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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튜논.
“별건 아니고. 그냥 마법을 하나 부여해주었으면 하네.”
테드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가 마법사에게 부탁하는 건 대부분이 자신의 물건에 마법을 부여 할 때뿐이었다.
“원하시는 마법은요?”
테드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메테오 같은 어처구니없는 마법을 부여해달라고 한다면 단번에 거절할 생각이었다.
“충격완화(Mitigation) 마법이네. 다만 내가 원하는건 보통의 3배는 뛰어난 충격완화 마법이네.”
“충격완화 마법을 어디에 사용하시려고요? 재료와 용도에 따라 어디까지 가능할지 대충 가늠할 수 있어요.”
“가능하다는 건가?!”
강철은 자신이 부탁해놓고서도 깜짝 놀라 말했다. 일류 마법사도 고개를 내저으며 3배 출력의 마법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충격완화 마법을 5개를 동시에 걸면 3배 출력이 나온다고 했다.
“예. 가능해요.”
“여러 개의 마법진을 그릴 여분의 자리는 없네. 기껏해야 2개가 고작이네.”
“마법진의 자리는 딱히 상관없는데요. 중요한건 다른 요소가 마법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마법과 어울리는 재료여야 한다는 거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재료는 딱히 상관없었다. 테드는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돌멩이에도 마법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했다. 비록 품질은 책임지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그건 걱정 말게. 재료는 최고라 할 수 있으니!”
강철이 자신있게 말하며 자신의 단단한 가슴을 탕탕쳤다. 그리고서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 손짓했다.
“자네 덕분에 내 최고의 역작목록에 하나가 추가되겠군.”
희희낙락한 강철은 테드와 사이나를 이끌고 비공정의 가장 아래층으로 향했다. 현재 승객들에게 공개 된 것은 최상층과 최하층을 제외한 부분이었다.
최상층은 비공정의 조종실이 있었고, 최하층은 비공정의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심장부라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최하층의 일부는 강철의 작업실이기도 했다.
최하층에는 작업복을 입은 드워프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강철은 익숙하게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신의 작업실로 테드와 사이나를 안내했다.
“음. 내 작업실을 외부인에게 공개해주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구만.”
강철이 오자마자 작업실의 불을 켰다. 그러자 내부가 환하게 비춰졌다. 천장은 5M 정도였으며 벽은 창문하나 달려 있지 않은 음침한 회색이다. 공기중에 배여 있는 기름 냄새가 진하게 맡아졌다.
“이건 설마….”
작업실의 한 중앙에 놓인 검은색의 물건을 보며 테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철이 테드의 반응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지구인이구만.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되겠지.”
그것은 네메스 대륙에선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동차였다. 그것도 소가 떠오르는 브랜드를 가진 슈퍼카와 모습이 매우 흡사했다.
테드는 침을 꼴깍 삼키며 광택이 돌아 반짝반짝 거리는 슈퍼카를 쳐다봤다.
“세, 센테나리오…!”
기억의 밑바닥에서 불현 듯 그 이름이 떠올랐다. 그래. 분명 그런 이름이었을 것이다.
“호오. 자네도 알고 있나! 이거 정말 반갑군!”
“이, 이걸 직접 만드셨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네메스 대륙에도 자동차는 존재한다. 다만, 겉보기엔 그냥 말 없는 마차에 가깝다. 자동차라 부르기엔 무언가 미묘해서 마법차라고 부른다.
“닮은 건 겉모습뿐이네. 내부는 전혀 다르지. 성능도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떨어지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데요…! 하지만 이런 비효율 적인 걸 왜….”
네메스 대륙의 도로는 수준이 나쁘다. 도시와 도시 사이는 그나마 괜찮지만, 마을과 도시 사이에는 도로라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다. 동시에 길에는 몬스터가 간간히 튀어나온다. 슈퍼카를 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덤으로 자동차보다 더욱 효율적인 워프게이트가 존재했다. 돈만 있다면 마법으로 편안함을 추구한 마차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일종의 취미이네. 내가 보기보다 자동차를 상당히 좋아한다네. 그리고 이번에 레이스가 있어서 말이야.”
“정말 좋은 취미군요! 그런데 레이스란건?”
“열심히 차를 만들었는데 썩혀 두기엔 아깝지 않나. 그래서 직접 레이스를 준비했지. 그리고 레이스 트랙은 이미 완성되었네. 반년 정도 후에 정식으로 이벤트를 열 생각이네. 이번에 테스트를 위해 비공식 레이스를 개최했고.”
“……레이스를 위해 차를 준비하게 아니라, 차를 위해 레이스를 준비한건가요. 대단하시군요.”
순수한 감탄이었으나 강철은 어떻게 알아들은 것인지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어렵진 않았네. 이래보여도 불카누스의 3명의 의장 중 한명이면서 마스터 마이스터라네.”
튜논에는 드워프의 왕이 존재하면서도 귀족이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귀족과 비슷한 마이스터 등급이 있다. 마스터 마이스터는 다른 국가에 가면 공작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 어디에 충격완화 마법을 걸면 되나요?”
“저 차라네. 원래는 하이퍼카의 스펙을 절반 이상은 구현해보려고 했는데… 절반의 절반도 불가능했네. 최대한 속도를 올리려다 보니 엔진에 가해지는 충격이 엄청나게 됐네. 한 번은 시동을 켰을 뿐인데 엔진이 고장 났지 뭔가.”
“그래서 충격 완화 마법을 엔진에 걸려는 거군요.”
“일반적인 충격완화로는 부족하네. 3배가 아니라면 견디지 못할 정도지.”
테드는 문득 그가 사이나의 메이드복의 가치를 알아봤다는 것을 떠올렸다. 확실히 여러 마법이 부여되어 있으나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옷에 불과했다. 마법사라도 간파하는게 쉽지 않을 정도다.
“용케 메이드복을 보고 제가 마법 부여 솜씨가 뛰어나다는 걸 아셨군요. 보통은 못 알아 볼텐데.”
“내겐 감정 스킬이 있네. 눈에 보이는 건 일단 감정해보는 게 버릇이 되어버려서 말이네. 덕분에 알게 되는 게 참으로 많지. 아, 자네의 그 옷은 도대체 어떤 물건인가? 내 감정 스킬로도 자세히 알 수 없군.”
“조금 특별한 물건이죠.”
테드의 말은 그걸로 끝이었다. 부족한 설명이었으나 강철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특별한 옷보다는 자신의 애마에 집중되어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게. 엔진은 꺼내 놓았으니 자네는 마법만 부여해주면 되네. 엔진의 재질은 걱정 말게. 순도 높은 미스릴을 절반 이상 사용한 합금일세.”
강철이 작업실 한 구석으로 이동해 도르래를 꺼내왔다. 도르래의 체인에는 은색의 엔진이 매달려 있었다. 엔진은 테드가 봐도 도통 모를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테드가 대충 알 수 있는 건 엔진에 걸려 있는 몇 가지의 마법뿐이었다.
“여기 이 부위일세. 여기에 부탁하지. 몇 시간 정도 걸리겠나?”
엔진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테드를 향해 강철이 물었다.
“3분 정도면 될 것 같네요.”
“3분? 3시간이 아니라?”
“제가 좀 지나치게 뛰어나서.”
테드가 엔진의 한 부분에 손을 뻗었다. 때하나 묻지 않은 엔진은 차갑고도 미끄러웠다. 테드의 손이 닿자 표면에 하얀 빛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찬란하게 빛나는 마법진을 보며 강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마법사는 마석을 이용해 직접 손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손을 대자마자 자동으로 마법진이 그려지는 식이 아니었다. 저런 방법은 처음 봤다.
‘미스릴로 되어 있어서 따로 마석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
엔진의 에너지도 마나였다. 따라서 마법을 한 번 새기면 자동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테드는 충격완화 마법을 걸면서 잠시 고민했다. 생각보다 엔진의 재료가 좋았다. 이 정도면 3배가 아니라 6배도 가능했다.
‘작은 톱니바퀴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고 하니, 3배인 이유가 있겠지.’
테드는 3분도 지나지 않아서 손을 뗐다. 생각 같아서는 엔진 곳곳에 그려진 마법진을 뜯어고치고 싶었다. 테드의 눈에는 조잡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벌써 끝났나?”
“끝났어요. 재료가 좋고 마법진간의 충돌도 없어서 빨리 끝났네요.”
“그, 그렇군. 한번 실험 해봐도 되겠나?”
“당연히.”
마스터 마이스터는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안절부절 못하면서 엔진을 차에 넣기 시작했다. 한, 두 번 해본 것이 아닌 듯, 그의 손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10분이 지나지 않아 엔진은 본래의 자리를 찾았다.
“그럼 시동을 걸겠네!”
남자의 심장을 뛰게하는 우렁찬 배기음이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 테드는 감탄을 했고, 사이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기계의 심장 소리를 단순한 소음으로 취급했다.
강철은 몇 번더 시동을 껐다, 켰다하면서 엑셀레이터를 밟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 장인의 얼굴은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완벽해! 레이스의 1등은 따놓은 단상이겠어! 자네 덕분이네!”
“뭘요. 간단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이건 거래이기도 하니까요.”
“…그렇지.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지. 드워프에게 부탁하는 것은 한정되어 있지. 자네는 무엇을 원하나?”
전사나 귀족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드워프를 찾았으나 마법사들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드워프들에게 원하는 것이 없는 반면에 드워프는 마법사들의 마법이 자신의 작품에 담기기를 원했다. 강철은 마법사인 테드가 자신에게 부탁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테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오늘 처음 만난 그에게 사실대로 말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허나 제대로 된 물건을 위해선 최고 장인(Master Meister)인 그의 도움이 절실했다.
“보주(Orb). 마스터 마이스터가 전력을 다해 만든 보주를 원해요.”
“……보주라. 완드나 스태프에 사용할 보주를 원하는 건가?”
강철은 당연히 보주를 만들어 본적이 있었다. 마법사의 의뢰가 아니라 기술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보주는 만들기 까다롭고 쉽게 깨지는 특징이 있었다. 옛날에는 마법사의 무기로서 유명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스태프와 완드의 등장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아뇨. 그 자체로 완성된 보주를 원해요. 제작의뢰비라면 충분히 낼게요. 보주의 재료도 준비했고요.”
“솔직히 보주는 조금 어렵네. 마법적인 물건이라서 마법사의 도움이 필수이고, 웬만한 재료는 안 쓴 것만도 못하네.”
“재료라면 최고의 물건이니 걱정마세요. 그리고 마법사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래보여도 마법 분야엔 도가 텄거든요. 대마도사 아울이 귀신이 되어 나와도 저보다 못해요.”
아울이라면 강철도 들어본적 있었다. 역사 속에 사라진 대마법사의 이름이었다.
“자네는 자신감이 대단하군. 좋네. 의뢰를 받아주겠네. 그래서 그 재료라는 게 뭔가? 어디서 정령의 정수라도 얻었나?”
정령의 정수는 미궁에서 정령 계열 몬스터를 잡고 간혹 전리품으로 나오는 물건을 말한다. 정령의 힘이 서려 있어서 보주의 재료로 손꼽힌다.
“그것보다 더 뛰어나죠.”
“더 뛰어나다…? 보주니까 광물은 아닐 텐데.”
“보통 이런 장면은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지 않나요? 주인공이 드워프를 찾아갔을 때 말이죠.”
“자네 판타지 소설 좋아하는군. 그래 나도 좋아했었지. 뭐, 드래곤 본이라도 가지고 왔나? 안타깝지만 겨우 드래곤의 뼈나 비늘 정도로 나를 놀라게 하기에는 멀었네. 그래. 드래곤의 역린이라면 보주의 재료로 충분히 활용 가능 하겠구만.”
마스터 마이스터인 강철은 드래곤을 몇 십번이나 재료로 사용한 적 있었다. 뛰어난 모험가들이 재료로 들고 찾아오거나, 경매장을 통해 비싸게 구했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귀해도 못구 할 정도는 아니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웬만한 재료로는 절대로 놀라지 않네. 마스터 마이스터를 얕보지 말게.”
강철은 희귀하다는 온갖 재료를 사용해봤다. 그의 높은 명성이 귀족과 모험가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에이션트 드래곤 하트.”
테드가 씩 웃으며 툭 내뱉듯 말했다. 의기양양하던 강철의 몸이 흠칫거렸다.
강철은 새끼손가락으로 자신의 오른쪽 귀를 후볐다.
“나이가 들어서 요즘 귀가 잘 안들리는 것 같단 말이지. 그래. 드래곤 하트라고? 상당히 귀한 물건이구만. 보주로소 최상급의 재료라 할 수 있지. 그래서 무슨 용의 드래곤 하트인가? 보주로 사용할 정도면 화룡이나 수룡인가.”
“청룡의 심장이죠.”
“……파란 용가리? 아아. 수룡인가. 그것들이 아주 새파랗지.”
“비룡은 뇌전을 부리죠. 다르게 뇌룡이라고 부르던데.”
“……음. 뇌룡. 재료로 사용하는 건 처음이구만. 확실히 놀랐네.”
“아르손의 심장입니다.”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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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