀의 말은 받은 것은 천왕이었다.

“미카엘라 님의 말이 맞습니다. 이 회담은 사탄교로부터 네메스 대륙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테드 경. 그대도 그쯤 하게나. 미카엘라 님은 시스템으로부터 정식으로 네메스 대륙을 구하기 위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분일세. 그것만으로 믿을 수 있지 않나.”

과연 천족. 천왕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군. 이건 아예 세뇌 수준인데. 내심 중얼거린 테드가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보다 앞서 라이거의 목소리가 울렸다.

“과인은 테드 경의 말을 지지하오. 시스템은 항상 우리 편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지 않소? 그런 존재를 맹신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생각하오만. 그리고 미카엘라 님은 네메스 대륙의 출신이 아니지 않소? 이후 미카엘라 님과 관련된 이런저런 말이 나올 가능성이 있소. 그걸 예방하는 차원에서 지금 이곳에서 확실하게 끝맺는 게 좋다고 생각하오.”

“펠리스의 젊은 왕이여! 그대는 정녕…!”

미카엘라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한 천왕이 분개해 목소리를 높일 때. 미카엘라가 끼어들었다.

“일 리가 있네요. 여기까지 와서 대답하지 않는 것도 의심받는 행동이겠죠. 저희를 소환한 것은 사탄교의 일원이었어요. 레안 족의 마도사였죠. 악마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는 죽었어요. 그 이후, 사탄교와 딥크스의 병사들이 저희에게 덤벼들었죠. 저는 아스타로트와 그레온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럴 리가. 아스타로트는 사탄의 힘을 이용해 너를 네메스 대륙으로 불러내는 게 목적이었는데? 시스템을 무시하는, 사탄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탄의 힘을 일개 사탄교의 교도가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어이가 없네요. 지금 이 대화는 빙빙 돌고 있어요. 귀중한 시간만을 낭비하고 있죠.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탄교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우리는 시급히 사탄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말을 돌리려는 그녀의 생각이 빤히 보였다.

‘진짜로 아스타로트와 만난 거냐.’

테드는 속으로 웃었다. 미카엘라가 아스타로트와 만났는지는 말을 꺼낸 테드도 반신반의하는 일이었다. 아스타로트가 위험을 무릅쓰고 미카엘라를 만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환은 아마도 그레온이나 휘하의 악마를 시켰을 듯싶었다.

“아스타로트는 너랑 만날 이유가 있거든.”

“……그게 무슨 말이죠?”

“바알.”

그 이름이 느닷없이 테드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분위기가 급변했다. 침착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았던 미카엘라의 분위기가 단숨에 차갑고도 날카롭게 변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은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바알에게 미카엘라가 그러하듯, 미카엘라에게도 바알은 민감한 무언가였다. 그녀는 머리를 굴렸다. 테드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바알의 이름이 나온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

“……바알이라니… 무슨 뜻이죠? 당신의 손에 죽은 마왕의 이름이 나올 이유가 있었던가요.”

미카엘라가 긴장하고 있는 것이 테드의 눈에도 보였다.

“아아. 곧바로 여기 왔으니 듣지 못한 것 도 당연한가. 어차피 알게 될 테니 지금 알려주지. 바알은 살아 있어. 나는 직접 바알에게 들었지. 아스타로트가 미카엘라를 소환하려 한다고.”

“모함이에요!”

미카엘라가 분노해 주먹으로 원탁을 때렸다. 쾅! 하는 소리가 울리며 원탁의 떨림이 테드에게 까지 느껴졌다.

“아스타로트가 저를 만날 이유는 없어요! 당신은 바알에게 들었다고 했죠? 바알은! 사탄교의 인물이에요! 설마 그녀의 말을 믿는 건 아니겠죠?!”

그녀의 말대로 모함이 맞았다. 그리고 실상은 말하자면 아스타로트는 바알과의 계약으로 미카엘라를 소환했다. 하지만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각국의 수장들이 오해하기 쉽도록 말하지 않는게 나았다.

“너무 달아올랐는데. 진정하라고. 지금 네 얼굴 꼴이 말이 아닌 건 알고 있나? 그건 천사의 얼굴이 아니야. 날개도 없고, 머리의 고리도 없으니 누가 악마고, 누가 천사인지 구분하기는커녕 인간인지 천족인지도 모르겠는데.”

“당신… 지금 그 말의 뜻은 알고 하시나요? 오랜 세월 살아온 제가 충고하나 해드리죠. 나중에 후회 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특히나 입밖으로 나오는 말의 경우엔 더더욱.”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내 좌우명이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다. 거든. 그리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돈데. 바알이 그렇게나 무섭나?”

“……바알이 무섭냐고요?”

미카엘라의 몸에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원탁에 앉아 있던 자들이 몸을 떨고, 원탁 주위에 있던 자들은 몸을 움츠렸다. 그들은 맹수와 같은 공간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만 방심하고 등을 보이면 사정없이 물어뜯는 맹수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바알의 이름을 듣고 흥분한 건 인정할게요. 그렇지만 제가 바알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이네요. 저는 바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저 증오할 뿐이죠. 테드 크루시안. 당신은 바알이 살아 있다고 했죠.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죠? 가르쳐 주신다면 지금까지의 당신의 무례도 모두 용서해드리죠.”

“네가 용서할 필요는 없어. 네가 용서한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바알의 위치가 궁금한 모양인데. 가르쳐 주지. 바알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

“……가까운 곳? 설마 이 건물내에 있나요?!”

다급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미카엘라가 성력을 개방했다. 막대한 성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오로지 바알을 탐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성력은 회담이 벌어지는 건물뿐만이 아니라 근처의 산까지 뻗어나갈 것이다.

테드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초조해 하고 있었다.

“어디를 찾는 거냐. 바로 여기에 있잖아.”

테드의 말에 미카엘라가 그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어느새 테드의 무릎위에 팔짱을 끼고 있는 연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자 아이가 있었다. 탱크탑과 핫팬츠를 입어 피부를 가린 면적보다 노출이 더 많은 예쁜 여자 아이다. 얼굴은 아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시니컬한 웃음을 걸고 더 없이 붉은 눈동자로 미카엘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알은 검은색 끈 샌들에 감싸인 새하얀 양 발을 교차해 책상위로 올렸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 행동은 자연스러웠고 무엇보다 그녀와 어울렸다.

테드는 왼팔로 그녀의 복부를 감쌌다. 그녀와의 친밀함을 자랑하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들끓는 성욕의 변태적인 행위도 아니었다. 그저 바알이 미카엘라에게 달려들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현재 바알은 1%의 힘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달려들면 개죽음이다.

“오랜만이야. 상년아. 그 걸레같은 상판때기가 여전해서 다행이야. 다른 귀찮은 천사놈들도 없는 다시 보기 힘들 정도의 절호의 기회라 지금 당장 진심으로 쳐죽여버리고 싶은데 지금은 좀 힘들 것 같네.”

미카엘라의 얼굴이 냉정하게 식었다.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바알을 쳐다봤다.

“바알. 그 상스러운 말투는 여전하군요. 당신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정말 역겹네요.”

“역겨운 건 내쪽이야. 토가 나온다고.”

테드는 바알의 배를 감싸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너무 나서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각국의 수장들에게 입을 열었다.

“간단히 설명하죠. 주권결정전을 지켜보고 계셨을 테니 이해하기 쉬울 테죠. 저는 마왕인 바알을 이기고 그녀를 저의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게 그 증거죠.”

바알의 몸에서 문신이 나타난다. 몸의 오른쪽은 푸른색, 왼쪽은 붉은색이다. 현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테드에게 들은 바알과는 이미 사전에 입을 맞춰 놓았기에 그녀의 반발은 없었다.

“이것은 시스템도 인정했어요. 그녀의 생사여탈권은 제가 쥐고 있죠. 바알은 적이 아닙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뭐, 믿지 않으시겠다면 말고요.”

바알의 몸에서 문신이 다시 사라진다. 바알은 자신의 몸을 속박하는 감각에 낮게 혀를 찼다.

“제가 이곳에 바알을 부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카엘라가 아스타로트와 만났다는 증거를 대기 위해서죠. 바알. 설명을.”

테드의 품안에 앉은 바알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아스타로트와 미카엘라가 만났는지는 바알도 모른다. 그러나 사탄교에서 최고 간부라 할 수 있는 바알의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가진다. 모함을 할 시간이다.

“내가 봤어. 저 년이랑 아스타로트가 떡치는 거. 아주 질펀하게도 치더구만? 지나가던 개새끼들이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고. 아, 이렇게 말하면 좀 부족한가. 저 샹년이 어떤 자세로, 몇 시간 동안 떡을 쳤는지 자세히 말해줄까?”

“…….”

테드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딴 말을 하라고 그녀를 이곳에 부른 게 아니었다.

그리고 바알을 향해 황금빛의 창이 날아왔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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