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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보랏빛 향기
촉수는 바알의 몸을 붙잡았다. 수 십 개의 촉수는 바알의 몸을 포박했다. 종아리, 허벅지, 가슴, 팔, 허리, 목 할 것 없이 감쌌다. 촉수가 워낙 많다 보니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곁에선 테드는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촉수를 재생하지 못하도록 플레임을 발동해 태우고 있었다. 바알이 촉수에 감싸인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와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공폭의 마왕이 고작 촉수 따위에 죽는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죽는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겨우 이 정도에 죽을 정도로 약하다면 언제 자신의 등에 냅다 주먹을 꽂을지 모를 그녀를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우으읍!!”
바알은 자신의 입안에 들어오는 작은 촉수를 느꼈다. 미끈한 몸체로 혀와 입안을 멋대로 휘저으며 목구멍을 향해 들어갔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촉수가 몸속에서 난리를 치기 전에 이를 세워 끊어냈다. 권능으로 몸속에 들어온 것을 확실하게 먹어치운다.
생물이라 그런지 소화 속도가 빨랐다. 참고로 씹을 때 잠깐 느껴진 맛은 톡 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촉수는 바알의 몸을 바짝 조여 왔다. 바알의 몸 전체에서 우드득 거리는, 뼈가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촉수의 몸에서 점액이 활성화된다.
파수꾼의 체액은 맹독으로 바알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바알에게 맹독은 통하지 않았다. 그녀의 뛰어난 육체는 독에 대한 저항력이 높았으며, 독이 몸에 침투했다고 해도 권능인 폭식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독을 에너지로 흡수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은데.’
몸을 조이는 촉수의 힘은 아슬아슬하게 버틸만했다. 뼈가 몇 군데 부러졌지만 현재의 바알에겐 신경도 쓰지 않는 문제였다.
가만히 있는 것으로 촉수의 독을 게속해서 흡수할 수 있으면 이대로 있는것도 나쁘지 않았다. 간간히 입을 통해 들어오는 촉수도 그럭저럭 맛이 있었고.
‘…시발?’
문제는 하반신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조르고 있던 촉수였다. 바알의 짧은 핫팬츠 속으로 촉수가 침입한 것이다.
바알은 속옷 따윈 입지 않았다. 그녀는 네메스에 속옷이란 개념이 있기 전부터 살아왔고, 딱히 없어도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핫팬츠 아래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바알은 음부에 느껴지는 감촉에 눈썹을 찌푸렸다. 감히 촉수 따위가 만질 곳이 아니었다.
당장 몸에 힘을 주어 촉수를 끊어내려는 찰나에 머릿속에 옛날일이 불현 듯 떠올랐다.
리리스라는 악마가 있었다. 그녀는 한 때 서큐버스 퀸으로 유명한 여자였다. 지금은 없는 그녀는 바알보단 약해도 마계에선 그녀와 견줄 악마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그런 리리스를 바알은 개변태년이라 불렸다.
‘그 걸레년은 온갖 것과 떡을 쳤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가리지 않았다. 지나가던 어린 남자를 덮치고 또는 같은 성별의 여자 아이도 덮쳤다. 다 늙은 노인도 덮쳤으며, 지나가던 똥개도 마음에 들면 다리를 벌리는 년이었다. 그리고 상대는 리리스에게 생기를 모조리 빨려 죽었다.
리리스는 당시 악마들에게 유명했는데 미색이 워낙 뛰어나서 죽여 달라고 찾아오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 정도가 얼마나 뛰어났냐면. 그녀와 한번 할 수 있다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라는 말이 마계 곳곳에 떠돌 정도였다.
‘그 년은 어이없게도 애완동물이랑 떡치다가 뒈졌지.’
떡으로 흥했으니 떡으로 망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만큼 바알은 직접 애완동물을 처리했다.
리리스의 애완동물은 촉수 마수였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 그것의 이름은 무심코 혀를 깨물 정도로 길고 발음이 힘들었다는 것만을 기억한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무수히 많은 촉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다. 지금 바알을 속박하고 있는 파수꾼처럼 특별한 독도 없었다.
리리스는 애완동물과 촉수플레이를 즐기다가 죽었다. 정확한 사인은 애완동물이 그녀의 자궁 속에 새끼를 낳은 것이었다. 쾌락에 빠진 리리스는 깨닫지도 못했고, 자궁 속의 새끼는 빠르게 부화하면서 리리스를 속에서부터 파먹은 것이다.
그런 리리스가 살아있을 적에 그녀는 평소 바알에게 자신의 애완동물의 자랑을 해댔다.
‘수많은 촉수에 팔도 다리도 사용하지 못한 체 온갖 구멍이란 구멍이 무자비하게 능욕당하는 게 좋다나? …역시 그 년은 지금 와서 생각해도 이해하지 못할 걸레야.’
촉수는 어느새 바알의 질속으로 쑤욱 들어와 자궁 입구에서 사정하는 것처럼 독액을 내뿜고 있었다. 물론 폭식으로 독액을 흡수하고 있어 자궁속으로 침범하지 못하고 있었다. 항문 또한 상황은 다를 것 없었다.
바알은 자신의 몸속에서 꿈틀 거리는 촉수로부터 쾌락을 느끼지 않았다. 촉수는 물렁했고 움직임도 단조로웠다. 더군다나 그녀는 리리스처럼 당하는 쪽이 아니라 하는 쪽이었다. 강제로 당하는 건 기분이 더러울 뿐이다.
‘힘도 편하고 빠르게 회복되니깐 이대로 좀 있어야겠다. 뭐, 익숙해지니깐 나쁘진 않네.’
폭식으로 몸 안으로 들어온 촉수와 몸밖에 있는 촉수를 적절히 흡수하면서 힘을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더 이상 촉수의 조이기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려치는 것이 더 아플 것이다.
그렇게 몇 십분 정도 가만히 있었을까.
아무리 서투른 애무라도 지속적이면서도 반복적으로 당하면 반응을 하듯이 그녀의 몸도 아주 조금이지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리리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지도.’
오랜시간동안 욕구 불만이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어딘가 부족하다.
촉수의 움직임은 잔잔한 호수와 같았다. 딴에는 거칠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만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바알에게 필요한 것은 호수의 고요한 수면이 아니라 바다의 파도였다. 그것도 폭풍을 만나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
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팔을 붙잡고 있는 촉수를 뿌리치고 자신의 음부로 손을 갖다대려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몸을 능욕하고 있던 촉수가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촉수의 체액이 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흐릿해진 시야로 한 명의 인영이 보였다.
손등으로 눈가를 비벼 시야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거기엔 동그란 생물을 한 손에 쥐고 있는 테드가 있었다. 그는 인상을 쓰며 바알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알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비롯한 온몸에 끈적한 보라색 점액이 가득했다. 덤으로 작은 천조가리 같은 옷은 완전히 벗겨져 몸에 걸려 있다는 말이 어울렸다. 유두와 음부를 거침없이 노출하고 있고, 음부와 항문에선 축 늘어진 촉수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뭐야, 벌써 처리했냐?”
태연히 음부에 들어가 있는 촉수를 잡아 뽑아내며 바알이 말했다. 테드가 그녀를 향해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했다. 바알은 귓구멍의 안쪽, 고막까지 촉수로 인해 능욕당해 아직 청각을 회복하지 못해 알아듣지 못했다.
바알은 귀안에 들어가 있는 지렁이 같은 촉수를 빼내어 바닥에 버렸다. 고막은 곧바로 재생했고 밖의 작은 소음까지 포착해냈다.
“야, 잘됐다. 지금 딱 좋게 달아올랐거든. 봐봐.”
바알이 다리를 척 벌리고 한 손으로 음부를 벌렸다. 작은 분홍색의 꽃잎 사이로 투명한 바닥에 뚝뚝 흘려 내렸다. 다른 한 손으로 딱딱하게 발기한 유두를 만지작 거렸다.
그 치태를 보며 한껏 얼굴을 굳힌 테드가 입을 열었다.
“엎드려.”
바알이 곧장 양손을 바닥에 짚으며 엎드렸다. 개같은 자세였다.
“과연. 넌 뒤에서 개처럼 박아대는 게 취향이었냐? 조금 마음에 들진 않지만 취향이니 존중해줄게. 박아봐 개새끼야.”
테드가 한 손으로 미간을 만졌다. 바알이 촉수랑 놀고 있을 때, 테드는 혼자서 촉수를 처리했다. 재생능력은 성가시긴 했지만 얼리고 태우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촉수는 어느 부분부터 재생하지 않았다. 협곡 곳곳에 있는 촉수의 잔해와 얼음과 잿더미는 그것의 전투의 영향이었다.
“이 미친년아. 아까는 뭐? 너나 잘하라고? 내가 저 괴물을 상대하고 있을 때 혼자서 잘도 즐기고 있더라?”
“촉수에 붙잡힌 것 못 봤냐? 시스템 때문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도 못했다고.”
“네 허벅지를 타고 내리는 투명한 액체부터 닦고 말해라, 응?”
“…이건. 오줌이야 병신아! 너무 괴로워서 나도 모르게 지려버렸어!”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는 바알의 정수에 주먹을 내리 꽂은 테드는 강제로 그녀의 입안에 들고 있던 파수꾼의 본체를 집어넣었다.
“되도 않는 소리 말고. 이거나 먹어. 그리고 힘 좀 회복해서 도움 좀 되라. 도대체가 광폭의 마왕이란 년이 도움이 안되요. 도움이.”
“으으읍?!”
마지막으로 그녀의 머리를 한 대 때린 뒤 테드를 뒤로 돌았다. 바알이 괘씸하긴 했지만, 그녀에게 벌을 주면서 헛된 시간을 보낼 시간이 없었다. 벌을 준다고 해도 그녀가 태도를 바꿀 가능성도 없었다. 오히려 거세게 반박할 것이다.
“따라와 바알.”
투덜거리며 따라오는 바알을 뒤로하고 테드는 협곡의 중심으로 향했다. 공중에 떠있는 초록색의 문앞에는 이전까지는 없던 계단이 나타나 있었다. 바알이 파수꾼의 본체를 먹으면서 나타난 것이다. 동시에 테드의 눈에는 시스템의 알림창이 보였다.
[바빌로니아의 첫 번째 차원 던전 ‘보라빛 세계’를 클리어 했습니다.]
업적 점수와 함께 칭호도 얻었다.
테드는 차원 던전을 생각하다가 관뒀다. 어차피 모르는 일이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드디어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계단에 올라선 그녀는 시선을 살짝 돌려 놀란 눈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플레인을 바라봤다.
파수꾼은 사라졌다. 플레인과 칼바람 마을 주민들도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독인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 세계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선택은 그들의 몫이었다.
30개 정도 되는 계단을 올라선 테드는 초록색 나무문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감촉은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문고리를 돌리자 찰칵이라는 소리와 함께 문이 살짝 열렸다.
테드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활짝 열었다.
“키이이익?”
“키엑?!”
“키킥에!”
문너머에는 초록색의 세계가 있었다. 초록색 하늘에 초록색 바위로 이루어진 대지다. 대지 위에는 고블린을 닮은 생물들이 있었다. 고블린과 다른 점은 코가 없고, 파충류의 두 눈과 6개의 팔을 가지고 있따는 점이다. 그 이름 모를 녹색 생물들은 무려 백 마리가 넘는 수를 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문이 열리자 일제히 테드를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말하더니 이내 달려들기 시작했다.
“…….”
녹색 생물들이 문에 도달하기 전에 테드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쉽게 밖으로 보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정작 출구는 다른 곳에 있고, 이 문은 출구가 아니라 입구일지도 모른다.
“뭐야, 왜 안 들어가? 급하다고 하지 않았냐?”
“잠깐 기다려. 여기가 아닐지도 몰라. 다른 출구 같은 곳이 없는지 플레인씨에게 물어보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출구는 없었고, 테드가 차원 던전을 벗어나 바빌로니아의 도시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주권결정전이 시작된 날로부터 3개월 뒤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