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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튜논.
장인의 도시 불카누스의 근처에 대규모 하피가 나타난 사실은 모험가 길드에 전해졌다. 모험가 길드는 즉시 원인규명에 나섰고, 그 결과 본래 하피가 살던 서식지에 새로운 던전이 나타났음을 알았다.
모험가 길드는 던전 안에 사람을 보내 던전의 내용을 파악했다. 던전은 지하로 내려가는 미로형 던전이다. 설치되어 있는 함정의 양이 많고 붉은 미노타우르스가 돌아다니고 있어서 A등급 이상의 베테랑 모험가가 아니면 던전내에서 활동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모험가 길드는 모험가들에게 미로 던전의 정보를 알리면서도 적극적으로 던전을 공략하려 하지 않았다. 미로형 던전이라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내부의 몬스터가 밖으로 나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길드의 입장에선 놔둬도 상관없는 던전을 굳이 피해를 입으면서 공략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길드와 달리 모험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공략이 되지 않은 신종 던전, 그것도 보물이 많기로 소문난 미로형의 대규모 던전이다. 최초로 공략에 성공해 얻을 보상을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다. 온갖 보물들을 가질 것이고, 대륙 곳곳에 명성이 퍼져 나갈 것이다. 손쉽게 귀족의 작위를 얻을 수도 있다.
모험가들은 서둘러 던전 공략을 준비했다. 갑작스럽게 생성된 던전은 대부분 일회용 던전이다. 한번 공략되면 던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대신에 그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던전이 공략될 때의 보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던전 공략은 경쟁이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이런 곳에 오는 게 아니었어!”
온몸에 피칠갑을 한 베니는 미친년마냥 외치며 미로를 달렸다. 등뒤로 소름끼치는 괴물의 표효가 달라붙었다.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그녀는 그저 출구를 찾아, 기억을 더듬어 왔던 길을 달렸다. 솔직히 이 길이 맞는지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한 번 지나친 길을 기억하기에는 너무 복잡했고, 그녀는 탐색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레인저가 아니었다.
만약 베테랑 모험가가 그녀의 행동을 봤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함정이 즐비해 있는 던전에서 무작정 달리는 것처럼 미친 짓은 없었기에.
그녀가 달리기를 멈춘 것은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뛰어오며 혹사한 다리가 멋대로 힘이 풀려 주저앉았을 때였다. 1초에 몇 번이나 뛰고 있는 심장이 통증이란 비명을 호소했고, 입안의 끈적해진 침이 목구멍에 달라붙었다.
시커먼 바닥에 주저앉은 베니는 두려움이 담긴 눈으로 연신 뒤를 돌아봤다. 혹여 괴물이 돌아오지 않을까. 떨리는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다행스럽게도 따라오는 인기척은 없었다. 검은 벽과 달빛처럼 희미한 빛을 머금고 있는 천장은 처음 봤을 때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젠 싫어…. 진짜…. 집에 가고 싶어…….”
베니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다리는 고장이라도 난 것 마냥 움찔거릴 뿐이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 출구를 향해 달릴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 앉아 있으면 던전이 낳는 몬스터에게 살해당한다.
베니는 아직까지도 열기를 간직하고 있는 피가 묻어있는 가죽 튜닉의 상의를 더듬거렸다. 상의 안쪽의 단단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전투가 아닌 생활용의 작은 나이프였다. 마법사인 그녀는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비상용의 보조무장이었다.
주무장인 미스릴이 함유된 은제 스태프는 동료가 괴물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있을 때, 조금이라도 빠르게 도망치기 위해 바닥에 버렸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자신의 치태를 떠올리곤 떨리는 손으로 나이프의 날을 검집에서 뽑아냈다. 과연 드워프가 만든 물건이라고 할까. 작은 나이프의 날인데도 불구하고 살기를 머금은 듯한 예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편하게….”
이것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억지로 다리를 일으켜 달린다고 해도 함정이나 몬스터와 마주치면 스태프로 없는 그녀로선 마법 한, 두 번 사용 하고 그대로 사망할 것이다.
한 번도 동료 없이 사냥해본 적 없는 베니는 던전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었다.
그저 두려움에 떨며 주저앉은 채로 몬스터에게 살해당하기를 기다릴 바에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훨씬 현명했다.
목을 들고 동맥이 있는 부위에 나이프를 가져다댔다. 민감한 목의 차가운 강철이 덜덜 떨리고 있는게 느껴졌다. 정확하게는 나이프를 쥐고 있는 베니의 손이 떨고 있었다. 애써 떨림을 멈춘다. 날에 힘이 들어가지만 피는 나오지 않았다.
더욱더 손에 힘을 준다. 차가운 날이 파고드는 느낌이 들고, 시퍼런 날을 타고 붉은색 피가 한 방울 떨어뜨렸다. 뚝, 하고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베니가 손에 힘을 뺐다. 양팔이 힘없이 늘어졌고 나이프가 바닥에 닿았다.
“……못하겠어.”
죽을 각오가 있었다면 애초에 괴물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다. 동료들처럼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죽었으리라.
지금 이 순간에서도 살고 싶다는 감정을 발견한 베니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때, 바닥을 통해 진동이 느껴지며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베니가 숨을 삼키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따라잡은 것인지 모를 2M에 달하는 회색 사자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고양이과 동물 특유의 나긋한 걸음이었다.
“…으… 아아….”
공포에 질린 베니가 신음에 걸린 비명을 질렀다. 몸은 애처롭게 떨고 있었다. 그레이 라이온(Grey Lion)은 황금색 눈동자로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분홍색의 커다란 혀가 시커먼 입술 주변을 훑었다.
저 괴물은 베니의 동료들, 베니를 제외한 8명을 단숨에 사람에서 고깃덩어리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드워프가 만든 강철검은 회색의 가죽을 뚫지 못했고, 마법은 털 오라기 하나 태우지 못했다. 거기에 회색 사자는 미노타우르스 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투에 익숙한 전사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의 민첩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저런 몬스터가 미로의 안쪽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결코 헛된 망상을 품으며 던전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 오지 마…!”
애석하게도 지금 이 순간에도 베니의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작은 나이프를 두 손을 꽉 쥐고 그레이 라이온에게 겨눴다.
헛된 저항임을 알고 있는지 그레이 라이온은 하품을 쩌억하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보이며 걸어왔다. 베니는 떨어져 있음에도 느껴지는 비릿한 냄새와 열기에 숨을 삼켰다. 그레이 라이온이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갈기가 찰랑거렸다.
지척으로 다가왔을 때, 베니가 떨리는 입술을 열어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사, 살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괴물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물론 그레이 라이온이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괴물이 입을 쩌억 벌렸고, 베니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괴물이 입이 자신의 몸을 뜯어 먹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뜬 그녀는 저멀리 떨어져 몸을 한껏 웅크리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그레이 라이온을 발견했다.
그레이 라이온의 경계하는 시선이 자신의 앞쪽에 향해 있었다. 베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검은 재킷에 달린 후드를 푹 눌러쓴 남자가 있었다. 불량하게 양손을 바지에 꽂아 넣은 그는 던전과 어울리지 않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청백색으로 빛나고 있는 철덩어리가 그를 중심으로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자신의 동료를 파리를 내쫓는 것처럼 손쉽게 처리했던 괴물의 약한 모습에 그녀는 한순간에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뒤늦게 그레이 라이온이 저 사내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 후드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베니는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그러나 사내는 이내 관심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려 그레이 라이온을 쳐다봤다.
그레이 라이온이 거칠게 포효하며 도약했다. 단숨에 사내의 앞으로 도달해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난 앞발을 후려쳤다. 투명한 벽이 괴물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레이 라이온이 이빨을 드러내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거대한 바람이 그레이 라이온을 날려보냈다. 벽에 부딪힌 괴물이 낮게 목을 울렸다.
“생각보다 방어와 반격 마법이 약하게 설정되어 있잖아. 이것도 수정이 필요하겠는데.”
테드가 질리지도 않고 달려드는 그레이 라이온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오로지 마법의 보주, 이시스를 테스트 하기 위해 이 던전에 왔다. 다방면의 능력을 가진 마법의 보주를 테스트하기 위해선 의도치 않은 전투가 필요했다. 전쟁터에 갈 수는 없으니 던전이 조건에 맞았다.
허공에서 생성된 얼음의 창이 그레이 라이온을 꿰뚫었다. 물론 테드가 사용한 마법이 아니다. 그는 이시스에게 단 하나의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명령을 내리는 순간 자율행동에 대한 테스트는 실패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약점 속성을 노린 것을 보면 분석 능력은 문제없고.”
그러나 그레이 라이온은 쓰러지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르며 거대하고 단단한 육체를 믿고 달려들었다.
그레이 라이온의 몸이 단숨에 얼어붙었다. 그 육체에서 거대한 얼음 꽃이 피어났다. 더 이상 숨쉬지 않는 괴물은 바닥에 맥없이 쓰러졌다.
“……아니. 상대의 기량을 파악하지 못 한 건가. 한 번에 죽이지 못했잖아. 분석 능력에도 약간 문제가 있어.”
테드가 짧게 혀를 찼다.
그래도 이시스의 반응 속도는 합격점이었다. 인지하는 공간을 매우 좁지만, 그 공간 내에선 테드 보다 반응속도가 빨랐다. 컴퓨터 급이었다.
또한 함정 탐색 쪽도 만족스러웠다. 마법으로 인한 탐색이라 불안한 점도 없잖아 있지만, 지금까지 놓친 함정이 없어 함정 발견율이 100%에 달했다.
문제는 자율방어에 있었다. 테드의 뜻이 일제 들어가지 않는 이 시스템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가령 방금전과 같이 쓸데없이 방어벽을 펼친 것에 대한점이다.
그레이 라이온은 명백한 적인데도 불구하고 공격마법이 아닌 방어마법을 우선적으로 펼쳤다. 이시스의 스펙이라면 처음 그레이 라이온이 달려들었을 때, 속성계열 마법으로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무기 주제에 쓸데없는 자비는.”
테드는 수정할 것을 기억해두며 던전의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시스가 발하는 청백색의 빛이 시무룩하게 꺼져들어갔지만 어디까지나 기분탓 일 것이다.
“저, 저기…!”
테드가 베니를 지나치는 순간,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테드가 주저앉아 있는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려 쳐다봤다. 그녀의 옷은 피로 얼룩져있어 엉망진창이었다.
“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이정도로 뭘요.”
테드는 이시스에게 의지를 보냈다. 녹빛의 마법진이 베니의 아래에서 나타났다. 회복의 기운이 그녀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시스가 쓸만한 회복 마법이 발동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10초 전후. 회복 마법의 복잡함을 고려하면 만족스러운 속도였다.
“이건… 리커버리…!”
“힘들어 보이기에 사용했어요. 이제 걷는데 문제없겠죠. 그럼 전, 할 일이 있어서 이만.”
“저, 저기.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절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더, 던전의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사례는 반드시 할테니…!”
베니가 양손으로 자신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불안에 찬 눈으로 말했다.
얼굴과 머리카락은 엉망에다가 산발이며 옷은 피투성이였지만, 자신의 외모는 뛰어났다. 남자란 생물은 거의다 비슷비슷하니 그가 자신을 도와주리라 생각했었다. 그래. 그레이 라이온 정도를 아무렇지 않게 상대해버리는 그라면 잠자리 정도는 가져줄 수 있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몬스터는 전부 처리해서 함정만 조심하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거에요. 뭣하면 여기서 기다리세요. 던전이 클리어되면 자동으로 밖에 나갈 수 있을 테니. 아마 다시 몬스터가 생성되기 까지 3시간 정도는 걸릴 테니 여기 있어도 충분하겠죠.”
블링크는 몰라도 텔레포트 계열의 장거리 공간 이동 마법은 시스템에 의해 막혀 있었다.
“클, 클리어라니….”
“정 불안하면 뒤에 분들처럼 절 따라오시던가요. 방해만 하지 않으면 상관없어요.”
베니가 뒤를 돌아봤다. 뒤늦게 모험가 8명이 사내의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걸 발견했다. 그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서 뒤에 있는 모험가들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여자 모험가는 2명이고 나머지 6명은 남자였다.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개중에는 팔 한 짝을 잃거나 베니처럼 온몸에 피칠갑을 한 남자도 있었다. 그들은 패잔병같은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테드는 알아서 선택하라는 말을 남기고 이시스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 미로의 안으로 들어갔다. 이시스는 착실하게 던전의 핵, 미로의 끝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베니는 잠시 황금색의 새문양이 새겨진 등을 쳐다보다가 슬그머니 패잔병 무리에 합류했다. 출구로 돌아가다가 몬스터와 만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고, 이런 곳에 혼자 오도카니 남아있기는 죽어도 싫었다.
베니의 입가에 아주 희미하게, 자세히 쳐다봐도 모를 안도의 미소가 돌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