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204화 (20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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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튜논.

테드는 작업실의 책상 앞에 앉아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튜논에 온지 3주째 되는 오늘은 식사와 용변을 제외하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멍하니 있는 것은 저녁이 지나고부터 아침부터 쌓인 피로가 한계에 다해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업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현재가 바로 작업의 막바지, 보주의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남은 것은 마지막 조각, 테드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작은 ㄴ형의 미스릴 조각이다. 고전 게임인 테트리스의 조각처럼 생긴 이것은 마스터 마이스터인 강철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물건이다.

미스릴 순도 99% 이상에 마나 액체를 이용해 미스릴의 특성 중 하나인 마나전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테드의 손바닥 위에 있는 이 작은 조각하나의 가격만 따져도 웬만한 명검에 필적할 정도다.

테드가 천장에서 조각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력은 충분하고 영력은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피곤한 정신 쪽이었다. 조각에 영력이 포함된 마법식과 마법진을 새기는 초미세 작업은 지나치게 집중력을 갉아먹었다. 이미 2번 정도 실패했고,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기려 하고 있었다.

“힘든가? 정 그렇다면 내일 하도록 하게. 시간은 많으니 굳이 지금 끝낼 이유는 없다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작업복을 입은 드워프, 강철이 말을 걸어왔다. 그의 얼굴에도 숨기지 못한 피로의 기색이 가득했다.

테드가 마법 부여에 매달려 있을 동안, 그는 에이션트 드래곤 하트에 매달려 있었다. 최대한 작은 손실로 드래곤 하트를 보주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드래곤 하트의 성능이 확 내려가는 중요한 일을 그는 오늘 저녁 무렵에 완벽하게 끝마쳤다.

“대부분은 완벽하게 끝났어요. 남은 건 마법진의 마무리뿐이죠. 그리고 여기서 포기하고 자면 찝찝해서 잠도 잘 안 올 것 같네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 나도 그런 적이 많거든. 하지만 완전한 컨디션에서 완성하는 것도 좋을 수 있네.”

“이번에 실패하면 내일 해야겠죠.”

후, 하고 입으로 숨을 내쉬며 정신과 몸을 가다듬는다.

손안에 있는 미스릴 조각을 지긋이 노려보며 마력을 일으켰다. 그에 반응하듯 미스릴 조각에 새겨진 마법식과 마법진이 청백색의 빛을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선은 마력이다. 마력을 이용해 미스릴 조각 전체를 감싸고 마력을 압축시켜 천천히 마법식과 마법진을 새긴다.

마법진을 새기는 것 까진 쉽다. 여기까지는 테드도 전력으로 집중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으로 이루어지는 영력을 부여하는 작업이 문제였다.

마력과 영력을 함께 미스릴 조각으로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력과 영력이 미스릴 조각에서 서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돌의 결과는 마법진의 파괴였다.

영력은 코팅한 마법진의 내부에 부여한다. 테드는 주사기를 이미지 했다. 혈관 내에 바늘을 꽂아 넣어 내용물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마법진의 안쪽, 마력과 마법식 속에 영력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내부로 흘러 보내는 일이다.

영력이 미스릴 조각의 핵심이었다.

테드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마력과 달리 영력은 다루는 게 쉽지 않았다. 마력이 활발하고 가볍다면 영력은 육중했으며 움직이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영력이 한 번 움직인다면 그 파급력은 마력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윽.”

미스릴 조각 내부에서 마력과 영력이 반발했고,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테드가 내부가 강제로 흔들리는 느낌에 눈살을 찡그렸다. 자신의 몸 안에선 잘만 공존하던 것들이 밖으로 나오니까 아주 개판이었다.

영력을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심에 영력이 자리를 잡는 순간 지금의 반발이 거짓말처럼 안정될 것이다.

몇 십번이나 해왔던 일이었다.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영력이란게 워낙 높은 집중력과 정신력을 동반하다보니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다. 영력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기진맥진한 테드가 밝게 빛나고 있는 미스릴 조각을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조각은 손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완성했군!”

강철이 기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예예, 완성했죠.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어요.”

테드는 얼굴에 묻은 식은땀을 손바닥으로 훔쳐내며 대답했다. 다행히도 마지막 단계는 굳이 테드가 있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쉬운 일이었다.

“나머지는 내가 하겠네. 자네는 좀 쉬도록 하게.”

“아뇨. 어차피 더 이상 제가 할 일은 없으니 끝까지 볼게요. 제가 사용할 물건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면 막을 수 없겠군. 조각을 들고 따라오게.”

테드와 강철이 향한 곳은 작업실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밀실 공간이었다. 대장장이나 요리사나 제작 관련 일을 하는 이들에게 있어 물건을 최상의 상태로 관리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제작 재료 중에는 조금만 방치해도 작품을 영향을 줄 정도로 상하는 물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몬스터의 시체에서 얻은 부산물… 가죽이나 눈알 등등이 그렇다. 당연한 말이지만 잘 상하지 않는 물건이라도 중요한 것이라면 관리가 필수불가결이다.

강철은 작은 작업실 하나를 드래곤 하트를 위한 방으로 개조했다. 테드의 도움을 받아 결계를 치고, 최대한 주변 환경을 조정했다.

“여긴 몇 번을 들어와도 시원하네요.”

“에이션트 드래곤 하트의 마나 때문이네.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마나가 주위를 시원하게 만들지.”

중앙에 놓인 은색 테이블 위에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아르손의 심장이 있었다. 그건 압축되어 동그란 구슬로 변해 영롱한 빛을 주위에 발산하고 있었다.

“자네가 원하는 대로 압축했네. 안정성따윈 무시하고 마나동력의 능력만을 한계까지 높였지. 솔직히 말하자면 충격에 너무 약해 걱정이 될 정도네. 아마 어린아이의 주먹질 한 번으로도 쉽게 부서질 것이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심장에서 나오는 마나의 순도가 높고 양이 많아 제어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아마도 테드 정도의 실력을 가진 마도사가 아니라면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강철은 생각했다.

“걱정 마요. 영감님이 준비해준 설계대로라면 전혀 문제없으니까.”

“그 설계의 절반이상은 수아가 했지. 솔직히 미스릴 조각 하나만해도 5개 이상의 마법진을 그려 넣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네. 자네 도대체 얼마나 굉장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건가?”

마법을 새기는 일은 오로지 테드만 맡아서 문외한인 강철은 모르지만 미스릴 조각 중에선 10개 이상의 마법진이 들어간 것도 있었다.

“제가 마법에 도가 텄다니까요.”

테드가 고개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와 강철은 혹여 발걸음에서 비롯된 진동이 에이션트 드래곤 하트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중앙으로 걸어갔다.

“자네가 하겠나? 내가 했다가 괜히 심장이 박살나면 책임질 수도 없게 되네. 그런 위험성을 감수할 정도로 강철심장이 아니라네. 이름은 강철이지만.”

“그 농담은 재미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하죠. 뭐, 여기오고 나니까 피로가 사라진 느낌이니까요. 그런데 수아양은 어디에 있나요? 이런 중요한 일에 코빼기도 드러내지 않는게 이상한데.”

“자네 메이드에게 신부수업을 받고 뻗은 모양이네. 꽤나 호되게 당한 모양이야.”

강철은 제 손녀가 메이드에게 혼나는 것이 그리 좋은지 히죽 웃어댔다.

테드에겐 정말로 어이가 없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비공식 레이스는 하피의 등장으로 무산되었다. 당연히 강철과 수아 사이에 있던 내기도 자연스레 소멸했다.

그러나 강철은 수아에게 거래를 시도했다. 수아가 원하는 비공정의 설계도를 내주는 대신에 그녀가 신부수업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비공정의 설계도를 원한 수아는 희희낙락하며 거래를 받아 들였고, 지금에 와서는 배신감을 느끼며 아주 반항적인 눈길로 강철을 노려보고 있었다.

테드는 유리상자를 오픈하기 전에 아공간을 열어 그동안 자신이 새겨 넣었던 미스릴 조각들을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꺼내 테이블위에 늘여 놓았다.

총 112개 미스릴 조각이며 비슷한 형태는 있어도 완전히 똑같은 형태의 미스릴 조각은 없었다. 어떤 것은 둥글면서도 각이 져있고, 어떤 것은 길쭉하면서도 뾰족했다. 이것들에는 제각각 최소 3개, 최대 12개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도합 776개의 마법진. 이 중에서 똑같은 마법진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테드가 양손으로 유리 상자를 들어올려 바닥에 조심스레 넣어났다. 드래곤 하트가 풀려나면서 마나가 사방으로 몰아쳤다. 테이블 위에 두었던 미스릴 조각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미스릴 조각에서 흘러나오던 영롱한 빛의 세기가 점점 더해져 갔고 그에 답하듯 심장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 신비롭고도 환상적인 광경에 테드와 강철은 눈을 깜빡거리는 것도 잊고 쳐다봤다.

이윽고 미스릴 조각들이 하나씩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태양 주위를 떠도는 행성처럼 모여들어 떠돌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면 112개의 조각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각과 심장은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조각은 허공을 떠돌면서 심장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이내 심장에 작은 직삼각형 모양의 미스릴 조각이 처음으로 달려 붙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미스릴 조각들이 심장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하나 혹은 두 개 동시에 빠른 속도로 심장에 달라붙는다. 112개의 조각이 모두 달라붙는 것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완성된 것은 완벽한 구체를 이루고 있는 은백색의 보주다. 보주의 겉부분에는 청백색의 빛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시스.”

테드가 무심코 보주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전무후무한 위대한 보물이 만들어졌습니다.]

[마법의 보주 이시스.]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칭호, ‘이시스의 제작자’를 획득합니다.]

[칭호, ‘이시스의 주인’을 획득합니다.]

[업적 점수 72,000을 획득합니다.]

“이건! 자네에게도 떠올랐나? 업적 점수를 무려 4만이나 벌었다네! 내가 비공정을 만들었을 때도 1만 정도가 전부였는데!”

강철이 경악을 숨기지 않았다. 테드는 자신이 받은 업적 점수를 가르쳐줄까하다가 관뒀다. 괜히 그의 고양된 기분을 바닥으로 떨어뜨릴 필요는 없었다.

“전무후무한 위대한 보물이라….”

테드가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은 듯한 뿌듯함을 느끼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이시스가 움직였다. 구체는 자연스럽게 날아와 테드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마치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애교를 떠는 듯한 모습이었다. 테드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이시스를 오른손으로 붙잡았다.

이시스와 무언가 이어진 느낌이 들었다. 테드가 혹시나 싶어 이시스를 향해 의지를 보내보았다.

왼쪽으로 움직이라고.

이시스가 왼쪽으로 움직였다. 테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보주는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남은 것은 성능은 테스트 하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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