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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25화 (22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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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탄의 자식들.

30. 사탄의 자식들.

[바빌로니아의 숨겨진 비밀이 하나 풀렸습니다.]

테드가 8번째 차원 던전인 핏빛 세계의 파수꾼을 죽이고 새하얀 나무문을 열었을 때, 바빌로니아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하얀 문을 통해서 테드는 바빌로니아 대미궁 10층의 한 공간으로 올 수 있었다. 3M 정도의 높지 않은 천장과 케케묵은 먼지 냄새와 흑갈색의 벽은 테드의 기억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이 찬란한 색깔의 문들은 없었는데.”

7가지의 빨주노초파남보 색을 더불어 검은색의 나무 문까지 총 8개다. 테드가 지나온 차원 던전의 숫자와 딱 맞아 떨어졌다. 테드는 혹시나 싶어 보라색 문을 살짝 열어봤다. 보랏빛으로 가득찬 세상이 보였다.

“숨겨진 비밀이란 게 이거였나.”

문을 보는 순간 반신반의 하고 있었는데 이젠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문들은 제각각 차원 던전과 이어져 있다. 거기다 문이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출입이 자유로워 보였다.

테드는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초록색과 파랑색은 일반 모험가들도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세계였다. 나오는 몬스터는 약하진 않으나 충분히 주의를 하면 상대할 만 했다. 문제는 보라색과 빨강색, 검은색, 남색에 있었다. 거긴 환경자체가 틀리다.

보라색 차원 던전은 공기 중에 독기가 있다. 독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들어서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 붉은색 차원은 붉은 피로 물들 대지에서 시시각각 언데드가 튀어나오면서 대상에게 저주를 건다. 검은색 차원은 빛이 없기에 빛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충 여기에 써놓고 갈까? 바쁘니까 던전 조심이라고 적기만 해도….”

“뭔 오지랖이냐.”

옆에 있던 바알이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온갖 몬스터를 흡수하면서 힘을 완벽하게 회복했다. 그래도 시스템의 제약 때문에 마왕이라 불릴 정도의 압도적인 힘을 내보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너, 시간 없는 거 아니었냐? 뭣땜에 잠까지 줄여가며 움직였는데. 어차피 모험가잖아. 모험하고 싶을 텐데 괜한 짓은 말고 그냥 가지? 지들 목숨이야 지들이 알아서 챙기겠지.”

바알이 불퉁스럽게 말했다. 지난 3개월간 그들은 네메스로 돌아가기 위해 차원 던전을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마법을 십분 활용하면서 돌아다녔음에도 3개월이 걸린 것은 문이 상상도 못한 곳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차원 하나의 공간이 지나치게 넓기도 했다. 심각했던 것은 검은색 차원이었다. 빛이 없으니 문을 찾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미궁에 들어서는 만큼 함부로 문을 열거나 들어가는 자들은 없겠지만… 그래도 만일의 경우가 있으니.”

테드는 벽 옆에 던전 조심이라고 적어 놓았다.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 수고였다. 아무리 시간이 없다 해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테드는 주제 파악이 서투른 모험가들도 글을 봤다면 함부로 들어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원 던전의 자세한 정보는 나중에 모험가 길드에 알리기로 하고서 테드는 바알을 이끌고 대미궁의 위로 향했다. 과거 사이나와 함께 와본 적이 있었기에 올라가는 길은 알고 있었다.

“어, 사이나?”

올라가는 와중에 사이나를 향해 통신을 보냈다. 미궁에 따라서 연락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현재 테드가 있는 곳은 대미궁의 심층이 아니었기에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그녀와 스킬로 대화하는 것이 가능했다.

「주인님! 드디어 오셨군요!」

사이나가 대답하기 까지 정확히 0.7초가 걸렸다. 1초도 걸리지 않아 돌아온 대답에는 그녀가 미처 숨기지 못했던 기쁜 감정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평소 차갑기 그지없는 그녀의 태도를 보자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테드 또한 마찬가지다. 3개월 전까지 매일 들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 저도 모르게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녀가 무사하다. 그 단순한 사실에 항상 긴장되어 있던 마음이 풀어진다.

“미안. 돌아오는데 3개월이나 걸려 버렸어. …그동안 잘 지냈어?”

머릿속으로는 사탄교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자신이 없는 동안 그것들이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알아야 했다. 그러나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것은 그녀에 대한 안부였다.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어?”

돌아온 대답이 예상과 달라 테드가 당황했다. 그의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없는 틈을 타 사탄교가 그녀를 건드린 건가? 아니면 악마만 걸리는 희귀병에라도 걸렸나. 등등 마음이 불안해진다.

「주인님이 없는데 어떻게 잘 지내겠습니까. 연락이 되지 않는 곳에 계신 건 알고 있었으므로 개인적으로 찾고 있었습니다.」

“……미안. 할 말이 없어. 나도 곧바로 연락하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어. ……이거 왠지 꼴사나운 변명 같은데.”

「주인님이 무사하시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시지요?」

“다친 곳은 없어. 완전 멀쩡해. 뭐, 이시스는 수리하지 않으면 못 사용할 정도지만.”

「주인님이 무사하시다면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주인님이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곧바로 마중 나가겠습니다.」

필요 없다고 말하려던 테드는 말을 멈췄다. 그는 지금 당장, 일초라도 빨리 그녀를 보고 싶었다.

단순한 계산이었다. 자신도 그녀를 향해 움직이고, 그녀도 자신을 향해 움직인다면 빠르게 만난다는.

“……바빌로니아 대미궁 10층이야. 입구로 혹시 올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혹여 급하시다면 저를 소환하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대미궁의 저층에서는 스킬을 사용해 사이나를 아무 탈 없이 소환할 수 있었다.

“아니. 널 보고 싶긴 해도 금방 밖으로 나가야해. 널 번거롭게 할 순 없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에 어쩌다보니 바알과 계약하게 됐어. ……네가 싫다면 계약을 해지해도 상관없는데.”

「별로 싫은 건 아닙니다만? 주인님이 하신일이니 필요한 일이었겠지요. 또 바알의 힘이라면 필시 주인님에게도 도움이 되겠죠.」

목소리는 평탄했다. 아마 사이나라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테드는 그 이후로도 사이나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주된 내용은 사탄교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알게 된 것은 테드가 알고 있던 것보다 네메스 대륙의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7층에 도착했을 무렵에 테드는 위광에 감싸이지 않은 손등에서 아릿한 통증을 느꼈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오른손의 검지와 왼손으로 손등을 직접 꼬집고 있는 바알이 보였다. 그녀는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주 좋아 보이는데? 애인을 만나서 그렇게 좋아?”

“아주 좋아 죽겠다. 왜 또? 지금 제법 심각한 이야기 중인데.”

“걷는 게 귀찮아졌어. 태워줘.”

“……멋대로 해.”

테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바알이 재빨리 테드의 몸을 타고 올라가 목 위에 자리 잡았다. 그녀가 목마를 타게 된 것은 2개월 전이었다.

주황색 차원에 끊임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하염없이 방황하고 있을 때, 걷는 게 귀찮아진 바알이 지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타협한 것이 바알을 들고 가는 것이었다. 마법으로 질질 끌고 가는 방법은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그곳에서 괜한 마력낭비였다. 그러나 들고 가다보니 필연적으로 한 팔을 쓰지 못하게 된다.

이에 테드는 그녀를 목마에 태웠다. 그녀는 겉모습처럼 가벼웠고 머리 위에서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무의식적으로 테드의 머리를 단단히 잡고 있어서 테드가 그녀에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바알은 그 후로도 걷는게 귀찮고 승차감이 좋다는 이유로 테드의 머리 위에 자주 올라왔다.

지금에 와서는 테드도 익숙해져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테드는 간혹 미궁의 길에서 마주친 모험가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말을 걸어주면 적당히 대꾸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5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1시간 만에 완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테드는 오고가는 수많은 모험가들 사이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모험가들이 어느 한 지점을 힐끗 거리는 것을 눈치 채고 따라서 시선을 옮기자 대로 쪽에 정갈히 서있는 메이드를 볼 수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아름다운 은색의 머리카락과 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를 감싸고 있는 검은색의 짧은 치마의 메이드복. 인형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예쁘면서도 무표정한 얼굴은 붉은 눈 탓인지 그녀의 분위기를 차가우면서도 날카롭게 만들었다.

테드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가 조금도 변함없이 그곳에 있었다.

테드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깨 위로 오른팔을 들었다. 그에 테드의 머리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바알이 팔에 맞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녀를 향해 걸었고, 그녀도 그를 향해 걸었다. 곧이어 그녀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어느새 달리기가 되어 있었다. 테드가 놀라고 있을 때, 코앞으로 다가온 사이나의 손이 테드의 목을 감쌌다.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의도치 않게 떠밀리게 된 바알이 뒤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쿵하고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사이나의 입술이 테드의 입술을 덮었다.

많은 모험가들이 지나가는 대미궁의 입구에서 하는 키스였다. 당연히 시선은 모여들었다. 그러나 제지하는 모험가는 없었다. 좋은 구경거리라며 쳐다보는 자도 있었고, 지나가던 연인 사이의 모험가는 괜히 불타올라서 키스를 해댔다. 자유를 울부짖는 모험가답게 그들은 개방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테드는 그녀의 혀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몸을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3개월만의 느끼는 그녀의 체온과 향기는 테드의 머릿속에 있는 의식을 송두리째 날려보내기에 충분했다. 그의 눈에는 주위 광경 따윈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사랑스러운 그녀밖에 보이지 않는다.

“얼씨구. 발기까지 했네? 뭐, 3개월 동안 쌓여 있었으니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긴 한데. 여기서 떡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앳된 바알의 목소리가 달아오른 분위기에 냉수를 퍼부었다.

주위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모인 것을 알아차린 테드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에도 사이나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안고 있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바알의 말대로 발기한 그곳을 사이나의 몸으로 가리기 위해서였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테드는 지난 3개월간 욕구를 배출하지 못했다. 곁에는 바알이 있어서 손장난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바알은 심심하면 꼴에 테드를 유혹한답시고 온갖 짓거리를 다했다. 물론 테드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바알에게 욕정하는 막대먹은 놈이 아니었다. 다만 가끔가다 본신으로 돌아간 바알이 유혹할 때는 아주 약간 위험하긴 했다.

“이게 바알… 주인님의 새로운 노예… 그리고 제 후임이군요.”

“후임이라… 음. 뭐. 그렇게 되나.”

테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보였다. 그에 발끈한 것은 바알이었다. 그녀는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테드와 사이나를 번갈아가며 노려봤다.

“아앙? 저 병신은 그렇다 치고 루시퍼의 딸년, 넌 살아온 세월도 얼마 안되는 것이 날 노예 취급해? 내가 씨발, 네 아비 새끼보다 더 오래 살았어!

바알을 보는 사이나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광폭의 마왕 바알. 뵙는 건 처음이군요. 그런데 들었던 것보다 예의가 없군요. 그래선 주인님의 민폐가 됩니다. 하물며 입고 있는 옷도 바람직하지 않고요. 혹시 주인님의 성처리용 노예인가요? 그렇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닙니다만….”

“아니, 아니! 내가 바알 따위에게 흑심을 가질 리가 없잖아?!”

테드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빳빳이 서있던 물건이 축 늘어질 정도였다.

“저 놈은 내 힘이 필요해 강제로 계약을 한 거라고. 너 따위 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이 말이야. 그리고 병신아. 뭐가 바알 따위냐. 내가 본신으로 잠시 돌아갔을 때, 네 3번째 다리가 발기한 거 모르는 줄 알았냐?”

“공공장소에서 상스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군요. 조금은 주변을 살피시는 게 어떠신지요?”

“주위가 내 눈치를 보는게 맞는 일이야. 요컨대 네가 내 눈치를 봐야한다고. 그리고 상스러운 말에 관해선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잠깐. 잠깐. 여기서 이러지 말자! 주위에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잖아?”

사이에 끼인 테드가 진땀을 빼고 있었다. 사이나가 드물게도 공격적으로 말한 것은 사실이

었고, 평소라면 간단하게 받아 넘겼을 바알도 묘하게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었다.

어딘가 치정스러운 상황에서 테드를 구해준 것은 뒤늦게 헐레벌떡 뛰어온 애쉬였다. 사이나와 함께 워프게이트를 타고 바빌로니아에 도착한 그는 어느 순간부터 사이나를 놓치고 말았다. 사이나가 애쉬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다행히도 목적지는 알고 있었기에 뒤늦게 도착할 수 있었다.

“테드 님! 오랜만이에요! 엄청 보고 싶었습니다! 테드 님이 없는 사이나님은 정말…….”

테드를 본 반가움에 생각않고 말을 잇던 애쉬는 사이나에게서 날카롭게 쏘아지는 살기에 입을 꾹 다물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테드 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애쉬가 바알을 확인하고 놀라 자빠진 일은 잠시 뒤의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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