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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00화 (20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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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튜논.

“이런 미친!”

강철이 소리를 꽥 질렀다.

에이션트 드래곤이 죽었다는 소식은 강철도 들었다. 그러나 강철은 믿지 않았다. 먼 곳에서 벌어진 일이 그렇듯 으레 소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령 진실이라고 해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자네 그건 또 어떻게 얻었나?!”

“제가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수호룡들의 웅장한 모습은 말로는 표현하기 부족할 정도죠.”

“그 광폭의 마왕인 마왕도 보았나? 듣기로는 머리가 3개에 뿔이 12개, 입에서 지옥불을 뿜는다고 하던데.”

소문이 전해지는 와중에서 꼭 왜곡되는 것이 있었다.

실제로 바알의 외모는 어린 여자아이다. 소문을 퍼뜨리는 자가 광폭의 마왕이란 별칭을 듣고 본적도 없는 바알의 외모를 멋대로 상상해서 덧붙인 것이다.

“…네. 뭐, 그렇죠.”

테드는 소문을 정정하지 않았다. 바알의 실제 모습을 설명한다고 해도 강철이 쉽게 믿을지 알 수 없다. 또 그가 앞으로 바알을 직접 만날 것도 아닐테니 그럴 필요도 없다.

“바알과 만났을 땐 저도 죽을 뻔 했죠. 다행히 살아서 아르손의 시체를 얻었지만요. 무려 에이션트 드래곤의 심장이에요. 드워프로서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나요?”

“하하. 두근거리네. 언제 후환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지.”

현존하는 에이션트 드래곤이 모두 죽었다고 하더라도 아르손의 시체의 행방을 알고 있다면 드래프리온에서 어떤 더러운 짓거리를 해서라도 손에 넣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호룡은 드라칸에게 있어 경외의 대상이니까.

“괜찮아요. 바알은 관심도 없을 테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매우 적거든요. 후환은 없을 거에요.”

“그렇게 확신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한 번 해볼까.”

아닌 척 했지만 한 명의 장인으로서 에이션트 드래곤 하트라는 희대의 재료를 사용수 있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강철은 에이션트 드래곤 하트로 고작 보주를 만든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의 머릿속에는 드래곤 하트의 사용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선 그 심장부터 한 번 볼까. 일단은 재료의 상태를 알아야 보주를 만들지 않나?”

테드는 긍정하며 아공간에서 푸른빛의 구슬을 꺼냈다. 어른 주먹보다 약간 더 큰 푸른색 구슬은 내부에서부터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공간의 마나가 순식간에 요동치는군. 이게 에이션트 드래곤의 심장인가…. 이 형태를 보아하니 자네가 따로 심장을 가공했군.”

“가공하지 않으면 사용하기 까다로우니까요.”

가공하지 않은 드래곤 하트는 생물의 거대한 심장이었다. 그 상태로 내버려두면 빠르게 부패되면서 막대한 마나까지 손실된다. 아르손의 경우엔 수마에 빠진 테드를 대신해 사이나가 발빠르게 대처해준 덕분에 심장을 최고의 상태로 얻을 수 있었다.

강철은 테드에게서 심장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한 번 눈앞으로 들어올려 조명에 비추어본다.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댔음에도 불구하고 푸른색의 빛은 조금도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바라보고 싶은 중독성까지 있었다.

“이것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품이야. 또 단지 만지고 있는 것뿐인데도 마나가 충만해지는 기분이군. 엄청나군. 엄청나.”

강철은 시어머니처럼 깐깐하게 에이션트 드래곤 하트를 요리조리 살펴봤다. 최고 장인의 눈으로도 문제를 찾아볼 수 없었다. 가공한 실력마저 엄청났다.

지긋이 바라보던 강철은 혀를 내밀어 구슬을 핥았다. 강철의 얼굴은 한 없이 진지했다.

“…….”

테드가 사이나의 양어깨를 잡고 드워프와 거리를 벌렸다.

“으음. 맛은 없구만. 자. 돌려주겠네.”

테드는 그가 내미는 드래곤 하트를 받을 수 없었다. 한 쪽 표면이 강철의 타액으로 번들거렸기 때문이다. 만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왜 갑자기 핥고 그래요? 혹시 그쪽 성벽이세요?”

“그 말은 조금 무례하군. 아무리 드워프라도 물건을 핥는 성벽을 가진 자는 없을 거네. 일단 내가 이걸 핥은 것에 대해 말하자면… 일종의 실험이네. 드래곤 하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타고난 영약으로도 유명하지 않은가? 에이션트 드래곤의 심장을 핥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관해서 호기심이 일었네.”

“…이 하트랑 그 하트는 제조법이 조금 많이 다른데요.”

“복용과 실용의 차이지.”

아르손의 심장을 받은 테드는 당장 손수건을 꺼내 표면을 빡빡 문질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좋네. 보주를 만드는 것이 아까울 정도야. 그래서 말인데… 혹시 그걸 이용해 비공정을 만들 생각은 없나? 내 감정 스킬로 보자면 그건 완성된 무한동력기나 다름없네. 마나를 소모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마나를 회복하지. 출력 또한 마석과는 비교도 불가하니… 비공정의 핵으로서 그보다 적합한 것은 없어.”

“의견은 고마우나, 비공정은 관리가 힘들어서요. 거기다 국가의 허락 없이 함부로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잖아요.”

“국가의 허락 정도면 마스터 마이스터인 내가 받아 줄 수 있네. 그 심장이라면 강철 비공정… 아니, 공중전함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지도 몰라.”

“…공중전함! 그건 끌리는데.”

테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공중전함을 타고 지상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남자로서 끌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래도 테드는 유혹을 떨쳐내듯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 하트가 최대한의 효율을 발동하기엔 전함보다는 보주 쪽이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제가 이 심장을 보주로 만드는 건 전투를 위해서입니다. 전 다가올 큰 전투에 준비해야만 해요.”

강철은 테드의 두 눈을 쳐다봤다. 십 수초간 말없이 쳐다보던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더 말해도 어쩔 수 없겠군. 좋네. 보주로 만들겠네. 알고 있겠지만, 보주 제작의 일에는 마법사인 자네의 도움이 필수네. 우선 설계부터 해야겠군. 필요한 재료는 미스릴은 기본이고… 무한동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미세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겠군.”

“……설계도 쪽은 강철님에게 맡기도록 하죠. 전 그쪽 방면은 영 아니어서.”

“알겠네. 설계는 내가하지. 일단 말해두겠네만, 자네의 부탁으로 하는 일인 만큼 의뢰비는 받지 않겠다만, 재료비는 받을 거네. 솔직히 의뢰비도 받고 싶네만 그건 마스터 마이스터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

“아. 그렇군요. 사실 재료 일부를 의뢰비로 지불하려고 했는데. 다행이네요. 좀 귀한거라.”

“으음? 그 재료가 에이션트 드래곤 하트의 심장은 아닐테고…. 미스릴인가? 귀한 물건이지만 나도 충분히 가지고 있네.”

“아뇨. 이거에요.”

테드가 아공간에서 단단하게 밀봉되어 있는 투명한 병에 담긴 푸른색 빛을 내는 액체를 꺼냈다.

강철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리는 양손을 테드에게 내밀었다. 테드는 쿨하게 병을 건넸다.

“…이거 참. 반짝반짝 거리는 특이한 물이구만. 어떤 마법을 걸었나?”

“어차피 감정 스킬로 확인하지 않았어요? 그냥 포기하고 받아들이시죠.”

“그래. 그래. 마나액체. 설마 이걸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오늘이 나의 생일이었던가?”

“미리 말해두는데. 핥지 마요. 그리고 마스터 마이스터의 자존심으로 의뢰비는 필요 없다고 하셨죠?”

강철이 재빨리 테드의 앞에 무릎 꿇었다. 애절한 얼굴을 지어보이며 사정했다.

“마스터 마이스터를 고용하는데 이보다 더한 의뢰비는 없다네! 솔직히 의뢰비가 있어야 자네도 가오가 살고, 나도 전심전력으로 작업에 임할 수 있지 않겠나?!”

“가오라니…. 일단 이 일은 비밀리에 하는 것이니 딱히 상관없는데.”

“제발 부탁하네! 아주 조금! 엄지손가락 정도로도 괜찮으니 나눠주지 않겠나?!”

“한 병 더있으니 그걸 통째로 드리죠.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말해보게 내 웬만한 일이라면 들어 줄 테니! 그래 내 손녀를 원하나?”

“이거 큰일 날 드워프네. 농담은 그만두고, 제 조건은 간단해요. 센테나리오. 저거 한 번 몰게 해줘요.”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아른 아른거렸다. 마나액체는 원래 의뢰비로 준비했던 것이었고, 센테나리오의 시승은 덤이었다.

“세, 센테나리오를 말인가. 음….”

강철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손안에서 찰랑이는 마나액체를 보고 결심을 굳혔다. 설령 천골드를 준다고 해도 자신의 애마를 타게 해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나액체는 너무나 탐이 났다.

“좋네. 시승 시켜 주겠네. 그래. 자네도 한국 출신의 사도이니 자동차에 관심이 많겠지. 면허는 언제 땄나?”

“제가 20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대학생활도 즐기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면허가 뭐죠?”

“음. 그렇군. 액셀러레이터가 어디에 있고, 브레이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발 닿는데 있겠죠.”

“…N과 R, D가 뭔지는 아나?”

“허 참. 그건 초등학생도 알아요. 전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였던 제가 모를 리가 없죠. 알파벳이잖아요. 아, 뭔가의 줄인 말인가요? N은 노틸러스 R은 라이즈. D는 드레이븐.”

“……아무리 그래도 속도 계기판은 볼 줄 알겠지.”

“도로에서 시속 200KM 이상으로 화끈하게 달려 보는 게 꿈이었죠. 꿈은 이루어지는 군요.”

테드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장인의 자존심이 되살아나는군. 의뢰비는 필요 없네. 특별히 공짜로 해주지.”

강철이 마나액체를 가져가라는 듯 내밀었다. 테드는 마나 액체를 받지 않았다.

“한 병더 있으니 그걸 의뢰비로 드리죠. 아, 명색에 슈퍼카이니 300KM는 되겠죠. 제가 어렸을 때 레이싱게임을 아주 잘했죠.”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이 계약, 없던 것으로 하지 않겠나?”

⁂ ⁂ ⁂

테드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비공정 정비소에서 불카누스를 내려다 봤다. 불카누스는 다른 도시와 다르게 지구의 근대 도시와 닮아있었다. 타국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빌딩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시계탑이 줄지어 서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상할 정도로 시계탑이 많다는 것이다.

회색빛이 가득한 도시에선 기름 냄새가 은연중에 맡아졌다. 좋게 말하면 도시의 냄새였고, 나쁘게 말하면 공기오염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이나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테드는 그리운 느낌까지 들었다.

테드는 서쪽 바위산 쪽을 쳐다봤다. 그곳에서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묘한 열기까지 느껴지는 그곳에선 사흘뒤에 열리는 비공식 레이스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말이 비공식이지 이 도시의 시민들은 모두 레이스의 존재를 알고 기대하고 있었다.

테드도 사흘 뒤, 저기서 시승하기로 했다. 물론 레이스가 끝난 뒤다.

“뭘 그렇게 감성에 젖어있나. 자네는 이보다 더한 도시에 살았었지 않았나? 그 도시의 강철로 된 마차가 굴러다니고, 강철덩어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별천지에 비하면 여긴 아무것도 아니네.”

여전히 작업복을 입은 강철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작업복을 입은 젊은 드워프가 있었다.

“여기서 생활하면 좋겠네요. 여러 가지로 편할 것 같으니까요.”

“편하긴 한데. 조금 많이 시끄러운 도시지.”

강철은 젊은 드워프에게 일을 시키고서 테드를 향해 돌아봤다.

“이제 날이 저물어지는 군. 아직 호텔을 정하지 않았다면 우리집에 머물지 않겠나? 내 작업실도 집에 있으니 의뢰와 관련되어 묻고 싶은 것도 있네.”

“저도 나중에 집하나 장만할건데 마스터 마이스터의 집을 보고 참고 좀 해야겠네요.”

“마나 액체 한 병더 있다면 말만하게. 당장 우리집 보다 더 좋은 집을 지어주지.”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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