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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92화 (19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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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에이션트 드래곤.

폭풍과 번개를 몰고 다니는 청룡 아르손이 먹구름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손은 드래프리온의 3마리의 에이션트 드래곤 중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자다. 그가 상징하는 것은 질서이며 수호륭 중 가장 많은 존경심을 받고 있다.

그 증거로 토벌대원들은 공포보다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청룡이 나타났으니 이제 괜찮다는 말 따위를 지껄이고 있었다.

크루틱은 쓰레기를 버리듯 땅바닥에 지르켈리안을 떨어뜨렸다. 생각 같아서는 목을 찢어버리고 드래곤 하트를 취하고 싶었다.

「조건은 완료되었을 것이다. 계약을 이행하라.」

크루틱이 근처에 숨어 있는 악마에게 마법 메시지를 전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으나, 크루틱은 충분히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그들이 실패한다면 그 죄를 물으면 될 일이었다. 지금의 가장 큰 문제는…….

하늘에서 커다란 번개 줄기가 크루틱을 향해 떨어졌다. 크루틱이 검은 장막을 펼친다. 머리위에 형성된 타원 모양의 검은색 막이 연달아 떨어지는 번개를 막고 있을 틈에 땅바닥으로 내려섰다. 검은 장막이 산산조각난다.

지상에 내려선 크루틱을 향해 번개가 내려쳤다. 그러나 이미 꼬리를 땅바닥에 꽂은 크루틱에게는 뇌전은 큰 피해를 주지 못 한다.

[어지간히도 열받았나보군. 네놈의 위선자같은 모습이 사라져서 참으로 보기 좋군.]

크루틱이 아르손을 향해 이죽여주고서 빠른 속도로 땅바닥을 파헤쳐 들어갔다. 본래 날개가 없는 흑룡은 지룡 출신의 에이션트 드래곤이다. 비룡인 청룡과는 상성이 나쁘다. 물론 청룡이 지하에 들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크루틱! 너는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다!]

대외적으로 청룡은 가장 온화하다고 알려져 있다. 크루틱이 알기로도 그는 화를 잘내지 않는다. 자신이 실험삼아 마을 하나를 몰살시켰을 때도 그는 가벼운 경고만을 날렸을 뿐이고 화내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선’이란걸 넘지 않는다면 웬만한 일은 따져 묻지도 않고 그냥 넘어간다.

쾅! 쾅쾅! 땅을 향해 번개가 연속적으로 몰아친다. 크루틱은 은밀하게 땅속을 헤엄쳤다. 가장 좋은 것은 아르손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인데, 그가 지르켈리안처럼 멍청한 짓거리를 할 리가 없었다.

크루틱은 브레스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드래곤 하트를 혹사 시켰다. 브레스는 경천동지의 위력을 보유한 만큼 막대한 마나를 소모하기에 마나가 풍부한 대기에서 해야 한다. 이전에 지르켈리안이 브레스를 내뿜기 전에 숨을 가득 머금은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크루틱은 지하에서 브레스를 준비한 뒤, 지상으로 올라가 아르손을 향해 내뿜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령 피한다고 해도 대기를 오염시키는 포이즌 브레스이니 최저한의 효과도 챙길 수 있다. 지상의 토벌대원들이 죽겠지만, 그건 크루틱이 알바가 아니었다.

준비를 끝낸 크루틱이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조심을 기울이며 지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아르손을 찾는다.

아르손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먹구름을 등지고 강물에서 헤엄치는 장어처럼 꿈틀 거리고 있었다.

지면을 유심히 노려보던 아르손과 크루틱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리고 동시에 입을 벌리고 숨을 뱉었다.

크루틱의 입에선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보라색 독의 숨결이.

아른손의 입에선 눈이 멀 정도로 번뜩이는 청백색 뇌전의 숨결이 뿜어진다.

제각각의 숨결은 허공에서 부딪히고 상쇄되어 간다. 독은 타들어가고, 뇌전은 소모된다. 최후에는 어떤 브레스도 남지 않았다. 주변에 희미하게 잔재하는 크루틱의 독이 전부다.

드래곤 마운틴의 싱싱한 나뭇가지에 크루틱의 희미한 독이 닿자 순식간에 거무죽죽하게 변해 말라 비틀어졌다.

[크루틱! 왜 현 용왕을 죽였나?!]

[과연. 그것도 눈치 챘나. 지르켈리안과 달리 유능하군.]

지금 왕궁의 옥좌에 앉아 있는 용왕은 크루틱이 심혈을 기울어 제작한 인형이다. 진짜 용왕은 3개월 전에 크루틱의 컨슘으로 마나가 되었다. 수호룡에게 부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용왕이 살아있다간 자신에게 장애물이 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친우의 후손을 죽인 이유를 묻고 있다!]

아르손이 버럭 외쳤다. 크루틱의 목에서 수 천마리의 벌레가 동시에 기어가는 듯한 실소가 흘러나왔다.

[친우? 그것을 친우라 생각하는 것은 너 뿐이다. 지르켈리안과 나는 그것의 이름조차 모른다. 멋대로 우리의 이름으로 그것과 맹세를 약속하고, 이딴 좁아터진 섬의 수호룡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네놈이지.]

[맹세는 너도 납득한 일이었을 텐데? 또한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초대의 용왕과 약조를 맺었을 때, 현 수호룡이자 최후의 에이션트 드래곤이었던 그들은 약했다. 동시에 에이션트 드래곤의 하트라는 어마어마한 보물을 몸 안에 간직하고 있었다.

크루틱은 아르손이 멋대로 초대 용왕과 계약한 것은 싫었지만,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며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 덕분에 아무 탈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파멸을 먼 미래로 돌렸을 뿐인 행위였지.]

에이션트 드래곤은 번식이 불가능하다. 현재 중간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에이션트 드래곤 3마리가 전부 수컷이기 때문이다. 에이션트 드래곤에겐 미래란 없다. 영원할 것 같은 수명도 언젠가는 끝을 고한다.

[우리는 사형수다 아르손. 섬이라는 감옥에 갇혀 언제가 다가올 날 만을 기다리고 있지. 나는 이딴 구더기같은 삶 따윈 인정하지 못 한다!]

[…….]

아르손은 한순간 침묵을 고수했다. 가슴 한편으로 크루틱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럼 묻겠다. 크루틱. 섬을 벗어나 대륙으로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잘 물어 보았다, 아르손! 똑똑히 들어라!]

크루틱의 감정이 한 순간 격해진다. 감정은 포효가 되어 외쳤고, 숲과 땅, 공기가 두려움을 느끼듯 떨었다.

[나는 이 세계에 재앙의 이름을 남기고 싶다!]

드래프리온의 수호룡 크루틱은 유명하다. 5살먹은 용인족도 크루틱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드래프리온의 밖은 다르다.

크루틱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머리를 갸웃거린다.

드래프리온의 수호룡이란 먼 나라의 가십거리로 삼기 딱 좋은 전설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의 이름 크루틱, 석자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게 만들 것이다. 이 세계에 영원히 남을 흔적을 남길 것이다! 설령 내가 흙이 되어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나의 이름은 영원한 재앙이 되어 세계에 남을 것이다!]

크루틱이 잘게 몸을 떨었다. 오랫동안 숨겨왔던 목적을 외치며 상상하자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찾아왔다.

상상만으로 이 정도인데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렇군. 잘 알았다. 네 놈이 얼마나 위험한지! 너는 세계를 위해 이곳에서 죽어야 한다!]

크루틱은 그가 자신을 위해하지 못하는 것을 예상했다. 물론 이해 따윈 바라지도 않았다. 자신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족쇄를 끊을 때가 온 것이구나!]

크루틱이 흑마법을 준비한다.

먹구름에서 생성된 뇌전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아르손의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 백, 수 천개의 뇌전이 하나로 뭉쳐 동그란 모양을 형성한다. 벼락은 끊임없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뇌의 정수. 혹은 만뢰(萬雷)라 불리는 기술이었다.

크루틱이 알기로 위력만큼은 브레스를 뛰어넘는 아른손의 최대 기술이라 할 수 있었다. 과거 대륙에서 드래프리온을 침공했을 때, 아르손은 이 기술을 이용해 바다위에 있던 모든 어리석은 적들을 한 번에 쓸어버렸다.

크루틱의 주위에 검붉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피를 닮은 색깔의 마법진에선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강렬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뿌려두었던 플레이그를 통해 생명력이 흘러 들어온다. 크루틱의 주위에 마법진이 증식하듯 늘어났다.

아르손의 등 뒤에 있던 먹구름이 뇌의 정수에 흡수 되듯 사라지는 것으로 만뢰는 완성되었다. 만뢰가 천천히 지상으로 낙하했다.

크루틱이 전개한 13개의 마법진으로 부터 검붉은 빛의 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길한 기운이 남실거리며 구체에 닿은 공기가 오염되어 부식된다.

아포칼립스(Apocalypse)라는 흑마법이다. 원소마법 중에 똑같은 이름을 가진 마법이 있는데 그것은 속성을 합해 위력을 극대화시킨 마법이고, 크루틱이 사용한 아포칼립스는 위력은 떨어져도 복합된 저주가 확실하게 생명을 거두어간다.

이 비장의 흑마법이 아르손의 생명을 앗아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만뢰와 아포칼립스의 13개의 구체가 서로를 향해 달려 나간다.

둘 모두 상쇄 따윈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기술이 상대의 기술을 잡아먹을 것이라 생각했다.

서로의 공격이 부딪히기 직전, 방해가 들어왔다.

사이에 끼어든 것은 두려움에 벌벌 떨던 토벌대원들이 한순간이나마 정신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다운 오색찬란한 빛이었다. 빛은 만뢰와 아포칼립스를 삼켰고, 허공중에서 조금도 남기지 않고 존재를 감췄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오랜 세월 마법을 연구하고 매진해온 크루틱만이 저 빛의 정체를 알았다.

원소 마법의 아포칼립스. 범위는 좁아도 위력은 확실한 마법이다. 이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은 최소한 마도사 이상의 실력자라는 것이다.

[어떤 놈이냐! 모습을 드러내라!]

크루틱의 본노를 표하듯 그의 거대한 꼬리가 땅을 후려쳤다. 파인 땅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너희들끼리 공멸해주기를 바랬는데, 여기있는 사람들까지 휘말리겐 할 순 없잖아. 너희들 그냥 다른데 가서 싸워라.”

한쪽에서 말을 하며 한쪽에서 걸어 나온 것은 검은 후드를 쓰고 있는 청년이었다. 후드 속에서 붉은 눈이 반짝이며 무언가를 찾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등한 생물이… 건방지구나!]

자신의 거대한 계획의 시작을 방해 받았다는 것에 화가난 크루틱이 다크 스웜을 소환했다. 검은 쇠파리 떼가 테드를 향해 날아간다.

다크 스웜이 불에 타올랐다. 단숨에 재가 되어 사라진다.

[다크 스웜을 한 순간에 태워죽일 정도의 화속성 마법… 보통 놈이 아니군.]

아포칼립스를 사용해 자신과 아르손의 공격을 막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지금은 재차 확인한 것뿐이다.

크루틱이 상대방의 특징을 살폈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테드 크루시안. 그래… 네놈이 그 테드 크루시안이군.]

크루틱은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아르손에게 돌렸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건 드래곤의 일이다.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물러가라.]

아르손이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테드는 크루틱과 아르손을 번갈아 쳐다봤다. 상대는 에이션트 드래곤. 동시에 두 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숨어있는 사탄교가 불쑥 튀어나와 튀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가장 최선의 방법은 어부지리였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자들이 휘말려 죽게 할 수는 없었다.

크루틱의 주위에서 다크 스웜이 일어난다. 다크 스웜은 테드가 아니라 숨을 죽이며 현재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토벌대원들에게 날아간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마나와 생명력을 강제로 흡수하기 위해서다.

생각해보면 어부지리 말고도 아르손과 힘을 합쳐 크루틱을 죽이는 방법도 있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지금 상황에선 정답이라 할 수 있다.

테드가 크루틱을 향해 손을 뻗었다.

“피드백(Feedback).”

다크 스웜의 마법이 강제로 풀린다. 흑마법이 마력이 되어 다시 돌아간다. 강제로 돌아온 마력에 마나역류가 일어났다.

아무리 에이션트 드래곤이라도 마나역류에는 데미지를 받는다. 크루틱이 눈살을 찌푸렸다. 드래곤답게 마나역류를 3초도 걸리지 않아 제어했다.

“타고난 육체 능력을 믿고 마나 역류에 대한 대비를 전혀하고 있지 않은 오만함을 노린 건데… 역시 드래곤인가. 마나 역류는 가볍게 제어하는군.”

마나를 숨 쉬는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들에게 마나역류는 데미지가 되지 못 한다. 잠시 멈칫하게 만드는 것이 전부다.

[건방지구나!]

[이것은 우리 드래곤의 일이라고 말했을 터다!]

크루틱과 아르손이 동시에 호통 쳤다. 테드는 혀를 찼다.

크루틱은 직접적으로 공격 받았으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저 파란 미꾸라지 자식은 자기 적을 공격하는데도 왜 또 지랄인가.

“하여간 드래곤이란 것들은….”

============================ 작품 후기 ============================

그 심장, 받아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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