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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29화 (22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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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탄의 자식들.

“그래요. 저희는 사악한 악마로부터 네메스 대륙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랍니다. 다름 아닌 시스템의 부탁으로요.”

미카엘라의 발언에 주위에서 오오 하며 감탄하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렸다. 선망의 시선이 미카엘라 한 사람에게 향했다.

네메스 대륙에서 항상 중립의 자리를 지키는 시스템은 신이나 다름없다. 물론 네메스 대륙의 사람들은 시스템이 신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신 취급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신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 시스템이 네메스 대륙을 위해 천사를 불러왔다. 시스템은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사탄교에 대한 문제도 시시하게 느껴지며, 천사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으로 보인다.

테드는 떨리는 동공으로 미카엘라를 쳐다봤다. 그녀로부터 들은 말은 충격적이라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시스템이? 아니, 그럴 리가 시스템은 절대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생각을 잇던 테드는 사탄교가 사탄의 힘을 이용해 시스템의 제약… 즉, 시스템의 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곳이 중간계가 아니라 마계나 천계였다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여긴 시스템이 있는 중간계다. 항상 중립을 지키는 시스템은 자신의 힘에서 벗어난 사탄교를 어떻게 판단한 것일까.

‘만약 시스템이 사탄교를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면… 악마를 막기 위해 천사를 이용하려는 것도 이해는 가. 하지만….’

시스템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천사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수가 아님을. 사탄교가 멸망한다고 천사가 사람 좋게 웃으며 천계로 돌아갈 일은 결코 없음을. 천사는 자원 봉사자가 아니었다.

‘아니. 아직 속단하긴 일러. 가장 큰 가능성이 남아 있으니까.’

미카엘라의 말이 거짓말일 가능성이다. 그 발언을 증명하는 방법이라면 없지 않아 있다. 문제는 지금 여기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료의 준비로 적어도 하루의 시간은 필요하다.

“믿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러니 천왕.”

미카엘라가 천왕을 불렸다. 그녀의 책상 위 화면에 나온 늙은 천족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왕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자한 노인처럼 생겼다. 머리에 쓰고 있는 화려한 왕관이 아니었다면 왕이란 것도 몰라보았을 것이다.

“예. 미카엘라 님. 그리고 이곳에 모인 자들이여. 지금부터 짐이 발언하겠네. 미카엘라 님의 말은 둘도 없는 사실이라네. 본국의 명예를 걸겠네.”

“귀국의 명예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소. 그러나 우리가 원한는건 눈에 보이지 않는 명예가 아니오.”

라이거가 말했다. 테드가 알고 있는 말투와는 달랐다. 상대가 프리티스 제국의 황제이니 아무리 라이거라도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의 목소리에 담긴 패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젊은 왕이여. 자네의 의견은 타당하네. 그리고 한 가지. 본국은 결코 이름 뿐인 명예만을 보여주지 않네. 자. 이걸 보게. 이것이 미카엘라 님이 시스템에게 직접 부탁받았다는 증거, 우리 네메스 대륙을 위해 강림하셨다는 증거이네.”

천왕이 화면을 향해 내보인 것은 한 장의 서류였다. 당연히 평범한 서류는 아니다. 그것은 각국의 왕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시스템이 발행한 절대적인 계약서다. 계약서에는 확실하게 네메스 시스템과 미카엘라 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용은 네메스 대륙에 해악을 끼치는 사탄교의 박멸과 그 기간 동안 제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테드는 이를 꽉 물었다. 위조의 가능성은 떠올렸다가 그만뒀다. 화면 너머로 봐도 알 수 있었다. 저건 ≪맹약(盟約)의 증표≫다. 완벽한 위조 따윈 불가능하고, 설령 아무 종이에 위조를 했다고 해도 시스템의 제재가 가해진다.

“이제 저를 믿어주실 수 있겠나요?”

“물론입니다. 미카엘라 님! 미카엘라 님을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대륙의 홍복입니다! 이제 사탄교도 두렵지 않군요!”

“장담하는데 지금 이곳은 역사의 한 장면… 아니, 전설의 한 장면일지도 모르겠군요!”

회담이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그들은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를 보는 눈으로 미카엘라를 쳐다봤다.

조용한 것은 테드를 비롯한 각국의 수장들이었다. 몇몇은 아예 테드처럼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개같네 진짜.’

테드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 이 사실은 금방 대륙으로 소문이 퍼져나갈 것이다. 악마라는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민초들은 천사를 찬양할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이미 소문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천사 놈들이 활개를 칠 명분을 주고 말았어. 빌어먹을.’

자신들의 행동을 네메스 대륙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오면 한 발짝 물러설 수 밖에 없다. 천사들의 행동은 거침 없어질것이 분명했다.

일부러 메타엘과 시리엘을 들먹이며 회담 장소에 있는 자들에게 경각심을 준 것인데 소용이 없어졌다. 아마도 저들은 천사들의 뒤에 있는 시스템을 믿고 있으리라. 시스템이 천사를 완벽히 제어하고 있으니 천사도 믿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테드 씨. 질문에 대한 답은 되셨나요?”

미카엘라의 말에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생각에 잠겨 있던 테드가 한 템포 늦게 입을 열었다.

“……예. 충분히 알았어요.”

“그럼 남은 것은 세 번째 질문이군요. 질문이 뭔가요?”

“……그건.”

준비했던 질문의 의미는 예상 밖의 상황으로 의미가 사라졌다. 그래도 딱히 다른 질문은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미카엘라는 여유롭게 말할 것이다. 그렇기에 반쯤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물었다.

“미카엘라 님은… 사탄교가 멸망한 이후에는 어떻게 하실 작정이신가요?”

천계로 돌아간다고 거짓말을 하기만 해도 상관없다. 시스템을 들먹이면 이곳에 있는 자들은 그 거짓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테드는 당연히 미카엘라가 거짓말을 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군요. 원래라면 곧바로 천계로 돌아갈 생각이었답니다. 우리들의 터전은 어디까지나 네메스 대륙이 아닌 천계니까요.”

그녀의 가증 스러운 웃음을 보면서 테드가 낮게 되물었다.

“원래… 라면이라는 뜻은?”

“생각해보면 사탄교가, 마계에 있는 사악한 것들이 다시 네메스 대륙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리고 그때 저희들이 없다면 네메스 대륙의 한 국가가 드래프리온처럼 멸망하게 될지도 모르죠. 이 끔찍한 사건을 막기 위해선 우리 천사들이 네메스 대륙에 남을 필요가 있어요. 다시는 악마들이 네메스 대륙을 넘보지 못하도록.”

주위가 조용해졌다. 테드 또한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대놓고 네메스 대륙에 남겠다고 말했다. 9명의 수장들 중에서 웃고 있는 것은 천왕 뿐이었다. 나머지 8명은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그건 불가능 할 텐데요. 방금 본 맹약의 증표에는 계약기간은 사탄교가 박멸하는 동안이에요. 사탄교가 사라지면 더 이상 천사 님들은 네메스 대륙에 있지 못해요.”

“맞아요. 시스템과의 계약은 그런 것이었죠. 그리고 여기서 밝히는 건데 저희는 시스템에게서 계약의 보상을 듣지 못했어요. 누구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시스템이니 계약이 완수되는 날에는 분명히 보상이 주어지겠죠. 그리고 그 날이 오면 저희는 네메스 대륙에 남을 것을 시스템에게 정식으로 요청할 생각이랍니다.”

“…….”

“모든 것은 네메스 대륙을 위해.”

미카엘라가 덧붙였다. 테드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천왕이 입을 열었다.

“미카엘라 님을 비롯한 천사 분들께서 네메스 대륙을 비호해주신다면 네메스 대륙에는 영원한 평화가 찾아 올 것입니다! 아아!”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겠죠. 그럼 저는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해 보이도록 노력하죠.”

테드는 천왕과 미카엘라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손의 적당히 차가운 온도가 약간이지만 기분을 전환시켜주었다. 회담은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그는 자세를 갈무리하고 입을 열었다.

“제 질문은 여기서 끝났어요. 이제 회담의 본주제로 돌아가죠. 회담을 소집한 것은 프리티스 제국이죠. 우선은 프리티스 제국의 의견을 듣고 싶은데요.”

주위의 시선은 천왕이 아니라 미카엘라에게 모여들었다. 프리티스 제국의 실세가 천왕이 아니라 미카엘라임을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천왕 또한 알고 있음에도 불쾌함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렇네요. 우선 저의 의견을 들어주세요. 저는 모든 국가의 병력을 이끌고 드래프리온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국가의 병력이라……. 그건 효율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수인 국가인 네미슈의 대통령이 말했다. 그에 미카엘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어째서죠?”

“우선은 모든 국가의 병력을 모으는 것부터가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병사들을 대규모로 모으는 일이니 만큼 여러 가지로 준비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한 달, 어쩌면 세 달이 걸리게 되겠지요. 다음으로 드래프리온으로의 행군도 문제입니다. 드래프리온은 섬너라입니다. 필연적으로 배를 타야하는데… 각국의 배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고 지금 당장 조선 작업에 들어가도 1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군요. 충분히 이해가 가요. 하지만 각국의 워프게이트를 이용한다면 병사들의 이동거리는 비약적으로 줄일 수 있지 않나요?”

“…국가 간의 워프게이트 이동은 협정으로 인해 불가능합니다.”

“지금 같은 비상시기에 협정이 의미가 있나요?”

“……비상시기 이기 때문에 협정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리고 설령 병력을 한데 모았다고 치더라도 드래프리온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드래프리온의 워프게이트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탄교가 내버려 둘리가 없다. 그리고 이건 아무리 테드라도 막혀 있는 국가의 워프게이트를 억지로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 대통령께서는 무언가 착각을 하고 계시네요. 제가 병력이라고 말했지만, 수십만에 달하는 병사들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약 100명 정도의 소수 정예를 생각하고 있어요.”

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라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의견에는 동의한다. 괜히 병사들을 이끌고 드래프리온에 갔다간 범위 계열의 권능을 가진 악마에게 개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선 숫자보단 질이 중요했다.

“……미카엘라 님이 그리는 소수 정예에는 누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우선은 저를 비롯한 전투에 능한 고위천사 12명. 그리고 네메스 대륙의 아홉 국가에서 각각 10명씩이면 충분할 것 같네요. 프리티스의 하이 프리스트. 아우티리아의 하이랜더. 지쿠라크의 오크 워로드. 네미슈의 무사. 딥크스의 다크나이트. 펠리스의 집행자. 레안의 랜드 가디언. 튜논의 웨펀 로드. 브리드론의 나이트 워커.”

미카엘라의 말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그녀가 말한 것들은 각국의 최고 무력 집단을 일컫는다. 100명이라면 국력의 문제로 단칼에 거절했으리라. 그러나 10명이라는 애매한 숫자에 거절하기가 어려워졌다.

“제가 직접 그들을 이끌고 사탄교를 기습하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사탄교의 악마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데요.”

테드가 말했다. 각국의 최고 무력집단이라 해도 악마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을 악마와 싸우게 할 생각은 저도 없어요. 악마를 상대하는 건 저희 12명의 천사들. 그들은 데비크를 상대하게 될 거에요.”

“……그럼 전 찬성이에요. 드디어 사탄교를 없앨 수 있겠네요.”

천사와의 결전은 우선 사탄교를 없애고 나서다.

테드는 지금 이순간에도 데비크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애쉬를 통해 들었다. 내버려뒀다간 정말 감당되지 않을 숫자로 늘어날지도 모른다.

“아. 테드 씨는 딥크스로 가주셨으면 해요.”

“네?”

“딥크스에는 아직 그레온 그레모리라는 서열 32위의 악마가 있어요. 고위 천사들 중에서도 상대하려면 2~3명 이상 달라붙어야 맞상대가 가능한 강적이지요. 아마 사탄교의 수장인 아스타로트 다음으로 강한 인물일거에요. 저는 아스타로트를 상대해야 하니… 바알을 쓰러뜨린 테드 씨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레온이 강한건 맞다. 자신 정도가 아니면 상대하기 힘들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딥크스에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잠시 딥크스에 모습을 비췄을 뿐이었다.

간단히 말해 미카엘라는 테드를 떨어뜨리려고 하고 있다. 그녀에겐 무언가 목적이 있었다.

“네메스 대륙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에요.”

담담히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테드는 대답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인정한다. 그녀는 자신 보다 위에 있었다. 아마 그 안에는 숨겨 놓은 무언가도 몇 개 더 있을 거다.

하지만 대놓고 위선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 못 해먹겠네.”

테드가 오른손을 내린다. 가려져 있던 두 눈은 검은색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가 예의 바르게 있던 몸을 풀었다. 의자 등받이에 깊게 몸을 묻고 의자 손잡이 팔을 올린다. 회담 장소와는 어우리지 않는 지극히 편안해 보이는 자세였다.

갑작스럽게 변한 태도와 분위기에 회담에 있던 자들이 어리둥절했다. 표정이 변하지 않은 자는 2명 정도였다. 메피아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으며, 라이거는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까놓고 얘기하자 미카엘라.”

입을 살짝 벌리고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카엘라의 얼굴을 쳐다본다.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는 저 표정이 진심인지 아니면 연기인지 알 수 없었다.

“너 아스타로트와 만났지?”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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