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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튜논.
26. 튜논.
테드는 드래곤 마운틴에서 암브로시아의 후유증이 회복되자마자 사이나와 애쉬를 데리고 펠리스 왕국으로 돌아왔다.
테드가 회복 되었을 때, 드래프리온은 이미 사탄교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테드가 토벌대랑 피터지게 싸우고 있을 때, 사탄교 일당은 드래프리온 곳곳에서 작업을 개시하고 있었다. 애초에 토벌대에 참가한 것은 아스타로트 뿐이었던 것이다.
수호룡과 용왕이 죽었으며 사탄교에는 바알이라는 어마어마한 힘까지 가지고 있었다. 나라 하나를 정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용인족들도 멍청하진 않으니 반란을 사탄교를 향해 반란을 일으켰다.
결과는 1시간도 되지 않아 전멸이다. 상대는 아스타로트도 바알도 아닌 에리골이라는 악마였다. 사이나의 정보로는 서열에 들지도 못한 악마다. 몇 천 명을 단숨에 제압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악마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만약에 시스템의 제약이 없다면? 상급 악마 혼자서 수 천 명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권능이 제대로 발현한다면 오히려 쉬운 일이다.
더욱이 최악인 점은 드래프리온이 섬이라는 것이다. 이 세계는 하나의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항해 기술은 발달하지 않았다. 반면에 드래프리온은 가장 항해 기술이 발달한 곳이다. 배를 이끌고 쳐들어갔다간 바다물고기의 좋은 먹이가 될 것이다.
테드는 항구 도시 벨코마에 저택을 빌려서 생활하고 있었다. 벨코마는 드래프리온으로 향하는 모든 무역이 중지되어 약간 휘청이고 있었다.
“제 정보망에 의하면 반란군이 전멸한 후의 드래프리온은 의외로 평화롭습니다. 죽어나가는 것은 사탄교에 순응하지 않은 귀족입니다. 평민이나 굴복한 귀족은 건들지도 않았어요. 평민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으니 불만은 없고요. 오히려 귀족들이 죽어나가 일부 마을은 축제 분위기라고도 하더군요.”
“그럼 반란이 일어날 조짐은요? 한 번 실패했다고 완전히 포기할 드라칸이 아닐텐데.”
“그렇긴 합니다만… 드래프리온 전역에 사탄교의 무력이 알려졌습니다. 평민들도 악마의 힘을 알고 있어요. 수 천명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멸한 것은 이미 전설 수준이죠. 현재로선 반란군이 일어날 조짐은 없습니다. 거기에 사탄교가 세금을 절반으로 낮췄어요. 복지를 비롯한 온갖 정책까지 시작하고 있죠. 거긴 날이갈수록 평민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있어요. 드래프리온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역까지 별탈 없이 할 수 있을 것이라더군요.”
너무나 순조롭게 악마의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정신적 지배 권능을 가진 악마가 사탄교에 있을지도 모른다.
“바알의 모습이 왕성에서 확인된건 사실이죠?”
“사실입니다. 모습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더군요. 듣기로는 사흘에 한 번 꼴로 술판을 벌인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점은 사탄교가 드래프리온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알이 움직인다면 네메스 대륙을 정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테니까.
“딥크스. 딥크스와 프리티스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죠?”
딥크스는 마족의 제국이다. 스스로가 악마의 후예 혹은 악마의 후손이라 생각하는 자들이다. 악마에 대한 우호다가 처음부터 장난 아닌 것이다.
“일부 광신자같은 자들이 드래프리온으로 가서 악마를 받을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의외로 악마와 마족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쉬쉬하는 분위기입니다. 메피아 여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문제는 프리티스 제국이겠군요.”
“네. 그 말대로. 벌써부터 원정대를 꾸리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정식으로 펠리스 왕국에 협력 요청을 했죠. 전하는 상황이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거절했습니다만… 프리티스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입니다.”
천족은 마족과 다르게 천사를 맹신한다. 천사가 죽으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죽음으로 몸을 던질 광신도 놈들이다. 천사의 숙적인 악마를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프리티스의 움직임은 테드가 예측했던 대로다.
“……라이거 전하는요?”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것이 뜻입니다. 혼자서 섣불리 움직였다간 독박을 쓰는 수가 있으시다고….”
“…으음.”
테드는 당장이라도 쳐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다스렸다.
드래프리온에는 수 많은 악마가 있다. 중간계의 제약을 받고 있는 상태라면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약 제약이 없다고 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군다나 드래프리온엔 바알이 있다.
잠시 생각하던 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래프리온으로 가실건가요?”
“그럴 리가요.”
“다행입니다. 혹시나 가신다고 했으면 전력으로 막았을 겁니다. 뭐… 실패하겠지만요.”
애쉬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그가 물어왔다.
“그럼 무얼 하실 생각인지요?”
“준비요. 바알을. 아니, 사탄교를 상대할 준비요.”
“실례가 아니라면, 그 준비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마법사가 준비할 수 있는건 마도구 정도지요. 뭐. 지금의 경우엔 조금 다르지만…….”
테드는 말끝을 흐리며 뜸을 들였다. 일단은 딥크스로 가서 마나액체를 구한다. 아깝지만 대량을 사용해 마도구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드워프. 드워프를 만나야 겠어요. 최고의 마도구를 만들려면 그에 걸맞는 것이 필요하거든요.”
“오자마자 여행인가요. 펠리스에서 한 달 정도는 쉴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애쉬 씨가 힘들면 펠리스 왕국에 있어도 상관없어요. 저도 미안하기도 하니까.”
“배려는 감사합니다만, 역시 테드님을 따라가야 겠습니다. 테드님과 행동하다 보니 여행을 좋아하는 체질이 되어버려서 곤란합니다.”
애쉬는 웃으며 준비를 하겠다고 말하고 저택을 나섰다.
⁂ ⁂ ⁂
드래프리온의 왕성의 중심, 과거 용왕만이 앉을 수 있었던 황금의 옥좌가 있는 알현실은 현재 두려움이 담겨있는 침묵이 사방을 짓누르고 있었다.
황금과 드래곤의 뼈, 비늘로 만들어진 용왕좌(龍王座)에는 어린 여자 아이가 지루한 표정으로 반쯤 누워 있었다. 축 처진 팔과 다리에서 그녀의 귀찮음이 느껴졌다.
현재 알현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 백 명의 귀족들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새하얀 대리석 바닥만을 하염없이 노려봤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것은 공포뿐이다. 누구도 왕좌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못했고, 누구도 그녀와 대적할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옥좌의 옆에 있는 아스타로트는 냉정하게 주위를 살펴봤다. 이곳에 모여 있는 자들은 현재 드래프리온의 귀족들이다. 영지를 가진 귀족과 작위만을 가진 귀족. 가세가 기울어 몰락귀족이라 불리는 자들도 있다.
물론 이곳에 참여하지 않은 귀족들도 있다. 그들은 지금쯤 아스타로트의 초대장을 무시한 것을 저 제상에서 처절하게 후회하고 있으리라.
“용왕은 죽었다.”
아스타로트가 툭 내뱉은 말이었다. 몇몇 귀족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아스타로트는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 중 일부는 몰래 주먹을 꽉 쥐는 자들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미래는 죽음으로 결정되었다. 왕성을 나가는 순간부터 암살자들이 그 목을 취할 것이다.
“수호룡도 죽었지.”
몇몇이 천장을 힐끗 올려다봤다. 그러다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귀족 대부분이 바닥을 쳐다보고 있는 이유가 천장에 걸려 있는 에이션트 드래곤… 지르켈리안의 시체 때문이다.
검은색으로 변색되어 수 없이 많은 촉수가 뻗어 나와 꿈틀거리는 시체는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그것의 모습은 기괴해서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정신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저것은 사탄의 심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환경을 마계와 똑같이 만들어주며 시스템의 제약을 없애 준다. 즉, 사탄의 심장이 있는 한 악마는 중간계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힘을 발휘 할 수 있었다.
“반란군은…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너희들은 충분히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스타로트의 말에 대답은 없었다. 바알의 나릇한 하품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녀는 아스타로트를 쳐다보며 빨리 하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아스타로트는 그녀의 뜻을 받아 들였다. 아직 드래프리온은 완전히 자신의 산하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베리톤 알프란시드 후작. 앞으로 나와라.”
귀족들의 앞에 서있던 자였다. 50대로 보이는 강직한 얼굴의 남자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발걸음은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앞으로 나왔소. 아스타로트!”
베리톤이 당당하게 외쳤다. 그것은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 그의 옷속에 감추어진 주먹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재상이라 부르라고 했을 텐데.”
“본인은 그대를 드래프리온의 재상으로 인정한 적이 없소!”
“그럼 그렇게 하던지.”
베리톤의 눈이 이글거렸다.
아스타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칭호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시간만 지나면 모두가 자신을 재상이라 부를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자네가 앞으로 나온 이유를 알고 있나?”
“전혀 모르겠소.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그래. 모르는 것 같아서 불렸다. 알았다면 이곳에 나오지 않았을 테니.”
아스타로트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의 그림자에서 1M 정도 되는 크기의 악마가 솟아났다. 박쥐날개를 가지고 있는 악마는 갈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고블린과 매우 흡사한 외모를 한 악마는 서류 한 뭉텅이를 아스타로트에게 넘기고 다시 그림자로 사라졌다.
아스타로트의 권능인 연옥에 소속되어 있는 하급 악마인 데블린이다. 가지고 있는 권능은 그림자 속에 숨는 정도다.
“아예 대놓고 반란군의 수장을 지원했더군.”
그의 앞으로 서류의 일부를 던졌다. 서류가 바닥에 떨어진다. 서류에는 베리톤이 반란군에 지원한 품목과 병사 등이 자세하게 써져 있었다. 시기까지 적혀 있어 완벽했다.
베리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스타로트와 바알의 시선엔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오히려 뒤에서 느껴지는 귀족들의 시선이 더욱 따가웠다.
“…그렇소. 그것이 무슨 문제라도 되오? 본인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오.”
“문제는 되지 않지. 자네 말고도 반란군을 지원한 자는 수 없이 많고, 마왕 전하께선 관대하시게도 반란을 용서하노라 했으니. 하지만 또 다시 반란군을 지원하고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아스타로트가 들고 있던 서류를 전부 베리톤을 향해 던졌다. 서류가 베리톤의 얼굴을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흩어진 서류를 보는 베리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충 훑어본 서류엔 자신 뿐만이 아니라 부하들에 관한것까지 모든 것이 써져 있었다.
“프리티스 제국을 끌어들였더군.”
“……어떻게. 어떻게 알았소? 분명히 이것은 극비 하에….”
“내가 그걸 자네에게 말해줘야 할 이유는 없지. 그것보다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무엇을 말이오? 이곳에서 자결이라도 하라는 것이오?”
아스타로트는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선 이번에도 관용을 베푸시기로 결정하셨다. 진심으로 사과하게 그럼 용서 받을 것이네.”
베리톤이 바알을 쳐다봤다. 유녀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녀는 이젠 아예 대놓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자신 따윈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뒤에서는 귀족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서 그에게 굴복한다면…….
“나는 사과 할 일을 하지 않았소.”
“그렇군. 자네는 충신이군.”
바알이 허공을 향해 손짓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곧이어 알 수 있었다.
천장에서 뻗어나온 검은색의 매끈한 촉수가 베리톤을 휘감더니 잡아 챘다. 베리톤이 비명을 질렀다. 귀족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지르켈리안의 시체가 갈라졌다. 내부에 수 없이 많은 이빨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베리톤이 징그러운 입안으로 들어갔다. 사탄의 심장이 고동쳤다. 처절한 비명이 알현실을 울렸고, 입 사이로 튀어나온 피가 귀족들의 머리로 떨어졌다.
비명은 곧이어 그쳤으나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살이 찢어지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헤스톤 클리안드 자작. 앞으로.”
아스타로트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알현실에서 메아리쳤다. 귀족들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그 날, 드래프리온의 귀족의 수는 삼분지 일이 되었다.
바알은 좀비같은 얼굴을 한 귀족들이 알현실을 서둘러 빠져나가는 꼴을 보면서 아스타로트에게 물었다.
“아스타로트. 언제까지 이딴 짓거리를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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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